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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주의란 무엇인가?

구원의 계획 2010. 5. 10. 22:14

‘영지주의’란 무엇인가?

Ⅰ. 서 론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교회가 세워질 때부터 그리스도교 교회는 수많은 이단과 적대적 사상을 가진 철학들의 공격을 받아왔다. 특히 교회의 조직이 체계화 되지 않고 정경도 선정되지 않았었던 A.D 1~2세기 간에는 더욱 많은 외부의 사상적 공격들이 존재하였다. 이 레포트를 준비하기 전에는 ‘영지주의’가 그 기간에 포함된 하나의 이단 종파였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영지주의’에 대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영지주의’가 그저 하나의 이단종파가 아닌 그리스 로마 지역에 팽배해 있던 철학의 큰 범주였음을 발견하였다.

그러기에 ‘영지주의’를 분석하며 그것의 개념과 사상적 체계는 어떠하며, 초기 기독교 교회에게 어떤 영향력 미쳤는가를 아래의 내용들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Ⅱ. 본 론

1. 영지주의의 기본적 개념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란 말은 A.D 2세기와 그 후에 발견되는 일단의 종교적 현상들을 지칭하는 현대적 용어이다. 이들 종교현상에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신앙이 내포되어있음이 발견된다. 첫째로 육체와 영혼 양자로부터 구별되는 어떤 신적 불꽃의 본유적인 불사성, 둘째로 이 요소가 자기의 근원인 미지의 신에게로 탈출할 필요성, 셋째로 악령이 가시적 우주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구속주가 지상에 내려와 미지의 신과 신적 요소에 대한 지식(곧 Gnosis)을 전해주는데, 그 구속주는 자기와 “근본이 같은”자들에게 그 지식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이 구원을 성취한 후에 하늘로 돌아간다는 신앙 등이다.

 

또한 우리가 영지주의라고 칭하는 것은 그 구체적인 형성에 있어서 다양하나 기본구조에 있어서는 통일적인 하나의 종교사적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영지주의는 처음에는 기독교 내의 움직임으로 연구의 흥미를 끌면서 오랫동안 명백한 기독교 내의 산물(産物)로 생각되었다. 기독교적 신앙이 사변적인 신학으로 변질된 것으로서 기독교의 ‘철저한 헬레니즘화’로 간주 되었다. 그러나 연구를 통해 차츰 영지주의가 사실은 기독교보다 앞선 근원을 가진 종교적 움직임이고 여러 다른 형태를 가지고 기독교의 경쟁자로서 근동에서부터 서방세계에 침투해 온 것이었음이 알려지게 되었다. 영지주의는 자체의 표현을 위해 여러 다른 신화론적인 그리고 철학적인 전통들을 사용했기 때문에 하나의 혼합적 현상으로 추론할 수 있다.

 

2. 영지주의의 성격

영지주의 운동의 기독교 측면이라 부르는 ‘영지주의’를 묘사하고 구분하기란 정말 어려운 작업이다. 먼저 고대 로마세계를 휩쓸었던 대규모 종교적-철학적으로 복잡한 운동의 한 부분이었다. 둘째로, 그 당신의 어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 지식을 ‘영지주의’라는 말로 대용하거나 성숙한 기독교인을 ‘영지주의 파’라고 부르기도 했다. 오리겐의 스승이며 선배였고 알렉산드리아의 교리문답학교장이었던 클레멘트(Clement, d. ca. 215)가 그 예로 볼 수 있다. 세 번째로, 이레니우스와 다른 기독교인들이 모두 기독교가 오염되지 않고 영지주의를 근절하려고 했지만 단순히 의지 표명에 불과 했다. 기독교의 비평자인 바젤의 오버벡(Franz Overbeck, 1837-1905)은 다음과 같이 ‘영지주의’를 평가하였다. “영지주의는 지연되었지만 결국 승리자였고 그 사상들은 초기 카톨릭교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것은 영지주의자들이 이단으로 정죄 받고 추방당하지만, 그들의 사상은 초대교회와 신약성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사상적으로 그 힘이 대단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영지주의의 철학적 성격은 다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성경적 사상들이 아닌 고대 근동 사상들을 기반으로 복잡한 우주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사색적 사상의 헬라적 형태로 볼 수 있으며, 셋째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구세주로 수용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색적 요소, 종교적(신비적)요소, 그리고 실천적, 금욕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영지주의는 근본적으로 “모든 윤리적 문제들을 우주론적 문제들로 변모시켰다.”는 것이다.

 

3. 영지주의의 대표적 특징

영지주의는 그 범주가 하나의 종교보다는 그리스 로마 사상에 나타난 보편적 종교현상이며 사상의 기본적 틀을 말하는 것이기에 그 특징들이 다양하다. 하지만 영지주의자로 정죄되어 초대교회부터 추방당했던 종파들(마르키온, 몬타누스)에게는 공통된 특징들이 있었다. 그런 특징들을 아래의 세 가지로 분류해 보았다.

 

(1) 금욕주의

초대교회의 구성원들도 금욕적 생활을 하였지만 금욕주의자들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의 금욕적 생활은 그 목적이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교제를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지주의자들의 금욕주의는 물질세계가 죄로 물들었기 때문에 그 세계를 학대하면 할수록 영적 세계가 더 밝아진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사는 것이 육체의 소욕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사고였고, 육체의 소욕을 억제하면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영지주의자들의 사고였다.

 

(2) 카리스마적 경향

영지주의에는 신앙이 ‘어린’자들과 단단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계층을 구별해서 ‘완전한 자’가 있다고 말하며, 항상 이원론적(Dualistic)으로 세상을 구분한다. 이원론적으로 세상을 구분하다는 의미는 물질세계는 죄악된 것으로 보고 영적세계만 선한 것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은 이 둘의 싸움이라고 주장한다. 또 자신만이 은혜를 받았고 또는 은사(charisma)를 체험했다고 하며 이를 알지 못하는 다른 교파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자신이 무슨 은혜를 신자들에게 베푼다는 교만에 차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로마 카톨릭이 가졌던 사제주의 또는 교권주의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3) 철학적 경향

영지주의자들은 매우 사색적이다. 상상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교회의 가르침에 나와 있지 않는 부분들을 상상하며 그것을 쉽게 풀이하여 설명하는 경우도 더러 존재하였다. 이러한 면에 반대하여 이레니우스는 철저하게 성경중심의 사상을 역설하였다. 성경적이지 않고 관습적이거나 습관적으로 행하는 주의였다.

 

4. 영지주의의 사상체계

앞에서 설명한바와 같이 ‘영지주의’라는 것이 하나의 이단종파가 아닌 포괄적 종교현상을 의미하는 말이기 때문에, 영지주의적 성향을 가진 종교 그룹에 따라 그 사상체계가 조금씩 차이기 있다. 영지주의의 사상체계를 아래의 5가지(지역과 종파별)로 분류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1) 시리아 영지주의의 사상체계

이레니우스가 첫 번째로 서술한 체계는 시몬 마구스에 대한 것이었다. 그 사상을 자세히 논할 필요는 없겠고, 적어도 이레니우스가 알고 있던 형식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이 그리스도교 교리와 관계가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는 점만 논하겠다. 시몬은 자기 자신을 성부-성자-성신으로 간주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자들은 그의 은혜에 의해 구원받는 것이지 율법의 행위에 의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시몬이 몇몇의 하늘을 거쳐 지상에 내려왔다는 교리는 2세기의 그리스도인이 예수에 관해서 믿고 있었던 것과 관련이 있다. 시몬의 제자 중의 하나였던 메난데르는 곧 자기 자신의 교리를 만들었는데 그는 자신이 위로부터 보냄 받은 구세주임을 믿었고 불로장생을 가져다주는 세례를 베풀었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메난데르가 옳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그는 안디옥에서 알게 된 그리스도교의 교리에 대신할 어떤 교리를 마련하려고 했던 것이다. 안디옥은 그 당시 이그나티우스가 감독으로 있던 곳이었다.

 

시몬과 메난데르의 체계에는 잠언서와 집회서들과 같은 지혜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여성적 원리의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있다. 이 체계들의 윤리적 관념은 반 율법적이며 자유 의지론적이다. 이런 시리아 영지주의 속에서 우리들은 영지주의 사상의 그 이후의 발전의 징후를 거의 대부분 감지 할 수 있다. 거기에는 악한 세상의 속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러 오는 대속자 또는 자기 자신(시몬주의의 경우)에 의해 계시되는 지고한 미지의 신이 있다. 속죄는 일반적 도덕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 해방에 관한 지식에 의해 달성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 사상은 세상과 세상의 도덕은 적대적 힘들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며, 승리는 탈출이라는 수단에 의해서 얻어진다 한다.

 

(2) 마르키온의 사상체계

최고의 신은 예수를 통해 자신을 계시 할 뿐 완전히 미지의 존재라는 사상과 예언자들이 열등한 영적 존재에 의해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 사상은 마르키온에 의해 계승 발전하였다. 그는 A.D137년부터 A.D144년까지 로마교회의 성원이었다. 그의 견해로는, 두 분의 신이 있는데 한분은 예수의 선한 아버지이시고 다른 한분은 구약을 통해 알려진 창조주라는 것이다. 예수와 바울의 복음은 창조주 하나님 밖에는 알지 못하는 사도들의 영향으로 왜곡되었다고 한다. 마르키온이 시도했던 것은, A.D132의 유대반란이 비참하게 막을 내린 시대에 로마의 그리스도교를 그 유대적 전통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자신이 로마교회로부터 추방되고 만다.

 

마르키온의 하나님의 대한 이해는 다음과 같다. 기독교인들에게 신론은 우선적으로 삼위일체론을 말한다. 하지만 마르키온 시대에는 아직도 나타나지도 않았으며 삼위일체론이라는 용어도 다음 세기 즉, 터툴리안으로부터 쓰이게 된다. 마르키온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가르쳤다. 어떻게 그가 그리스도를 성부 즉, 지극하시고 선하신 하나님과 관련지을까? 마르키온에게는 그리스도-“구원의 정신”이라 가끔 부르는데-는 단순히 하나님 자신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실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실제로는 고난당하시지 않았다고 말한다. 마르키온의 후계자들은 그리스도를 성부로만 인식했기 때문에 그가 성부의 존재의 한 형태로 나타나셨다고 하는데 이러한 입장은 다음 세기에 등장하는 사벨리우스파들(Sabelians) 즉, 양태론자들(Modalists)에게 수용된다.

 

(3) 발렌티누스의 사상체계

거의 같은 시대에 또 한사람의 영지주의 교사 발렌티누스가 로마로 와서 자신의 교리를 설파했다. 그 교리는 나그 하마디에서 발견된 『진리의 복음』이라는 그의 책이 1956년에 출간됨으로써 우리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그의 교리는 천상의 ‘아이온’(Aeons)을 거의 강조하지 않으며, 최고의 신도 창조주와 별개 존재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발렌티누스의 교설을 유대적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들도록 변형시킨 것이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계시의 영적 성격을 말하기 위하여 발렌티누스파는 알레고리적 해석방법(추상적 개념을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다른 구체적 이미지로 표현하는 문학형식)을 취했는데, 예수님의 비유 뿐만 아니라 그의 생애의 사건들에 대해서도 그러한 해서강법을 적용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요한복음의 첫 대목을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한 글을 썼는데 그 대목에서 ‘아이온’이 상징화되었다고 그는 주장했다. 또 한 사람의 영지주의자 헤라클레온은 적어도 요한복음의 처음 네장에 관해 해석학적 주를 달았다. 후에 오리게네스는 이것을 그의 주석서에 이용하였다.

 

(4) 바실리데스의 사상체계

영지주의 사상의 매우 특이한 형태를 대표하는 것으로서는 발렌티누스와 동시대인으로 그보다 조금 연상인 바실리데스를 들 수 있다. 그의 가르침에 따르면, 태초에는 무(無)가 있었을 뿐이라고 한다. 비본재의 신은 무로부터 비존재의 씨앗을 낳았고 이 씨앗으로부터 여러 가지 실재하는 것들이 나왔다고 한다. ‘삼중(三重)의 아들 됨’(The Threefold Sonship)이라는 것도 그 중 하나인데 그것의 궁극적 목표는 비존재의 신에게로 회귀하는 것이라 한다. 이 회귀는 또한 역사의 최종적 목적이기도 하다. 모든 영적 요소들이 남김없이 천상으로 복귀했을 대, 망각이 지상을 뒤덮을 것이며 그 이상 더 구원은 없게 될 것이라고 한다. 바실리데스가 발렌티누스만큼 많은 추종자를 얻지 못했던 것은 아마도 그가 이렇게 허무주의를 강조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교부들은 윤리에 관한 논문과 희랍 및 오리엔트 문학의 알레고리적 해석에 관한 글을 썼던 그의 아들 ‘이시도루스’한 사람에 대해서만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이다.

 

(5) 후기 영지주의의 사상체계

후기의 영지주의 체계는 본질상 초기에 이미 발견된 요소들을 이리저리 짜맞춘 것이다. A.D3~4세기에 영지주의자들은 그들의 체계가 이미 희랍과 오리엔트의 종교사와 철학과 신화 속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보다 초기의 영지주의는 어둑 철저한 이원론인 마니교가 일어나자 밀려나고 말았다. 마니교는 공적인 탄압과 그리스도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에서 로마제국에 이르기까지 퍼져 갔다.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도 한때 마니교도였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지주의와 마니교가 둘 다 신화적이라는 이유도 있어 그것들을 위협적인 존재로 느꼈다. 이 적대자들은 정교한 신화적 우주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리스도교는 그러한 우주관에 대하여 불가지론적 태도를 취하거나 아니면 공공연히 적대적 태도를 취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영지주의자는 마니교도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본질상 신의 일부, 곧 신적 불꽃이라고 생각했으며 사악한 세상에서 행하는 가지의 행동은 그 무엇이거나 본질상 신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영지주의자들은 알레고리적 해석방법을 사용함으로써 자신들이 그리스도교 성서에 나오는 난해나 구절들을 참되게 해석할 능력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교 신학이 영지주의를 그 사상적 기반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논파할 수 있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영지주의의 위협은 사라지게 되었다. 영지주의에 대한 국가적 탄압이 매우 유효한 요인이기도 하였다.

 

5. 영지주의가 초대 기독교에 미친 영향

초대 기독교는 영지주의를 성공적으로 방어했고 그 과정에서 초기 카톨릭 신학을 산출했다. 하지만 영지주의 운동을 통해 초대교회 안에 들어오게 된 부정적 영향력도 존재하였다. 그러한 영지주의가 초대교회에 미친 영향을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 부분으로 나누어 알아보도록 하겠다.

 

1. 긍정적 영향

영지주의가 그 긍정적 영향이 있었다고 하면 영지주의에 대처하기 위한 그리스도교의 대답이 삼중적으로 나타났다는 것을 들 수 있다. ①정경을 고정 시켰으며 ②전통의 보장자로서의 감독직의 발전을 촉진시키는 자극이 되었으며 ③기독교 교리를 누구든지 쉽게 암송할 수 있는 신조 형식의 기독교 근본적 교리를 요약하였다는 점이다. 교리를 요약하므로 교리의 발전과 신학적 체계를 세우는 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 그 교리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영지주의의 창조주 하나님과 구속주는 다르다는 사상에 반대하여 창조주 하나님은 그리스도와 동일한 신임을 밝히게 되었으며, 기독교의 신관은 그노시스주의의 신화적 추리에서 구출되어 교회는 하나님이 최고의 존재요, 우주의 창조주이시고, 신구약의 동일신이라는 진리를 의식적으로 가지게 되었다.

 

또 창조주와 그의 창조적 행동에 대한 잘못된 교리가 제거 되었으며, 또 물질을 본질적으로 악하다고만 생각하는 잘못된 이원론이 정복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단순히 영체속의 한 인간으로 보려는 영지주의에 대항하여 신의 아들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특성이 강조되었으며, 동시에 그의 인간성이 옹호되었던 것이다. 즉 예수는 인성과 신성을 다 갖춘 분임을 밝히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저들의 가현설(Docetism)에 대항하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동정녀 탄생, 수난, 죽음, 부활 등의 위대한 사실을 모두 명백하게 설명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기독교회는 그들의 속죄론에 반대하여 속죄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사역을 통하여서만 이루어진다는 교리를 제창하였으며 또 그들의 편협주의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전 인류를 위한 것이라고 역설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영지주의의 사색이 기독교 안에서 지적 요소를 강조하게 되었고 이것이 교리 발전의 진정한 출발점이 되었다.

 

2. 부정적 영향

영지주의의 부정적 영향을 살펴보면, 그 첫째가 이원론을 주장하여 물질을 죄악시한 점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이원론에 입각하여 물질계와 영계로 존재를 나누고 물질을 죄악시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 잘못된 교리를 가르쳤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부인하고 하나님은 영계를 다스리시고, 데미우르고스가 물질계를 만들어 다스리는 것으로 말함으로 참 하나님과 창조주를 분리시키는 오류를 범하였던 것이다.

 

두 번째는 기독교의 역사적인 요소들을 과소평가하였다는 점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가현설을 주장하며 예수의 육체 탄생을 부인하여 영지주의자들은 예수의 생애, 행위, 교훈, 죽음 및 부활로부터 신앙을 분리시키려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어떤 파에서는 예수는 육체를 입었으나 그것은 메시야로서 공적 사역을 하는 동안 제한적으로 빌려 쓴 것으로 보았으며, 또 다른 파에서는 그리스도는 결코 육체와 관련이 없었으나 사람으로 보였을 뿐이며 사실 순수 정신에 지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또 다른 체계는 그리스도를 하나의 ‘에온’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 견해로 그리스도는 예수에게서 분리시켰으며, 또한 영지주의는 예수와는 다른 사람이 처녀 마리아에게서 나서 사람들의 구주로 보냄을 받았다고 가르쳤던 것이다. 이 견해들로 예수의 완전한 인성을 부인하여 기독교의 역사성을 약화시켰던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원리에서 그들은 인간의 부활과 심판을 부인했으며, 신비의식이 성하였던 것이다. 또한 그들의 창조주 하나님을 배격하고 반유대주의로 나가던 저들의 사상은 기독교에 들어와서도 구약성서를 완전히 부인하였으며, 혹은 영지주의 체계를 위해서 성서를 우의적으로 해석 하였는데 대부분의 영지주의자들은 일체의 역사적 문학적 요소를 배제해 버리고 심리적인 경험으로 재해석하는 오류를 범하였던 것이다.

 

영지주의는 유대적 요소, 헬라적 요소, 이런 여러 근원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모조리 이용해서 기독교적 요소를 가미하여 하나의 우주적인 종교가 되게 하려는 일련의 시도를 하였으며, 기독교를 당시의 종교 풍토에 적응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영지주의는 유대교에 깊이 뿌리박고 있으면서 나중에는 유대교적 요소와 기독교적 교리 그리고 이교 사상의 신비주의적인 것들을 혼합시킨 것으로 영지주의는 이 혼합을 시도하기 위해서 생략과 해석에 의해 적응을 시도하려다 복음을 왜곡시켰던 것이다.

 

 

Ⅲ. 결 론

본 레포트를 준비하면서 ‘라은성’교수의 『정통과 이단』이라는 책의 첫 페이지에 나온 이단에 대한 견해를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였다.

 

이단은 연못에 비쳐진 얼굴의 모양과 같습니다. 바람에 따라 얼굴 모습이 달라 보입니다.

본래의 모습은 연못에 비쳐진 모습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다 분명한 자신의 본

래의 모습을 알려고 할 것입니다.

 

정통은 이단을 통해 자신의 정통성을 견고하게 한다. 예수의 인간성을 부인했던 영지주의나 신성을 부인했던 아리우스주의가 없었다면, 예수가 신이자 동시에 인간이라는 삼위일체 교리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을 방어하려는 초대교회의 움직임들이 지금의 기독교 교리를 형성하는데 얼마나 큰일을 감당하였는지는 그 때 당시에는 몰랐을 것이다.

 

영지주의가 비밀전승을 주장하고, 자신들만의 무수한 복음서를 집필하고, 그럴듯한 교리로 순진한 신자들을 혼란케 했음은 분명하다. 기독교 신앙의 근본을 뿌리 채 흔들어 놓을 만큼 충격적인 교리들을 여러 차례 주장했고, 때로 어떤 영지주의자들은 신앙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도신조를 고백하지 않을 만큼 독선적이고, 제멋대로였다. 하지만 이 혼란 뒤에는 사도전승의 재확립과 신약성서 정경 작업의 착수, 사도신경의 확정이라고 하는 발전적인 교회의 반응이 뒤따랐다. 교회의 제도는 더욱 조직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부활에 대한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으로 인해 다소 약화될 수 있었던 교회의 권위는 더욱 분명하게 다져질 수 있었다.

 

초대 교회사를 다룬 서적들을 중심으로 레포트를 준비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사상이 신약성경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아보기 어려웠다. 앞으로의 수업을 통해 과연 신약성서에 나타난 영지주의의 영향력들에 대해 배워가기를 소망한다.

 

< 참 고 문 헌 >

Berkhof, Louis, 『기독교교리사』, 신복윤역, 서울 : 성광문화사, 1998,

Brown,. Harold O. J., 『교회사 안에 나타난 이단&정통』, 라은성역, 서울 : 도서출판 그리심, 2001.

Bultmann, Rudolf, 『기독교 초대교회 형성사』, 허역역, 서울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93.

김영재, 『기독교교회사』, 수원 : 합동신학대학원출판부, 2005.

김의환, 『기독교회사』, 서울 : 성광문화사, 1985,

라은성, 『정통과 이단』上, 서울 : 도서출판 그리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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