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요한복음 5장 1∼9절) 2017.8.23
예수님께서 명절에 예루살렘 성의 양문 곁을 지나셨습니다. 그 근처에는 ‘자비의 집’이라는 뜻의 베데스다 연못이 있었습니다. 당시 그곳에는 온갖 질병을 가진 병자들이 치료를 받기 위해 장사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에 가끔씩 천사가 내려왔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가면 물결이 생기는데, 가장 먼저 그 연못에 들어가면 병이 낫는다는 소문 때문이었습니다.
병자들은 자신의 질병을 치유받고자 베데스다 연못에 와서 간절하게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은 질병을 고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생각하는 치유방법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요행이며 미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간절하게 기다리는 대상은 천사도 하나님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연못의 물결이 움직이는 것뿐이었고 이런 잘못된 정보와 지식으로 병자들끼리 경쟁과 싸움만 빈번했습니다.
그런데도 이 38년 된 병자는 예수님께 자신의 병을 고쳐 달라고 요청하지 않습니다. 주님 앞에서 엉뚱하게도 이런 푸념을 했습니다. “제가 연못에 들어가기 전에 다른 환자들이 먼저 들어가 버립니다.”
왜 그랬을까요. 38년 된 병자는 병을 앓았던 시간이 너무 길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병에 적응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환자는 더 이상 자신의 병을 고치겠다는 간절함마저 포기해 버렸습니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자기부재 상태의 신경증에 걸렸다고 하고, 다른 표현으로 영적 아노미 상태라고 합니다.
38년 된 병자는 자기 질병에 대한 자각도 없고 병이 낫기를 포기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병자의 비참한 모습을 포기하거나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환자가 병을 고쳐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지만 병자의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6절)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8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병자의 병은 깨끗하게 치유됐습니다.
사실 38년 된 병자의 모습은 오늘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기도의 방법, 대상, 내용이 하나님 뜻에 합당한 것인지 확인도 안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교회 중심이 아닌 자아 중심의 삶을 삽니다.
우리의 소망은 예수님께 있습니다.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온 지 이제 130여년이 됐습니다. 서구 기독교 역사에 비하면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합니다. 과거 한국교회가 뜨거운 부흥의 시기를 경험했고 아직 그 부흥의 불길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뜨거운 신앙태도 못지않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차가운 머리로 한국교회와 내가 앓고 있는 질병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과 한국교회의 잘못된 신앙태도를 하나님께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적하시고 알게 해주신 질병(죄)이 드러나면 그 질병을 고쳐 나가는 순종적 태도가 반드시 뒤따라야 합니다.
베데스다 연못의 38년 된 병자가 낫게 된 것은 예수님의 사랑과 말씀의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도 모르는 질병과 간절한 소원을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다른 방법,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 안에서 궁극적인 소망과 안식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전득안 목사(광주 새벽이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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