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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는 감사를 낳는다

구원의 계획 2010. 12. 8. 10:09

은혜는 감사를 낳는다(누가복음 17장 11절~19절) - 하용조 목사

 

항상 기뻐하십시오.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감사의 고백은 은혜에서 나온다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것은 우리 마음속에서 어떻게 감사가 일어날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아무리 복을 받아도 감사가 없는 사람이 있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감사가 없는 사람은 늘 불평과 원망이 있고, 감사가 있는 사람은 감동과 눈물과 감격이 있습니다.


감사는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요. 대답은 하나입니다. 은혜를 받아야 감사의 고백이 나옵니다. 은혜는 감사를 낳는다고 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감사가 흘러넘치기 시작합니다. 감사는 감사를 낳고, 원망은 원망을 낳습니다. 감사하느냐 안하느냐는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감사를 선택하면 계속해서 감사와 축복이 나오게 됩니다. 작은 일에도 원망하고 불평하면 이상하게도 모든 일을 할 때마다 원망과 불평만 눈에 보이게 됩니다. 이 시간 말씀을 듣기 전에 지난 1년 동안 여러분이 받은 수많은 은혜 중 세 가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1년 동안 아무리 기다려도 감사할 것이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조건 없는 은혜

먼저 은혜에 대한 정의를 찾아보겠습니다. 은혜를 알아야 감사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절망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은혜를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고난과 역경과 불가능을 주십니다. 죽음을 경험하게 합니다. 죽음을 알아야 부활을 압니다. 죽음을 모르는 사람은 부활의 축복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은혜는 절망에서 구원받는 것이고, 저주에서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축복과 저주는 내가 선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죄인이 의인이 됩니다. 죽을 병에서 살아납니다. 암에 걸렸거나 죽을 병에 걸렸던 사람이 나으면 눈물이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났는지, 그 사람에게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감사가 흘러넘칩니다.


은혜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조건이 없습니다. 조건이 있어서 은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조건이 없는데도 은혜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대가가 없는 것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자격이 없는데도 끼워준 것입니다. 사실 어떻게 말하면 새치기 같은 것입니다. 내 실력으로 보면 떨어져야 하고, 그 자리를 갈 수 없는데, 실패할 수밖에 없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붙어주었고 생각지도 못하게 살아난 것입니다. 죽었다 살아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제가 북한에서 탈출한 사람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는데 그 분은 북한에서 정치범으로 있다가 중국으로 갔는데 거기서도 쫓겨나서 러시아로 갔답니다. 가는 길이 큰 강을 건너야 자기가 살 것 같은데 달빛이 밝게 비추는데 초소마다 경비병이 있어서 할 수 없이 나무판자 하나 끼고 건넜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어머니! 저 좀 살려주세요. 하늘아! 날 좀 살려다오”하며 강을 건넜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많은 보초병이 자기를 못 보더랍니다. 그래서 그 강을 건넜답니다. 그 사람이 그 말을 하면서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그 사람이 러시아에 가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곳에 있던 목사님이 자기를 환영을 해 주었는데, 북한에서 절대로 목사를 믿지 말고, 교회도 가지 말라고 세뇌시켰기 때문에 방을 주어도 경계하고 의심하느라 새벽이 될 때까지 잠을 못 잤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점점 하나님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한국까지 무사히 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죽을 뻔하다가 살아나면, 불치병에서 고침을 받으면, 나는 내 인생이 끝났다라고 생각했는데 살아나면 저절로 자기도 모르게 감사가 샘물처럼 솟아납니다. 감사하면 겸손해집니다. 감사가 없는 사람은 항상 교만합니다. 자기가 잘난 줄 알아서 남을 무시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감사가 생기고 감사를 드리면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됩니다. 은혜에 대한 감사가 생기고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러브소나타가 열릴 때마다 듣는 찬양이 하나 있는데, 김영미 씨가 부르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분도 하나님,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라는 찬양입니다. 이 찬송을 계속 부르게 되면 숙연해집니다. 내 부족함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게 됩니다. 감사란 값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보답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감동입니다. 요즘 여러분들의 삶에 감동이 없는 분들이 계십니까. 눈물이 없습니까. 변화가 없습니까. 그것은 바로 은혜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온누리교회에 베풀어주신 은혜

저는 지난 25년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 온누리교회에 베풀어주신 은혜를 손꼽아 봤습니다. 가장 큰 은혜는 제가 예수 믿은 은혜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 잘 믿는 부인을 만나서 예수 믿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가난하고 외롭고 어려워서 자살하려다가 예수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 믿는 것 보다 더 큰 은혜는 없습니다.


우리 온누리교회를 생각해보니 우리 교회를 세워주신 것이 은혜였습니다. 교회에 가서 좋은 경험을 하는 사람도 있고 나쁜 경험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진짜 교회를 발견할 때 내 삶의 의미와 목적이 생깁니다. 정말 교회가 천국과 같은 곳임을 알게 됩니다.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비전도 생깁니다. 내 생애에 만날 수 없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우리 온누리교회가 창립 때부터 선교에 헌신한 것을 감사합니다. 온누리교회가 지나치게 선교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산도 그렇고 모임도 그렇고 목숨을 걸고 우리는 주의 복음을 전해 왔습니다. 벌써 1,300여 명이 선교사로 떠났고 북한 선교, 이스라엘 선교,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선교, 다문화 가족을 위한 선교 등, 점점 다양한 관점에서 선교하게 되었습니다. 선교에 관심을 갖게 되면 선교의 지경이 넓어집니다. 처음에는 나밖에 모르고, 내 가족밖에 모르고, 내 민족밖에 모르던 사람이 나와 상관없는 민족까지도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온누리교회의 가장 큰 축복이 러브소나타를 했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러브소나타를 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50년 동안 우리가 일본 사람에 대한 감정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러브소나타를 통해서 적어도 온누리교회 교인들은 무조건 일본사람들을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도 은혜입니다. 특히 온누리교회를 생각하면서 감사드릴 것은 차세대의 부흥과 대학청년부의 열정입니다. 주일에 모이는 대학청년들만 7,000~8,000명입니다. 젊은 열정을 하나님께 드리고 교회에 와서 예배드린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저는 중년부인들을 보면 정말 감사합니다. 중년부인이 갈 곳은 타락하는 곳 밖에 없습니다. 남편과의 관계도 시들해지고 아이들도 아무리 공을 들여도 재미가 없고 딴 짓만 하니까 40대 주부들은 연애나 쇼핑을 위해 모두 세상으로 나갑니다. 그런데 40대 여성들이 교회에 와서 시간을 보내고 눈물 흘리고 기도를 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우주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찬양

여러분, 감사는 크게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창조하신 분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 이름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계절마다 자연을 풍요롭게 하고 풍성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비가 조금만 시간을 맞춰서 오지 않으면 다 망합니다. 홍수가 나거나 과일이 망가지거나 죽습니다. 농사짓는 것도 시간을 딱 맞춰서 하나님이 햇빛을 주시고 바람을 불어주시고 비를 주셔야 풍요로워집니다. 작게는 우리 일상생활을 주관해주시고 우리의 세미한 음성까지도 들어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 감사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편 8편을 보면 다윗의 감사가 나옵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장엄한지요! 주께서 그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습니다. 어린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찬양하게 하셨으니 주께서 대적들과 원수들과 보복하는 사람들을 잠잠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달아 놓으신 달과 별들을 생각해 봅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이렇게 마음을 쓰시며 사람이 과연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봐 주십니까? 주께서 사람을 하늘에 있는 존재보다 조금 못하게 만드시고 영광과 존귀함의 관을 씌우셨습니다. 또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사람이 다스리게 하시고 모든 것을 사람의 발 아래 두셨습니다. 곧 모든 양들, 소들, 들짐승들, 공중의 새들, 바다의 물고기들, 바닷길을 헤엄쳐 다니는 모든 것들을 다스리게 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장엄한지요!”


시편 8편을 보면 우주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잠깐 우주만물을 생각할 수 있어도 하루 종일 우주만물을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나 이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그분의 이름을 찬양했다는 것입니다. 작게는 내 인생을 돌봐주시고 지켜주시고 위로해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방향을 주시고 비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최초의 감사주일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오로지 하나님을 잘 믿기 위해서 대서양을 건너 파도와 폭풍으로 인한 생명의 위협을 극복하고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청교도라고 합니다. 그들은 돈을 벌고 부자가 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기 위해서 모든 고난을 헤치고 거기까지 온 것입니다. 조국을 버리고, 가족을 등지고 온 것입니다.

최초의 청교도들은 돈을 모으면 첫 번째로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학교를 지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은 것이 자기 집이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미국을 건설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미국이 점점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거꾸로 해서 그렇습니다. 먼저 자기 집부터 짓고 돈 있으면 교육을 하고 마지막으로 교회를 짓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많은 미국인들이 교회를 떠납니다. 이렇게 가면 미국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버리면 개인도, 국가도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다시 살려면 하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축복을 낳는 감사

그런데 감사는 드릴 수도 있고 드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처럼 죄는 지을 수도 있고 짓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담은 죄를 짓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똑같은 일인데 감사를 드리는 사람이 있고 감사를 드리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정말 감사드릴 수 없는 환경에서도 감사를 드리는 것이 진짜 감사입니다. 저는 간암 수술을 일곱 번씩 하고 투석도 계속 받아야 합니다. 가끔 강단에 올라올 때 비틀거리면서 올라옵니다. 이것을 불평할 수도 있지만 저는 그래도 제가 설교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합니다. 이것이 저의 감사입니다.


저는 설교하다가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제 비전이고, 제 마음입니다. 아픈 것도 감사하고 죽게 된 것도 감사합니다. 감사하려고 하면 감사 안 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망하는 것도 감사하고 부도난 것도 감사하고 불치병에 걸린 것도 감사하고 친구들이 다 떠나는 것도 감사하고 사회적으로 매장 당하는 것도 감사하면 하나님이 이것을 복으로 바꿔주십니다. 은혜로 바꿔주십니다.
감사는 축복을 낳습니다. 여러분, 무슨 일을 만나도 감사하십시오. 일단 감사해놓고 보십시오. 감사헌금을 드리십시오. 헌금이라는 것도 돈만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가 있으면 헌금합니다.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감사하지 않으면 늘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 감사를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께 무엇으로 감사드릴까’라는 생각만 합니다.

 
오늘 이런 이야기들을 정리해준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나오는 열 명의 문둥병자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위해 갈릴리와 사마리아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어느 한 마을에 들어가시게 됩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열 명의 문둥병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문둥병은 정상적인 사람과 접촉을 율법적으로 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12, 13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다가 열 명의 나병 환자를 만나셨습니다. 그들이 멀찍이 서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예수 선생님!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절망과 죽음과 고난 속에 있는 사람만이 부르짖습니다. 패배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패배는 내가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이고 길목입니다. 그 패배가 없었다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문둥병자들은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소리쳤습니다. 지구의 65억 인구들이 모두 이렇게 소리를 지릅니다. 에이즈에서 고침받기 원하는 사람들, 가난해서 죽어가는 어린아이들, 수많은 사람들이 울부짖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즉시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참 생각하다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머뭇거리다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한참 생각해보고 따져보고 대답하는데 예수님은 불쌍한 사람을 보면 무조건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너희 몸을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라는 것이었습니다(14절). 제사장에게 보이라는 말은 이미 네 병을 고쳤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문둥병이 있습니다. 여전히 고름도 나오고 손가락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 몸을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라는 것입니다. 보이면 구원해 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순간 이미 “네 병은 나았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잘 못 믿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문둥병의 증상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가난의 증상, 고통의 증상, 불가능의 증상이 있더라도 그것을 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열 명의 문둥병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사장에게 믿음으로 간 것입니다. 만약에 의심했다면 못 갔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문둥병을 가지고 제사장에게 가거나 사람에게 가면 돌에 맞아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그 말에 순종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가는 도중에 자기 몸이 깨끗해진 것을 그들이 본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가능합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자기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왔습니다(15절).

 

우리의 예배를 받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

아홉 명은 기적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가 속에서 터져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선순위가 달랐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만이 자기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제 몸이 나았습니다”라고 말하며 하나님께 큰소리로 영광을 돌렸습니다.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했습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감사는 큰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발견하는 것은 감사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있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 옆에만 가도 좋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좋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감사는 십분의 일입니다. 십일조와 같습니다. 아홉 명은 자기 갈 길로 갔고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드렸습니다. 감사의 확률도 십분의 일입니다. 감사는 사마리아 사람이 했습니다. 유대인도 아니고, 종교를 직업으로 갖고 있는 사람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훌륭한 사람도 아니고, 가장 멸시받는 사마리아 사람 하나가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열 명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 명은 어디에 있느냐?”라고 예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아홉 사람한테 감사를 못 받아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 아홉 명의 영혼이 불쌍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찬양하지 않으면 돌들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자연 만물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러분에게서 찬양받고 싶어하십니다. 여러분에게서 예배를 받고 싶어하십니다. 여러분을 축복해주기 위해서입니다. 감사와 예배가 없는 축복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자손들을 축복하기 위해서 좋은 학교 보내려고 하지 말고 주일학교에 열심히 보내십시오. 그것이 복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복입니다.

 

감사는 찬양하는 것

감사는 사마리아 사람처럼 표현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찬양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경배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축복은 여러분의 육신의 병을 고친 것이 아니라 마음의 병을 고친 것입니다. 감사를 모르는 사람이 바로 환자입니다. 여러분의 영혼과 마음 가운데 감사가 없고 찬양이 없고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문둥병자입니다. 문둥병은 감각이 없는 것입니다. 영혼의 감각이 없으면 문둥병자입니다. 양심의 감각이 없으면 문둥병자입니다.


여러분, 지난 1년 동안 잊었던 감사를 다시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베풀어 주신 것을 감사하십시오. 여러분의 가족을 지켜주신 것에 감사하십시오. 아무리 가정이 어렵고 사업이 망하고 병이 들었어도 감사하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다시 살려주시려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작은 것에 감사하십시오. 그것을 깨닫는 것이 은혜입니다. 큰 것은 깨닫기 쉬운데 지극히 작은 것은 깨닫기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을 읽겠습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 금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으십시오. 11월까지 계속 어려움을 겪었더라도 11월에 추수감사절이 있는 것이 감사합니다. 마지막 한두 달을 잘 마무리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승리로 장식할 수 있도록, 여러분의 인생이 축복으로 마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유를 묻지 마십시오. 계산하지 마십시오. 그냥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시고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은 약속대로 여러분의 인생을 뒤집어놓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