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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는 最善을 讓步하고 次善을 收容 할 수 있어야.

구원의 계획 2010. 9. 16. 16:43

담임목사는 最善을 讓步하고 次善을 收容 할 수 있어야.

 

담임 목사의 안은 목회에 있어서 最善이고 장로의 안은 次善일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목사가 일을 우선시 하여 최선만 고집 한다면 인간 관계가 부서지고 인간 관계가 부서지면 모든 것이 뒤틀리기 시작한다. 자동차 엔진에 부속 하나만 고장 나도 그 차는 정상적으로는 갈수가 없고 찜바한다. 당회도 그러하다.

 

장로의 소리가 교회를 위한 오히려 최선일수 있다. 목사만 교회를 위하여 하는 소리가 아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자는 民主 共同體에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 그러므로 설득하다 아니되면 인간 관계를 最 우선으로 하는 입장에서 장로의 次善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수용함이 최선을 고집함 보다 교회와 목회에 유익하다. 교회를 시대에 맞게 잘 지어도 영원한 것 아니다. 갈지자로 지어도 멀지 않아 재건축 할 것인데 왜?

 

손해와 유익, 적자와 흑자, 언제나 敎會를 最 우선시하여 私를 버리고 흑자편을 選擇 하여야 한다. 그 계산을 할줄 모르는 목사는, 목사는 목사인데 石頭 목사이다. 석두목사 때문에 문제가 많다. 한 사람의 생각이 아무리 좋아도 열사람 생각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다. 빨리가도 손해가 있고 늦게가도 유익이 있다. 젊은 아마추어 목사와 골통 목사들은 빨리만 가면 유익 한 줄로 錯覺하고 마구밀어 붙인다. 양들이 깔려 다리가 부러지던지 뇌진탕이 걸리든지 죽든지 추리하지 못하고 개이치 않고 마구 밀어 붙인다. 자신은 잘났다고 자부 하지만 고로 石頭이다.

 

필자가 아는 지방 한 시골교회 교인은 40여명 되는데 젊은 목사가 200명 앉을수 있는 교회를 마구 미러붙여 지어놓고 빛만 잔뜩남겨놓고 싸우고 볶다가 떠났다. 10년후 지금도 40여명이 모인다. 왜 그렇게 무리하게 지역에 맞지 않은 건축을 하고 상처를 내어놓고 떠난는가?

 

목회는 혼자하는 것이 아니다. 당회는 共同牧會 機構이다. 대통령도 혼자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다. 목회는 김정일 식으로, 전두환 식으로 하면 안된다. 그러면 5.18의 극참을 초래한다. 아마추어들은 뜨거운 감자를 한번 먹어본 다음에야 후회하고 목회 설계를 다시한다. 우리 속담에 방구질나자 보리양식 떨어진다는 말과 같이 다시 설계할 시간도 없어 종지부를 찍는 목회자들도 많다. 이런 목사들의 공통적인 후회의 한숨 소리는 이제 다시 시작한다면!

그래서 담임목사 청빙교회가 담임5년 또는 10년 유 경험자를 찾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어머니가 없는 출생은 있을수가 없다.

 

아마추어 목사들과 골통 목사들은 자기가 정한 최선이 하늘에 소리요 眞理인냐 끝까지 고집 하다가 인간 관계가 부서지고 교회를 소란케하고 목회를 그르치고 눈물을 삼키는 경우가 많다. 화장실 리 모델링을 하여 놓고 무엇을 하나 해 놓았다는 성취감을 느낄런지 몰라도 교회는 유익하지 않다. 초임목사와 골통 목사는 대체로 그런 공통점을 갖고있다. 그것은 목회자 자기 불행이요, 교회에 불행이다.

 

최선을 양보 할 줄 모르는 목사들은 인간 관계를 부서 뜨리는 목사로서 담임목사 자격이 없다. 목회는 인간 관계가 가장 重要함을 알아야 한다. 直接經驗을 통해 깨닫는목사는 머리가 니쁜 목사이고, 머리가 좋은 목사는 間接經驗으로 체득하고 울지 않고 후회없는 평탄한 목회를 한 평생한다.

 

그럼으로 담임목사는 最善이라고 생각되는 自己생각을 양보하고 장로의 次善 수용에 아량을 가져야 한다. 일보다 당회원과의 인간 관계를 最우선 할 줄 알아야 평탄한 장기 목회를 할수 있는 담임목사 자격이 있다. 장로 제도가 있는 장로교회는 堂會運營만 잘하면 목회는 누워 떡먹기다. 싸울일도 없고 울일도 없다. 그리하여야 신 바람나는 목회를 할수있다.

 

필자는 평생 목회하면서 초임에 뜨거운 감자 한번 먹어본 후로는 교회문제로 기도원에 간일도, 금식한 일도, 철야기도 한 적도 울어본 적도 없다. 그냥 물이 흐르듯이 흘러왔다. 목회를 역으로 하지 말고 순리로하면 그렇게된다. 뜨거운 감자를 한번이상 먹는 목사는 표준 지능이 안되는 목사이다.

 

옛날 일본말로 갱까도리 목사에 별명이 붙은 목사가 있었는데 이 목사는 가는 교회마다 싸움 박질하는 목사를 가르쳤다. 지금도 갱까도리 목사가 있는것을 종종본다. 인간 관계가 최우선 안되는 목사는 다른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도 목회는 괴롭고, 갈등하고, 신경쇄약에 걸리고, 병에걸리고 지쳐 쓰러지고, 실패하고, 쫓겨난다.

 

인간 관계가 부서진 교회는 평탄하게 갈수가 없다. 원인을 찾아 그것부터 고치고 목회하여야 갈등 없는 교회가되고 목사 장로가 같이 즐거운 당회를 할수가 있다. 부서져도 쫓겨 나지 않고 버티는 목사는 자기파를 만들어 억지로 버티는데 당회를 지옥으로 만들고 교회는 생동력을 잃는다.

 

그리하면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 된다. 반대자가 있어도 지지자가 있으니까. 그러나 행복한 목회는 할수없다. 그 목회는 목회인데 重병든 목회이다. 자존심 따위는 버리고 고집 부리지 말고 스스로 당장 고치는것이 교회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건강과 신앙에 유익하다. 목사가 너무 갈등하고 괴로워 하면 사모도 병이든다. 부부 일심동체이니까.

 

필자는 어려움이 없는것은 아니었지만 목회는 늘 행복 하였다. 고로 잘났던 못났던 어떤 일이 있어도 당회원의 인격을 존중하고 인간관계를 최 우선하여야 한다. 필자가 섬기던 교회에는 중학 이상 졸업한 장로가 없었고 잘사는 장로가 없었다. 가장 하층 생활을 하는 형편이었다. 종로에서 쫓겨난 빈민들의 터전으로시작된 곳이 였기에....

 

그러나 그 분들을 무식 하다던가 가난하여 교회도 잘 봉사 못하고 자기에게 맞추어 목사 월급을 작게 준다고 불평 하거나 무시한적 없다. 항상 교회에서는 최고의 당회원으로 예우했다. 교회가 성장 하면서 아무리 학벌있고 돈있고 잘난 교인이 들어와도 그 뒤에 줄을 서게하였다. 어느 공동체나 위계질서는 중요하다.

 

은퇴 직전에는 학벌있는사람 재력있는 사람도 당회에 들어 왔지만. 당회원들의 위계질서를 세워놓고 나왔다. 最善을 양보하고 次善을 受用 할 수 있는 자여야 담임목사로서 평탄하게 長期 목회를 할 수 있고 교인들을 平安하게 牧羊 할수있다.

 

싸우고 갈등하는 목사는 교회를 불안하게 만들고, 파를 가르고, 지지소리, 반대소리, 욕하는 소리, 저주소리를 창출한다. 그런 목사는 목회를,아주 아주 잘못하는,목사이다. 낙재목사이다. 댓글에서 손자병법을 이용하여 싸움을 붙쳐 놓고 목회한다는 목사도 있다는데 그것은 손자 兵法이지 예수님의 가르쳐 주신 牧會병법은 아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손자병법으로 싸움을 붙여 춘추전국 시대를 만들어 놓고 목회 한다면 평화를 만들라는 우리대장 예수님의 군사는아니다. 마귀 군사이다.

 

그렇게 목회하면 버틸수는 있으나 교회는 생동력을 잃는다. 목회는 며칠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조급하게 굴지말라. 건방지게 굴지말라. 고집부리지 말라. 양보할줄 알아라. 낮아져라. 사심을 버리라. 그리하면 교회는 강물처럼 평화롭게 흘러 갈 수 있다.

 

담임목사는 방향만 틀어주면 마침내 대양에 도착한다. 그것이 목회이다. 그 목회자는 목회에 幸福을 누린다. 필자의 후임은 목회경험이 없어서 방향을 잘 못틀면 노숙하신 장로님들이 방향을 잡아주고 있는 것을 보면서 감사한다. 젊은 목사가 고집을 부릴까봐 이메일로 장로님들의 뜻을 따르라고 권고문을 보낸다. 고집 부리고 싸움하는 목사는 대양에 도착전에 중간에 전복되고 침몰하거나 아니면 김포 대교에 걸려 가지도 못한다.

 

어떤 목사는 한강믈을 빨리 가게 하려고 워커힐에서 뚝섬을 짜르려는 목사도 있다. 짜르는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도랑도 팔 능력도 없는자가 이상만 가지고 그런 목회를 하겠다고 날뛰는 어리석은 목사들도 있는데 철닥사니 없는 목사라고 장로들이 웃는다. 그런 목사와 共同牧會를 하려니 얼마나 속이 타겠는가?.필자가 장로라도 봐주기 어렵다.

 

초임목사와 젊은 목사들은 후회말고 신중하라. 독재는 나쁜 정치이다. 가장좋은 정치는 민주정치이다. 한국은 시끌벅적 하나 북한은 조용하다. 시글 벅적한 한국 정치가 조용한 북한 독재보다 났다. 최선이 안되면 차선을 수용하라. 最善을 고집하다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은 犯罪行爲 이다.

 

最善을 固執말고 次善을 受用하라.

最善을 固執말고 次善을 受用하라.

그 方法이 羊들을 즐겁게, 敎會를 平安하게, 즐거운 民主共同體 교회를 만든다.

 

후배 목사여러분!

잘못 되었다면 지금바로 목회 파라다임을 바꾸세요. 무릎을 꿇으세요. 용서를 비세요. 그러면 용서 합니다. 목사 권위 때문에 빌수가 없다고요? 그 권위는 교만의 마귀의 권위이다. 牧會는 羊들을 푸른 초장으로 잔잔한 물가로 引導하는 것이 예수님이 부여하신 예수님 목회 전법이요, 任務이다.

 

*참고

필자가 맨 서두에 말 했지만 다시 말합니다. 영적인 문제는 자신이 기도하고 성경봄으로 충족하는것을 전제하고

필자의 본 논지는 목회에 가장 어려운 사회학적 인간 관계를 논함을 유의 하시기를 바랍니다.

너무 인본주의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본인은 신본주의와 인본주의중 인본주의를 논하고 있는 것입니다.

 

글쓴이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무궁교회 장달윤 원로목사(017-221-54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