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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예배의 문제점

구원의 계획 2011. 8. 19. 22:46

스크린 예배의 문제점

글/임상필 목사

 

 얼마 전의 일이다. 미국에서 유학하던 때에 알고 지내던 미국인 목사님이 한국에 나오셔서 같이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그 목사님은 하셔야 일을 다 마치시고 주일이 되어 한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다양한 목회 프로그램이 잘 갖추어진 교회를 방문하여 예배를 드리셨다고 했다. 주일날 교회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상당히 어이없어하시고 이해하기 힘든 광경을 목격하셨다고 하였다. 얘기인 즉, 예배를 스크린 화면을 보고 예배를 드렸다는 것이다.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하는 목회자는 다른 먼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자신이 참석했던 교회의 예배는 그 교회에서 보내는 영상을 받아 보면서 예배를 드렸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얼굴이 붉어지기 까지 하셨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였다.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고 그동안 그런 예배 행태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나였지만 외국 목사님의 황당해 하는 태도를 대하니 민망하기 까지 하였다.


 요즘 규모가 큰 교회들에 각 도시에 자(子) 교회를 개척하면서 음식점 분점을 운영하는 듯 한 목회를 하고 있다. 독립된 교회의 담임목사 체제로 교회를 목회하는 것이 아니라 부목사를 파송하여 목회를 한다. 모든 교회의 일은 모(母) 교회에서 관장한다는 말이다. 그런 교회들은 대부분 영상을 통해 실제의 예배 인도자나 설교자 없이 예배를 드린다. 반신학적이고 비 신앙적이 행태라고 아니 할 수 가 없다.


 영상 스크린을 보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 진정 예배일 수 있을까? 만약 그런 것이 가하다면 굳이 교회를 가서 영상을 보고 예배를 드릴 필요가 있을까? 교회에 가자면 차도 타야하고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을 텐데 그냥 집에서 비디오화면을 틀어놓고 예배드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왜 그렇게 예배를 드리는 걸까?

 

 한 교회에서 예배당이 비좁아서 다른 공간에서 영상을 보며 예배를 드리는 것은 약간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독립된 교회에서 영상으로 다른 곳에서 이루어지는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예배가 하나님께 초점이 맞추어 진 것이 아니라 아주 설교를 잘한다는 유명한 목사님께 예배의 초점이 맞추어 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마 수많은 성도들을 모으려는 의도일 것이다.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한다고 성서는 권면한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독생자를 죽이기까지 무한한 사랑을 베푸신 하나님께 고작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죽음에서 영생을 선물 받은 사람으로서 할 도리가 아닌듯하다. 요즘 예배가 너무 예배를 받으셔야 할 하나님을 생각하며 준비되기보다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의 기분을 지나치게 생각하고 드려지는 것 같이 입맛이 씁쓸하다. 우리가 드려야할 신령과 진정한 예배는 내 맘을 즐겁게 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즐거우셔야 하기 때문에 예배를 드리는 우리가 조금은 불편하고 고통이 있더라도 정성스러운 수고를 하여야 한다.


 우리가 효자 효녀로 살기 위해서는 부모님과 같이 사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따로 산다면 자주 찾아뵙는 것이 자신된 도리요 효도일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로 때우거나 방문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마음도 부모님으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나는 예배도 부모님과 자녀의 관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우리의 편리와 인간적인 욕심을 따라서 예배를 준비하고 드린다면 그 예배의 의미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예배는 어떤 일이 있어도 영상 스크린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특별히 오직 성서와 믿음만을 외치며 교회를 개혁한 장로교회가 신학적으로 문제가 되는 예배 행태를 보인다면 머지않아 개혁의 대상이 되어 비판과 정죄의 화살을 면하기 힘들 것이다

 

“온 세상 위하여 나 복음 전하리 만 백성 모두 나와서 주 말씀 들어라” “…”

 예배당 정면 대형 스크린에 적힌 찬송가 가사를 따라 부르던 성도들이 자막이 제때 바뀌지 않자 이내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몇몇은 덮어놓은 찬송가를 다시 펼치기 시작하지만 찬송가를 가져오지 않은 성도들은 자막이 다시 나오기까지 하릴없이 기다릴 뿐이다. 몇몇은 ‘자막이 왜 안바뀌나’ 중얼대며 2층 방송실을 힐끔 쳐다보기도 한다. 그 중에도 오르간 반주는 계속되고 있다.

 서울 도심 Y교회의 어느 오후예배 풍경이다. 언제부턴가 한국교회 예배당에 대형 스크린 설치가 붐이 일었다. 신축하는 예배당들은 거의 예외 없이 예배당 정면 상단에 스크린을 한두 개씩 설치했다. 건축한지 오래된 교회들도 리모델링을 통해 앞다투어 스크린을 설치했다. 대형 스크린에는 설교하는 목사님의 얼굴이 크게 비춰지고, 성가대 찬양, 성경 본문, 회중 찬송 가사, 교독문까지 제공되고 있다.  

 

 바야흐로 현대 교회 성도들은 성경과 찬송가 없이도 주일 예배 참석에 전혀 지장이 없는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일견 좋은 점이 없지 않다. 수요예배의 경우 직장일을 마친 성도들이 성경과 찬송가를 가져오지 않아 예배에 빠졌다는 핑계를 더 이상 대지 못하게 됐고, 뒷좌석에 앉으면 어렴풋하게 보이던 담임목사 얼굴도 대형 스크린을 통해 눈 앞에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또 일부 대형교회의 경우 여러 대의 카메라를 이용해 TV에서나 보던 다양한 각도에서의 영상을 제공해 예배의 생동감을 더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편리함 반면에 대형 스크린 사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첫째는 성경과 찬송가가 더 멀어진다는 사실이다. 상당수 한국교회 성도들이 일주일에 하루, 즉 주일에만 성경과 찬송가를 본다는 점을 감안할 때 대형 스크린을 통한 성경 본문, 가사 제공은 그나마 하루라도 사용하던 것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둘째는 대다수 교회들이 대형 스크린을 주로 설교와 성경, 찬송가 본문 제공 등 비교적 단순한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일예배에 영화설교를 도입하고 있는 하정완 목사(꿈이있는교회)는 “목사님 얼굴만 크게 보여줄 목적이라면 고가의 대형 스크린이 있을 필요가 없다. 정말 스크린을 잘 이용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영화설교나 드라마설교 등 스크린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라는 것이다.

 셋째는 지나친 편의주의가 자칫 교회간 경쟁이나 대형교회 쏠림현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다. 엘리베이터, 수유(授乳)공간, 휴게실, 서점 등 대형교회의 편의성은 지금도 개척교회나 중소형 교회 성도들에게 매력적인 요소들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대형 스크린 설치는 자칫 지역교회간 경쟁으로 표출될 수 있고, 아울러 대형 스크린을 비롯한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진 대형교회로의 성도 쏠림현상이 일어날 우려가 있다.

 넷째는 대형 스크린 사용으로 특히 교회 회중 찬송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대형 스크린을 사용하는 대부분의 교회에서 회중 찬송시 악보 없이 가사만을 보여주고 있는데, 악보 없이 가사만을 따라 부르는 것은 찬송가의 의미를 반감시킨다는 지적이다. 연세대 음대 김명엽 교수(국립합창단 예술감독, 새문안교회 장로)는 “찬송가는 음정과 장단에 따라 그림(音畵;음화)을 상상하며 불러야 하는데, 가사만 제공되는 경우에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가능한 찬송가를 들고 불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스크린 사용이 교회마다 보편화된 시대, 스크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고민들과 아울러 지나친 편의주의로 인한 예배의 변질을 조심해야 할 때다. 아울러 ‘성경, 찬송 가지고 다니기 운동’ 등이 교회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귀 기울일 만하다.

 

-뉴스파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