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식/오늘의 설교 394

교회의 목적(마가복음 1장 1~38절) 2020.4.7

교회의 목적(마가복음 1장 1~38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류는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회의 목적은 무엇이며, 교회의 사회적 책임은 무엇인가’라는 고민도 안겨 주었습니다. 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주인이시며, 머리이시기 때문입니다.(골 1:18) 따라서 머리이신 예수님의 뜻이 몸인 교회의 뜻이 돼야 하고 예수님의 목적이 교회의 목적이 돼야 합니다. 이것은 시대와 상황을 뛰어넘어선 궁극적인 교회의 정체성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뜻과 목적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인 마가복음 1장 1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시작’을 알리고 있습니다. 즉 복음 자체이신 예수님을 소개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예고편인 세례..

신분의 변화와 가치관의 변화(요한복음 1장 12절) 2020.4.6

신분의 변화와 가치관의 변화(요한복음 1장 12절) 일터 사역을 하다 보면 ‘가나안 성도’를 많이 만나게 됩니다. 교회에 출석하다 이단 사이비 집단으로 간 교인들까지 만나죠. 이들을 보면서 기독교인들의 성서적 기초가 참으로 약하다는 것을 깊이 느낍니다. 누군가의 전도로 교회에 나옵니다. 부모님을 따라 출석하는 경우도 많죠. 찬양 대원이나 교회학교 교사로도 봉사하며 직분자가 되지만 외부의 작은 시험과 유혹에 쉽게 넘어갑니다. 모두 성경적 핵심기반이 빈약한 탓입니다. 기독교란 무엇이고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을 말할까요.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기초적인 질문이자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기독교란 “신앙과 행위와 삶의 궁극적 권위가 성경에 있다”라고 고백하는 공동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기독교의 기초입니다..

믿음과 행위, 예배와 정의(말라기 1장 6~11절) 2020.4.4

믿음과 행위, 예배와 정의(말라기 1장 6~11절) 하나님은 삶이 함께하지 않는 예배를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제사 행위에 대한 비판과 공격이 많이 나옵니다.(암 4:4~5, 사 1:11~12) 심지어 성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나오니 충격입니다.(말 1:10) 이런 반제의(anti-cultic) 신학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람들의 제물이나 받아먹고 연명하는 다른 신들과 구별되게 하는, 성경적 신학의 핵심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이런 반제의 신학과 반성전 신학을 가장 철저하게 계승한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장사하는 이들의 상을 뒤엎으신 것은 ‘성전 정화’가 아니라, 성전에 대한 사형 선고라 할 수 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말한 대로 물리적 성전의 문을 닫는 행위를 실제로 행동..

영생을 얻는 방법(마태복음 19장 16~26절) 2020.4.3

영생을 얻는 방법(마태복음 19장 16~26절) 인류가 천국에서 영원한 삶을 사는 길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큰 관심이었습니다. 이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의사나 과학자들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습니다. 철학자나 명상가들도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해 왔지만 완벽한 해답은 얻지 못했습니다. 성경에는 이 문제를 예수님께 직접 질문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율법교사(눅 10:25)와 한 부자(마 19:16)가 “제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는 똑같은 질문을 예수님께 던지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하셨을까요. 먼저 예수님은 무조건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율법교사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최종적인 대답은 “너도 사마리아인처럼 이웃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이었습니다(눅..

환난 중에 만나는 하나님의 오른손(시편 118편 8~17절) 2020.4.2

환난 중에 만나는 하나님의 오른손(시편 118편 8~17절) 인생은 문제의 연속입니다. 살면서 부딪치는 가지각색의 문제를 만날 때 우리는 벼랑 끝에 서 있는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문제를 만나면 스트레스를 받고 절망합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러분, 영의 눈을 열고 보면 문제는 기적의 전제 조건입니다. 문제가 없는 곳에는 기적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쉬운 문제를 상대로 기적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힘과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면서 자기 자신을 신뢰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자신을 도와줄 수 없을 것 같은 위기에 처할 때, 인간의 힘으로는 손쓸 수 없는 문제를 만날 때, 우리는 기적을 기대합니다. 인생의 문제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찾게 하는 겸손..

무리 또는 제자(마태복음 4장 23~25절) 2020.4.1

무리 또는 제자(마태복음 4장 23~25절) 오늘 본문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을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무리 그리고 제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지만, 즉 교회를 다니고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지만 그 안에도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보통 일반적으로 무리와 제자를 이렇게 구분합니다. 무리는 훈련되지 않은 사람이고, 제자는 훈련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무리와 제자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열심입니다. 무리이건 제자이건 할 것 없이 이 두 부류 모두 예수님께 가까이 가려 함하는 열정과 열심이 대단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도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갈릴리, 데가볼리, 예루살렘,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랐다고 얘기합니다. 심지어 요한복음에 보..

하나님을 만들지 말자(출애굽기 32장 1~6절) 2020.3.31

하나님을 만들지 말자(출애굽기 32장 1~6절) “자기의 창문을 통해서 응시하는 무신론자가 자기가 만든 거짓된 하나님 상에 사로잡힌 신앙인보다 하나님에게 더 접근해 있다.”(폴 쉴링, ‘무신론 시대의 하나님’(현대 사상사, p16)) 유대인 출신 철학자 마르틴 부버가 갈파한 이 문장은 신학대 학부 시절에 읽었던 최고의 촌철살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부버의 일침대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어낸 거짓된 하나님 상에 사로잡힌 인간이 주이신 하나님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하나님으로 변질시킨 가장 대표적인 구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뒤 40일 동안 두문불출하자 성질 급한 이스라엘 무리들은 제사장 아론에게 모세를 더는 기다릴 수 없다고 합니다. 그들은 아론에게 이집트에서 우리를 이곳으로 인..

모의고사(욥기 23장 10절) 2020.3.30

모의고사(욥기 23장 10절) 한국에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그 시간을 지나온 분들이라면 다 아실 겁니다. 개인 시간은 없고 대학입시를 위한 전투만 존재할 뿐입니다. 고3 입시 준비에 모의고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어느 정도 알고 있고 얼마나 준비돼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어떤 영역에서 내가 잘했고, 또 어떤 영역에서 부족한지를 파악해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준비 과정이니 모의고사를 조금 못 보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 잘 준비하면 되니까요. 저는 지금 이 땅의 교회가 ‘믿음의 모의고사’를 치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전 세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혼란스럽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팬데믹(Pand..

우리에게 믿음이 있나요(마태복음 6장 25~34절) 2020.3.28

우리에게 믿음이 있나요(마태복음 6장 25~34절) 고아들의 아버지이자 기도의 성자인 조지 뮐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염려의 시작은 신앙의 끝이다. 그러나 신앙의 시작은 염려의 끝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모두 염려란 끈에 이끌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 건강, 물질, 자녀, 성공, 행복을 염려하며 삽니다. 현실을 염려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왜 염려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불청객으로 찾아오는 염려와 두려움을 어떤 믿음으로 물리칠 수 있을까요. 먼저 재물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 25절에서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염려합니다. 유행하는 옷을 입고, 유행하는 가방과 전자제품을 ..

그 성에 먼저 평화를 선언하라(신명기 20장 10~20절) 2020.3.27

그 성에 먼저 평화를 선언하라(신명기 20장 10~20절) 많은 분이 나라와 미래를 걱정하는 요즘입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에 오셨던 시대도 많은 유대인이 나라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식민지 시대였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하늘로 오르시기 직전에도 제자들이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언제입니까”라고 물을 정도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빠져 나와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한 후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이었던 신명기의 상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적은 강하고 수가 많았으나 이스라엘은 초라하고 연약했습니다. 이처럼 위기는 언제나 찾아옵니다. 성경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이 땅을 살리기 위해 선택하신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생각의 차이를 넘어 모두를 살리고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도 때와 시기는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