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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위대한 신앙 (히 11:23-27)

구원의 계획 2015. 4. 19. 18:31

모세의 위대한 신앙 (히 11:23-27)


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


이 시간에 “모세의 위대한 신앙”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조사했더니 누구였을까요? 모세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위대한 조상인 아브라함보다, 이스라엘을 가장 크게 빛나게 한 다윗 왕보다 모세를 더 존경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는 하나님을 대면한 자 일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건져내었기 때문입니다.


신34:10-12에도 모세의 위대함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화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 더 이상 무슨 논쟁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런 모세의 위대한 신앙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 속에서 그를 쓰시기 위해서 준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위대하게 만드시기 위해서 여러 과정을 거치게 하셨음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1. 모세의 위대한 신앙은 위대한 부모 때문입니다.


23절에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애굽의 남아살인정책으로 말미암아 모세는 태어나자 말자 나일강의 물고기 밥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 부모의 믿음에 의해서 그는 버려질 수 없었습니다.


먼저 부모는 모세의 운명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출 2장에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어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그의 누이인 어린 미리암이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서서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때 마침 바로의 공주가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과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공주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발견합니다. 열어보니 아이가 우는지라 아이를 불쌍히 여겨 데려다가 자기 아들로 삼고 젖을 먹일 유모를 구해 누이의 인도로 자기 어머니를 소개해서 모세를 젖 먹여 기르게 합니다.


이렇게 모세의 부모는 모세의 운명을 자기 뜻대로 속단하지 않고 하나님의 예정하심에 맡겼습니다. 서슬퍼런 당시로서는 위대한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세 어머니 요게벳은 '여호와는 전능하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 믿음 절대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진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자녀를 우리 뜻대로 길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쓰시도록 맡겨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바로의 공주를 보내시듯 그의 인생을 이끌어주시고 자기 일에 대한 사명감에 대한 자의식을 갖게 하십니다.


그런데 모세의 어머니가 젖만 먹었겠습니까? 감사와 기도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아들을 살려주신 것에 대한 감사와 아울러 낳은 아들을 아들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유모가 되어 젖밖에는 먹일 수 없는 처지에서 요게벳은 눈물의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모세를 기르면서 여호와께 대한 신앙과 히브리인이라는 정체성을 심어주고 싶지만 모세를 애굽의 왕자로 기르고 있는데 그 일이 맘대로 됩니까? 그런데도 모세가 그런 믿음으로 자랐다면 모세를 위한 숨은 애타는 기도가 얼마나 많았을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런 어머니의 사랑과 뜨거운 기도가 있었기에 신앙과 민족의 정체성을 가진 위대한 모세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어머니가 있습니다. 교회는 어머니와 같습니다. 갈4:26에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위에 있는 천성의 예루살렘은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인데 갈라디아 성경기자는 어머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위대한 믿음이 되려면 교회생활을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 아십니까? 엡1:23에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하나님의 그 충만하심이라. 상상이나 가능한 말씀입니까? 예수님의 몸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머리로 믿어서 참된 교회의 일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 뿐 아니라 교회의 양육을 잘 받아야 합니다. 엡4:11-12에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했기 때문입니다.

 

교회 없이도 잘 믿을 것만 같지만 그것은 아이가 어머니 없이 자랄 수 있다는 착각입니다. 교회를 떠난 믿음은 자랄 수 없고 우리를 떠난 양과 같이 잡혀 먹힐 수밖에 없습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와 같이 오는 자마다 다 변화되는 더 아름다운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2. 위대한 모세의 신앙은 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24-26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당시 애굽 왕은 요셉을 후대한 힉소스 왕조가 아니라 힉소스 왕조를 몰아낸 애굽의 본토인인 제 18왕조인 투트모스 1세였습니다. 그러니까 모세를 물에서 건진 공주는 투트모세 1세의 딸입니다. 역사의 기록을 보면 두트모스 1세는 정실부인에게서 4자녀를 낳지만 3자녀 모두 죽고 모세를 키운 하셒수트 공주만이 살아남아 유일한 법적 상속녀가 됩니다.


그래서 법적으로 공주는 두 번에 걸쳐 오랫동안 애굽을 통치하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의 아들 모세가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후궁이 낳은 아들보다 10세 위였고 법적으로도 우위에 있었습니다. 모세가 가만히만 있어도 후처의 자식에게 나라를 빼앗기지 않고 애굽의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공주의 아들로 그 혜택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그 마음속에 자라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노예생활하고 있는 동족 히브리인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그런 믿음을 가진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하늘의 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아주 귀중한 말씀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긍지와 아울러 모세와 같이 하늘의 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고 거기서 우리가 칭찬과 책망을 받게 된다는 그 믿음이 우리 믿음을 위대하게 합니다.


학자들의 조사 결과 종말론적인 믿음이 교인들을 성숙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전하고 이 땅이 전부가 아니요 내세를 이야기하고 하나님 앞에서 서야 한다는 종말론적인 믿음을 강조할 때 교인들의 믿음이 가장 성숙하게 자라더란 말입니다.


하늘의 상을 바라볼 때 모세처럼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자기 동족들과 고난을 함께 받을 만큼 믿음이 생겨나더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상을 바라보세요. 이 땅이 전부가 아니고 이 땅은 우리가 곧 버려두고 떠난 못자리일 뿐입니다. 이걸 알 때 참 믿음이 생겨납니다.


무엇을 해도 사람을 의식하지 마세요. 세상에서 인정 다 받아버리면 하늘의 상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을수록 더욱 안전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6:1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하늘의 상을 바라볼 때 위대한 믿음으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3. 모세의 위대한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27절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다는 것은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존전의식을 가지고 살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코람데오라고 합니다. 코람데오(coram Deo)는 라틴어로서 ‘코람’은 '앞에'라는 뜻이고, '데오'는 '하나님'을 뜻합니다. 이 두 단어가 합쳐져서 '하나님 앞에서'라는 뜻을 가집니다. 이 코람데오는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부패했던 중세 신앙가운데 크리스천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이름을 높이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권위아래 살며 하나님 안에 사는 삶의 방식을 요약해서 주창했던 말입니다.


이처럼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양심으로 살라는 말도 되고 신앙으로 살라는 말도 되는데 또 한 가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고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고 기도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삶이 모세에게 있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을 대면하여 만날 수가 있었고 하나님의 권능의 도구가 되어 사람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낼 수 있었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성령을 경험하는 삶입니다. 성령 체험은 하나님을 경외함과 사모함에서 비롯되지만, 또 하나는 우리 곁에 와 계신 성령 하나님을 인정하고 함께 동거 동행 동역 대화하는 생활화된 삶에서 그 충만함을 누리게 됩니다. 성령을 떠나서 위대한 믿음이 될 수 없습니다.

 

제자들에게 3년 반의 제자교육은 대단히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제자교육 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나약하고 누추한 존재였습니다. 교육이 전부가 아니예요. 성령 충만 받아야 합니다. 오순절에 성령 받은 제자들은 비로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위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믿음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모세의 위대한 신앙의 이면에 위대한 어머니가 있었고, 이 땅이 아닌 하늘의 상을 바라보았으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교회생활 잘하고 하늘의 상을 바라보고 말씀과 기도로 성령 안에서 더욱 충만하여 예수님처럼 모세처럼 위대한 믿음을 갖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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