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기쁘게 한작은 영웅들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
구약를 경외하는 자에게 물질의 복과 소산의 복과 소생의 복과 머리가 되게 하시고 위에만 있게 하시는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자들은 다 이러한 완벽한 복을 갈망한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러한데 실상 이 세상에서의 삶은 그렇지 않다.
세상이 정의롭고 평안하고 정상적으로 잘 돌아갈 때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 땅에서 어느 정도 이루어지지만 세상이 악하고 불의한 자들이 판을 칠 때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복을 받아 평안하게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자들은 핍박과 고난과 악인들에게 무참하게 짓밟히고 그 자손들은 버림을 당하고 고통을 당한다.
왜 그럴까?
이것이 미스테리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자는 정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영원히 받게 될 것이지만 이 미스테리를 풀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의 믿음에서 미끌어져 나가고 오히려 세상의 악과 풍습과 협잡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복에서 떨어져 나가는 불행을 겪게 된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려고 6개월 먼저 이 세상에 온 세례요한은 의인의 고난의 전형적인 예이다.
사가랴의 내용은 누가복음에만 나온다.
누가는 다른 복음서에 없는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에 대해 매우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사가랴는 제사장이었는데 아비야반열에 속하고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아론의 자손이었다.
이스라엘의 성전봉사는 다윗때에 정해졌는데 최초의 대제사장은 아론이며 아론에게는 아들 넷이 있었지만 그들 중 맏아들 나답과 둘째 아들 아비후가 번제단에 다른 불을 붙이다가 죽는 바람에 셋째 아들 엘르아살이 아버지 아론의 대를 이어 대제사장이 되었고 넷째 아들 이다말이 제사장의 일을 하게 된다.
대제사장은 아론의 대를 이은 장남만 할 수 있고 나머지는 제사장의 일을 하게 되므로 제사장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다윗은 제사장의 성전봉사를 24반열로 나누어서 제비를 뽑아 봉사하도록 했는데 그중에 8번째 반열이 아비야반열이다.
그 당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사라진지 400년이 넘었고 이두메인인 헤롯이 로마의 앞잡이로 왕권을 잡고 온갖악정과 부패로 이스라엘을 통치할 뿐아니라 사악한 헤롯왕에게 빌붙어서 종교권과 부을 유지하는 산헤드린과 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율법학자들이 판을 치고 있었던 시대였다.
정치 종교 사회 모든 면에서 정상적인 것이 없을 정도로 부패하고 썩어빠진 탐관오리로 서민들과 의인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껍데기만 남은 헤롯성전에서는 여전히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제사가 행해지고 있었다.
대제사장은 이미 헤롯의 권력과 야합하여 족벌체제로 타락했고 성전에서 봉사하는 제사장들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헤롯의 성전에 빌붙어서 무지하고 선령한 백성들이 바친 성전예물과 헌물들을 녹(祿)으로 받아서 살고 있는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다 타락하고 썩은 것은 아니다.
누가가 주의 복음에서 사가랴의 이야기를 구구절절이 써내려간 것은 그렇게 부패하고 타락한 종교가운데서도 신실하게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며 자신의 사명을 감당해나가는 의인들이 있음을 누가가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헤롯당시에도 제사장의 숫자가 많으므로 제비를 뽑아서 당첨이 되면 1주일간 성전안에 들어가서 분향하며 기도를 올리는데 이렇게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여 순서대로 한다면 제사장 한 사람당 500년에 한번씩밖에 할 수 없다고 한다.
결국 제비에 당첨되지 않으면 제사장이라고 해도 평생 성전봉사를 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가랴는 제비에 뽑혀서 1주간의 성전봉사를 할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된 것이다.
사가랴는 성전봉사의 차례를 따라서 제사장의 임무를 행하기 위해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기도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분향하고 기도하는 시간에 백성들은 성전밖에서 기도하며 사가랴는 분향단앞에서 기도하고 있는데 천사가 나타나서 향단 우편에 서있었다.
사가랴가 서있는 천사를 보고 너무나 놀라고 무서워했다.
그 당시는 계시가 수백년동안 끊어진 상태였고 천사의 현현은 빛나는 광채와 영광으로 사가랴에게 큰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아마도 사가랴는 난생 처음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고 이 세상에서 그렇게 희게 할 수 없는 백색의 광채와 눈부심에 혼이 나갈 정도였을 것이다.
천사의 출현이 사가랴에게 놀라운 것은 베드로가 변화산상에서 예수님이 변화하셔서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을 때 놀라서 급히엎드려 무서워했던 것과 같을 것이다.
천사는 사가랴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인데 요한이라 하라고 전한다.
요한의 태어남에 대해 천사는 몇가지를 말한다.
첫째 너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기쁨이 될 것이고
둘째 주앞에서 큰 자가 될 것이고
세째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며 모태로부터 성령충만한 한 자가 될 것이며 즉 나실인이 될 것이며
네째 이스라엘자손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며
다섯째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지고 주의 세우신 백성을 준비할 것이다.
사가랴는 자기 아내 엘리사벳이 낳을 것리라는 아기가 어떤 사람인가보다도 더 궁금했던 것은 자기와 아내가 이미 늙어서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상태인데 아들을 낳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느냐(γνωσομαι 인정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실상 사가랴와 그의 아내는 너무 늙어서 경수가 끊어져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상태이며 무자했던 것이다.
사가랴가 자식이 없고 이제 더 이상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상태인데 어떻게 성전봉사를 할 수 있었을까?
나이로 친다면 60정도 되었을 것이고 제사장이 아들을 낳지 못하면 성전봉사에서 제외된다는 유대랍비들의 전승이 있다.
그런데 헤롯시대에는 이미 율법이 아전인수격으로 적용되고 종교지도자나 율법사들은 타락했기 때문에 그러한 법이 엄격히 적용되지 않은 것같다.
그보다고 사가랴가 나이가 많고 아들이 없었지만 성전봉사에 들어간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었다고 본다.
사가랴는 천사가 나타나서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 아들이 주의 길을 예비하는 엘리야처럼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너무 좋아한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없다는 표정과 태도를 보였다.
누구나 결혼을 하면 후손을 보기 원하고 더구나 제사장의 반열에 있는 사가랴는 자신의 제사장직을 이을 아들을 얼마나 원했을까?
그러나 나이가 늙어서 더 이상 아내가 아들을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마도 이번 성전봉사는 사가랴가 마지막 생명을 하나님에게 부어드리는 관제와 같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들을 낳게 된다고 하니 당연이 아연실색하고 믿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천사는 사가랴가 믿지 않음을 보고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눅1:20)고 했다.
사가랴는 벙어리가 된채 성전봉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서 엘리사벳과 동침하여 드디어 엘리사벳이 잉태하게 되는데 6개월동안 두문불출하게 된다.
엘리사벳은 6개월이 지난 후에 마리아에게 천사의 수태고지가 있었고 천사는 엘리사벳이 잉태했다고 말해주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잉태소식을 듣고 엘리사벳을 방문하고 서로 축하하며 기뻐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쓰임받은 늙은 엘리사벳과 처녀 마리아는 세례요한과 우리의 주를 잉태하고 3달을 함께 기도하며 서로를 위로와 믿음으로 격려하며 지내게 된다.
엘리사벳이 출산하게 되자 팔일이 되어 할례를 받고 친족들이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고 이름을 지으려고 하자 엘리자벳이 아니라 요한이라 할것이라고 했다.
친척들이 가족중에 이런 이름은 없다고 반대하며 사가랴에게 이름을 무엇으로 짓겠느냐고 묻자 사가랴는 아직 말을 못하고 있는 상태였으므로 서판을 달라고 해서 요한이라고 쓰니 다 놀라게 된다.
그러자 즉시 요한은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사가랴는 입이 열리고 혀가 풀리자 곧 하나님께 찬송을 올리는데 눅1:68~79절에 기록되어 있다.
찬송의 내용은 "여호와께서 다윗의 집을 일으키시고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말씀하신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시는데 이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거룩한 언약이며 이 아이는 여호와의 선지자이며 주의 길을 준비하며 백성들에게 죄사함의 구원을 선포하게 될 것이다" 라고 한다.
사가랴는 성전에서 제사장직무를 행하다가 천사의 엘리사벳수태고지를 듣고 엘리사벳이 낳을 아이가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고 준비하는 직책을 맡은 선지자임을 잘 알고 있었던 같다.
사가랴는 약 10개월동안 요한이 태어나기까지 입이 막히고 혀가 굳어져서 말을 못할 때 깊은 기도와 묵상으로 하나님의 엄청난 역사가 자신과 아내에게 일어나고 있음을 깨달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가랴는 요한이 주님의 길을 예비하러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나실인으로 키웠고 요한은 광야에서 석청과 메뚜기를 먹고 낙타털로 옷을 입고 가죽으로 허리를 띠며 세속의 일을 금하고 기도하고 금식하며 광야생활을 하며 정결하고 거룩한 예비자로 살게 되었던 것이다.
사가랴( Ζαχαρίας Zecarjah 또는 Zachariah )는 예수님이 오시기전에 성전제사를 지냈던 마지막때의 제사장이었고 그리스도를 기다린 경건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바리새인들을 향해 눅 11:51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고 책망하신다.
주님께서 가리키신 사가랴는 누구일까?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가랴가 바룩의 아들이라고 생각한다.
요세푸스도 역시 이 사가랴는 예루살렘이 포위되기 전에 성전가운데서 살해당한 스가랴( זְכַרְיָהוּ Zecarjah 또는 Zachariah )라고 생각한다.
아벨은 살해당한 첫 번째 사람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몇가지 것들이 있는데 이 스가랴의 아버지는 바룩이 아니라 대제사장 여호야다이다.
여호야다는 요아스가 할머니 이달리야에게 살해당할 위기에서 구하여 6년동안 하나님의 성전에서 숨겨 키우다가 백부장들과 레위인들과 이스라엘족장들을 모아서 요아스를 왕으로 추대하고 이달리야를 처형하여 유다나라의 정통성을 회복한 인물이었다.
요아스는 대제사장여호야다의 도움으로 7세에 왕위에 즉위하여 여호야다의 가르침대로 여호와를 경외하며 나라를 잘 다스렸고 결혼하여 자녀도 낳고 아달랴가 훼손한 성전을 보수하며 유다나라를 재건하는데 힘을 썼다.
그러나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요아스는 악한 방백들의 꼬임에 빠져 다시 아세라목상과 우상숭배를 하며 하나님에게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되었다.
이를 보다못한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요아스왕에게 경고하였으나 듣지 아니했다.
이에 하나님의 영이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에게 크게 임하여서 백성들앞에서 공개적으로 유다의 죄와 우상숭배를 책망하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선포하고 만일 계속 여호와의 명령을 져버리면 여호와께서 너희를 져버릴 것이라고 책망을 했다.
이때 악감을 품은 요아스와 무리들이 스가랴를 여호와의 뜰안에서 돌로 쳐죽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가랴가 성전과 제단사이에서 죽임을 당했다고 말씀했다.
혹자들은 성전과 제단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는 다름이 아닌 세례요한의 아버지라고 하는데 그는 그 당시 최근에 유대인들에 의해 살해되어졌다.
그래서 예수님에 의해 언급되어졌다고 본다.
몇몇 고대 작가들이 이 일에 대해 말하고 있다.
성전안에는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와같은 처녀들에게 접근이 허용된어진 장소가 있다
주님의 탄생후에 마리아는 처녀로써 이 장소에 왔다.
그때 마리아가 아기를 낳았다는 사실을 안 유대인들이 마리아가 성전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했는데 성육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가랴가 마리아를 지키도록 명령했고 열성당원 유대인들이 마리아를 보호하는 스가랴를 살해했다.
스가랴( Zachariah )와 사가랴( Zachariah )는 한글번역상의 차이이지 원어에는 차이가 없다.
만일 예수님이 가리키는 사가랴가 그 당시 최근에 일어난 성전살해사건이었다면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의 죽음에 대해 율법주의자며 열성당원인 바리새인들의 악행을 꾸짖는 것이다.
사가랴는 엘리사벳을 통해 마리아가 성령으로 그리스도를 잉태했다는 사실을 알고 믿었고 그 믿음은 성전봉사에서 만난 천사의 고지로
확신했을 것이다.
사가랴는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엘리사벳이 요한을 낳고 오실 그리스도를 예비하는 선지자가 될 것을 믿었고 또한 처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예수를 낳았다는 사실을 믿고 예수의 마리아를 모독하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사생아로 낙인을 찍는 사악한 바리새인들을 온 몸으로 대항하다가 결국 성전과 번제단사이에서 열성당원들에게 살해당하게 된 것이다.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자는 거룩한 일을 위해 쓰임받는다.
고귀한 삶을 사는 자는 고귀한 일에 바쳐진다.
진실한 삶을 사는 자는 진리를 위해 드려진다.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그러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고명한 자는 고명한 일을 도모하나니 그는 항상 고명한 일에 서리라 ( 사32:8 )
(the noble man makes noble plans, and by noble deeds he st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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