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사모함 없이 성령충만 있을 수 없어
편리함만 추구하는 성도, 대형교회만 찾는 이유
성도들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 중 하나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왜 삶의 변화는 없을까'라는 질문이다. 성령을 받았다고 고백도 하고 주일예배도 빠지지 않지만 생활은 여전히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을 때와 동일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 해결되지 않은 질문에 명문교회 박영길 목사(사진)는 그 원인을 `성령 충만'에 있다고 말한다.
“많은 목회자들이 성도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기도하고 말씀을 보라'고 말한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기도하고 말씀을 보는 것'이 성령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임에도 어느새 습관이 되어버렸는지 성령에 대한 이야기를 멀리하는 모습도 있다.”
박영길 목사는 특히 오순절 기간 동안 성령에 대한 이야기를 강조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기도하고 말씀을 보는 것'이 성령이 충만해지는 척도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아무 설명 없이 `기도와 말씀'만 강조하다보니 오히려 거부감마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오순절 기간이 아니더라도 교회라면, 또 목회자라면 당연히 성령의 충만을 강조해야 한다. 그럼에도 오순절 기간을 강조하는 이유는 성령의 임재와 충만을 설명하고 이해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박 목사는 최근 한국교회가 성령에 대해 사모하는 마음, 성령의 임재와 인도하심에 대한 지식마저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이로 인해 성령 충만에 대한 갈급함마저 사라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오늘날 한국교회가 성령 임재를 신비주의 형식으로 인식하면서 오히려 경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실제로 신비주의의 모습으로 이해하고 있는 단체가 성령 임재나 성령 충만을 자기 방식으로 해석하려 하기 때문에 더욱 성령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성령의 임재를 어떤 은사가 있을 때만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결국 성령의 임재나 충만은 인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인위적, 혹은 체계적인 방법을 통해 성령을 받으려는 움직임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성령은 불같이 임할 수도 있고 바람같이 임할 수도 있는 등 여러 방법이 있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영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어떤 체계적인 순서에 의해서 성령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할 때, 찬양할 때, 말씀을 들을 때, 그리고 전도할 때 등 언제든지 하나님의 영에 대한 간절함이 있으면 성령께서는 오신다.”
박 목사는 최근 교회들이 성령보다 은사의 체험을 더 갈망하는 모습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방언이나 병고침의 은사가 성령의 충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필요에 따라 주시는 것이지 성령과 은사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은사를 인위적인 것으로 해석해서 누가 주는 것으로 생각하면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어 박 목사는 성령의 임재 이후 성도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성령 충만'임을 강조한다.
“최근 들어 한국교회가 침체기라고 하는데 이는 성령 충만한 삶을 지속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령이 충만한 삶은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삶을 말하는 것인데 아무래도 오늘날 성도들은 믿음의 선조들과 같은 모습을 보이지는 못하는 것 같다.”
박영길 목사의 말에 의하면 믿음의 선조들은 회개에 대한 생활화가 되어있었기 때문에 성령의 충만을 매일 경험할 수 있었으나 오늘날 성도들은 주일 하루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듣고 자기 생활에 적용은커녕 `예배를 참석했다'는 자기 만족감에 빠진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성령 충만, 즉 삶의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다. 물론 기도생활도 많이 했다. 그러나 지금은 예수를 믿는 모양은 있어도 육(肉)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인다.”
박 목사는 작은교회가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고 밝힌다. 인간의 편리주의가 대형교회의 성장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작은 교회, 혹은 개척교회에서는 이것저것 시키는 것이 많다. 기도하라고 하고 말씀을 보라고 한다. 그런데 대형교회에서는 그런 간섭이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누구하나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그렇기에 주일날 교회에 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안위를 얻는 성도들은 편리한(?) 대형교회로 모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이런 모습들은 성도들에게 성령 충만을 잊게 만들고 성도의 이름만 가졌을 뿐 성령의 역사를 부인하는 모습마저 만들어 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박영길 목사가 사역하는 명문교회도 이런 부분을 가장 먼저 경계하고 교회의 모든 프로그램을 기도와 말씀으로 살아가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다면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의 모습이란 어떤 것일까? 박영길 목사는 이 부분을 옛습관과 단절되고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변화 받은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기본적으로 성도라면 말씀을 사모하고 기도를 통해 자신의 영적 성장을 도모하려고 한다. 그럼에도 성령이 충만하지 못한 이유는 자기 자신이 약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대선지자들도 인간이기에 잘못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들이 회개할 수 있었던 힘은 성령이 충만했기 때문이다. 성령이 충만할 때 힘과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오늘날 영성운동이나 목회자들에 대한 모습을 지적하는 말도 이어졌다.
“한국교회가 언제부턴가 `영성'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는데 사실 `영성'은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단어다. 물론 그것이 잘못된 말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한국교회에 유행처럼 번지면서 성령의 역사를 유식하게 표현하는 말처럼 사용되어 지고 있다.”
그러나 박 목사는 영성운동이라는 표현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성령의 역사'나 `거룩한 임재' 등이 올바른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영성'이라는 표현이 성도들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오늘날 목회자에 대해서는 헌신 부족을 지적했다.
박 목사는 설교 한편을 만드는 것을 `애 낳는 심정'이라고 표현했는데 오늘날 현대 문명이 발달하면서 자료도 쉽게 찾을 수 있고 예전보다 공부도 많이 한 목회자가 많아지면서 갈급함이 부족해 졌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요즘 목회자 역시 편리만 찾는다. 그래서 절박감이 사라진 모습이 예전과 같이 성령의 충만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고 한국교회를 흔들리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박 목사는 결국 이런 모습들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목회자, 그리고 성도들 스스로가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성령 충만은 자기 혼자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생활 속에서 받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를 떠나서는 안된다. 성령은 성령을 사모하는 사람에게 임한다. 행하지 않고 성령 충만을 원해서는 안된다. 성령이 사람에게 속겠는가?”
- 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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