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에서 생긴 일(요한복음 5장 1∼9절) 2017.8.17
본문은 베데스다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연못과 그 치유 전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자그마치 38년 동안이나 연못의 전설을 믿으면서 연못 주위에 머물러 있던 사람에 대한 예수님의 치유 이적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을 뜻합니다. 누구든 연못의 물이 움직일 때 먼저 들어가면 어떤 병이건 고침을 받게 된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연못은 선착순 원칙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비극이 있습니다. 오직 일등만이 성공하는 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입니다. 우리는 모두 베데스다 연못을 향해 제일 먼저 도착하기 위해 달음질치는 존재로 살아갑니다. 성경에 나오는 38년 된 병자처럼 어떻게 하면 연못에 먼저 들어갈 수 있는가만 꿈꾸며 베데스다의 전설에 희망을 걸고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연못에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38년 된 병자를 보신 주님은 그를 안아서 연못에 넣어주지 않으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연못가에 앉아 고침만을 기다리는 병자에게, 주님께선 일어나 걸으라고 했습니다. 앉아서 하염없이 은혜와 도움, 기적만 바라던 사람에게 말입니다. 베데스다를 떠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연못에 들어가기만을 바라고, 1등만을 바라며 살아왔던 지난 삶을 다 버리고 베데스다의 기적 같은 것에서도 인연을 끊으라고 했습니다.
이 명령은 베데스다 연못으로 상징되는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는 혁명적인 발상입니다. 병자는 연못에 항상 늦게 도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앉은뱅이였으니까요. 그런데도 예수님에 의해 나음을 받았습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베데스다 연못의 기적을 무시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가져오신 구원은 연못의 기적, 즉 세상의 경쟁이 아니었습니다. 연못이 아닌 다른 곳, 즉 하나님 나라에서 가져온 구원이었습니다. 병자에게 요구한 것은 베데스다 연못으로 가는 게 아니라, 연못에 들어가 다리가 낫길 바라며 누워있던 그 자리를 박차고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베데스다의 전설은 자비의 이름으로 무한한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자비로부터 배제되는 결과를 낳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항상 베데스다의 전설에 속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신앙의 이름으로도 ‘베데스다의 전설’을 확산하는 이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이 도우셔서 남들보다 먼저 연못에 들어가게 하실 것이라는 기대 말입니다. 그런 걸 복음으로 전하고 있는 건 아닙니까.
베데스다 연못에서 행한 예수님의 행동은 사람들로부터 거짓의 옷을 벗겨 진정한 진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거짓 신화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거짓의 옷을 벗겨 진리를 드러내고 그 진리 가운데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예수님 믿는 사람답게 만드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삶에 만연한 다양한 모습의 ‘베데스다의 전설’을 지워버려야 합니다.
홍인식 전남 순천중앙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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