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원의 품꾼들(마태복음 20장 1∼16절) 2018.7.9
마태복음 20장 1절은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천국은 포도원과 같은 특정 공간이 아니라 바로 그 포도원의 주인, 즉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하나님의 나라라고 선포하셨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일할 품꾼을 찾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품꾼들을 포도원으로 데려오고 또 오전 9시에도 나가 품꾼들을 데려왔습니다. 정오에도 나가 봤더니 일할 사람들이 있어 다시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오후 3시에 나가 보니 길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닙니까. 그들도 데리고 옵니다. 그리고 5시가 됐습니다. 일과를 마치기 1시간 전이죠. 시장에 갔더니 그때까지도 일 없어 노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그들을 또 자기 포도원으로 데려왔습니다.
이제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청지기가 품삯을 계산할 시간이 됐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우선 5시에 와서 1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라고 합니다. 새벽부터 하루 종일 일했던 근로자들은 큰 기대를 가졌습니다. 한 시간 일한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의 임금을 준다면 하루 종일 일했으니 분명 훨씬 많이 줄 것이라 판단한 것이죠. 그런데 웬일입니까. 모두에게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주는 게 아닙니까. 일찍 와 오래 일한 사람들이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1시간 일한 사람과 하루 종일 일한 우리가 똑같은 대접을 받느냐는 불만이었죠. 그랬더니 포도원 주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새벽에 나왔을 때 당신은 하루에 한 데나리온이라고 계약하지 않았소. 난 약속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내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준 것은 선의를 베푼 것입니다. 선의를 베풀고 선한 행동을 한다고 당신들이 나를 악하다고 욕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내 것을 가지고 얼마든지 선행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상식으론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마음과 같습니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단 한 시간을 일하고 하루의 품삯을 받는 은혜를 입은 자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 즉 ‘나중 된 자가 먼저 된 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품꾼을 들인 포도원 주인의 마음’이라는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뜻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동일한 일용한 양식을 주려는 것입니다. 각자 처지와 능력에 차이가 있을지라도 건강하고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약한 이웃을 도와 나누는 게 바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또 하나님 나라의 계획입니다. 다시 말해 몇 시에 와서 얼마나 오랫동안 일했든 일꾼이 받는 삯은 한 데나리온입니다. 각 사람이 가진 재능은 그들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받게 될 몫은 그들에게 값없이 주어졌던 재능에 따라 분배되지 않는다는 이치입니다.
재능은 그러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재능 때문에 남들보다 더 많은 보수와 대가를 받으라고 있는 게 아닙니다. 나보다 더 작은 자를 섬기라고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극히 작은 자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전염성이 있어서 나와 같이 작은 자나 또 지극히 작은 자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눠 주게 만들고 또 나에게 주어진 일이 바로 하나님의 일임을 확신하고 더 충성하게 만듭니다.
주님은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들판을 헤매셨고 끝내 찾아내 어깨에 메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내 주위에서 지극히 작은 자를 긍휼히 여기고 섬길 때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나의 삶 가운데 임한다는 것을 기억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권순하 김포 은여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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