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식/오늘의 설교

잃어버리셨습니까?(마태복음 18장 12∼14절)

구원의 계획 2018. 3. 8. 00:10

잃어버리셨습니까?(마태복음 181214) 2018.3.8

 

어렸을 때 명절날 받은 큰 용돈을 부모님 모르게 꽁꽁 숨겨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분명 잘 숨겨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용돈을 찾으니 보이지가 않더군요. 정말 하늘이 노래진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심장이 쿵쾅거리고 식은땀이 나면서 방을 다 뒤집어 찾아 헤맸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용돈은 찾지 못했습니다. 제 방을 청소해주시던 어머님의 손에 들어갔는지, 제가 어디 다른 곳에 놓고 기억을 못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만큼 절박하게 무언가를 찾았던 기억이 없습니다. 왜 그렇게 절박하게 찾았을까요. 그 용돈이 꼭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늘 침 흘리며 쳐다보았던 프라모델을 기필코 사겠다는 강력한 동기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무언가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게 되면 미친 듯이 그걸 찾기 위해 온 정신과 힘을 다 씁니다. 하지만 반대로 흔하게 구할 수 있거나 크게 가치가 없거나 내가 별로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것이라면 잃어버려도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갑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 100마리의 양에 대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아직 99마리나 남았기 때문에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99마리를 산에 두고 한 마리를 찾으러 갔다가 나머지 99마리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다면 더 큰 위험이지 않을까요. 어쩔 수 없지만 99마리의 안전을 위해 당연히 잃은 양 한 마리는 포기하는 것이 맞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내가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지요. 만약 내가 지갑을 잃어버리고 허둥대는데 옆에서 친구가 그 모습을 보며 포기해 그냥 하나 사면 되잖아라고 이야기한다면 내 심정이 어떨까요.

 

양을 잃어버린 양치기는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하층민이었습니다. 양 주인은 따로 있고 그는 양을 돌보기 위해 고용된 사람일 뿐이기에 한 마리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다 큰 양 한 마리는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양 한 마리를 잃어버린 양치기에게는 절박함이 생겨났습니다. 최대한 99마리를 안전한 곳에 두고, 얼른 가서 찾아와야 하겠다는 우선순위가 생겨났습니다. 그러고는 최선을 다해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으러 뛰어갔을 것입니다.

 

99마리도 중요하지만 양치기에게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눈앞에서 사라진 한 마리였습니다. 우리에게는 그와 같은 절박함이 있을까요. 안타깝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출석하고 있는 교회,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성도들은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머무르는 것이 너무 좋고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에 절박함이라는 단어는 다소 낯설고 불편하게 느끼게 됩니다. 지금 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신앙생활하고 있기에 더 이상의 희생과 헌신을 하기에는 여유가 없습니다.

 

그렇게 잃은 양이 한 마리 한 마리씩 이탈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잃은 양을 절박하게 찾아 헤매는 것은 내 일이 아니라고 여깁니다. 어느 새 정신을 차려보니 99마리가 아니라 절반 이상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기다림에 지쳐 혼자 뛰쳐나가기도 하고, 사나운 늑대가 물어가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나와는 상관없는 일일까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잃은 양 한 마리는 어디 있느냐?”

 

혹시 지금 내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요.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뜨거운 마음이 아닐까요. 예배 때마다 내 영혼을 충만히 채워주는 은혜의 감동이 아닐까요. 함께 신앙생활을 했던 지인들은 아닐까요. 그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한 절박함과 우선순위가 나에게 있는지요. 그 잃은 것을 되찾기 위해, 절박한 마음으로 주님께 부르짖을 수 있는 오늘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전웅제 의정부 하늘샘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