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생각을 하십니까?(로마서 8장 6∼11절) 2017.8.29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살아있는 사람은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감격으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할까요.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두 가지 생각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육신에 속한 생각과 영에 속한 생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먼저 바울은 육신에 속한 생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첫째,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하나님 말씀보다는 자기 생각대로 움직였던 사울 왕은 마침내 하나님과 원수가 돼 버림받고 말았습니다. 둘째,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습니다. 니느웨로 가라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법에 순종할 수 없었던 요나는 자신의 판단으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맙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은 것입니다. 셋째,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골로새서 1장 10절에서 ‘주께 합당하게 행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 하셨는데 육신의 생각에 매여서는 결국 주님을 기쁘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반면 영에 속한 생각은 이렇습니다.
첫째, 영에 속한 생각은 생명입니다. 육체적 호흡으로서의 생명을 말하는 ‘프시케(Psyche)’, 활동으로서의 생명을 말하는 ‘비오스(Bios)’, 그리고 관계로서의 생명이자 하나님과의 영적관계가 회복된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생명 ‘조에(Zoe)’가 그것입니다. 영에 속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돼 얻는 생명, 조에를 누릴 수 있습니다. 둘째, 영에 속한 생각은 평안입니다. 주님 안에서 영에 속한 생각을 했던 이들은 모두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주어진 환경을 넘어서는 참된 평안을 누렸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의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영의 생각, 성령에 속한 생각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첫째, 성령에 속한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성령 안에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직 성령 충만함을 받고 성령 안에서의 삶을 살며 서로가 소통하고 하나님의 큰일을 이야기하는 삶을 통해 성령에 속한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성령에 속한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편지가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와 그리스도의 편지로 살아가는 삶을 통해 성령에 속한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성령에 속한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몸은 죄로 인해 죽고 영은 의로 인해 생명을 얻은 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자신의 몸이 죄에 지배받지 못하도록 말씀으로 무장하고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몸의 정욕에 굴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에 속한 삶,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의 삶, 그리고 죄에 대해선 날마다 죽는 삶을 살아 성령에 속한 생각을 가득히 품고 날마다 삶에서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생명과 평안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최범선 목사(서울 용두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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