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거듭난 삶을 살 수 있을까?(시 18:20-36)
- 유기성 목사
20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내게 갚으셨으니 21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하게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22 그의 모든 규례가 내 앞에 있고 내게서 그의 율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23 또한 나는 그의 앞에 완전하여 나의 죄악에서 스스로 자신을 지켰나니 24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갚으시되 그의 목전에서 내 손이 깨끗한 만큼 내게 갚으셨도다 25 자비로운 자에게는 주의 자비로우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26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니 27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은 낮추시리이다 28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29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30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31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32 이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길을 완전하게 하시며 33 나의 발을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34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 35 또 주께서 주의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고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36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나를 실족하지 않게 하셨나이다
지난 주간 부흥회를 인도했던 교회, 숙소에서 교회 사이에 운전을 해 주신 집사님, 예수믿기 전 중 3인 아들과 사이는 최악이었었답니다. 집에서도 서로 마주치려 하지도 않았답니다. 예수를 믿은 후 어느날, 집에 들어와 잠깐 쉬고 쉽어서 거실에서 잠을 자는 데, 자다보니 누가 자기를 안고 옆에서 자고 있더랍니다. 아들이었답니다. 자기를 꼭 안고 자고 있더랍니다. 그 순간 눈물이 쏟아지더랍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삶이 변화됩니다.
죄의 종노릇하던 사람이 죄에서 승리하고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다윗의 시편을 읽어 보면 다윗의 담대함이 눈에 뜨입니다. 어떤 모함을 당해도, 어떤 시련을 만나도 다윗은 강하고 담대하였습니다.
시 18:1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그는 정말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의 기도에서 드러납니다. 6절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이런 확신이 있었기에 다윗은 상황이 어떠하든지 누가 무엇이라 하든지 흔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29-30절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다윗이 이처럼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다윗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1-24절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하게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그의 모든 규례가 내 앞에 있고 내게서 그의 율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또한 나는 그의 앞에 완전하여 나의 죄악에서 스스로 자신을 지켰나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갚으시되 그의 목전에서 내 손이 깨끗한 만큼 내게 갚으셨도다. 기도를 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자의 기도는 다릅니다. 담대합니다. 약 5:16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그러나 누구나 기도해도 이런 담대함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들도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에는 확신도 담대함도 없습니다.
시 18:41 그들이 부르짖으나 구원할 자가 없었고 여호와께 부르짖어도 그들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셨나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기적은 삶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병든 자가 일어나도 죽은 자가 살아나도 여전히 죄짓고 미워하고 우울하고 분노하는 사람이라면 그 기적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습니까?
고난을 당하더라도 죄 안짓고 산다! 이것이 진짜 기적입니다. “사랑만 하며 살리라.” 이것이 기적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29절부터 13장에 걸쳐서 가장 큰 은사, 가장 좋은 길이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지진이 일어난 일본을 위하여 기도하고 성금을 모으다가 독도 문제로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그렇습니까?
다윗의 믿음이 훌륭한 것은 기도 많이 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복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기도를 하되 언제나 하나님 편에 서려고 애를 쓰면서 기도를 한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 왔던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었지만 두 번이나 살려 주었습니다. 다윗이 힘이 강하고 유리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사울은 왕으로 군사를 이끌고 광야에서 숨어지내는 다윗을 죽으려고 왔을 때입니다. 절대절명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런 순간에 두 번이나 사울 왕을 자기 손으로 죽이지 않고 살려 주었습니다.
다윗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을 정말 믿었고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윗의 시편을 설교하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영적인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다 다윗과 같은 믿음으로 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해도 다윗처럼 기도하지 못합니다. 계속 죄를 짓고 살면서 다시 용서해 주시기를 구하는 기도에 머무릅니다. 죄와의 싸움에서 계속 지고 삽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진정한 변화는 죽고 난 다음에 올 줄로 생각합니다. 사는 날 동안은 죄에 끌려다니며 살다가 죽어 천국에 가서야 바로 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죽고 난 다음 변화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정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변화된 사람을 지옥에 보낸다는 말인데, 말이 됩니까? 우리가 거듭나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는 것이지 죽고 난 다음 거듭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려 하심인데 죽고 나면 다 변화된다면 왜 십자가를 지셨겠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진정 거듭난 사람이 아니면 죽고 난 다음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 믿으면 변화된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족들과 형제들의 변화를 믿지 못합니다. 자신도 변화되지 못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노력해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힘으로 하려니까 그런 것입니다.
변화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을 6일 동안 매일 한바퀴씩 돌고 마지막 칠일 째는 일곱 번 돌았습니다. 그리고 소리지르니 성이 무너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베드로가 자기도 물 위를 걷게 해 달라고 소리쳤습니다. 주님이 “오라!” 하시는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물 위로 내려섰고 물 위를 걸었습니다. 주님이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풍랑도 잔잔케 하셨습니다. 우리가 다 이것을 믿습니다.
그러면 왜 거듭난 삶을 사는 것이 안된다고 생각합니까?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주님은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 옛 사람과 함께 죽으시고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게 하심으로 거듭난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자신을 붙잡고 계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32-34절 이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길을 완전하게 하시며 나의 발을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 우리가 십자가의 복음을 정말 믿고 변화된 삶을 살기를 진심으로 기도하면 반드시 주님은 우리에게 변화된 삶을 주십니다. 성령 하나님이 직접 우리 안에 오십니다.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왜 예수님은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하였을까요?
우리는 돈이 없을 때 돈을 구하고 건강을 잃었을 때 건강을 구하고 위기 상황에서 구원받기를 구하지만 잠시 오는 도움 능력 기적에 만족할 수 없게 됩니다.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위로는 달갑지 않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이 친히 오셔서 제 안에 살면서 저와 통행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셔야 진정한 답입니다. 해결입니다. 우주의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 마음에 오시라고 부탁하는 것이 너무 심한 요구가 아닐까 걱정될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렇게 기도하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중고등부 아이들 교회에 오는 모습을 보면 얼굴이 피곤함이 가득하고 아무 표정이 없고 신경질 충만한 얼굴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성령 하나님을 모시고도 왜 그렇게 사는 것입니까? 십자가의 복음을 듣기만 하지 실제 믿음의 실험을 해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 앨라배마주 버밍엄에 소재한 브룩힐스교회의 담임목사인 데이비드 플랫 목사는 27살에 대형교회 담임목사가 된 분입니다. 최연소 초대형교회 목사라는 별명이 붙은 목사님입니다. 그런데 플랫 목사님은 자신의 모델은 역사상‘최연소 초소형 교회’담임목사였던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최근에 출간된 [래디컬]이란 책에서 성공을 축복이라고 포장해 온 현대 교회를 향해 강력하게 ‘돌이키라’고 선포합니다.
그가 어느 날 중국 비밀 지하교회들을 방문하고 강한 도전과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지하교회 성도들은 먼 길을 걸어서 또는 자전거를 타고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모였으며 음향 시스템과 화려한 찬양 팀도, 폭신한 의자와 냉난방 장치도‘없이’오직 하나님의 말씀 만으로 깊은 만족을 얻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교회로 돌아와 주일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강단에 섰을 때“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오페라 극장 못지않은 조명시설을 자랑하는 대강당에서 교인들은 수천만 원씩 하는 자동차를 타고 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교회 교인들이‘말씀만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할까? 만약 멋진 음악이나 푹신한 의자를 치워버리면 어떻게 될까? 스크린을 떼어 내고 무대 장식을 없애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에어컨을 끄고 편의시설을 모두 철거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도 성도들이 말씀을 사모하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예배당에 몰려들까?’
그래서 그는 금요일 저녁 6시부터 자정까지 모든 편의 시설을 모두 떼어 버리고 오직 성경 말씀 만 공부하며 세계에 고난당하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모임을 열기로 하고 교인들을 초청했습니다. 얼마나 모일까 가슴조리고 있었는데, 첫 번째 모임에 무려 천여 명이 예배당에 몰려들었습니다. 무릎에 성경을 올려놓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그분이 무엇이라고 말씀하는지 자정이 넘도록 배우려는 이들을 지켜보면서 플랫 목사는 한없이 감격스러웠다고 했습니다.
그는 성도들과 함께 1년 만이라도 복음으로만 철저히 살아보자고 도전했습니다.
실험은 1 자신을 위한 기도를 뛰어넘어 전 세계를 위해 기도하라 2. 말씀 전체를 샅샅이 읽으라 3. 쓰고 남은 돈이 아니라 먼저 재정을 떼어서 필요로 하는 곳에 사용하라 4. 단기선교나 고아원 봉사 등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찾아가서 섬기라 5. 복음적인 교회에 헌신하라 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과 성도들이 세상적인 성공을 좇는 것보다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삶이 과연 가능한지를 검증해 보고 싶었습니다. 이 실험으로 자신 뿐 아니라 실험에 동참한 교인 모두 신앙과 인생이 뿌리째 변했음을 보면서 책을 통해 전 세계 독자들에게 거룩한 도전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얼핏보기에 별 것 아닐 것 같은 내용이지만 문제는 검증되지 않은 주장은 가설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알기는 많이 알지만 그대로 살지 않으니 문제인 것입니다. 진리는 실험이 필요한 것입니다. 진실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그 진리에 맞추어 삶을 조정하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고 그것은 당신의 삶을 뒤엎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는 오늘날 박해없이 편리한 것만 추구하는 교인들에게 1년 만이라도 신앙의 뿌리부터 철저히 바꾸라고 호소합니다. 그는‘마지막 때에 근본적이면서도 급진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라 살라’고 권면하며“진정한 성공은 십자가에 있으며 철저히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고 헌신할 때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들어도 실제 검증해 보기 전까지는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아는 것에 불과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진리를 실험하였습니다.
죠지 뮬러는 오직 기도로만 고아들을 먹여 보았습니다.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는 포도나무이신 예수님 안에 거하기만 하였습니다.
머린 케로더스 목사님은 모든 일에 감사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산 증인이 되었습니다.
저는 교우들에게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도전하였습니다. 그 방법으로 영성일기를 써 보시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 안에 거룩한 무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열명이 없어서 불심판을 받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세계도 너무나 악합니다. 이미 너무 늦었는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있습니다.
약 5:17-18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이런 기도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 자신도 거룩하게 살아야 하지만 거룩한 삶의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여러분, 거룩한 무리가 일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임이 믿어지지 않습니까? 이것이 우리의 소명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요즘 젊은이교회 청년들에게 산상수훈으로 설교하면서 ‘빛과 소금이 되는 운동을 일으키라’고 도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운동을 청년들에게만 맡길 일은 아닙니다. 어른들이 앞장서야 합니다.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만 가지고도 거룩한 삶으로 변화됩니다.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또 한사람이라도 더 거룩한 삶을 살게 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일 때입니다.
게시판에 한 성도가 영성일기를 쓴 소감을 올렸습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작년 말부터 계속해서 영성일기를 써온 성도로서 진심으로 권면하고 싶어 주책없이 글을 남깁니다.
첫째, 그토록 원하는 변화가 '반드시' 일어납니다. 둘째, 삶의 우선순위가 바뀝니다. 셋째, 거짓말을 못하게 됩니다.
넷째, 성경이 삶이 됩니다. 다섯째, 확신이 생깁니다. 목사님께서 '영성일기' 캠페인을 통해 2011년에 우리 교회에 놀라운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 교회 전 성도가 쓴다면? 정말 그 놀라운 기적은 현실이 될 수 밖엔 없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노르웨이 인구 비례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난한 사람이나 걸인이 없고, 세계에서 가장 교육율이 높고, 문맹이 없으며, 세계 어느 곳보다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나라입니다. 인구 비례로 보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선교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르웨이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노르웨이는 아주 가난한 나라였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문맹이었으며, 너무나 자유가 없어서, 다른 도시를 가려고 해도, 정부의 허가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변화되었습니까? 한스 넬슨 허그(Hans Nielson Hauge)라는 사람이 20살 때, 농장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누가 그에게 성경책을 주면서,“이것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라네.”하였습니다. 그는 그 글을 읽고 싶었으나, 글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기 원하여 글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고, 그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으며, 많은 사람들과 자신이 성경에서 발견한 새로운 생각들에 대하여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소위 허그 부흥(Hauge Revival)의 시작이었습니다. 노르웨이가 변화되는 출발점이었습니다.
거룩한 백성이 되고 거룩한 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결심으로 안됩니다. 그러나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면 되어집니다!
나도 거룩한 삶을 살고 거룩한 운동을 일으키기 원하는 이들은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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