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식/오늘의 설교 394

우리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창세기 8장 13-19절) 2020.4.18

우리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창세기 8장 13-19절) 2020년, 희망차게 시작했습니다. 새해를 맞아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며 새로운 계획도 세우고, 목표도 설정하며 힘차게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갑작스레 찾아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모든 것이 중단되었습니다. 의도치 않게 우리의 계획이 무산되고 망가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더 두려운 것은 과연 이 사태 이후에 ‘우리의 삶, 신앙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든다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혹시 구제역이라는 병을 알고 계십니까. 소나 돼지 등 가축에게 전염돼 55%의 강력한 치사율을 보이는 무서운 전염병이라고 합니다. 한 마리라도 감염된 가축이 있으면 반경 3㎞ 내의 모든 가축을 ..

예수님을 알자(요한계시록 1장 18절) 2020.4.17

예수님을 알자(요한계시록 1장 18절) 예수님을 올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실패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됩니다. 세상 모든 사람과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을 올바르게 믿을 때 삶이 행복해지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오늘은 요한계시록 1장 18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기를 원합니다. 성령에 감동받은 사도 요한은 밧모라는 섬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음성은 맑았고 얼굴은 해같이 밝은 주님을 바라보았을 때 그 영광에 엎드려져서 죽은 사람 같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소녀야, 일어나라!(마가복음 5장 35~43절) 2020.4.16

소녀야, 일어나라!(마가복음 5장 35~43절)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음에서 살아난 사건은 우리가 자주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모두 죽었다고 하며 회당장의 집에 있던 사람들은 울며 심히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예수가 온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절망의 상황에 있습니다. 아픈 것이 아니라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그 집으로 들어오십니다. 그리고 회중들에게 한 마디 하십니다. “죽은 것이 아니라 자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삶과 죽음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예수님은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이라고 하십니다. 긴 이야기가 아니라 단 한 마디로 이 긴장된 순간을 풀어내십니다. 아람어로 ‘소녀야 일어나라’를 뜻하는 이 한 마디에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고 생각했던 소녀가 일어났습니다. 팽팽한 긴장은 무너지..

조건이 아닌 선언(마가복음 5장 3절) 2020.4.15

조건이 아닌 선언(마가복음 5장 3절) 팔복은 예수님이 신자가 복을 받기 위한 조건으로 하신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하신 복의 선언이다. 많은 경우에 팔복을 조건, 혹은 명령으로 이해한다. 즉,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지만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 이유로 우리는 심령이 가난해지고, 애통해하며, 온유한 자가 되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그러나 사실은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원어의 의미는 정반대이다. 오히려 예수님이 자신의 백성들에게 따뜻한 미소를 띠며 “너희는 이미 복을 받은 자”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 팔복이다. 왜냐하면, 여기서 ‘복’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마카리오이’가 형용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말은 신자가 이렇게 살면 장차 행복해질 것이라는 ..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시편 115편 1~2절) 2020.4.14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시편 115편 1~2절) “우리로 우리 이웃에게 다툼거리가 되게 하시니 우리 원수들이 서로 웃나이다.”(시 80:6) 환난을 당하며 세상의 조롱과 다툼거리가 된 교회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시편 115편의 시인은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말아 달라고 두 번이나 반복하면서 최상급 표현으로 기도를 시작합니다. ‘하나님, 우리를 구해주셔야 할 이유가 우리에겐 없습니다. 구원 받을 만한 영광스러운 점이 단 한 점도 우리에게 없습니다!’ 이런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원 받아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 즉 그분의 언약적 사랑과 신실이 비웃음을 당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영광스런 점이 단 하나도 없는 백성에게 언약을 기억하여 구원을 주심으..

절망 속에 부르는 믿음·소망·사랑의 노래(예레미야애가 3장 19~33절) 2020.4.13

절망 속에 부르는 믿음·소망·사랑의 노래(예레미야애가 3장 19~33절)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의 3원소는 믿음·소망·사랑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요, 주님으로 믿고 고백함으로 그리스도인이 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소망의 나라’를 향한 천국의 나그네로 살아갑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 66권은 우리가 믿는 성삼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우리를 위해 해 주신 크고 놀라운 일들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 주는 믿음의 책입니다. 동시에 우리가 소망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일깨워주는 소망의 책이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지 가르쳐 주는 사랑의 책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삶은 단순하고 명료합니다.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

삶을 이끄는 믿음(히브리서 11장 1~3절) 2020.4.11

삶을 이끄는 믿음(히브리서 11장 1~3절) 삶의 태도와 방향을 잡아주는 인격적 요소를 지정의(知情意)라고 합니다. 책을 읽거나 대화를 하는 등 외부로부터 받아들인 지식은 감정의 기반이 됩니다. 지식과 정보의 영향을 받은 감정이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결정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믿음이 삶의 태도와 방향을 결정할 수 있을까요. 지정의를 이끌어 확신에 찬 삶으로 인도할 수 있을까요. 기쁨과 감사가 충만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이끌 수 있을까요. 믿음의 근본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며 그러기에 하나님은 나에게 현재 가장 좋은 것으로 선대해 주신다”(말1:2)는 확신입니다. 이 확신이 흔들릴 때가 문제입니다. 더 내려갈 수 없을 것 같은 인생의 깊은 골짜기에 머무는 시간이 너무 길어질 때, 믿음을 유..

행복한 그리스도인(신명기 33장 29절) 2020.4.10

행복한 그리스도인(신명기 33장 29절) 인간은 행복한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에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성경은 행복을 잃은 원인과 다시 찾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창 1:1).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히 3:4)은 마지막으로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축복인 만물의 영장의 권세를 주셨습니다(창 1:27~28). 영적 존재인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살 때 행복과 영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가 달리는 에덴동산 나무를 볼 때마다 하나님을 기억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되리라 거짓말을..

십자가 고난의 수혜자(이사야 53장 4~6절) 2020.4.9

십자가 고난의 수혜자(이사야 53장 4~6절) 인생을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혜택을 받아 행복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만히 묵상해보면 감사와 감격이 넘칩니다. 그런데 예수님 믿고 열심히 교회를 다녔지만 덕 보고 혜택 받은 게 없다면서 오히려 “하나님께서 정말 살아계시는지 의문만 쌓여간다”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과연 예수님 믿고 혜택 받은 것이 아무것도 없을까요. 본문은 이에 대한 해답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의 모든 죄가 근본적으로 씻겨 나가는 혜택을 입었습니다. 본문 4~5절 말씀을 보면 ‘우리’라는 단어를 일곱 번이나 사용하면서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신 이유가 바로 우리 때문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나를 위해 고난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셨..

모세의 산 vs 팔복의 산(마태복음 4장 23~25절) 2020.4.8

모세의 산 vs 팔복의 산(마태복음 4장 23~25절) ‘팔복의 산’은 상징적으로 ‘모세의 산’과 비교되는 산이다. 모세는 12지파 사람들을 이끌고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았다. 그 계명은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이였다. 하지만 인간이 이것을 온전히 지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로 인해 이 계명은 오랫동안 우리를 족쇄에 묶고, 절망과 좌절을 만들어냈다. 그것이 모세의 산이다. 반면에 팔복의 산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고 산에 오르셔서 새 계명을 선포한 산이다. 그 계명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이다. 이 산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옭아매었던 율법의 족쇄에서 더 이상 노예가 되지 않고 풀려났음을 선언하셨다. 예전의 모세의 산은 백성들이 오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산을 밟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죽임을 당했기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