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식/큐티

의롭게 되는 길

구원의 계획 2010. 8. 17. 12:59

의롭게 되는 길( 갈라디아서 2:11~21)

 

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 도움말

* 면책하였노라(11절) : 위신이나 체면을 고려하지 않고 면전에서 공박함.

* 외식(13절) : 원어적으로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배우를 의미한다. 여기서는 위선적인 행위를 뜻함.

* 의롭다 함(16, 17, 21) : 칭의. 흠 없이 완전무결한 상태가 아니라 비록 흠은 있지만 흠이 없는 것으로 선언 받은 상태를 말함.

 

※ 도움질문

1. 안디옥에서 있었던 사건이 무엇이며, 바울이 베드로를 어떻게 책망합니까(11~14절)?

2. 바울과 베드로는 율법으로 의롭다함을 받지 못함을 알았습니다(15~16절).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길을 어떻게 설명합니까(17~21절)?

 

※ 말씀묵상

안디옥 사건에서 바울이 베드로를 단호하게 면책하는 장면을 보면 자칫 바울과 베드로 사이에 복음진리와 교리의 마찰이 있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유대주의자들에게 바울을 공격할 수 있는 빌미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바울사도는 이 사건을 자세히 기술한 후 그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다

회심 전의 바울은 철저한 바리새인으로서 율법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고자 했던 사람입니다. 바울은 스스로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지만(빌 3:6), 구원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으로 구원에 이르는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바울은 율법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을 몸으로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방인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베드로는 이러한 구원의 은혜를 알면서도 율법의 요구 때문에 외식하는 실수를 범한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인 사도대표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식탁교제를 피함으로써 유대인처럼 살도록 강요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바울의 복음진술에 의하면 유대교의 식사 규례와 식탁 교제 등의 의식들은 이미 복음으로 무력화되었는데, 그 의식 준수를 복원시키는 것은 심각한 위법이라고 강조한 것입니다(18절). 이것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상처와 낙심이 될 수 있는 사건이므로 바울은 외식한 자들을 심하게 책망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의롭다함은 그리스도와 연합으로 가능하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이렇게 칭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으며, 우리가 믿음으로 그것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본문의 외식하는 자들처럼 자기 의를 세우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짓밟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베드로와 유대인들의 외식이 십자가의 능력을 무력화시키는 행위였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십자가를 훼손하는 행위를 심하게 책망한 것입니다. 이것은 양보할 수 없는 기독교의 기본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외식하는 자들처럼 십자가의 은혜를 훼손시키지 않고, 삶의 자리에서 그것을 충만하게 누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고 합니다(20절). 2천 년 전에 있었던 십자가상에서 일어난 구속 사건이 여전히 현재 우리의 삶의 자리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의롭다함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경험을 하는 자입니다.

 

※ 삶의 적용

당신은 율법의 요구에 어떻게 반응합니까? 당신은 자기 의를 위해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훼손하지는 않습니까?

 

※ 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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