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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분은 계급이 아니다

구원의 계획 2010. 5. 24. 20:44

직분은 계급이 아니다.(눅 9:57-62) 김석주 목사

 

일산에서 목회하는 어느 목사님이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목사가 되기 전 강원도 홍천에서 소위 계급장을 달고 소대장으로 군대 생활할 때 부대 교회엘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것을 지켜 본 부대장이 술을 한 잔 씩하면 이 따끔씩 밤에 집으로 전화를 걸어서 “어이, 김 소위는 군대서 교회엘 잘 다니는 것을 보니까 제대하고도 열심히 교회를 다닐 것 같은데, 사회 나가서 교회 직분을 맡게 되면 서리집사 이상은 맡지 말라”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하고 물었더니 “서리집사 이상은 모두 도둑놈들이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의 부인은 교회서 찬양대원으로 열심히 봉사하고 가족들도 모두 교회엘 다니는데 본인만 교회엘 다니지 않고 있었답니다. 그가 왜 그렇게 말했겠습니까?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면서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다가 서리집사까지 받게 됩니다. 그리고 계속 신앙생활의 연조가 길어지면서 중직자가 되기도 하는데 그때부터 처음 순수했던 신앙은 변질되고 타성에 젖은 신앙인이 되어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직분이 하나의 계급으로 인식되어 교인들에게 굴림하려는 자세까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중직자들로 인하여 상처를 받은 교인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 부대장도 그런 케이스라는 것입니다. 중직자에게 실망을 하고 상처를 받아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직분을 맡는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일인지 모릅니다.

어떤 분이 오늘날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태도를 보고 열두 가지 유형으로 풍자해서 분류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그 중에 감투교인이 있습니다. 교회 직분을 하나의 감투처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평소에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교회 예배나 교회 무슨 일이 있으면 미꾸라지처럼 잘 빠집니다. 자기 일과 세상일은 열심히 하면서 교회 일에는 별로 활동을 하지 않다가 교회 직분은 은근히 받기를 바라는 교인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직분을 받게 되면 하나의 감투라도 쓴 것처럼 열심을 내는척하는 합니다. 그러나 투표에서 당선이 되지 못하면 감투를 쓰지 못하게 된 것 같아 그만 시험에 들어 교회를 떠나버리기까지 하는 교인이 있습니다. 자기가 부족해서 뽑히지 않은 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을 가리켜서 감투교인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교회 직분은 감투가 아닙니다. 계급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교회 직분을 맡으면 그 만큼 더 희생해야 하고 헌신해야 하고 봉사해야 하고 손해 보아야 하고 싫컨 충성하고도 욕 얻어먹고 손가락질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12제자를 뽑으실 때 그들이 부귀영화를 누렸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은 가족과 집까지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다가 나중에는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당했고 그리고 순교를 당했습니다. 오늘도 그것이 주님을 따르는 자의 자세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예수님이 갈릴리 사역을 다 끝내시고 예루살렘을 향해서 올라가실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속에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지금 예루살렘을 향해서 가는 길입니다. 그 길은 영광스러운 길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 죽기 위해서 나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비통에 잠겨 있었겠습니까?

그때 무리들 가운데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 세 사람과 예수님과의 대화 내용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오늘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길이 아무렇게나 즉흥적으로 따를 수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의 뒤를 따라오려는 사람들은,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고자 하는 사람들, 교회 직분을 맡은 일꾼들은 어떠한 자세와 각오를 가지고 주님을 따라야 하는지를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사람과의 대화가 57절, 58절에 기록되어 있다.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대답이 58절에 나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의 뒤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고난과 환난을 각오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가 먼저 나와서 “예수께서 어디로 가시든지 예수님의 뒤를 따르겠습니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용기도 열심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람의 속 중심을 환하게 내다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예수님의 뒤를 따라다니다가 예수님이 왕이 되면 자기도 한 자리 하겠다는 속셈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일시적인 감정에 쐐기를 박으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노라.”

내가 가는 그 길이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영광스러운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환난과 핍박을 각오해야 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죽으러 가는 길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그래도 따르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십자가를 지는 길이고 고난의 길이고 희생의 길이고 순교의 길입니다. 그런 자세가 아니면 직분을 맡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서울 영락교회 본당을 들어가는 문 바로 앞 오른쪽에 자그마한 비석 하나가 서 있습니다. 6.25사변 때 교인들이 다 피난을 갔는데도 피난을 가지 않고 끝까지 남아서 그 교회를 지키다가 인민군들에게 순교 당한 김응락장로님을 기리는 기념비입니다. 모든 교인들이 피난 갈 때 김응락 장로님은 주님의 교회를 두고 나만 살겠다고 피난 갈 수 없다며 혼자 남아서 교회를 지키다가 공산당들에게 총살을 당하여 순교를 하였습니다. 빨갱이들이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그 장로님이 마지막 한 기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주여, 내 마지막 순간을 주님을 위하여 드릴 수 있게 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기도가 끝나자마자 인민군들이 쏜 따발총알이 김응락 장로님의 가슴을 뚫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 45세였습니다. 김응락 장로님 같은 충성스런 분의 흘린 피가 젖어 있었기에 오늘과 같은 세계적인 영락교회가 된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공주읍교회의 마당 구석에 고풍스러운 ‘공덕비’ 하나가 서 있습니다. 일제시대 이 교회의 성도였던 양두현, 지루두 부부를 기념해 1939년에 세운 비석입니다. 박우동 원로장로가 들려주는 비석의 주인공들에 관한 이야기가 매우 감동적입니다. 두 부부는 공주읍교회 초대 성도였는데 특히 부인인 지루두는 믿음이 대단했습니다. 1920년대 미국의 경제 공항으로 미국에서 한국으로 보내오는 선교비가 줄어들어서 교회의 살림도 어려워져 목회자 생활비도 제때 드릴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사정을 전해들은 지두루 부인이 자신의 소유로 되어있는 토지를 교회에 바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남편 되는 양두현 씨는 부인의 장례를 치른 후 부인의 뜻에 따라 부인 소유의 토지 전체뿐만 아니라 자신의 땅까지 교회에 바쳤습니다. 부부가 바친 토지에서 매년 쌀 70석이 나와 일제 말기의 어려웠던 시절에도 교역자들은 안심하고 목회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부인도 부인이지만 남편도 그 믿음이 대단했습니다. 부부끼리만 알고 있던 비밀의 약속을 부인 사후에 그대로 지켰을 뿐만 아니라 부인 몫의 몇 배나 더 되는 자신의 땅을 바쳐 교회의 재정을 안정 기반 위에 올려놓은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부부의 신앙에 자극을 받은 성도들이 앞 다퉈 땅을 교회에다 기증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공주읍교회의 뜰에서 있는 기념비는 초대 성도들의 아름다운 신앙전통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르고자 하는 성도들과 특히 직분자들은 이와 같은 각오와 마음자세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 자리에 앉아 계시는 성도여러분, 중직자 직분을 맡기를 마음속으로 바라는 분들은 자신에게 한번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나에게도 과연 그와 같은 각오가 있는지? 그런 자세가 되어있는지? 여러분,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겠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중직자 직분을 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말로야 누가 헌신을 못하겠습니까? 입으로야 누가 헌신을 못하겠습니까?

교회 재정이 넉넉할 때야 누가 헌신 충성하지 못하겠습니까?

예수님의 뒤를 따르기 위해 직분을 맡을 사람은 환난과 핍박과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시간도 물질도 손해 볼 생각도 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내 목숨까지도 아끼지 아니하고 내놓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각오가, 그런 헌신의 자세가 여러분들에게 있습니까? 그런 마음자세가 있는 사람이 직분을 맡아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 직분을 싸구려로 만들지 마십시오.

두 번째 사람과의 대화가 59절과 60절의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이 두 번째 사람에게는 “나를 따르라”고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에 ‘아멘’하고 좇아간 것이 아니라 핑계를 댔습니다. 자기의 아버지를 먼저 장사하게 허락해 달라고 예수님께 요청을 했습니다. 이 사람은 세상적인 일을 먼저 앞세운 것입니다.

육신적인, 세상적인 일을 먼저 앞세우는 사람은 주님의 뒤를 따르는데 적합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가장 우선 순위가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고 하였습니다. 주님을 위한 일이 우리 삶의 최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 가정 일보다, 내 사업보다, 내 육신의 일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주의 몸된 교회를 더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내 일 다하고 남는 시간에 잠시잠깐이야 누가 헌신 못하나? 그런 사람은 교회의 직분자로 합당치 않습니다.

충북 보은군에 대목교회라는 오래된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에 김 팔도라는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시골 교회이기게 때문에 교역자는 자주 바뀌고 그 장로님이 기둥같이 교회를 지키는 장로님이십니다. 교회가 오래 되어서 다시 신축하기로 결정하고 온 교인들이 기도하면서 정성껏 헌금을 하여 이왕 짓는 것 좀 무리를 해서라도 잘 짓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재정이 바닥이 났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짓다가 중단할 수는 없어서 여기저기에서 빚을 끌어 썼습니다.

드디어 교회는 아름답게 잘 지어졌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교인들이 기도하면서 헌금을 하고 또 해도 빚을 충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만 합니다. 교회가 빚을 갚을 수 없게 되니까 빚쟁이들이 김 팔도 장로님에게 몰려왔습니다. 장로님이 무슨 책임이 있습니까? 그러나 장로라고 하는 신분 때문에 빚쟁이들에게 욕을 먹게 되었다 나쁜 놈이라고 욕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빚쟁이들이 장로님의 가재도구를 하나 둘 가지고 갑니다.

교회가 이렇게 시험에 드니까 교인들도 한 사람 두 사람 떠나갑니다. 책임을 지고 있는 김 팔도장로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교회에 나가서 눈물을 흘리면서 밤새도록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성전을 아름답게 지었는데 왜 이토록 고난이 많습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주옵소서.” 눈물을 흘리면서 밤마다 교회에 와서 엎드려 눈물로 기도를 합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날도 장로님이 밤새도록 기도를 하고 아침에 집에 돌아왔습니다. 아침을 먹으면서 신문을 보는데 신문기사 하나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이런 기사내용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고로 인하여 두 눈을 실명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한쪽 눈을 희사할 사람이 있으면 돈은 얼마든지 요구하는 대로 주겠다는 기사였습니다. 장로님은 그 기사를 보는 순간 “옳다. 바로 이거구나. 내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살리기 위해서 내 한쪽 눈을 팔리자. 주님은 나를 위하여 온 몸을 주셨는데 주님의 교회가 산다면 내 한쪽 눈이 무엇이 그리 아까우랴.” 이렇게 생각을 하고 마음으로 작정을 하였습니다.

아내 권사님에게 신문을 보여주면서 자기결심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내가 안 된다고 펄쩍 뜁니다. 된다. 안 된다. 옥신각신 싸우기 시작합니다. 장로님의 결심이 워낙 완고한 것을 본 아내 권사님이 이런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우리 가정의 가장이고 교회도 지켜야하는 장로님이신데 우리 가정과 교회를 책임져야 되니까 정히 눈을 팔아야 한다면 내가 대신 팔겠습니다.” 부인 권사님이 나섰습니다. 그래서 두 부부가 “내가 팔아야 된다” “아니다. 내 눈을 팔아야 된다”고 옥신각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광경을 이웃에 사는 집사님이 보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마음에 감동이 되었겠습니까? 그래서 이 집사님이 자기가 잘 알고 있는 도회지의 큰 교회 목사님에게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 목사님도 그 이야기를 듣고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목사님이 주일낮 설교 시간에 그 이야기를 교인들에게 했습니다. 교인들이 감동을 받아서 그 시골교회를 위하여 특별헌금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장로님 부부의 눈을 빼지 않고도 교회 빚을 갚고도 남았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내가 손해 보지 않는 범위 내에서야 누가 헌신 못합니까? 교회가 평안할 때야 누구 헌신하지 못합니까? 교회가 넉넉할 때야 누가 헌신 못합니까? 그러나 정말 교회가 어려울 때 여러분들의 개인적인 일 보다, 여러분의 가정 일보다도 주의 몸된 교회를 더욱 사랑할 자세가 되어 있습니까? 이런 사람이 진정한 교회 직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각오가 있는 사람이 직분을 맡아야 합니다. 교회가 정말 어렵고 힘들 때 내가 누가 십자가를 지고 앞장 설 것입니까? 그런 사람이 교회에는 필요합니다.

세 번째 사람과의 대화가 61절 6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여기에 나오는 세 번째 사람은 단서를 붙였습니다. “내가 예수님의 뒤를 따르기는 하겠습니다마는...”그러면서 조건을 붙였습니다.

조건을 붙이는 사람, 단서를 붙이는 사람 치고 제대로 헌신하는 사람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주님께 헌신한다고 하면서 조건이나 단서를 붙이지는 않습니까? 교회서 무슨 일을 맡기면 요리조리 미꾸라지 같이 빠지고, 무엇을 좀하라고 하면 뭐 그렇게 변명이 많고 핑계가 많은지...그러면서 직분은 가지려고 하고 복은 혼자 다 받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내 아들 대학 입학만 시켜주면, 내 가족 병을 고쳐주시기만 하면, 내 사업만 잘되게 해 주시면, 심지어는 나를 장로 시켜주면, 혹은 안수집사나 권사 시켜주면 열심히 헌신 충성하겠다”는 이런 사람은 없습니까? 조건 내 거는 사람은 좋은 교인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조건이 해결되어도 충성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장로 시켜 주면, 안수집사, 권사 시켜주면 주를 위해 헌신 충성하고 시간과 물질을 바치겠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잘못된 생각인지 아십니까? 그 말은 장로가 되지 않으면 안수집사가 되지 않으면 권사가 되지 않으면 충성 헌신하지 않겠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 생각은 참으로 위험한 생각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비 신앙적인 생각입니다.

지금부터 100여 년 전에 전북 김제시 금산면 용화마을에 조덕삼이라는 부자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1904년 봄, 말을 타고 전주에서 정읍을 왕래하며 복음을 전하던 테이트(한국명-최의덕.1862-1929)라는 선교사를 만나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유교 정신에 투철한 보수집안의 조덕삼은 하나님과 남을 위해 살기 좋은 자기 나라를 버려두고 가난한 조선 땅에 와서 예수님을 위해 헌신의 삶을 살고 있는 테이트선교사의 용기에 감동했고, 이후 자기 집 사랑채를 내어 예배를 보도록 함으로써 금산 교회가 생긴 것입니다.

그때 경남 남해도에서 태어난 이자익이라는 사람이 6살 때 부모를 잃고 소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채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고향인 남해도를 떠나 무작정 걸어 걸어 전라도 금산까지 도착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 17살이었습니다. 이왕 얻어먹는 김에 부자 집에서 얻어먹자 싶어서 당시 부자였던 조덕삼 집에 들어가 밥을 얻어먹었습니다. 주인인 조덕삼이 이자익을 마방의 마부 머슴으로 일하도록 했습니다. 밥 한 끼 얻어먹기 힘든데 마부로 머슴으로 일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무학의 이자익은 머슴을 살면서도 영특해서 어릴 때 고개 너머로 배운 천자문을 줄줄 외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 본 조덕삼은 비록 자신이 부리는 머슴이지만 자기 아들(조영호)과 함께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도 같이 했습니다.

부자 집 주인인 조덕삼과 그 집 머슴인 이자익이 함께 믿음을 키운 지 3년이 지난 1907년 금산교회는 장로장립 투표를 했습니다. 묘하게도 이 두 사람이 후보에 올랐습니다. 나이도 주인인 조덕삼은 40살이었고 머슴 이자익은 28살이었습니다. 주인이 12살이나 더 많았습니다. 양반과 상놈의 신분의 양극화가 뚜렷했던 그 시절, 주인과 머슴이 경쟁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투표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머슴 이자익이 주인 조덕삼을 누르고 장로로 선출된 것입니다. 교인들이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투표에서 떨어진 주인인 조덕삼이 일어나 성도들에게 겸손히 말했습니다.

“우리 금산교회 성도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 냈습니다. 저희 집에서 일하는 이자익 영수(장로보다 낮은 직분으로 교회의 살림과 행정, 설교를 맡아서 함)는 저보다 신앙의 열의가 헐씬 더 대단합니다. 그를 뽑아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교인들이 투표에서 떨어진 조덕삼을 마음으로 얼마나 존경했겠습니까?

머슴인 이자익은 장로가 된 뒤 테이트 선교사가 교회를 비울 때는 그를 대신해 금산교회 강단에서 설교를 했고, 주인인 조덕삼은 교회 바닥에 꿇어 앉아 머슴이 설교하는 것을 경청했습니다. 집에서는 이자익장로가 조덕삼을 주인으로 성실히 섬겼습니다. 조덕삼은 자기 집 머슴 이자익을 장로로 깍듯이 섬겼습니다. 주인 조덕삼은 그로부터 3년 뒤 장로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훌륭한 인격자입니까? 얼마나 좋은 교인입니까? 얼마나 좋은 직분자입니까? 얼마나 멋쟁이 교인입니까? 그 후 조덕삼장로는 교회를 짓도록 자기 땅을 교회에다 헌납했습니다. 이 교회는 ㄱ자 모양으로 지어져 지금 전북 문화재 136호로 지정되었고 매 주간 순례객들이 붐빕니다. 그 교회가 금산교회입니다.

머슴 이자익장로는 주인 조덕삼 장로가 도와준 학비로 평양신학을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 그 교회 2대 목사로 부임했습니다. 주인 조덕삼 장로가 머슴 이자익을 신학을 공부를 시키고 그리고 자기 교회에 부임하도록 적극 나서서 청빙했습니다. 주인 조덕삼장로는 지극 정성으로 이자익목사님을 섬겼고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자익 목사는 한국장로교단에서 유일무이하게 세 번씩이나 총회장을 지내는 한국교회사의 거목으로 이름을 알렸다.

금산교회는 100년째 아름다운 신앙의 전통 뿌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 교회는 시골의 자그마한 교회이지만 그렇게 충성스런 조덕삼장로가 땅을 내놓아 예배당을 짓고 그 아들이 2대째 그 교회 장로로 섬겼고, 그의 손자도 3대째 같은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가 바로 4선의 국회의원을 지냈고 주대사를 지낸 조세형장로입니다. 시골 작은 교회이지만 대를 이어가면서 섬기고, 그리고 주님 위해 순전한 마음으로 충성하고 헌신한 좋은 직분자 조덕삼장로 가정에 하나님이 축복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학교 교사이던 성가대원이든 남녀선교회 임원이든 구역장이든 서리집사이든 중직자이든 무슨 직분을 맡았든지 자기에게 맡겨주신 직분을 하나님이 맡겨주신 귀한 직분으로 여기고 마음 중심으로 충성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핑계대지 말고, 본심으로 충성하는 자를 하나님이 반드시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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