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석 칼럼] 꾸란에서는 예수님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필자가 중동과 영국에서 전도하다가 만난 무슬림들은 모두 기독교에 대하여 많은 오해를 가지고 있었다. 이 세상에 무슬림으로 살아가는 16억 인구 가운데 80%는 단 한 번도 기독교의 복음에 대하여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들은 이슬람에서 가르치고 있는 대로만, 기독교에 대하여 잘못 알 뿐이다. 무슬림들이 복음을 들을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들보다 먼저 복음을 받은 서구의 기독교가 이슬람권에 선교사를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슬람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무엘 츠머(Samuel Zwemer, 1867-1952)의 기록에 따르면, 1930년 전 세계 이슬람 인구가 2억 3백만 명이였을 때,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는 단 28명 뿐이었다. 서구 기독교는 오랫동안 무슬림들과 심리적인 원수 상태였기에, 이슬람권에 선교사를 보내어 복음을 전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꾸란에서 예수님에 대하여 잘못 가르치는 내용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삼위일체를 하나님과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이라고 가르친다
무슬림들은 이슬람만이 유일신교이고, 기독교는 세 명의 신을 섬기는 다신교라고 알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기독교인들이 우상을 섬기고 있다고 믿는다. 꾸란에서는 삼위일체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과 마리아와 예수님”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무함마드 당시 아라비아반도에는 이단으로 정죄받고 기독교 비잔틴제국에서 도망간 이단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님과 마리아와 예수님을 삼위일체로 섬기는 종교인 마리아교(Marianite)에게서 무함마드는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꾸란에는 이에 대하여 비난하는 내용들이 많이 있다.
“알라는 셋 중에 하나라 말하는 그들은 분명 불신자이라 알라 외에 신이 없거늘 만일 그들이 말한 것을 단념치 않는다면 그들 불신자들에게는 고통스런 벌이 가해지리라”(꾸란 5:73)
또한 삼위일체도 비난한다.
“일러 가로되 알라는 단 한 분이시고 알라는 영원하시며 성부와 성자도 두지 아니하셨으며 그분과 대등한 것 세상에 없노라”(꾸란 112:1-4)
이 내용에서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내용을 살펴 보면 첫째, 알라는 아버지가 아니다. 둘째, 알라는 자식이 없다. 셋째, 알라와 동등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따라서 기독교의 삼위일체는 알라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한다.
2.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무함마드는 만일 하나님께 아들이 있다면 내게 제일 먼저 경배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일러 가로되 자비로운 알라께서 아들을 가졌다면 내게 제일 먼저 경배하는 자가 되리라”(꾸란 43:81)
하나님에게는 아들이 없고, 하나님에게 아들이 있다고 믿고 죽은 자들에 대하여 저주하고 있으며, 현세에 그렇게 믿는 자들을 저주하고 있다.
“알라가 곧 마리아의 아들 예수라 말하는 그들에게 저주가 있으리라”(꾸란 5:17)
“그들은 알라가 아들을 낳았으니 그분께 찬미를 드리라고 말하나 그렇지 않노라 천지의 모든 것이 알라께 있으며 이 모두가 알라께 순종하노라”(꾸란 2:116)
그렇다면 이슬람에서는 무엇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부정하는가?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아랍어에서 아들을 의미하는 두 단어가 있다. ‘왈라드(Walad)’와 ‘이븐(Ibn)’이다. 왈라드는 육체관계를 통하여 낳은 생물학적인 아들을 말한다. 그리고 이븐은 일반적인 아들이다. 아랍어 성경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단어에 항상 이븐을 사용한다. 성경의 예수님은 육체관계를 통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꾸란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단어에 항상 왈라드를 사용한다. 예수님이 마치 하나님과 마리아의 육체적 관계를 통하여 이 땅에 온 것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에게 아들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에 대한 모독으로 여기며, 예수님의 하나님 됨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변화되었던 다마스커스에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다. ⓒFIM국제선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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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슬람의 예언자인 무함마드가 구약성경에 예언되어 있다고 가르친다
첫 번째, 신명기에 무함마드가 예언되어 있다고 가르친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신 18:18)
이 내용을 이슬람에서는 ‘그들의 형제’가 이삭의 형제 이스마엘을, ‘너와 같은 선지자’는 무함마드를 의미한다고 가르친다. 또한 무함마드는 글을 읽거나 쓸 수 없었기 때문에 알라께서 계시를 ‘그 입’에 두겠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너와 같은 선지자’는 무함마드가 아니라 예수님을 의미한다. 예수님 자신이 그 내용이 자신에 대한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으며(요 5:46), 베드로 또한 그 구절을 인용하여 예수님에 대한 것이라고 증언(행 3:22) 하고 있다. 스데반 또한 순교하기 이전 설교에서 그 구절이 예수님에 대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행 7:37).
두 번째, 아가서에 기록되었다고 가르친다. “입은 심히 달콤하니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 예루살렘 딸들아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로다”(아 5:16). 이슬람에서는 이 구절에서 ‘사랑스럽다’는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마하마딘(Mahamadin)이 무함마드의 이름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이 내용은 ‘여자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히브리어 형용사로서, 무함마드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또한 이름의 발음도 다르다.
4. 무함마드가 신약성경에 예언되어 있다고 가르친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 14:16)
이슬람 학자들은 이 구절에 대해 “위 구절에 쓰인 ‘보혜사’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parakletos)인데, 이는 다른 헬라어인 페리클루토스(periklutos)와 혼동하여 잘못 쓴 것이다. 그리고 페리쿨루토스는 ‘찬양받을 자’라는 뜻으로 무함마드의 이름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무함마드가 올 것을 예언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보혜사’는 성경에서 4번이나 정확히 파라클레토스(parakletos)로 기록되어 있으며, 심지어 이슬람에서 말하는 페리쿨루토스(periklutos)는 신약성경에 나타나 있지도 않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 언급된 보혜사는 이슬람에서 말하는 무함마드가 결코 아니다.
5.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지 않았다고 가르친다
이슬람에서는 예수님의 승천은 인정하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것을 부정한다. 예수님의 죽음을 부정하기에 부활도 믿지 않는다.
꾸란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마리아의 아들이며 알라의 선지자의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살해하였도다 하고 그들이 주장하도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살해하지 아니하였고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했으며 그와 같은 형상을 만들었을 뿐이라 이에 의견을 달리하는 자들은 의심이며 그들이 알지 못하고 그렇게 추측을 할 뿐 그를 살해하지 아니했노라”(꾸란 4:157)
이슬람에서는 예수님이 유대인에게 죽음을 당하기 전에, 하나님이 그를 천국으로 데리고 가셨다고 말한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세워 놓은 십자가에는 예수님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다. 죽은 이는 무슬림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으로 가룟 유다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에 새로운 학설이 이슬람권에 퍼지고 있다. 최근 이슬람 안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교파 가운데 하나인 아흐마디파(Ahmadis)에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잠시 기절했었는데, 사람들은 예수님이 죽었다고 생각하여 장사를 지냈다는 것이다.
아흐마디파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사역했던 아흐메드 디다트(Ahmaed Deedat)에 의하여 널리 알려졌다. 만화 같은 이야기이지만, 아흐마디파의 이론에 의하면 예수님이 무덤에서 깨어나서 ‘예수님 연고’라는 것을 바른 후에 40일 만에 완쾌되었다. 그 후에 예수님은 아프가니스탄과 캬슈미르(Kashmir) 지역의,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부족에게 선교하다가 120세에 죽어서 캬슈미르의 칸바우(Kahn Vaw) 거리에 묻혔다는 것이다. 또 도마가 예수님을 직접 만져 보기 7일 전에 마리아에게 자신의 몸을 만지지 말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아직 상처가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아하마드파의 이론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기절했다가 깨어났다고 해서 이슬람 교리에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슬람에서는 근본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이렇게 답하고 있다.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요일 2:22-23)
이슬람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심을 부정하기에 적그리스도이다.
유해석 선교사
FIM국제선교회 대표
‘우리 곁에 다가온 이슬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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