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3): 시편의 서론 (1-2편) |
* 시 1편: 의로운 자와 악인의 행위가 구체적으로 기록되었다. 의로운 자의 형통함과 악인이 받을 심판이 대조를 이룬다(개인적 인과응보). * 시 2편: 하나님께서 시온 산에 세우신 왕과 세상의 왕이 대조되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과 화평한 자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는다(국가적 인과응보). 이러한 주제는 시편 전체에 있어서 중요한 중심 주제이다. <제 1편> 시편의 서론: 인생의 두 길(지혜시) 복된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으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고, 교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 악인과 죄인, 그리고 오만한 자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기의 가치관을 따라 사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복된 사람의 특징은 말씀을 떠난 사람들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악인'('라사')은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자'를 말하는데, 본문에서는 이 말이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지 않고 자기의 가치관을 따라 행동한다. 그러나 복된 사람은 이러한 사람이 해 주는 조언이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 죄인(하타임)은 하나님의 율법에서 빗나간 자를 말한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에서 어긋나게 행동하는 사람들의 가는 길을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율법에서 벗어난 길의 마지막이 멸망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만한 자(레침')는 '하나님을 멸시하며 조롱하는 자'를 의미한다. 복된 사람은 하나님을 경멸하는 사람과 함께 동행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교만한 자들과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좇다'(할라크), '서다'(아마드), '앉다'(야솨브)와 같은 말들은 죄의 점진적인 과정을 나타내고 있다. 이 말들은 사람이 한번 죄에 동화되기 시작하면 점점 더 악화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2) 적극적인 자세(2): 여호와의 율법을 묵상하며 율법을 따라 삶. 복된 사람은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을 따르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법('토라')만을 기뻐한다. 여호와의 법은 모세 오경을 의미하지만 넓게는 하나님의 말씀 전체를 가리킨다. '즐거워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원칙으로 받아들이고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기뻐하는 상태를 말한다. 복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밤과 낮으로 그 말씀을 묵상한다. '묵상한다'('하가')는 말은 '묵상하다', '말하다', '속삭이다'는 의미로서, 율법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조용하게 암송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성령의 뜻을 따라 지혜롭게 의로운 길을 갈 수 있게 된다. 3) 열매와 형통(3)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들은 마치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될 것이다. 시냇가에 심긴 나무는 물에 그 뿌리를 펴고 수분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떠한 바람과 뜨거운 열기가 와도 쓰러지지 않고 성장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 말씀 안에서 항상 새로운 영적인 힘을 공급받는 상태를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나무는 철을 따라 알맞는 과실을 맺게 된다. 죄악을 멀리하고(1절)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새 힘을 공급을 받기 때문에 각 나이에 알맞는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수가 있다. 악인들이 맺는 열매는 겉은 화려하나 속은 비어 있지만, 의인들이 맺는 열매는 각 시기에 알맞게 무르익은 아름다운 열매이다. 이러한 나무는 항상 수분을 공급받기 때문에 가뭄이나 뜨거운 열기 앞에서도 그 앞이 시들지 않는다. 이것은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떤 역경 속에서도 그 생명력이 왕성하다는 것을 상징한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지혜를 따르지 않고 말씀을 묵상하며 순종하는 사람들은 그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고 번영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들은 진정으로 복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악인(라솨)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자신의 정욕과 가치관을 따라 사는 사람을 말한다. 이러한 사람은 마치 바람에 날려 다니는 가는 겨와 같다. 곡식을 까부를 때에 낱알은 지면에 떨어지지만, 겨는 가볍기 때문에 바람에 날아가 버린다. 여기에서 곡식은 의인을 말하고 겨는 악인을 의미한다. 시련과 고난이 올 때에 말씀에 기초한 사람들은 견고하게 서서 흔들리지 않고 의를 지킨다. 그러나 악인들은 환난이 오면 쉽게 그 자리를 떠나 악과 타협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바람(상황과 환난)에 따라 이리 날리고 저리 날리며 지조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겨와 같이 휘날리는 악인은 시냇가에 심긴 나무와 같이 견고한 의인과는 전혀 삶을 살게 된다. 겨과 같은 악인은 참으로 허무하며 무가치하기 짝이 없는 인생을 살게 된다(욥 21:18; 사 5:24; 렘 23:28; 단 2:35). 그러므로 악인은 하나님이 내리시는 심판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심판'('미쉬파트') 하나님이 '공의'를 시행하려고 내리는 '심판'을 의미한다. '견딘다'('쿰')는 말은 '선다', '일어선다'라는 뜻이다. 기회를 따라 이리 저리 악과 타협하며 살아온 악인들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앞에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로 서 있을 수가 없다. 죄인들은 '의인의 모임'에 들지 못한다. 왜냐하면 죄인들은 환난 때에 이미 의인의 무리를 떠나서 죄인의 무리에 합세하게 되기 때문이다. 악인과 죄인들은 곡식과 같이 남아 있지 못하고 심판의 바람이 불면 겨처럼 가볍게 되어 날아가 버린다. 타작은 곡식에서 겨를 분리하기 위한 작업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과 심판도 의인의 무리에서 악인을 갈라낸다.
악인이 의인의 모임에 참여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거은 바로 하나님의 공의로우심 때문이다. 공의의 하나님은 의인의 길을 인정해 주시다(알고 계신다). 하나님은 공의롭게 의인의 행위를 기억하고 그 행위대로 갚아주신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또한 악인이 행한 일에 대해서는 멸망으로 이끄신다. '멸망한다'는 말('아바드')은 '소멸한다'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우리의 모든 행위를 아시고 공의롭게 보응해 주시기 때문에 악인이 의인인 척하고 의인의 무리에 드는 일은 절대 불가능하다. <제 2편> 제1권의 서론: 하나님의 아들을 중심한 두 개의 길(메시야시) 다윗은 이방 나라들의 반역적 행위에 대한 놀라움과 조소를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은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고 그 왕조를 영원히 계속되게 할 것을 약속하셨다(삼하 7:8-16). 그러므로 다윗은 이방 나라들이 이스라엘에 대해 반역하는 것을 보고 가소롭게 여겼다. 열방은 이스라엘의 지배하에 있던 이방 나라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이방은 하나님의 통치에 도전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모든 세상 사람들을 의미한다. '분노한다'(라가쉬')는 말은 '음모를 꾸민다'는 뜻이다. 이방 나라들은 이스라엘에 반역하기 위해 모의하고 은밀하게 일을 추진하고 있었다. '경영한다'('하가')는 말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다'는 뜻이다. 이방 나라들은 이스라엘에 반역하기 위해 은밀하게 서로 속삭이며 일을 꾸미고 있었다.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일에 세상의 주권자들이 앞장섰다. 여기서 군왕들은 암몬, 에돔, 그리고 모압과 같은 나라의 왕을 말한다. 관원('라죤')은 주권자나 군주, 또는 군왕을 의미한다. '서로 꾀한다'는 말은 '함께 모인다'는 뜻이다. 이방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대적하기 위해 서로 연합하여 모의하고 잇었다. 기름 부음 받은 자('메쉬야')는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자"란 뜻이다. 이스라엘의 왕들은(특히 다윗 계열의 왕들) 왕으로 임직을 받을 때에(대관식 때) 머리에 기름을 부었다(왕상 1:45). 이 기름부음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왕직을 수여 받고 거룩하게 구별되었다는 것을 상징했다(출 28:41; 민 3:3; 삼상 10:1; 16:3). 그러나 본문의 메시야는 궁극적으로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맨 것', 또는 '결박'은 이스라엘의 통치를 받는 것을 말한다. 이방 나라들은 이스라엘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이 맨 것은 영적으로는 말씀을 의미한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자기 지혜와 판단으로 살아가려고 시도한다. 이러한 예언은 신약에 와서 교회를 대항하던 헤롯과 종교 지도자들에게 성취가 되었다. 예수님 당시에 헤롯과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가 되어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하였다. 그리고 주님이 승천하신 후에도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교회를 대적하는 것처럼 무모한 일은 없다. 왜냐하면 주님의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세속적 권세자들이 힘을 합해서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려고 시도했지만 모두 다 실패하고 말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여러 가지 이론을 세워 보았지만 모두 다 실패하였다. (예) 독재자, 공산주의. 무신론 등.
그러나 온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들의 반역 음모를 보고 가소롭게 여기신다. '주'('아도나이': 만물의 주인)께서 그들을 보고 비웃는 것은 이방 나라들의 헛된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반역 음모를 보고 무력화시킬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장에 심판하지 않고 일정 기간 동안 참고 기다리려 주실 것이다(롬 2:4,5). 그러나 그들이 계속해서 회개하지 않으면 마침내 심판의 때("그때에") 분노를 발하시고 진노하시며 심판을 선포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방 나라들을 향해서 "내가 다윗 왕조를 거룩한 시온 산, 곧 예루살렘에 세웠다"고 선포하실 것이다. "세웠다"는 말(나사케티)은 '기름 붓다'는 뜻의 동사 '수크'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선택하시고 기름을 부어 세우셨으며, 시온 산과 예루살렘을 거룩한 하나님의 도시로 구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예언은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다. 온 세상 나라들이 하나님을 대적할 때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성령을 부어 인류의 구속자로 세워 주셨다.
마침내 다윗은 반역자들을 향해 내려진 하나님의 영을 선포한다. 영('호크')은 왕이 내리는 칙령, 또는 특정 인물을 통치자로 인준하는 증빙 문서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다윗을 향하여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고 선포하셨다. 이 칙령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언약(삼하 7:14)과 일치한다. 하나님은 다윗과 그 후손을 양자로 선택하셨다. 왕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그 백성을 통치하고 심판할 권세를 부여받은 사람이다. 이러한 점에서 왕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운다. 이 언약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성되었다. 주님께서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성부 하나님께서 주님을 향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고 선언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선포하신 것이었다. 이러한 선포는 1) 예수님의 세례 때(마 3:17)와, 2) 변화 산상에서(마 17:5), 그리고 3) 부활 때에 반복하여 선언되었다. 하나님은 자기가 세운 왕에게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다. 이러한 특권은 선택된 왕이 가진 특징 중에 하나였다(20:4; 21:2, 4; 삼하 24:12; 왕상 3:5). 다윗은 생전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을 받았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 기도하여 항상 응답을 받으셨다. 이러한 특권은 왕 같은 제사장인 신약의 성도들에게도 해당된다(벧전 2:9). 주님은 우리들에게 "너희가 내 안에 고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다윗이 구하기만 하면 땅 끝까지 그의 소유가 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이 자기의 기업을 아들에게 물려주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기서 아들은 상속자를 의미한다(마 21:38; 갈 4:7). 그의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른다는 말은 그의 통치가 온 세상에 미친다는 것을 말한다. 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었다. 주님이 시작한 교회는 지금 모든 세상에 퍼져가고 있으며, 주님은 지금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다스리고 계신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나라들을 쇠몽둥이로 도자기를 부수듯이 깨뜨리게 하실 것을 약속하신다. 애굽의 왕들은 대관식 때에 주변 세계에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주변 국가들의 이름을 적은 질그릇들을 깨뜨렸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세운 왕과 하나님의 나라에 도전하는 모든 세력을 질그릇과 같이 깨뜨리실 것이다. 이 예언은 주님을 통해 성취된다. 주님은 그 동안 교회를 대적한 모든 세력을 깨뜨리셨다. 그리고 마지막 심판 때에 주님을 거부한 모든 사람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스라엘을 반역하려는 이방의 왕들에게 지혜롭게 처신하고 가르침을 받으라고 요청한다. 다윗은 왕들이 살길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경외하는 마음으로 여호와를 섬기고 그 앞에서 두려워하면서 즐거워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세상의 통치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세상의 왕들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인해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과 은혜 주심을 인해 즐거워 해야한다. 참 신앙은 두려움과 즐거움이 함께 있어야 한다. 두려움이 없는 신앙은 무례하기 쉽고, 즐거움이 없는 신앙은 억지가 되기 쉽다. 다윗은 이방의 왕들을 행하여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고 말한다. 발에 입을 맞추는 일은 복종과(사 49:23), 경배의 표시였다(욥 31:27). 이방의 왕들은 자신들이 살 길은 하나님이 세우신 왕과 화해하는 길밖에 없음을 알아야만 한다. 다윗은 이방의 왕들이 이렇게 하지 않으면 길에서 급살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대적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매우 임박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늘날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권면과 같다. 우리가 살길은 복음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길밖에 없다. 만일 우리가 예수를 믿지않으면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다윗은 "여호와를 피난처로 삼는 모든 자는 복이 있다"고 말한다. 스바의 여왕과 같이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선택하신 나라로 받아들이고 그 나라와 화해하는 왕은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열방의 군왕들이 멸망하지 않고 진정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길 밖에는 없다. 이것은 오늘날 복음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길은 복음을 믿는 것밖에는 없다. 지금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 시대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주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사람은 진정으로 복을 받은 사람이다. 5. 요약 및 교훈 2. 이것은 신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예표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온 우주의 왕이며, 교회의 머리이시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거부하지 말고 복음을 믿어야 한다. 교회는 음부의 세력이 이길 수 없다. 왜냐하면 교회의 머리가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삼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유일한 살길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지혜이며 진정한 복을 받는 비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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