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목사, 가짜 박사
목사는 성직이요 박사는 아니다
교회와 목사의 관계를 부부 사이로 생각하면 교회와 목사는 모든 면에서 서로 잘 어울려야 한다. 교회는 성장하는데 목사가 자라지 못해도 목회 할 수 없고 목사는 이상과 꿈이 높고 넓은데 교회가 목사를 따르지 못해도 문제는 심각해진다. 70~80년대가 되면서 한국교회가 급 성장하는데 여기에 발맞춰 목사도 성장해야겠다는 자극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한국교회 목사는 서재 하나 변변히 가진 사람이 없다. 신자들에게 창조적 신앙을 키워주기 위해 명상과 독서와 연구할 시간을 가질 환경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 그래도 목사들이 자기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중에 그동안 나타난 두드러진 현상은 박사 학위 취득이 목사 성장의 제일인 양 그 집념과 호기심이 강하게 작용했다. 박사학위 취득이 올바른 목회를 위한 진정한 학문의 추구라고 보기에는 나름대로의 문제가 있어서 목사냐 박사냐 라는 논평기사를 쓰게 된 것이다.
삶 속의 목사, 학문 속의 박사
목사를 minister라고 하는데 그것은 섬기는 사람이란 뜻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섬기고 교회와 성도들을 봉사하는 사람이 목사이다. 그러니까 목사에게는 권위주의나 관료제도나 군대식 명령이나 복종같은 것이 끼어 들 수는 없다. 목사는 모든 시간과 정력을 교회와 그 관련된 일에 바친 사람이다. 따라서 목사는 교회와 신앙에 관한한 신도들의 지도자이며 교회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목사나 전문가로서 부족을 느끼면서도 성직자로서의 어떤 특정한 권위를 인정받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경향도 있다. 기톨릭신부는 교황에게서 나누어 가진 권위로 교인들을 대하고 그 교인들은 그 권위에 순종하도록 훈련되었으므로 목회하기가 목사보다 무척 편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목사는 신앙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지식면에서나 신비경험에서나 교인들 보다 앞서고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잠재의식이 있어 결국 자기 갈등과 가식 그리고 위선 등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교회가 성장하면서 목사도 성장하는 교회에 어울리는 목사가 되겠다는 욕망도 있고 교회도 목사를 청빙할 때 박사학위 가진 분을 요구하는 풍토가 되어 가짜 박사 소동이 일기도 했다. 박사란 독창적인 연구로 학문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그 학문적 분야의 수준을 높이며 문화발전에 기여함과 동시에 전공한 학문분야에 관하여 지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에게 수여하는 학위이다.
박사학위 제도는 나라마다 다르지만 대개는 대학원에서 3년이상의 박사학위 과정을 수학하여 소정의 학점을 취득하고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 심사와 소정의 시험에 합격하면 문교부장관의 승인을 얻어 대학총장이 수여한다. 명예박사란 학술과 문화에 특수한 공헌을 하였거나 인류문화 향상에 특수한 공적을 나타낸 자에게 대학원장의 추천으로 대학원 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수여하는 학위이다.
일본서 발행한 기독교 대사전에 의하면 박사학위는 본시 쉽게 수여하는 것이 아니었으나 오늘날은 미국의 시설이 불완전한 학교에서도 여러 종류의 학위를 남발하는 풍조가 있어서 현저하게 그 가치가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늙어도 학생
날로 새로운 지식이 쏟아져 나오는 오늘날, 전에 배웠던 학문이 가치가 없게 되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므로 목사는 계속 배워야 한다. 목사는 어떤 장소에서나 어떤 방식으로든지 새로운 신학을 배우는 것이 중요한 과제 이다. 참다운 신학이란 그 시대의 인간들에게 알맞게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한 것이 아니고서는 신학적 의미가 없다. 오늘의 목사는 신학의 한계를 넘어서 습득해야 할 학문이 많다. 변천하는 시대에 신학적인 표현이나 강조점도 변하는 것이 당연하고 목사도 이런 것을 알아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목사는 자기 목회분야에 요청되는 학문적 지식을 배우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목사는 새로운 목회 능력을 개발하여야 한다.
오늘의 급변하는 상황에서 지난 날의 배웠던 목회 기술만 가지고서는 자기에게 맡겨진 목회적 사명을 다 감당할 수 없다. 유능한 목회자란 타고난 재능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유능한 목회자로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사람이다. 목사로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많이 배우고 계속 연구하여야 한다. 이렇게 노력하여 쌓은 실력이 인정되면 더욱 좋고 제도상으로도 되어 학위를 받는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목사가 박사학위를 취득한다면 그것은 목사가 목사 일을 보는데 도움이 되기 위한 것이요 결코 겉치례가 되었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진짜 목사, 가짜 박사
사람은 누구나 식욕, 성욕, 물욕의 3대 본능 이외에 명예욕이 있다. 명예욕은 자신의 좋은 명성이 많은 사람에게 오랫동안 알려지는 데서 생기는 만족감을 구하는 심리상태이다. 문명인 일수록 명예를 존중히 여기며 국법으로 명예를 보호한다. 명예는 어느 개인이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무엇을 잘했다는 것이 인정되거나 승인을 받는 사회적 평가요 객관적 가치이다. 그러나 명예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그 방법을 그르치거나 또는 바른 길을 벗어 나가서 명예를 도적질하려는 폐단이 있어서 뜻있는 이들을 우울하게 만든다.
사회 정의나 세태 인심이 극도로 타락하여 학문적 명예가 상품화되어 매매 된다는 것은 한심한 노릇이다. 세상의 빛이며 소금이어야 할 목사가 학문적 명예를 탐하여 비정 상적인 방법으로 명예를 얻으려는 일이 있어서 한 때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다.
외국 여행 길에 명예 박사 학위를 하나가 아니라 둘씩 취득한 성직자가 있다고 한다. 어떻게 박사학위를 얻었느냐고 하니 달라 얼마를 주고 샀다고도 한다. 명예를 돈받고 파는 사람이나 명예를 돈주고 사는 사람이나 다같이 정신상태가 변질된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사마리아의 마술사 시몬이 빌립에게 세례를 받고 베드로에게 돈을 주고 성령을 사려고 하다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바르지 못하다고 책망을 들었다. 사도의 성령 권능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함이요 시몬의 성령 요구는 제 명예를 얻고자 함에 있으니 이것이 바르지 못한 마음이요 악독이 가득하여 불의에 매인 마음이요 망할 마음이다.
돈으로 명예를 사려는 자는 사마리아의 시몬이다.
명예를 돈으로 살 수는 없다. 돈으로 사는 것은 그 이름뿐이지 명예를 사지는 못한다. 이름과 명예는 다르기 때문이다. 명예 박사학위를 취득한 어느 목사가 제직회를 부추겨 학위 취득 에배를 드리고 축하 연회를 교회에서 성대히 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 참석한 어느 제직이 우리 목사는 가짜 박사란다. 그러면 예배도 가짜 예배이고 연회도 가짜이고 목사도 가짜 목사가 되었군 하더란다. 참으로 남 부끄러운 일이다.
김태복 목사 목회 칼럼에 이런 글이 실려있다.
연초, 당회실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침내 가짜박사로 화제가 돌려졌다. 어느 젊은 장로님이 말하기를, "요즘 직장에서 불신자들에게 가짜박사 때문에 큰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가장 진실해야 할 목사들이 이 모양이니 이제는 누구를 믿는가하는 공박에는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고 했다.
이 말에 나이 많은 장로님이 "옳습니다. 목사님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좀 안됐으나 한국교회 목사들 회개해야 합니다."고 흥분하신다. 가만 있자니 똑같은 사람으로 취급받는 느낌이 있어 한 마디 해본다. "너무 부끄러운 얘기지요. 그러나 이 책임은 목사들에게만 있다고 할 수 없지요. 교계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오늘날 큰 교회들이 목사 청빙할 때 박사학위를 가진 분만 요구하기 시작하는 풍토가 되어 가고 있고 또한 교계의 모든 행사나 교회 무슨 식전까지도 박사 후드를 훈장처럼 장식한 가운을 입는 풍토가 발병의 원인이 아닐까요?" 그러나 그러한 변명은 허공을 때릴 뿐 전혀 설득력이 없다. 입맛만 쓰다. 목사가 사회의 빛이 되어도 부족한 판에 가짜 박사 후드라도 달고 번쩍이고 싶어 하는 명예욕의 포로가 된 이들 때문에 교회가 부끄러움을 당하고 있다. 심지어 결혼예식에 박사까운도 부족하여 박사모자를 쓰고 주례를 하는 목사가 있는 것을 보게된다. 부끄러운 일이다.
박사는 축도 못합니다.
교회 목회는 목사가 하는 것이지 박사가 하는 것이 아니다. 근 20년 전에 미국 어느 도시에서 여름철 신학 세미나에 참가했다가 주일날 어느 침례교회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 교회 당회장은 박사학위가 없는 목사이고 부목사는 박사학위가 있는 목사이다. 한국교회 풍토로 생각할 때 박사학위 없는 당회장과 박사학위 있는 부목사의 관계가 어색할 듯하여 그 관계를 물었더니 교회 일은 목사가 하는 것이지 박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라고 스스럼 없이 대답하는 것을 들었다.
목회를 위한 목사이며 박사이어야지 박사를 위한 목사이거나 목회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1930년대라고 기억한다. 전국 장로교 목사 수양회가 피어선 성경학교 강당에서 열렸는데 예배시간에 사회자가 어느 목사인 박사의 이름을 부르면서 아무 박사 축도 하겠습니다 했다. 이 때 회원석에서 박사는 축도 못합니다. 박사 축도 한다는 말 취소하시오. 했다는 일화가 전해 오고 있다. 설교 할 때도 박사까운을 입고서 자랑을 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일이다.
목사는 성직이요 박사는 성직이 아니다. 목사의 하는 일과 박사의 하는 일이 각각 다르다. 목사가 하는 일은 박사가 못할 일이 많다. 목사가 학문 연구를 함으로 박사학위를 얻거나 학술과 문화에 현저한 공헌을 나타낸 바가 있어 명예 박사학위를 받는다면 목회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명예는 구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어떤 행위나 업적이 인정을 받으면 따라오기 마련이 다. 실제가 있는 곳에 그림자가 따라오는 것과 같다.
명예를 탐내는 욕망은 떨쳐 버리고 목사라는 이름과 명예를 아끼고 존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목사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에 부끄러운 오점이나 추잡한 낙인이 찍혀서는 아니 된다. 목사는 목사다운 자랑과 체면과 품격을 지켜야 한다. 목사에게 하나님의 일군이라는 명예보다 더 귀한 명예가 어디 또 있겠는가?
출처 : 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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