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허물을 덮는 습관(마태복음 18장 21∼35절) 2017.8.31
한 아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떠났습니다. 잘될 줄 알고 그렇게 했지요. 시간이 흐르고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후회스러워 집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고민 끝에 아버지께 편지를 씁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돌아가고 싶지만 면목이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용서하신다면 집 앞 느티나무에 노란 리본 하나만 달아주세요.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가 리본이 있으면 내리고, 없으면 그냥 가겠습니다.” 드디어 그날이 됐습니다. 버스에 앉은 아들은 집이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지나치려는 순간, 승객들 탄성에 고개를 든 아들은 창밖 느티나무 가지에 온통 매달려 춤추는 노란 리본을 봅니다. 아들이 못 보고 지나칠까 걱정한 아버지는 며칠 전부터 사다리를 타고 느티나무 가지 전체에 노란 리본을 묶어 놓은 겁니다. 용서는 잘못한 사람의 영혼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아프고 겸손한 능력입니다.
사람들은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하면서 ‘다 용서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한다고 합니다. ‘나’ 떠나면 가책에 묶여 있게 될 ‘너’를 풀어주고 싶은 거지요. 그래서 용서의 다른 이름은 사랑입니다. 몇 해 전 양림동 복지시설 충현원에 40대 여성이 방문했습니다. 1973년 네덜란드에 입양된 후 38년 만에 고국에 온 분입니다. 3년째 임파선암을 앓던 몸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그분은 자기를 버린 생모를 찾고 있었습니다. “비록 나를 버렸지만 이젠 용서할 수 있어요. 아니 용서해야 해요.”
용서는 잘못한 사람을 풀어주는 것이며, 동시에 그 사람을 가둬 놓으려다 딱딱하게 굳어져 버린 내 영혼을 풀어주는 겁니다. 그러므로 용서는 자기에 대한 사랑이기도 합니다. 용서하는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용서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아픔을 주고, 한숨짓게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함께 생활하는 가족, 함께 일하는 동료, 자주 만나는 교인이나 친구가 아닐까요. 멀리 있는 사람은 되는데,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용서하기가 어렵습니다.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과 3년 동안 생활했습니다. 같이 자고, 먹고, 대화하고 일했습니다. 서로의 장단점, 사소한 습관까지 압니다.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불편한 게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배운 사랑으로 덮어주고 넘어가려 애쓰는데, 고민이 됐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까?”(마 18:21)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가까운 사람의 반복적인 잘못과 실수는 사안별로 다룰 문제가 아니라고. 그러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그러면 감정이 상한다고. 관계가 깨진다고. 좋은 열매 맺기가 어렵다고 하십니다. 중요한 건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라고 하십니다.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고 할지니라.”(마 18:22) 서로의 존재를 사랑으로 덮어주며 살라 하십니다. 허물을 덮고서야 예쁘게 보이는 신비를 누리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용서는 허물을 덮는 습관입니다. 이 습관은 나를 자유롭게 풀어줍니다. 가족과 친구를 자유롭게 풀어줍니다. 이것이 천국이고 하나님 나라의 모습입니다. ‘서로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가꾸어 갑시다.
김용재 목사(서울 숲속샘터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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