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 자료/설교모음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한 기도

구원의 계획 2011. 9. 11. 09:14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한 기도 (삼하12:15-23)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우리아의 처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삼하12:15).
밧세바는 다윗과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아의 처’라 한 것은 과거를 상기시켜줌으로써 다윗의 죄악을 부각시켰습니다. 그리고 간음죄와 살인죄를 범한 자신의 잘못을 자복하고 회개한 다윗에게 하나님과의 온전한 회복이 주어졌지만, 사탄에게 훼방거리를 제공하게 되어 태어난 아이를 하나님께서 죽이시기로 하셨습니다(삼하12:14).

1. 산 자를 위한 기도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삼하12:16).

1) 금식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금식하고’(삼하12:16)라는 말은 몸과 영혼에 고통을 가하면서 회개하여 죄를 씻고 자기 부정을 통하여 하나님께 간청하는 표현입니다(에4:3사58:3-5). 다윗은 7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기 위해서 입니다(느1:4). 하나님의 응답을 듣기 전에는 결코 멈추지 않고 필사적인 마음의 표현입니다.

2) 골방에서 기도하였습니다.
‘안에 들어가서’라는 말은 ‘조용한 골방’(마6:6)을 가리킵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6).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들어주심을 기다리겠다는 애절한 마음의 표현입니다.

3) 밤새도록 땅에 엎드려 기도하였습니다.
‘밤새도록 땅에 엎드린 것’은 다윗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구할 자격이 없음을 고백한 것입니다(창4:7). 그리고 나이 많은 사람들이 일으키려 해도 더욱 엎드렸습니다(삼하12:17). 자신의 죄로 인하여 죽어가는 아이를 하나님의 자비하신 은총에 호소하여 살려보고자 하는 절박한 마음 때문입니다(삼하12:22).

4) 합심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늙은 자들도 함께 하였습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18:19).

2. 죽은 자를 위한 기도

“이레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삼하12:18)
칠 일간 계속된 다윗의 필사적인 간구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이는 죽었습니다(삼하12:18,19).

1) 기도를 중단하였습니다.
성경에 "죽은 자를 위하여 울지 말며 그를 위하여 애통하지 말라"(렘22:10;겔24:17)고 하였습니다.
밤새도록 땅에 엎드려 기도하던 다윗은 기도를 그치고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 경배하였습니다. 목숨을 걸고 기도하였지만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게 드러났으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표현입니다.

2) 음식을 먹었습니다.
다윗이 이제까지 골방에 들어가 7일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땅에 엎드려 기도한 것은 자신의 죄 때문에 고통 중에 죽어가는 아이를 보고 견딜 수 없는 아픔과 안타까움에서 아이의 생명을 거두어 가리라 하셨던 하나님(삼하12:14)께 자비를 구한 것입니다(삼하12:22). 그러나 아이는 죽었습니다.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삼하12:23)는 말에서 상식을 초월한 답변은 참으로 깊은 신앙의 차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 죽은 자를 위한 기도는 비성경적입니다.
천주교에서는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벧전3:19)는 말씀을 근거로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주의해서 보아야 할 단어중 하나는 '전파'라는 단어입니다. 일반적으로 '전파'라고 하면 '복음을 전달하여 예수 믿으라고 권면하는 행위'를 연상합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 나타난 '전파'라는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 '선포'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도께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복음을 전파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심판을 선포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이 지옥에 내려간 것은 그곳에 있는 영들에게 하나님의 뜻과 심판의 능력을 선포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산 자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죽은 자들의 하나님도 되심을 말씀하시듯이, 살아있는 자들에 대한 심판 뿐 아니라 죽은 자들에 대한 심판도 아울러 행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너희는 죽은 자를 위하여 울지 말며”(렘22:10), “죽은 자를 위하여 너희는 살을 베지 말며 몸에 무늬를 놓지 말라”(레19:28;신14:1)는 말씀은 죽은 자를 위하여 산 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할 수도 없다고 성경에 밝히고 있습니다(사8:19).
따라서 죽은 자를 위해 기도는 하는 것은 성경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자료> 죄는 대물림인가?
성경에 “아비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리라”는 말씀 있습니다(출20:5;민14:18;신5:9). 그런데 이 말씀은 죄악에 대하여 하나님의 기본 생각을 밝힌 것이어서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아비의 죄악을 후손 3,4대까지 보응하는 것이라면 인자를 베푸는 것도 1000대까지 가능해야 합니다. 죄악의 형벌이 3, 4대까지 미치는 것은 순종의 축복이 1000대까지 이르는 것과 대조한 표현임을 유의하여야 합니다. 즉 죄지은 것은 빨리 잊으시고(시103:8-10;출34:6)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신1:11;룻3:10).  
따라서 ‘삼사 대까지’라는 말씀은 죄의 대물림이 아니라 우상을 섬기는 죄가 무엇보다 엄중하며, 하나님을 미워하는 사람들의 후손은 삼 사대까지 하나님을 미워하게 될 가능성이 많으며 그들이 조상의 영향을 받아서 조상과 같이 하나님을 미워하는 사람들로 살아갈 때 내리시는 하나님의 진노에 관한 말씀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곳에서 “각 사람은 자기 죄로 말미암아 죽음을 당할 것이다”라는 말씀이 역시 반복되기 때문입니다(신24:16;겔18:2,4,20). 즉, 하나님께서는 죄의 값은 범죄한 본인이 담당하게 되는 것이지 그것을 대물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다시는 품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엇보다 구약성경에 언급된 율법의 저주의 문제가 이미 예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해소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율법의 아래에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갈3:22-25,4:3).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과 화해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아들의 명분을 얻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게 하셨으므로(갈4:5),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롬6:14,8:1,2). 무엇보다 죄는 대물림이 아니라 개별적인 것입니다(요9:1-3;롬2:6;계22:12).

 

이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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