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 자료/신학 자료 모음

시편(4): 제 1 권 (3-41편)

구원의 계획 2012. 10. 24. 00:11

시편(4): 제 1 권 (3-41편)


* 제 1권: 시 1-41편

  다윗의 시가 시작된다. 제 1권은 다윗의 개인적인 애도의 시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는 제 1권이 사울의 통치하에서 압제 받는 다윗에 대한 시가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 시 3편: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으로부터 피난하면서 지은 탄식(애가)시
  다윗의 시가 시작된다. 시편 3편은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 때에 피난하면서 지은 시이다. 다윗은 밧세바와 간음을 하고 그녀가 임신을 하게 되자 그 남편 우리야를 죽여버렸다. 하나님은 후에 나단 선지자를 보내 다윗의 숨은 죄를 지적하고 "칼이 그 집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이 선언이 성취된 것 중에 하나가 다윗의 아들인 압살롬의 반역 사건이었다. 다윗은 압살롬을 피해 울며 맨 발로 도망치면서 고통 속에서 이 시를 썼다.  
 


1. 적들의 포위(1-2)
  "여호와여 나의 적들이 어찌 이렇게도 많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나고 있습니다!(1) 많은 사람들이 나를 빗대어 말하기를 "하나님이 그를 위해 더 이상 구원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2)."

  이 탄원은 압살롬의 반란이 일어나 다윗이 맨 발로 예루살렘을 빠져 나와 아직 요단 강을 건너지 못했을 때에 한 고백이다. 이 시기는 다윗의 인생에서 가장 위험하고 위급한 때였다. 다윗은 사전에 압살롬의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압살롬의 반역 사건이 터진 후에 보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압살롬의 편에 서있었다. 그들 중에는 다윗이 가장 총애하며 친하게 지낸 친구도 끼어 있었다. 그리고 점점 더 다윗을 대적하는 편에 서는 사람들이 증가해 가고 있었다. 이 일로 인해 다윗은 심히 놀라며 이 세상에 홀로 던져진 듯한 고독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다윗을 배반한 수많은 사람들은 다윗에게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들은 공공연하게 다윗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다고(저주를 받았다) 선언하고 다녔다. 다윗은 이러한 그들을 저주를 듣고 심한 고통을 받았다. 다윗은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피난길을 울면서 밴 발로 떠났다. 다윗은 심한 갈등을 느꼈다. "정말 내 죄로 인해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단 말인가?" 만일 그렇다면 다윗에게는 더 이상 희망의 여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다윗은 심한 갈등과 고통 속에서 마침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 모든 일을 고백한다. 그리고 원수들이 한 말을 하나님께 아뢰고 영단간에 공정하게 판단해 주시기를 요청하고 있다.
 

2. 하나님의 지지를 신뢰함(3-6)
  "그러나 주 여호와는 나를 둘러 지키는 방패가 되시고, 나의 영광이시며, 나의 머리를 드시는 분입니다. 내가 내 목소리를 높여 여호와께 울부짖었고, 주께서 거룩한 산에서 내게 응답하셨나이다(셀라). 내가 자리에 누워 잠이 들었으며 무사히 잠에서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나를 치려고 나를 포위해도 나는 두렵지 않습니다(3-6)."

  그러나 다윗은 대적들의 저주와는 달리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여호와께서 자기의 방패가 되어 자기의 전후좌우를 지켜주신다고 고백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왕으로 세우고 자기에게 영광을 주시는 분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비천한 자리에 빠져 고개를 떨구고 있는 자기의 머리를 다시 들어주실 분임을 알고 있었다.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을 잠재우기 위해서 이웃 나라의 원조를 요청하거나 새로운 군사를 일으키지 않았다. 그는 이러한 상황이 자신의 죄로 인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께 나아가서 부르짖으며 은혜와 자비를 구하는 일밖에 없었다.

  다윗은 자신이 자기 목소리를 높여 울부짖을 때에 하나님께서 거룩한 산에서 그 소리를 들으시고 자기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이라고 선언한다. 다윗은 지난밤에 자신이 정말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는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했다. 그러나 그는 아침이 되어 무사히 잠자리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다윗은 자신이 잠이 들었다가 무사하게 다시 일어나게 된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켜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리지 않고 붙들어 주시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에 평안과 확신을 얻게되었다. 그는 이제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아무리 무수한 사람이 자기를 치기 위해 포위하고 있다고 해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3. 구원을 위한 기도(7-8)
  "일어나소서 여호와여!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왜냐하면 주님께서 나의 원수의 턱(또는 뺨)을 치고 악인의 이를 꺾으셨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백성에게 주님의 복을 내려주소서!(셀라)(7-8)."

  확신을 얻은 다윗은 이제 하나님께서 이번 반역 사건과 대적들의 저주에 개입해 주시기를 간구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속히 개입하셔서 하나님이 자기를 버리지 않았음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가 이렇게 간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 동안 다윗의 원수들의 턱(뺨)을 쳐서 그들의 이를 부러뜨린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그 동안 다윗의 편이 되어 사나운 맹수처럼 달려드는 다윗의 대적들의 이를 부러뜨리고 다윗을 구해 주셨다. 그러므로 다윗은 현재와 또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원수들의 손에서 구해 주실 것임을 믿을 수 있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고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군사력이나 모사를 의지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야곱이 얍복강 나루에서 천사를 붙들고 씨름하던 때와 같이 간절하게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 자기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자비를 베풀어 다시금 주님의 백성(다윗)에게 축복해 주시기만을 간절히 부르짖고 있다. 그는 자기의 죄를 알고 있었기에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만을 구할 뿐이었다.

* 셀라!:
감정이 격앙된 부분에서 음이나 낭독자의 음성을 높이는 것. 또는 다른 방법으로 그 부분을 강조하도록 지시하는 음악 기호. 이 용어는 시편에서 71회 사용되었으며 노래의 단조로움을 피하고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지휘자가 지시한 표시로 추정된다.


4. 적용을 위한 질문

1. 우리의 생애 가운데에서 가장 위급했던 때가 언제였는지 말해보라.
2. 우리의 죄로 인해 위기를 맞이했을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 이야기 해보자.
3. 왜 다윗은 잠에서 깨어난 후에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는가?
4. 왜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긍휼 하심과 자비에 근거해서 기도할 수밖에 없는가?


* 시 6편: 지휘자를 따라 8줄 현악기의 반주에 맞추어 부른 다윗의 참회의 노래
  시편에는 다윗의 참회의 시가 7편(6편, 32편, 38편, 51편, 102편, 130편, 143편)이 기록되어 있다. (시 6편)은 이러한 다윗의 참회의 시중에 첫 번째 것이다. 다윗은 자기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거의 병에 걸려 죽기 직전까지 고통을 당했다. 다윗은 하나님의 책망을 받은 후에 하나님께 나아가서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였다. 그는 간절히 기도하던 중에 기도 응답에 대해 확신을 얻게 되었다. 이제 그는 자기를 박해하는 자들을 향해 그들이 수치를 당하게 되기 전에 자기를 떠나라고 외친다. (참고: 이 시의 제목에 나오는 '스미닛'은 '8현금', 또는 '여덟 번째 줄의 높이로'라는 뜻으로 추정된다).묵상내용


1. 고통 중에 구원을 바람(1-3)
  
"주의 분노하심으로 나를 꾸짖지 마시고, 주의 진노하심으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1). 여호와여 나는 연약하오니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쳐주소서!(2) 나의 영혼이 심히 떨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언제까지 (주님께서 나를 징계하시렵니까?)(3)"

  다윗은 몸과 영혼의 극한 고난이 계속될 때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셨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가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의 징계 때문에 왔다고 생각했다. 성도들의 영혼이 병이 들게 되면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으로 보이지 않고 진노의 하나님으로 보이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진노의 하나님을 보이기 시작하면 즉시 하나님께 나아가서 자기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해야 한다. 다윗은 하나님께 나아가서 이제는 하나님께서 분노로 인한 책망과 징계를 거두어 달라고 기도하였다. '견책한다'(야카흐)는 말은 '심판한다', '판단한다'는 뜻이다. 다윗은 오랜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병에 걸려 심히 쇠약해져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고 있다. 그는 자기의 모든 뼈가 깨지고 쑤시는 듯한 고통 속에서 자기의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하였다. "떨린다"'(발루)는 말은 '부숴진다'는 뜻이다. 다윗은 육신 뿐 아니라 영혼 중심에서도 심히 떨며 고통을 받고 있었다. 영혼이 떨린다는 말은 권태, 의욕상실, 무력감, 죄의식에 빠져 무기력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그는 이러한 고통이 계속되는 것을 보고 "언제나 이러한 하나님의 징계가 끝이 나게 될 것이냐?" 고 하소연하고 있다.  

* 참고: 루터는 사람들이 구원받아야 할 것에 대해서 5가지를 지적했다. 사람들은 죄와 사망, 율법, 사탄,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받을 때에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2. 구원을 바라는 기도(4-5)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내 영혼을 건져주소서! 주의 인자하심(헤세드)을 인해 나를 구원하소서!(4) 왜냐하면 죽은 후에는 주님을 기억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 음부에서 주님께 감사(토다)할 수 있겠습니까?(5)."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로 인해 자기를 떠나셨다고 생각했다. 다윗이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리셨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다윗은 하나님께 자기의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 돌아와 주시기를 간청한다. 다윗은 하나님께 자기의 지친 영혼을 죽음에서 건져달라고 호소한다. 그러나 그는 기도할 때에 자기의 행위를 의지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오직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근거하여 구원을 호소한다. 하나님은 한 번 선택한 사람은 끝까지 사랑해 주시는 신실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다윗은 주님의 인자를 의지하고 구원을 요청할 수 있었다. 다윗은 계속되는 징계로 인해 이제 거의 죽기 직전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가 죽기 전에 구원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는 죽은 사람은 주님을 기억할 수 없다고 호소한다. 그는 죽은 후에 음부에 떨어지면 아무도 주님께 감사할 수 없다고 호소한다. 그러므로 그는 죽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를 고쳐 주시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3. 질병에 대한 한탄(6-7)-회개와 근심-
  
"나는 온 밤을 한숨과 탄식하다가 지쳐버리니, 나는 내 침대를 헤엄치는 곳으로 만들고, 내 눈물로 내 침대를 녹이나이다(6). 내 눈은 근심으로 인해 쇠약해졌고 내 모든 대적(고통)을 인해 어두워졌나이다(7)."

  다윗은 자기가 지은 죄로 인해 심한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는 죄를 짓고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후에 온 밤은 한숨과 탄식하다가 탈진하였다. 그는 그의 침상을 헤엄치는 곳으로 만들 정도로 많은 눈물을 흘렸으며, 그가 흘린 눈물에 그의 침상이 녹을(부패될) 정도로 슬퍼했다. 이 '눈물'은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한 회개와 하나님이 자기를 떠나신 데 대한 슬픔으로 흘린 눈물이었다. 다윗의 이러한 표현은 그가 얼마다 죄로 인해 육체적, 영적으로 고통을 받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는 죄로 인해 걱정하며 근심하다가 건강을 잃게 되었다. 그의 눈은 쇠약해졌고 그가 대적들로부터 받는 조롱과 고통으로 인해 점점 더 침침해지고 어두워지고 있었다. '대적"이라고 번역된 말은 동시에 "고통"이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는 말이다. 외와 같이 다윗은 죄를 지은 후에 자기 자신의 양심의 가책과, 하나님의 책망, 그리고 대적들의 비난으로 인해 수많은 밥을 눈물로 지냈으며, 이로 인해 그의 온 육체는 탈진하고 쇠약해져 있었다.  


4. 회복에 대한 확신(8-10)

 
 "모든 악을 행하는 자들아(다윗의 대적) 너희는 나를 떠나라.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내 울며 기도하는 소리를 들으셨기 때문이라(8). 여호와께서 내 간청을 들으셨으니,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아 주실 것이라(9). 내 모든 원수가 수치를 당하고 크게 떪이여! 그들이 갑자기 수치를 느끼고 물러갈 것이라(10)"

  다윗은 자기를 대적하는 사람들을 "악을 행하는 자"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정죄 하지 않은 자(다윗)를 정죄하고 대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윗이 지은 죄에 대하여 하나님의 판단을 기다리고 잠잠히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심판자가 되어 하나님이 용서하신 다윗을 친히 심판하려고 하였다. 다윗은 이러한 그들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다윗은 사죄의 확신을 받고 나서 그들에게 모두 자기를 떠나라고 외친다. 왜냐하면 주님이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용서하신 이상 그들이 더 이상 다윗을 치려고 덤벼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다윗은 이미 하나님께서 자기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셨다고 선언한다(완료형). 다윗은 하나님께서 과거에도 자기의 기도를 들어주셨으며, 또 앞으로도 들어주실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미완료형). 그러므로 이제는 다윗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피고가 되어 버렸다. 왜냐하면 그들이 무죄한 자를 정죄하고 대적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윗이 용서를 받는 순간부터 자기의 행위에 대해 수치를 느끼고 두려워 떨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윗을 치려고 왔던 그들은 자기의 행위에 대해 부끄러워하며 다시 돌아가게 될 것이다.


5. 적용을 위한 질문
1
. 우리는 하나님이 세운 사람들이 심각한 죄를 범했을 때에 스스로 심판자가 되어 그들을 대적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판단을 기다리고 잠잠히 있는 것이 옳다.
2.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죄를 범했을 때에 철저하게 회개하게 만드시며 이로 인해 다시 죄를 짓지 않도록 강하게 연단시켜 주신다.
3. 하나님은 자기의 죄를 진실하게 고백하고 회개하는 자를 용서해 주신다.
4. 하나님은 다른사람을 정죄하며 대적하는 자에게 수치와 두려움을 주신다


* 8편: 지휘자를 따라 깃딧(악기, 멜로디)에 맞추어 부른 다윗의 노래
  다윗은 천지만물을 통해서 나타난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한다. 이 시는 다윗의 찬양시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시라고 할 수 있으며, 이 내용은 (창 1장)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다윗은 이 시를 통해서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의 탁월함을 노래한다. 그리고 특히 만물 중에서도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대리자로 지음 받은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한다. 다윗은 인간은 연약하지만 존엄한 존재가 된 것은 그들을 높여주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는 것을 선포하고 있다. 본문에 "달", "별"과 같은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 시는 아마도 밤에 달과 별을 바라보면서 쓰여진 시로 보인다. 어떤 사람은 이 시가 다윗이 골리앗을 친 후에 쓴 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표제어에 나오는 '깃딧'은 분명한 의미를 알 수는 없지만, 악기 종류이거, 멜로디나 음조의 스타일을 나타내는 음악 용어였을 것이다.


* 자연 계시와 특별 계시
  자연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주를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 것이다. 이 계시는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똑같이 주어졌기 때문에 "일반계시" 라고도 부른다. 하나님은 1) 우주와 삼라 만상을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신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을 지으시고 운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 안에서 깨끗한 마음으로 우주를 바라보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은 2)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신다. 왜냐하면 이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 안에서 역사의 흐름을 자세히 살펴볼 때에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은 3) 인간의 양심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자신의 형상으로 만드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에는 선과 악을 분별하고 선을 격려하고 악을 책망하는 질서와 법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이런 질서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발견하게 된다.

  특별 계시는 하나님께서 성경과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특별하게 주신 계시를 말한다. 이러한 계시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고 특별히 선택받은 백성들에게만 주신 계시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타락하여 스스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게 되자, 선지자들을 통해서 자신의 뜻을 계시해 주셨다. 이 특별 계시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성령께서는 이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게 하신다. 이러한 계시는 선택 받은 사람들에게만 특별하게 계시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특별 계시라고 부른다. 다윗은 이 시편에서 하나님의 자연 계시와 특별 계시를 모두 노래하고 있다.


1. 우주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위대(아름다움, 장엄함)하신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놓으셨나이다!(1)"

  다윗은 하나님을 "여호와 우리 주"라고 부른다. 이 말은 다윗의 중요한 신앙 고백이 담긴 표현이다. "여호와"는 언약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선택하신 하나님을 강조하는 이름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부르셔서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것을 고백하기 위해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불렀다. 이스라엘은 이 세상에서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 '주'(아도나이)는 하나님의 주권과 크신 능력을 강조하는 이름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주인(왕)이라는 것을 고백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우리 주"라고 부르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왕이 되신다. 이것은 오늘날 시약의 성도들이 예수님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다윗은 만물을 바라보면서 온 땅에 그 만물들을 지으신 하나님의 위대하시고 장엄하며 아름다운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들을 묵상하며 바라볼 때에 그것을 지으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만물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이 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윗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늘에 있는 해와 달과 별들을 위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한다. 하나님은 그 위대하신 영광을 하늘 위에 끝없이 펼쳐져서 빛을 내고 있는 행성들 위에 놓으셨다. 이것은 위대한 예술품 위에 찍힌 예술가의 낙관을 보는 것과도 같다. 우리가 예술품 위에 찍힌 낙관을 보면서 그 예술품을 창작한 예술가의 위대함을 생각하듯이 광활하고 위대한 만물을 바라보면서 이 만물을 만드신 위대한 예술가이신 하나님의 위대함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 약한 자를 통해 나타나는 주님의 권능(2)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대적과 원수 갚는 자를 그치게 하기 위함이라(2)."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 대적으로 인해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의 권능을 세우셨다고 고백한다. 일부 학자들은 이 시가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후에 부른 노래라고 말한다. 만일 이 주장이 맞는다면 다윗은 연약한 자기를 통해서 거대한 골리앗을 쓰러뜨리신 하나님의 섭리를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골리앗을 향해 물 맷돌을 들고 나아가는 다윗은 마치 어린아이와 젖먹이와 같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하나님을 모독하는 용사 골리앗을 쓰러뜨리셨다. 하나님은 이렇게 해서 하나님을 모독하던 원수 골리앗과 블레셋의 입을 닫게 만드셨다. 이러한 사건은 모든 힘과 권능이 여호와께 속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우리는 또한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에 어린아이들이 주님을 찬양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주님이 예루살렘에 임하실 때에 똑똑한 종교 지도자들은 주님을 죽일 기회만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때에 순전하고 깨끗한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술을 통해서 주님의 영광을 노래하게 만드셨다. 하나님은 이렇게 해서 주님을 반대하던 바리새인들의 입을 닫아버리셨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연약한 사람을 들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힘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만드신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모든 능력과 힘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또한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인간을 통해서 만물을 다스리신다. 인간은 연약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권을 주어 만물을 다스리게 해 주셨다. 그러므로 가장 연약한 인간들에게 만물들이 복종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이렇게 연약한 인간을 통해서 만물을 주관하심으로 모든 만물에 대한 자신의 주권을 나타내신다. 연약한 자를 들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것은 모든 힘과 권세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3. 창조와 인간(3-8)

 1) 창조의 위대함과 인간의 연약함(3-4)
  
"내가 주님의 손가락으로 친히 만든 작품인 주님의 하늘과, 주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달과 별들을 살펴볼 때에(3), 사람(에노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저를 그토록 생각해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저를 보살펴주십니까?(4)"

  다윗은 목자 생활을 하면서 밤마다 하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성장했다. 그는 위대한 예술가이신 하나님께서 손수 만드신 작품인 하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위대함에 압도되었다. 그는 주님께서 하늘에 정렬해 놓은 달과 별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깨닫게 되었다. 이와 같이 우리도 때때로 바쁜 일을 쉬고 대자연 앞에 설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 앞에 서면 그 곳에서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신성을 발견하게 된다. 성 안토니는 이러한 주제만 가지고 3년 동안 묵상했다고 전해진다. 다윗은 광대한 천체를 바라보면서 이 대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연약한 인간이 이 광활한 우주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는 일에 놀라고 있다. 그는 도대체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광활한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이 인간을 생각해주시고, 사람이 나은 자녀들이 누구이기에 그들을 정성스럽게 보살펴 주시는 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윗은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러한 위대하신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크신 섭리와 사랑을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성령은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신성을 발견하게 해주고,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어주며,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에 감사하게 만들어 준다.

 2) 연약한 인간을 하나님을 대신해서 만물을 통치하는 자로 세우심(5-8)
  
"주님은 그(인간)를 하나님보다 조금 부족하게 만드시고, 영화와 존귀를 가지고 그에게 면류관을 씌워 주셨나이다. 주님은 그들에게 주님의 손으로 만드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셨으며, 모든 것을 그 발아래 두셨습니다. 주님은 모든 양떼와 소떼와 들에 있는 동물들과 하늘을 나는 새들과, 바다의 물고기들, 그리고 바다 길을 다니는 모든 것들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5-8)."

  다윗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엘로힘)보다 조금 못하게 창조하셨다고 고백한다. 개역 성경에는 "엘로힘'이 "천사"로 번역되었으나 이 말은 원래 "하나님'을 나타낸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 다음으로 존귀한 존재로 만들어졌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온갖 형상을 입혀주셨다.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에게 없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지혜, 그리고 선악을 판단하는 양심 등 존귀한 것으로 가득 채워 주셨다. 다윗은 이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영화(존귀, 아름다움)와 존귀(화려함, 호화로움)함으로 면류관을 씌워주셨다고 고백하였다. '영화와 존귀'는 왕의 표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워주셨다는 말은 인간을 만물을 다스릴 왕으로 세우셨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가장 연약한 인간을 들어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고 관리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인간은 연약하지만 하나님을 대신해서 모든 만물을 보호하고 관리해야 할 책임과 권한을 가진 존재이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인간의 발아래 두심으로 사람들이 이들을 주관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셨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양떼들과 소 떼들, 그리고 들에 뛰어노는 모든 동물들과, 공중을 나는 새들과 바다에 있는 물고기들과 바다를 다니는 모든 생물들을 관리하고 다스릴 수 있게 만드셨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될 때에 하나님께 찬송들 드리지 않을 수 없으며, 모든 불평과 원망을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4. 주의 아름다우심(9)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위대(장엄, 아름다움)하신지요!(9)"

  다윗은 그 동안 하늘과 천체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연약함, 그리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였다. 다윗은 이러한 깊은 묵상을 통해서 온 땅에 나타난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과 신성을 노래하고 있다.


5. 적용을 위한 질문
1.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우주와 자연을 자세히 살펴볼 때에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영원하신 신성을 발견할 수 있다.  
2. 하나님은 이 세상 만물을 만물 중에 가장 연약한 인간을 통해서 다스리신다. 이것은 모든 능력과 권능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3. 우리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자연 환경을 잘 관리하고 보전하며 아름답게 가꾸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살아가야 한다.


* 시 23편: 다윗의 시(대표적인 신뢰의 시, 찬양시)
  이 시편은 다윗에게 있어서 가장 대표적인 신뢰의 시이다. Rodes는 이 시를 "지상 최대의 시"라고 불렀으며, 스펼젼은 이 시를 "시편의 진주"라고 불렀다. 이 시가 인류의 역사를 통해 인류에게 끼친 영향은 헤아릴 수가 없다. 다윗의 견고한 신뢰와 확신이 나타난 이 시를 읽는 성도들은 어느 사이에  슬픔과 의심과 고통을 극복할 힘을 얻게 되며, 다윗이 가진 확고한 신앙에 동참하게 된다. 이 시에 사용된 언어는 단순하지만 누구도 이 시의 메시지를 고갈시킬 수 없다. 그가 던지는 잔잔한 영혼의 고백은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다윗은 이 시에서 하나님을 선한 목자와 관대한 주인으로 비유하여 하나님의 인도와 풍성한 은혜를 묘사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 시가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피난할 때에 쓴 시로 본다(카일 & 델리취). 이때에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다윗을 습격하여 그를 죽이라고 조언했다. 만일 압살롬이 이 말을 들었다면 다윗은 이 때에 전멸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압살롬이 다윗의 말을 듣지 않고 후새의 말을 듣게 하여 다윗을 구원해 주셨다. 후새는 다윗에게 기별하여 그 날 밤을 넘기지 말고 요단을 건너 피난하라고 다윗에게 기별하였다. 이렇게 해서 결국 다윗은 무사히 그 날 밤을 넘길 수 있었으며, 요단 강을 건너 다시 승리할 수 있는 군사를 준비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나님은 다윗의 길을 인도해 주셨으며, 원수가 그를 해치지 못하게 지켜 주셨다. 하나님은 결국 원수들 앞에서 다윗을 다시 높여서 그 영광을 회복시켜 주셨다. 다윗은 이러한 때에 위험 속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묵상하였던 것이다. 그는 앞으로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이 그를 영원토록 지켜 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다.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1-3)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도다

  다윗은 여호와를 목자('로이')라고 부른다. 목자는 "신실하신 인도하심"와 "자비로운 돌보심"을 강조하는 비유이다. 여호와는 다윗을 변함없이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신실하신 분이시며, 자비로 돌보아주시고 지켜주시는 분이시다. `목자'는 `바위'나 `방패'와 같이 비인격적이지 않는 동시에, `왕'이나 `구원자'와 같이 권위적인 것도 아니다. 목자는 주님과 성도간에 있는 밀접한 사랑과 순종의 관계를 강조한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그의 목자가 되시기에 자기는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한다. 선한 목자는 양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양이 그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한다. 그러므로 그 목자를 따르는 양은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지낼 수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도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아시며 우리를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따르고 신뢰하는 자는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따르는 사람들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을 나의목자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눕게하시고,
  휴식할 수 있는 물가로 인도하시도다.

  선한 목자는 양을 푸른 풀밭과 잔잔한 물로 인도한다. "푸른 풀밭"('레옷 데세')은 신선하고 부드러운 풀이 난 목장으로 양들이 풀을 먹을 수 있으며, 그늘이 져서 사막의 뜨거운 태양열을 피해 편히 누워 쉴 수 있는 곳을 말한다. 그리고 `쉴 만한 물가'(`메 메누홋')는 양들이 갈증을 해소하고 휴식할 수 있는 잔잔한 물가, 또는 오아시스를 말한다. 좋은 목자는 양들이 먹을 수 있는 좋은 풀이 있는 녹지대와, 물을 마실 수 있는 오아시스가 어디에 있는 지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양들을 이러한 풀과 물이 있는 곳으로 인도한다. 그러므로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를 따르는 양은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살수가 있다. 그러므로 양들은 이러한 목자들이 자기들을 꼴과 물과 휴식할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해 줄 것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신뢰한다. 하나님은 인생에게 필요한 꼴과 물이 있는 곳을 아시며, 그들에게 필요한 곳이 있는 모든 환경으로 인도해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들은 영과 육신에 필요한 모든 양식을 먹고 배부를 것이며, 자기 짐을 주님께 내려놓고 안식을 얻게 될 것이다.     

 3. 그가 내 영혼을 회복시켜 주시고,
   자기 이름을 위해 나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도다.

  선한 목자는 양들에게 오랜 길을 걷느라 지친 양들에게 꼴과 물을 마시고 휴식하게 하여, 힘을 회복할 수 있게 한다. 선한 목자는 길 잃고 방황하는 양들을 찾아서 꼴과 물을 주어 힘을 회복시켜 준다. `소생하다'(슈브)는 말은 `되돌아오게 한다', 또는 "회복시킨다"는 말이다. 이 말은 길을 잃은 양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고, 지친 양에게 새 힘을 회복시켜 준다는 것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는 영혼들을 옳은 길로 돌아올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다. 하나님은 인생의 여정 속에서 지치고 낙심한 영혼들에게 말씀의 꼴과 성령의 생수를 마시게 하여, 그 영혼들이 힘을 회복할 수 있게 하신다. 선한 목자는 길을 잃고 방황하던 양들을 찾아 힘을 회복시켜 주신 후에,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신다.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위해 자기의 양들을 옳은 길로 인도해 주신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인도한다"는 말은 이 모든 일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의미한다. `의의 길'은 인간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 수 있는 올바른 길을 말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이러한 축복의 길로 인도해 주신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길을 헤메는 영혼들을 찾아 힘을 회복시켜 주시며, 그들을 의로운 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이다. 목자는 양들이 가야 할 길을 자신이 먼저 앞서 가면서 인도한다. 그러므로 그의 백성들은 그 뒤를 따라가면 실족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선한 목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살면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 수 있다.

 4. 내가 사망의 그늘진 골짜기를 걸어갈 때에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위로하시도다.

  산지가 많은 팔레스타인에는 그늘로 덮인 위험한 골짜기가 많이 있다. 이러한 곳에서 목자 없는 양은 사나운 짐승의 먹이가 되거나 절벽에서 떨어져 죽거나 다치기 쉽다. 그러나 선한 목자를 따르는 양들은 이러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양 곁에는 항상 선한 목자가 함께 동행하기 때문이다. 선한 목자는 지팡이로 양들이 길을 잘못 들지 않도록 인도한다. 그리고 짐승들이 양을 공격하면 목숨을 걸고 막대기를 들고 양들을 지켜준다. `지팡이' 와 `막대기'는 목자의 장비이자 무기이다. `지팡이'(미쉬에네트)는 양들을 인도하기 위한 장비이며, `막대기'(쉐베트)는 일종의 무기로서(삼하 23:21) 공격해 오는 맹수들을 방어하는 도구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믿는 양들은 아무리 위험한 길을 가도 두려워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 다윗은 지금 언제 압살롬의 공격을 받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극도로 위태한 지경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때에도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신뢰하고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들은 위급한 상황에 빠질 때에도 본능적으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믿고 평안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2. 주인과 손님(5)
 5. 주께서 내 원수들의 눈 앞에서 내 앞에 식탁을 베푸시고,
   내 머리에 기름을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다윗은 (1-4)에서 여호와와 자신의 관계를 선한 목자와 양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이러한 비유는 이제 (5-6)에서 은혜로운 주인과 손님으로 바뀌고 있다. 다윗은 하나님을 손님과 언약을 맺은 후에 풍성한 잔치를 베풀고 좋은 음식을 대접하는 관대한 주인으로 비유한다. 주인과 손님의 관계는 상호 언약을 맺은 관계이기 때문에 목자와 양의 관계보다 한층 더 인격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주인은 손님을 초대하여 언약을 맺고 그의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그를 위해 연회 상을 베풀었다. 그리고 당시 손님을 대접하는 관례를 따라 그 머리에 기름을 부었다. 그리고 그의 잔에 술을 가득 차게 따라 주었다. 그러므로 언약을 맺은 손님은 넘치는 술잔을 들고 기뻐하고 있었다. `베푸셨다'는 말은 미완료 시제로서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적인 행동을 의미한다(Calvin). 주인은 손님에게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관대하고 신실하게 대해주었다. `상을 베푸셨다'는 말은 잔치 상을 차렸다는 말이다. 이 당시에는 언약을 체결한 사람들이 함께 음식을 먹으면서 교제의 만찬을 함께 들었다(출 24:8-12; 고전 11:25 참조). 그러므로 이 만찬은 언약과 교제를 의미하는 만찬이었다. 잔치에서 머리에 부은 `기름'은 왕이나 선지자 또는 제사장의 위임 식 때에 붓는 기름이 아니었다. 이것은 잔치 때에 귀한 손님들의 머리에 부었던 향유였으며, 귀족들, 특히 왕실에서 사용되는 비싼 향품이었다. 귀족들은 잔치에 참여할 때 이런 귀한 향 기름을 머리나 수염 등에 바르고 참여했다. 그리고 "잔이 넘친다"는 것은 손님이 주인의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대접을 받은 손님이 주인의 은혜에 감사하며 기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시가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요단 강을 건넜을 때에 쓰여진 것이라면, 다윗은 지금 수많은 대적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압살롬과 그를 따르는 군사들은 다윗과 전면전을 하기 위해 군비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대적들이 보는 앞에서 다윗에게 풍성하게 대접해 주셨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왕으로 삼으셨다. 그리고 다윗이 왕의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그에게 힘을 주시고 그를 대적하는 자들의 손에서 건져주셨다. 하나님은 언약을 맺은 주인이 손님을 위해 잔치 상을 베풀고 그에게 극진히 대접하듯이 다윗을 대접해주셨다. 하나님은 다윗의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다윗이 하나님이 세우신 진정한 왕임을 인정해 주셨다. 그리고 그의 머리에 성령의 기름을 부어 고통과 슬픔에 빠진 다윗을 회복시켜 주셨다. 하나님은 기쁨의 포도주 잔에 술을 가득 부어 다윗이 마시고 기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셨다. 결국 이러한 다윗의 고백대로 하나님은 다윗을 압살롬의 군대에게 승리하게 하셨으며, 그를 다시 왕으로 회복시켜 주셨다. 그리고 다윗에게 다시 성령을 부어 새 힘을 주시고, 그에게 평안과 기쁨을 주셨다.   

 6. 나의 일평생에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진정 나를 따를 것이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할 것이라.

  다윗은 지금 대적들로 인해 피난하면서 위협을 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서 지나간 과거 동안 자기에게 선하고 인자하게 대해 주신 것을 기억하고, 앞으로도 선과 인자하심으로 자기에게 대해 주실 것을 확신하였다. 하나님은 다윗을 위해 선한 영(성령)과 "인자"(헤세드)를 보내어 평생 동안 다윗의 뒤를 따르게 하실 것이다. "인자"(헤세드)는 한번 선택한 백성을 끝까지 지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언약 적인 사랑"을 말한다. 다윗은 그의 생애 동안 실수를 하기도 하며, 또 그의 대적들로 인해 괴로움을 당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실수하거나 그의 대적이 그를 칠 때에도 그와 맺은 언약대로 그를 지켜 주시고 그와 함께 하실 것이다.

  다윗은 자신이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할 것이라고 노래한다. 다윗은 지금 압살롬을 피해 예루살렘을 떠나 요단 강 건너편에서 피신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지금 "여호와의 집"(성막)`을 떠나 있었다. 그러나 결국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해 다시 예루살렘을 돌아가서 성막에 들어가 하나님을 경배하게 될 것이다. "여호와의 집'에 거한다는 것은 다윗의 회복을 의미하는 동시에 하나님과의 갖는 깊은 교제를 의미하기도 한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 일생동안 자기에게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대해 주실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영원히 지속하게 될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은 매 순간마다 하나님을 신뢰할 것이며, 이로 인해 하나님은 그와 함께 동행해 주실 것이다. 사실상 다윗에게 있어서 최대의 축복은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 분과 친밀한 교제를 갖는 일이었다. 다윗은 그의 일생 동안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3. 요약과 적용
적용과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는 자들은 부족함이 없는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된다. 하나님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은혜를 주신다.
 1) 영과 육을 위한 양식을 주심.
 2) 영과 육신이 평안과 안식(휴식)을 누릴 수 있게 하심
 3) 지치고 낙심할 때에 영혼을 다시 회복시켜 주심.
 4) 사람이 마땅히 가야 할 의로운 길로 인도해 주심
 5) 위기를 만났을 때에 동행하시고, 인도하시며 대적들로부터 보호하심.
 6) 원수 앞에서 풍성한 복을 베풀어주심
 7)  일생동안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인도하시고, 친밀한 교제를 유지하심.


* 시 41편: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개인의 탄원과 감사의 시.
  시편의 제 1권은 41편으로 끝을 맺고 있다. (시 41편)은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 고난을 받을 때에 쓰여진 것이다. 시인은 적들에 대해 불평을 토로하는데, 특히 신의를 저버린 친구에 대한 슬픈 마음을 토로하고 있다. 다윗은 이 시에서 어려움을 당한 자에게 동정심을 보이는 사람들을 축복하고, 신의를 버린 친구들의 죄악을 고발하고 있다. (삼하 16:23)을 보면 신의를 저버린 친구는 아히도벨이었다. 아히도벨은 다윗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해주던 다윗의 모사였다. 압살롬은 형제를 죽이고 도피하였다가 다시 돌아온 후부터 서서히 반역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에 다윗의 모사였던 아히도벨이 그를 뒷받침 해 주었다. 압살롬은 자기 아버지 다윗이 병상에 오래 누워 있는 틈을 타서 백성들의 마음을 빼앗았다. 물론 다윗도 이러한 압살롬의 음모 계획을 어느 정도는 눈치 채고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압살롬의 음모를 제거할 힘과 용기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압살롬을 사랑했고, 그의 반란이 자신의 죄(간음, 살인)로 인해 일어나고 있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미 나단 선지자를 통해 자신의 범죄로 인해 그의 가정에서 칼이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를 받았다. 그러므로 그는 압살롬의 반역 음모도 그의 죄에 대해 내려진 하나님의 징계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는 반역 음모를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이를 저지하지 않았으며, 오직 하나님의 인자하신 처분만 기다렸던 것이다. 다윗은 나이가 많아져서 늙었으며 병이 들게 되었다. 이제 그는 왕위를 계승할 후계자를 지목해야 할 때가 되었다. 바로 그때에 압살롬이 일어나서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였다. 압살롬 편에 선 사람들은 다윗을 병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염탐하러 왔다가 그가 죽어 가는 모습을 보고 돌아갔다. 그들은 다윗이 손을 대지 않아도 곧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윗은 후에 그들이 자기를 암살하려고 왔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다윗은 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상해 괴로워했다. 그러나 이때에 모두 다 다윗을 대적한 것은 아니었다. 다윗이 가장 어려움을 당할 그의 주변에는 위험을 무릎 쓰고 그를 도와 준 사람들도 있었다. (시 41편)은 이런 사람들을 축복하는 다윗의 기도로 시작되고 있다. 다윗은 궁핍한 자를 돕는 사람이 환난을 만났을 때에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여 친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에 신의를 저버리고 배반했던 사람들에게 복수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1. 자비로운 자를 위한 기도(1-4)

 
1. 빈약한 자를 돌아보는 자에게 복이 있도다.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구원하실 것이로다.
 2. 여호와께서 저를 보호하사 그 생명을 지키시리니,
   그가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께서 그를 그 대적들에게 넘겨주지 않으실 것이라.
 3. 여호와께서 병상에서 그를 붙들어주시고,
   병으로 누운 그의 자리를 모두 고쳐주시리라.

  이 시는 빈약한 자를 돌아보는 자, 즉 동정심이 많은 자가 받을 축복을 노래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빈약한 사람들"이란 말(달)은 "병들고 약한 사람들", "마음이 병든 사람들", "연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성경은 이러한 사람들을 동정하고 돌아보는 사람들에게 많은 축복을 약속하고 있다. 다윗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 그에게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었다. 첫 번째 사람은 (1-3)에 묘사된 자비로운 사람들이었고, 두 번째 사람은 (5-9)절에 묘사된 무자비한 사람들이었다. 다윗이 어려움에 빠져 병이 들었을 때에 그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 한 사람들이 있었다. 다윗은 이러한 사람들(빈약한 자를 돌아보는 자)이 복이 있다고 선언한다. 다윗은 이러한 사람들이 재앙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는 사람을 사랑하신다. 주님의 말씀대로 남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자신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도 긍휼히 여김을 받게 해 주신다. 긍휼은 율법과 심판을 넘어서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건져낸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러한 사람을 위기에서 보호하여 그 생명이 해를 당하지 않도록 지켜 주실 것이라고 노래한다. 하나님은 남을 긍휼히 여기는 자를 그가 죽음과 무덤으로 떨어질 때에 건져주시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다. 하나님은 남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을 결코 그 대적의 수중에 넘겨주시지 않는다. 다윗은 남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들이 병으로 눕게 되면 그들을 붙들어 주실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을 병이 들어 몸져눕게 되면, 병자를 돌보는 의사와 같이 그들을 세밀하게 돌보아 주신다. 그리고 그들이 고통을 당할 때마다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이 완전히 회복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들의 병을 완전히 회복시켜 조그만 병의 흔적도 남지 않도록 완전하게 낫게 해 주신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실행해 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4.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를 대적하여 범죄했나이다.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고
   내 영혼을 고쳐주소서!" 하였나이다."

  다윗은 남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열거한 후에,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한다. 다윗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 항상 연약한 자를 긍휼히 여겨왔다. 그는 그 동안 항상 악한 자와 교만한 자를 미워했고, 연약한 자를 동정하며 그들을 도왔다. 그러므로 그는 긍휼히 여기는 자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는 무엇보다 먼저 자기의 범죄의 사실을 솔직하게 고백하였다. 그는 압살롬의 반역이 자기의 죄로 인해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반역 문제를 군사력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용서를 구하려고 했던 것이다. 다윗은 평소에 연약한 이웃에게 신의를 지키고 그들을 긍휼하게 대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긍휼히 여기실 것을 요청할 수 있었다.      


2. 반역자에 대한 고발(5-9)
 5. 내 원수가 말하기를
   "저가 언제 죽어서 그 이름이 멸망할꼬!" 하며 악담하나이다.
 6. 그가 나를 보러 와서 거짓말을 하고,
   마음에 악을 쌓았다가 나가서 악한 말을 하나이다.  

  다윗은 항상 연약한 자를 긍휼히 여겼기 때문에 그가 어려움을 당할 때에도 역시 긍휼히 여김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이와는 전혀 다른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께 참회의 기도를 드리면서 자비와 구원을 구했다. 그러나 그의 대적들은 그가 고난을 당하는 것을 보고 그를 저주하며 조롱하고 있었다. 그들은 다윗이 죽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그들은 다윗이 죽게 되면 이제 그의 이름은 세상에서 사라져 보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병 든 다윗을 위문 온 척하며 다윗을 찾아 와서 그를 염탐했다. 그들은 마음으로 다윗을 해칠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들은 다윗의 병상에 누운 것을 보고 나가서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다윗을 악담하고 다녔다. 그들은 겉으로는 다윗을 찾아와 위로하는 척 했지만,  마음으로는 다윗이 해치려는 간사하고 사악한 음모를 품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윗을 떠나 밖으로 나간 후에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다윗이 그의 죄로 인해 병들어 죽게 되었다고 비방하였다.  

 7. 나를 미워하는 모든 자가 함께 모여 수군거리고,
   나를 해하려고 악한 모의를 하며,
 8. 악한 병이 저에게 부어졌으니,
   저가 눕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 하오며,
 9. 내 떡을 먹고, 내가 신뢰했던 내 친구도
   나를 대적하려고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다윗의 대적들이 퍼뜨린 소문(다윗이 병으로 죽게되었다)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널리 퍼져 나갔다. 그들은 아직 다윗이 완전히 권력에서 물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비방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다윗이 죽게 될 것을 기다리면서 은밀하게 모여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함께 모여 어떻게 하면 다윗을 몰아낼 수 있는 지에 대해 모의했다. 그들은 주형 틀에 금속을 붓는 것처럼, 다윗의 몸에도 고칠 수 없는 악한 중병이 부어졌다고 저주했다. 그들은 다윗이 일단 아파서 눕게 되면 다시는 일어날 없을 것이라고 악담했다.

  그런데 다윗을 비방하는 사람들 중에는 날마다 다윗과 함께 한 상에서 식사를 하며 가까이 지내던 친구도 끼여 있었다. 다윗은 자기와 가장 친한 친구마저 대적의 편에 서서 그를 해치려고 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심히 아팠다. 사무엘서의 기록을 볼 때에 아마도 이 배반한 친구는 다윗의 모사였던 아히도벨이었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다윗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지혜를 제공해 주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도 역시 다윗을 배반하고 압살롬의 편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다윗은 그가 모든 일을 하나님께 물어서 결정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다윗은 그가 압살롬의 편에 서 있다는 소식을 듣고 무엇보다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한 상에서 떡을 먹던 친구가 나를 배반했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적용하신 말이다. 예수님은 같은 상에서 함께 식사하던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것을 미리 아시고 그에게 이 예언을 적용하셨다. 하나님은 의인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 신의를 버리고 배반하는 사람을 저주하신다. 이러한 배반은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하지 않는 가증한 범죄에 속한다. 다윗은 믿었던 아비도벨에게서 이런 배반의 고통을 경험하고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예수님 역시 자기가 가장 가까이 하던 제자 유다로부터 배신당하는 쓰라린 경험을 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신의를 지키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신의를 지키는 사람을 사랑하고, 배신하는 자를 미워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신의를 지키는 신실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3. 구원의 확신과 찬송(10-13)
 
10. 그러나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나를 일으키소서.
   내가 그들에게 보복하리이다.
 11. 내 원수가 내 위에 높이 들리지 못하오니,
   주께서 나를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12. 주께서 나를 온전한 중에 붙들어주시고,
   나를 주의 목전에 영원히 세워주실 것입니다.
 13.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송할지로다. 아멘! 아멘!

  다윗은 신의를 지키지 않는 무자비한 사람들을 고발한 후에 하나님께 자신을 긍휼히 여겨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그는 이제 육체와 영혼이 모두 아파 누워 있었다. 다윗은 사람들은 자기를 배반하고 떠나가지만 하나님만은 자기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실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 자기를 병상에서 일으켜서 원수들에게 보복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호소하였다. 다윗은 하나님이 왕으로 세운 사람을 대적하는 세력에 대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보복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그는 실제로 후에 요압을 통해 압살롬과 맞서 싸우게 하여 반역을 평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신의를 지키지 않았던 사악한 자들을 징계할 수 있었다.

  다윗은 그를 치는 대적이 승리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을 왕으로 세워 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원수가 승리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기뻐하시며 왕으로 선택했다는 것을 굳게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실족하지 않도록 온전하게 붙들어 주시고, 하나님 앞에서 영원토록 왕으로 세워 주실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다. 이러한 확신을 갖게 된 다윗은 여호와, 즉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선택하신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송하라고 외친다. 그리로 이러한 찬양을 촉구하는 외침은 이중 아멘으로 화답되고 있다. 아멘은 시편의 제 1권이 끝났음을 보여준다.

  그리스도는 유다의 배신으로 인해 대제사장의 군사들에게 체포되었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 산헤드린에 끌려가서 심문을 받았으며, 결국 그 곳에서 사형을 선고받게 되었다. 그들은 로마 군사들에게 그리스도를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박게 하였다. 그러나 주님은 사단이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주님은 이 모든 일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손에서 일어난 것임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은 주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사단과 주님을 대적하던 모든 세력을 극복하셨다. 그리고 다시 하늘로 올리워 하나님 우편에서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 되셨다. 그리고 이것을 지켜보는 천군 천사들과 모든 구원받은 성도들은 함께 입을 모아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있다.


4. 요약과 적용

1
. 우리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형통할 때에는 그들과 가까이 하다가 그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에는 그들을 조롱하고 그들 곁을 떠나는 사람들은 아닌가?
2. 우리들은 이웃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그들에게 가까이 가서 그들의 힘이 되어 주고 있는가?
3. 축복된 사람은 스스로 복을 받을 일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을 달라고 구하기보다 복 받을 일을 찾아 해야 한다. 시편에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복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다.
 1) 의롭게 사는 자가 복을 받는다(1편): 악을 멀리하고 정직하고 의로운 자.
 2) 하나님께 자기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은 자가 복이 있다(32편).
 3) 남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을 받는다(41편)-긍휼히 여김을 받는다.
4. 이 예언이 그리스도에게서 어떻게 성취되었는지 이야기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