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식/오늘의 설교

바르게 가는 교회(마태복음 13장 31∼32절)

구원의 계획 2018. 2. 13. 00:46

바르게 가는 교회(마태복음 133132) 2018.2.13

 

겨자씨 비유는 전통적으로 교회가 처음엔 미미하게 시작하지만 나중엔 크게 번창하게 될 것이라는 식으로 해석돼 왔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잘 생각해 보면 단순히 그렇게 긍정적인 의미만 담긴 비유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본래 겨자는 나무가 아니라 풀(개역개정) 또는 나물(개역한글)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땅의 겨자는 풀치고는 크지만 그렇다고 새가 둥지를 틀 정도는 아닙니다. 나물이 나무가 되었다는 것은 확실히 비정상적인 성장입니다. 이는 하나님 창조 법칙(1:11)에 어긋난 것입니다. 그럼 이 비유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겨자씨 비유는 이 땅의 교회는 본성적으로 겨자 나물 같은 것인데 잘못 자라 나무가 됐다는 뜻을 보여줍니다. 즉 그 본성이 변질된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기독교 초기에는 교회가 겨자씨처럼 가정교회와 지하교회 형태로 있었지만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자 온갖 사람이 다 교회로 들어오게 됩니다. 교회가 사회적 특혜를 누리고 돈과 권력을 갖게 되자 세상 이익을 따라온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로마가톨릭은 정치와 종교의 수장이 되어 세도를 부렸고, 교회는 천하를 호령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나무로 변질된 모습입니다. 이런 성장은 발전이 아니라 변질입니다. 이후 역사 속에서 교회는 반복해서 교권화되고 세속화되는 악순환을 반복했습니다.

 

32절은 이런 변질이나 다를 바 없는 번창 때문에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드는 현상이 생겼다고 말합니다.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여기서 새는 악한 자(19), 즉 공중 권세 잡은 마귀입니다. 요셉이 떡 굽는 관원장의 꿈을 해몽할 때도 새는 썩은 것을 먹는 짐승으로 나옵니다(40:19). 교회가 비정상적인 번창을 할 때 부패가 따르게 되며 여기에 새, 즉 마귀가 깃든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새가 깃든 나무에 대한 구약성경의 예언들이 있습니다. 이때 나무는 제국을 뜻합니다(4:1012, 31:36). 교회는 덩치가 커지고 돈과 권력이 많아지면 제국과 같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큰 나무가 된 교회에는 세상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계시록은 이런 상태를 큰 성 바벨론이라고 말합니다(18:2).

 

그럼 교회가 비정상적으로 커지는 현상은 왜 생기는 것일까요. 먼저 교회 크기를 키우고 싶은 사역자의 욕망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교회를 키우고 싶어 합니다. 깨끗한 물엔 물고기가 모이지 않는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교회가 죄나 거룩의 문제를 강조하면 싫어합니다. 어느 정도 혼탁한 물일 때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다음으로 교회의 크기로 하나님 나라를 증명하려는 태도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큰 오산입니다. 겨자는 이 땅에 오래도록 뿌리박고 있는 나무가 아니라 일년생 나물입니다. 나물은 사람들에게 치이고 밟힙니다. 요한은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요일 3:1). 교회는 거대하고 힘 있는 조직으로 세상에 알려져야 하는 게 아닙니다. 교회의 본성과 기능은 세상에서 힘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마귀가 교회의 변질된 성장을 부추길 때가 있습니다. 교회의 본질은 사라진 채 덩치만 커지면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 핵심은 희미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는 교회가 커지는 것을 추구하도록 부추깁니다. 그럴 때 마귀가 깃들일 곳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크기로 말하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크기의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는 많이 가기보다 바르게 가기를 추구해야 합니다. 많은 수를 추구하기보다 한 영혼 한 영혼을 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에 공중의 새가 깃들지 않을 것입니다. 많이 가기보다 바르게 가는 교회가 되기를 힘쓰는 성도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박미래 서울 사랑하는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