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십자가의 보혈이 사라지고 있다
필자가 오래전에 삶의 고통스런 수렁에 빠져 방황하던 시절, 대전에 이름이 자자한 교회를 찾아가 신앙을 회복하려고 하였다. 그 교회의 담임목사는 방송설교로 유명하고, 교인들은 연구단지의 박사, 교수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대부분이었다. 한마디로 괜찮은 교회였다. 예배당도 럭셔리하지 않았고 예배의식도 케케묵은 방식을 버리고, 교인들이 연극으로 예배를 시작하며 예배를 마치면 식당에서의 식사도 없이 김밥이나 빵으로 대신했다. 그 당시만 해도 참 신선한 충격이었다.
필자부부는 그 교회를 1년여 다녔다. 그러나 오래 동안 교회에 다녀도 마음에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이 있었다. 말하자면 갈급한 영혼이 시원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 이유를 몰랐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교회예배의 설교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이 언급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교회는 세간에 유명한 강사들을 초빙하여 세미나를 열었으며 담임목사는 참신한 주제의 설교도 곧잘 했지만, 아쉽게도 설교 주제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 들어있지 않았다. 그래서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어두운 세상으로 도로 나갔다.
그런 아쉬움이 남는 것이 필자만의 추억인가? 당신이 다니는 교회의 설교주제나 담임목사가 강조하는 내용이 무엇인가? 귀를 간질이거나 달콤한 얘기를 넣어주는 내용들로 빼곡하겠지만 십자가의 보혈이 들어있지 않다면, 교회가 아니라 기독교를 종교로 하는 사람들이 모인 건물일 뿐이다. 아시다시피, 교회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흘리신 보혈을 토대로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이 없는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닌 것이다.
최근에 목회자들이 가장 관심을 많이 가지는 주제는 리더십이다. 리더십을 길러 교인들을 자신의 의도대로 통제하는 능력을 얻고 싶어 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ㅎㅎ 그 반면에, 교인들이 관심을 가지는 주제는 심리학이나 상담학, 혹은 내적치유 등이다. 이런 것들을 배우고자 하는 이유는, 그간 지난한 삶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고통스러운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심리학이나 상담학, 내적 치유 등을 가르치는 교육이나 세미나 등이 교회에서 빈번하게 열리고 있다. 그렇다면 교회에 왜 이런 심리치료나 상담기법, 내적 치유 같은 인본적이고 세상적인 학문이 들어오게 되었는가? 하나님이 능력이 없으셔서, 교회가 세상의 학문이나 기법을 끌어들여야 하는가?
그 이유는 교회에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교회에서 반복해왔던 예배행위나 희생적인 신앙행위로 교인들의 가난한 삶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다행스러운데, 아무런 능력이 일어나지 않으니까 세상의 학문이나 방법을 들여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들도 그럴듯한 성경의 구절을 앞세우는 이론을 소개한다. 그러나 심리적인 치료나 상담 기법 등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라 세상의 학문에서 시작한 이론일 뿐이다. 이처럼 교회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으니까, 목회자들은 리더십에 열광하고 교인들은 심리학이나 상담학, 내적치유에 빠지는 것이다. 아쉽고 답답한 노릇이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희생의 보혈을 흘려주셨음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함을 받아, 죄로 인해 고통을 주던 모든 삶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고질병도 치유 받았고 삶도 자유함과 평안을 누리게 되었다고 선포하셨다. 말하자면 사람들의 삶의 모든 문제는 죄로 인해서이며, 이 죄를 해결하러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몽땅 지시고, 대신 희생을 치르심으로 죄가 용서함 받았다. 죄 때문에 불행에 빠지고 고통스럽게 하던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할렐루야.
그러나 아쉽게도 이러한 내용은 성경에 있는 고리타분한 이야기일 뿐이다. 교회에 나와서 목사가 시키는 대로 공적 예배의식에 열심히 참석하고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반복해도 가난한 문제가 해결되고 삶이 나아지는 게 없다. 그래서 어쩔 수없이 대안으로, 세상적인 학문이나 인본적인 방법을 교회에 들여온 것이다. 말하자면 꿩 대신에 닭인 격이다. 그러나 꿩이 없다고 닭을 들여온다면 이미 교회가 아니다. 교회의 이름을 내세운 종교집단일 뿐이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보혈의 능력이라면 어떤 죄도 용서함 받을 수 있고, 어떤 문제라도 해결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당신에게서 그런 능력이 임하지 않는 현상은, 당신이 믿음이 부족해서이지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렇다면 더욱 마음을 찢고 회개하며 믿음을 얻기 위해 기도의 자리에 나가야 할 터인데, 사람들은 십자가의 보혈을 찾기보다 세상의 학문과 인본적인 방식을 교회에 들여왔다.
"너는 티끌을 떨어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보좌에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사52:2)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아끼지 않으시고 이 땅에 보내셔서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시려고, 아들이 십자가에 겪을 끔찍한 고통을 외면하셨지만, 사람들은 보혈의 능력을 찾아 기도의 자리에 앉을 생각이 없이, 세상의 방법을 교회에 들여다 놓았으니 안타깝고 답답한 노릇이다. 이는 기도가 부족한 탓이지 십자가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가증스런 죄를 회개하고 기도의 자리에 나가서, 스스로 자신의 목의 줄을 풀어야 한다. 목의 줄을 푸는 것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부르고 보혈의 능력이 가슴에 새겨지기를 요청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기회만 주실 뿐이지, 우리가 할 일까지 대신 해주는 법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십자가를 대신하는 세상의 학문과 감정을 터치하는 인본적인 치유방식을 의지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도우심을 기대할 수 없다. 당연히 천국의 자격도 없을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않는 피조물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는 대신, 리더십을 배우고 심리학이나 상담학을 신봉하고 내적 치유를 추구하는 교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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