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과 주일 문제의 연구 주일 문제의 긴박성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전 세계에 걸쳐 세속주의의 물결이 범람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산업화되고 기술 문명이 발달된 거의 모든 사회는 현재 주 5일제 근무를 채택하고 있으며 자가용 승용차의 보편화로 인해 주말은 여행, 휴가, 그리고 여가 선용의 기회로 인식되는 경향이 점증하고 있다. 현대 생활의 복잡성, 경제 각 부문의 상호 의존, 서비스와 전기, 수도 등의 중단없는 흐름에 대한 의존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공장에서는 이제 주말에 최소한 모니터라도 되어야 하는 기계들이 도입되었으며 일반 가정에서도 전기, 난방, 냉방, 전화, 텔레비전, 라디오 방송, 신문 등을 한 주간 내내 요청하고 있다. 그 중 어떤 것들은 실제로 복음 전파라는 기독교적 목적을 위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동 중인 사람들은 주일에도 비행기, 택시, 철도, 정거장, 호텔, 식당 등의 서비스를 필요로 한다. 게다가 많은 상업 시설들이 일 주일 내내 문을 열고 있으며 때로 그리스도인들도 수익을 올리기 위해 주일 영업의 유혹을 받는다. 이것은 목회상의 많은 문제를 의미하는 동시에 주일과 안식에 대한 교회의 새롭고 분명한 지침이 제공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대한 예수교 장로회(고신)는 안식일과 주일 문제에 대해 대단히 엄격한 입장을 고수해 왔다. 한국 땅에 처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설립한 미국 장로교 선교사들은 대부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신앙의 표준으로 소유한 자들로서 주일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 교회에 가장 엄격한 청교도적 주일관을 이식해 주었다. 그러한 역사적 배경은 고신의 보수적 신학과 영적 분위기와 합세하여 고신으로 하여금 한국 장로교회들 중에서도 가장 엄격한 안식일 전통을 유지하게 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와 수도권을 기점으로 타 교단들은 두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우리 교단 내의 교회들에서도 전통적인 주일 성수의 방식으로부터 떠나는 경향이 노출되고 있다. 수도권뿐 아니라 지방 교단 교회들에서도 교회적으로는 아닐지 모르나 개인별로는 이미 주일성수의 모습이 과거와 같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은 암암리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과거와 같은 엄격한 안식일관과 주일 성수의 방식이 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감각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그러한 전통적 이해와 관행에 결함이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작용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교단의 전통적 안식일관을 객관적으로 재점검하면서 그것을 개혁주의적인 안식일관, 나아가서는 성경적 안식일관과 비교 평가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했다. 주일에 대한 입장들의 스펙트럼 주일 성수와 관련해서 생각할 가장 중요한 사항은 제 사 계명과 주일의 관계 문제이다. 주일은 제 4 계명의 연장인가 아니면 완전히 별개의 것인가? 제 4 계명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여전히 문자적 구속력을 가지는가 아니면 모형이요 “그림자”인가? 교회사적으로 제 4 계명에 대한 입장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제 4 계명 전부가 모형이요 그림자로서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성취되었기 때문에 신약 시대에는 폐기되었다는 견해이다. 이것은 또 종교개혁 시대의 재세례파 집단을 풍미하던 견해로서 율법과 복음에 대한 날카로운 대립의 전제 하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십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으므로 제 4 계명은 폐기되었다고 믿는다. 안식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을 지킬 필요는 없다. 모든 날이 주의 날이기 때문에 주일을 지키는 것은 날과 절기의 구분을 금지하는 신약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반대된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이것과 꼭 같지는 않으나 유사한 입장을 취하는 교회로 영국 국교회가 있다. 그들은 제 4 계명과 안식일은 그 기원이 모세에게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출애굽시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명하신 특별한 조치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구약 시대가 끝나면서 제 4 계명에 대한 의무는 중지되었으며 안식일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일, 혹은 일요일은 기독교회의 완전히 별개의 제도이다. 그것은 안식일이 아니며 안식일의 계승도 아니다. 주일은 어떤 식으로도 제 4 계명에 의존하지 않는다. 즉 안식일과 주일 사이에는 절대적 단절이 있다. 재세례파와 이들의 차이는 전자가 주일을 지키는 것조차 부정하는 데 반해 후자는 그것은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 견해를 지지하는 영국 국교회 멤버들 사이에 있는 견해 차이는 주일의 권위의 최종적 원천에 관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것이 제 2세기 초반이나 기껏해야 제 일 세기 말엽에 고대 교회가 만든 제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또 어떤 이들은 주일 제도가 최소한 사도적 기원을 가진 것이거나 아니면 그리스도의 기록되지 않은 지시에 근거한 것이라 믿는다. 영국 국교회는 그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 견해를 고수하고 있다. 이 견해에 의하면 예배를 드리는 것이 주일의 중요한 순서이기는 하나 일차적으로 주일은 육체적 정신적 휴식과 레크레이션을 위해 주어진 것이다. 두 번째 견해는 흔히들 안식일주의(Sabbatarianism)라 부르는 입장이다. 이것은 제 4 계명이 문자적으로 복음 시대에도 전부 그대로 적용된다는 견해이다. 이 견해의 핵심적 주장은 제 4 계명이 단지 모세 율법의 한 부분일 뿐 아니라 십계명의 다른 요소들과 함께 창조의 규례(ordinance)라는 것이다. 안식교도들과 청교도들이 이 견해의 주창자들인데 그들에 의하면 안식일 제도는 단지 유대인들을 위한 제도가 아니며 신약 시대에 폐기된 것도 아니다. 주일을 성수하는 것은 보편적이고도 영속적인 의무이다. 사실상 안식일은 타락 이전에도 존재했다. 함께 두 번째 입장의 기본 노선에 동의하지만 안식교와 청교도들 사이에는 한 가지 차이가 있다. 그것은 전자가 제 7일이라는 요소까지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청교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 안식일이 제 7일에서 한 주의 첫 날로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제외하면 제 4 계명의 나머지 다른 부분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그들은 믿는다. 이 안식일주의 입장은 종교개혁 직후에 대두되어 17세기부터 19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영국 청교도들의 강력한 지지를 얻었다. 미국에서 안식일주의는 19세기까지 대부분의 주요 교단들이 흔들림없이 견지하는 신념이었으나 그 후부터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이 견해의 지지자들은 안식일을 합당히 지키는 방법이 온 종일을 공적 예배나 사적 경건을 위해 바치는 것이라 믿는다. 세째 견해는 제 4 계명의 모형적인 부분은 모두 폐지되었지만 그 실체는 아직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된다고 보는 입장인데 칼빈이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 주일 성수와 관련하여 더 고찰해야 할 사항들은 제 4 계명의 “안식”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아니면 영적으로 해석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청교도들은 그것을 영적이고 정신적으로만 아니라 육체적 차원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칼빈은 안식의 문자적 의미는 폐기되었고 영적 의미만 남았다고 주장했다. 이 점에 관한 한 현대의 개혁주의 신학자들과 복음주의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견해 차이가 존재한다. 또 한 가지 생각할 것은, 제 4 계명에 나오는 “이레에 하루”라는 원리와 이레 중 첫날이라는 요소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적 요소인가 아니면 실체적 요소인가? 마지막으로, 주일을 어떻게 성수해야 하는가? 주일에 운동이나 레크레이션을 즐기는 식으로 휴식을 취하는 것은 가한가? 특히 그것이 그리스도인들끼리 교제를 증진시키는 목적이라면 허용될 수 있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에 오직 종교적 활동이나 공적 사적 예배에만 집중해야 하는가? 먼저 교회사에서 이 문제들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시대 별로 살펴 보기로 하자. A. 초대와 중세 주일에 대한 신비화의 시작 초대 교인들이 한 주의 첫 날에 예배드리게 된 것은 그 날 위대한 구원의 사건들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즉 예수께서 그 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셔서 제자들과 교제하셨다는 사실, 그리고 성령이 오순절에 강림하셨다는 사실이 그것들이다. 저스틴 마터는 부활, 성령 강림 뿐 아니라 천지 창조도 한 주의 첫 날에 시작되었다고 지적함으로써 주일의 “삼관왕”적 영광을 주장했다. 오리겐도 만나가 엿새동안 내리다가 안식일에는 내리지 않았다는 것은 그것이 처음 나타난 것이 주일이었음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이미 구약에서 안식일은 주일보다 열등했음을 보여 준다는 것이었다. 로돌프(W. Rordorf)에 의하면, 안식일-일요일 신학의 기원은 콘스탄틴 대제(284?-337)가 일요일에 공적 휴식의 날의 지위를 부여한 데서 발견될 수 있다고 한다. 그가 일요일에 사람들이 직업상의 일을 계속 수행하는 것을 금지시켰다는 것이다. 중세의 견해 중세는 안식일을 율법주의적이고 미신적으로 지킨 시대였다. 빌헬름 토마스는 중세의 신학자들이 제 4 계명에 호소하여 복음을 율법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구원의 선물과 보증을 교회가 통제하는 율법적 제도로 바꾼 결과는 “안식일주의의 율법주의”였다는 것이다. 폴 주잇에 의하면, 유대적 안식일과 주일 사이의 유비를 위한 초석을 놓은 사람은 어거스틴이었는데 그러한 관점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신학을 지배해 왔다. 교리문답을 통한 교육의 목적으로 어거스틴이 십계명을 사랑의 이중 명령의 강해로 사용한 430년 경부터 제 4 계명은 그리스도인들의 윤리 의식의 일부로 영원히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중세가 진행됨에 따라 미신과 율법주의의 누룩은 주일의 신학을 더욱 더 깊이 잠식해 들어갔다. 제 8세기부터 10세기 사이 교회는 주일에 17가지의 축복이 임했다고 가르쳤다. 빛과 천사들의 창조, 홍해의 통과, 만나를 주심, 예수의 잉태, 출생과 세례, 가나의 혼인 잔치, 오천 명을 먹이심, 예루살렘 입성, 사도들의 임직, 밧모섬에서 요한이 계시를 받음, 심판주로서 그리스도의 재림, 역사의 마지막에 세상의 최종적 갱신 등이 그것들이다. 중세에 있어 이 전설적 일요일의 절정은 소위 “하늘로부터 온 편지”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된 편지의 내용은, 그가 “이전에 주신 명령대로” 주일에는 사람들이 모든 일을 금함으로써 그 날을 거룩하게 하라는 권면이었다. 사람들은 그 편지가 지상, 즉 예루살렘에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역사가들이 주후 788년에 일어났다고 기록하는 이 사건은 당시 골(Gaul)과 스페인 지방에 유포되어 있던 주일 이해를 반영한다. 중세에 있었던 주일에 관한 전설적 미신적 이야기들은 끝이 없다. “바울의 묵시록”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400년 이전에 작성되어 중세에 널리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 문서에 의하면 지옥에 있는 자들에 대한 형 집행이 주일에는 정지되었다. 또 9세기 아일랜드에는 주일에 가룟 유다가 천국을 방문하도록 형 집행 정지 처분을 받았다는 전설이 있었다. 또 어떤 전설에 의하면 주일에 이상한 새들이 나타났는데 그것들은 지옥에서 일시 풀려난 영혼들의 형상이라고 믿어졌다. 이러한 경건한 미신들은 쉽게 이교의 신화적 흐름과 결합되어 538년 오를레앙 대회에서 주일 신학으로 편입되었다. [프랑크족의 역사]에서 그레고리는 자주 “주의 날”(Dies Dominicus)을 언급하면서 주일을 범한 자들에게 임한 열 두 가지의 무서운 형벌적 기적을 소개했다. 그런데 그 기적들은 게르만 민담에서 발견되는 형벌적 기적들과 아주 흡사했다. 9-10세기 사이 아일랜드에서는 안식일이 토요일 저녁 기도로부터 시작해서 월요일 아침 기도 시간까지 이어졌다. 그 사이에는 글을 쓰거나, 여행을 시작하거나, 물건을 팔거나, 계약을 맺거나, 소송하거나, 재판하거나, 머리털이나 수염을 짜르거나, 씻거나 목욕하거나, 목적없이 뛰거나, 옥수수를 갈거나, 빵을 굽거나, 나무를 짜르거나, 집청소를 하거나, 소나 말이나 사람들에게 짐을 지우거나, 노예의 일을 하거나, 적절한 사유없이 자기가 사는 지역의 경계를 벗어나거나 할 수 없었다. 세르빌의 이시도레(570-636)는 육체 노동의 중지라는 측면에서 안식일과 주일 사이의 병행을 강조했고 789년 샬마뉴 대제는 칙령을 통해 일요일에 모든 노동을 금지했다. 이러한 현상은 주일과 안식일의 관계를 규명하여 이레에 한번씩 주일을 지키는 이유에 대한 답변을 주려는 시도의 결과이기는 했지만 어거스틴이 강조했던 주일의 영적 의미를 상실하는 결과를 낳았다. 주후 700년에서 750년 사이 [클레멘트의 재판](The Judgment of Clement)은 다음과 같이 판결하고 있다. “만일 누군가가 부주의로 주일에 일을 했다면, 그것이 목욕이든 면도든 아니면 머리를 감는 것이든, 그는 7일간 참회를 해야 한다. 만일 그 짓을 다시 했다면 40일간 참회해야 하며, 만일 그가 그 날을 멸시해서 그 짓을 하고 개과천선하지 않는다면 그는 유다처럼 카톨릭 교회에서 추방되어야 한다.” 주일 성수에 관한 한 14세기에 살았던 아빌라의 주교 토스타투스의 지침은 중세의 규정들을 특징지웠던 그 자의적이고 자질구레한 태도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거룩한 날들에 어떤 특별한 사당이나 성자에게로 여행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그 날 집으로 돌아온다면 그것은 범죄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견해 796년 아킬레자의 바울 (Paulinus of Aquileja)에 의해 소집된 대회는 안식일 명령은 육체적 노동의 중지라는 문자적 의미와, 범죄의 중지라는 영적 의미 양자를 모두 포함한다고 선언했다. 그리하여 신학적으로 알프릭(Aelfric, 955-1020)의 다음과 같은 입장이 중세를 풍미하게 되었다. “노예적인 일을 멀리하라. 즉 참으로 죄를 삼가라. 그것은 그것을 행하고 범하는 자들을 자주 노예 상태로 인도한다...‘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안식일을 영적으로 지킴으로써 우리 자신이 죄로부터 자유를 얻고 그 날이 우리 안에서 거룩해진다....” 이 가르침은 먼저 피터 롬바르드의 표현 속에서, 최종적으로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서 정경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중세의 안식일 신학은 다른 많은 것들처럼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에서 그 성숙하고 완성된 형태를 드러내게 된다. 아퀴나스는 자연법인 십계명의 보편적 특성을 볼 때 제 4 계명도 우리에게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 4 계명이 부분적으로는 의식법이요 부분적으로는 도덕법이라 보았다. 그것의 도덕적 측면은 “우리 생의 어떤 부분을 종교적인 일들을 행하는 데 바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일요일은 무엇보다도 공중 예배를 드리는 데 할애되어야 하는 날이었다. 그것의 의식법적 측면들은 첫째, 이 목적을 위해 제 7일이 지정된 것은 하나님이 창조를 그치고 쉬신 것의 암시라는 것, 둘째, 이 날뿐 아니라 한 주간 내내 우리는 모든 죄악된 행위를 멀리하여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쉼을 얻어야 한다는 것, 셋째, 그것은 우리가 언젠가 하늘 나라에서 하나님을 뵙게 될 때 발견하게 될 영원한 안식의 그림자라는 것이었다. 아퀴나스에 의하면, 일요일은 공예배의 날이므로 “노예적 노동”(opera servilia)은 금지되어야 했다. 그는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주일로 전환된 것은 사도 시대 교회의 결정이라 보았다. 어떤 학자들은 주일-안식일 문제에 관한 한 아퀴나스 이후에 추가된 새로운 것이 거의 없다고까지 주장한다. 후대 수 세기에 걸친 신학자들의 이론은 토마스 견해의 변주곡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퀴나스는 매 칠일에 가지는 부활의 신적 축제 교리를 전파했다. 이레에 하루는 하나님께 속한다는 원리 위에서 그는 고정된 시간을 하나님의 예배에 바치는 것이 자연법의 명령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예배의 시간과 빈도는 성문법인 제 4 계명에 의해 정해져야 한다고 가르쳤다. 루터의 견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종교개혁자들은 중세의 안식일주의에 대한 반발ㄹ로서 주일 신학을 수립했다. 루터는 1520년에 쓴 [선행에 관한 논문]에서 십계명을 강해하면서 제 4 계명의 첫 번째 관심은 예배이지만 그 계명은 예배보다 훨씬 많은 것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이 계명의 기초는 하나님이 천지 창조를 마치시고 쉬신 것이다. “그래서...우리는 엿새동안 하던 일을 쉰다. 이 안식일은 이제 일요일로 바뀌었다. 일요일은 안식일 (rest-day) 혹은 휴일(holiday), 혹은 거룩한 날(holy day)로 불리운다.” 이 부분만 놓고 보면 루터는 안식일을 창조의 규례로 여겨 주일과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인상을 준다. 이어서 루터는 일을 쉬는 데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육체적인 것이요 다른 하나는 영적인 것이기 때문에 제 4 계명도 두 가지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 안식의 이중적 의미를 포괄한다. 육체적 안식이 필요한 것은 신자들이 교회에 모여 미사를 드리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위함이다. 이 육체적 안식은 “옛날의 것으로서 표상(figure)”이다. "그러나”하고 루터는 어조를 바꾸면서 영적 안식의 측면이 보다 중요한 것이라 주장한다. “이제 진리가 성취되었기 때문에 모든 날이 거룩한 날들이며,..., 모든 날들이 일하는 날들”이라 선언함으로써 사실상 육체적 안식의 의미를 최소화한다. 영적인 안식은 하나님이 특별히 이 계명에서 의도하신 것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우리가 단지 우리의 노동과 사업을 쉴 뿐 아니라 한 걸음 나아가 하나님만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게 함으로써 어떤 것도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어서 루터는 많은 성구들의 인용을 통해, 영적인 안식은 자아에 대해 죽고 육신을 죽임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달성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루터의 안식일관은 이어서 살펴 보게 될 칼빈의 그것보다 더 과격하다. 그에 의하면, 일요일은 실제적 필요성을 가진 것으로서 교회가 정한 것이다. 이 점에서는 안식일이 주일로 전환되었다는 앞의 주장과 상충된다. 그것은 “불완전한 평신도들과 노동 계급”을 위한 배려, 즉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하기 위함이다. 즉 일요일 제도의 일차적 목적은 노동 계급에게 기독교의 진리를 배울 수 있는 기회 제공이라는 교육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제들과 성직자들은 매일같이 미사를 드리고 항상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있으므로 그들에게는 안식일이 따로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 된다. “현재로서 안식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기도하는 목적 외에는 필요하지 않으며 명령된 바도 아니다.” 육체적 안식 그 자체가 주일의 목적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1529년에 쓴 [대요리문답]에서 루터는 제 4 계명의 문자적 의미는 단지 구약의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함으로 그 외적 명령은 의식법에 속한 것임을 주장한다. “외적 준수라는 점에서 그 [제 4] 계명은 오직 유대인들만을 위해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계명은 그것의 문자적 의미에서 현재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구약의 다른 규례들처럼 전적으로 외적 문제이다. 그것들은 특정한 문화, 사람들, 시대, 장소들에 국한된 것들이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를 통해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었다.” 나아가 루터는 거의 10년 전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즉 주일 제도는 “지성적이고 학식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불필요하나 약하고 무지한 자들, 즉 노동 계급을 위한 것이다. 그들은 정기적인 육체적 휴식과 레크레이션의 시간이 필요하며 주일 외에는 예배를 위해 모일 시간과 기회가 없다. 주일이 노동 계급에게 휴식과 예배의 시간을 제공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이 사상은 칼빈에게 그대로 재현된다. 대요리문답과 같은 해에 씌인 소요리문답에서 루터는 제 4 계명의 의미를 오직 말씀 교육이라는 차원에서 발견한다. “제 4 계명의 의미가 무엇이뇨?” 하는 질문을 제기한 후 그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함으로 그의 말씀을 멸시하지 말고 그것을 거룩한 것으로 여기며 그것을 기꺼이 청종하고 배워야 한다.” 다소 엉뚱하게까지 보일 수 있지만 루터는 신약 시대 신자들에게 있어 제 4 계명이 특정한 날을 거룩하게 여기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단지 하나님 말씀을 거룩하게 여겨 그것을 듣고 배우는 데 그 의미가 있다고 해석했다. 날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존중이 제 4 계명의 현대적 의미라는 것이었다. 루터에게는 주일이 다른 날보다 특별히 더 거룩하다는 개념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매일이 거룩한 날임을 강조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로서 모든 날들을 거룩히 여겨 거룩한 일에만 몰두해야 한다. 그것은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것을 우리 마음과 우리 입술에 간직하는 것이다.” 한 날이 다른 날보다 나은 것도 아니며 예배는 매일 드려야 하는 것이므로 그 일을 행할 시간을 유대인들처럼 특정한 날에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터는 “최소한 이레에 하루”는 그 목적을 위해 할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여드레나 열흘 만에 하루를 예배에 할애하는 것은, 그가 보기에, 예배드리고 말씀 배우는 목적을 위해 불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러므로 “이레에 하루”라는 것은 7이라는 숫자 그 자체에 신비한 영적 신학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적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이라는 의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어떤 계산에서 꼭 7일이 그 최소한의 시간에 해당하는가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 어쨌든 최소한 칠일에 하루는 예배를 위해 모여야 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배드리기 위해 자주 모일 형편에 있지 못한 “대중들”을 위해서였다. 주일의 본질적 목적은 아직 어린 자들과 대중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므로 이 날들의 진정한 직분은 말씀의 사역의 직분이며 젊은이들과 가난한 무리들을 위한 것이다.” 그 목적을 위해 고대에 일요일이 지정되었는데 비록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고 교회나 사람들이 정한 것이기는 하나 루터는 우리가 그 날을 변경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그 이유는 종교적이기보다는 실제적인 것이었다. 안식일이 “통일적으로” 지켜져야 “불필요한 변화로 인한 무질서”가 야기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루터에게 있어서는 일요일 제도라는 것이 계시적 제도라기보다는 철저히 정치적이고 실용적인 것이었다. "질서“를 위한 주일 개념은 후일 칼빈에게 그대로 계승되었다. 또한 루터는 제 4 계명의 율법주의적인 적용을 반대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일 성수는 우발적이고 불가피한 일을 금지할 정도로 편협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종합적으로 볼 때, 주일의 일차적 의미가 기독교 진리, 즉 하나님의 말씀의 교육이라는 주장은 루터와 칼빈에게서 공통적이나 그 교육의 대상이 칼빈에게서는 그리스도인 일반이나 루터에게 있어서는 보다 특정적으로 약자와 빈민들, 그리고 젊은이들이라는 점은 양자의 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외적으로 루터가 안식일을 창조 질서로 인정하는듯한 인상을 주는 구절들이 있다. 1535년에 씌인 창세기 2:3절 주석이 그것이다. 거기서 루터는 하나님이 제 7일을 거룩하게 하셨다는 본문을 설명하면서 “그러므로 세상 시작 때부터 안식일은 하나님에 대한 예배를 위해 의도되었다”고 말한다. 다음의 발언은 분명 안식일에 대한 루터의 일반적 관점과 상충된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는 이 명령이 유효한 것으로 남기를 원하셨다. 이레째마다 그는 사람들이 그의 말씀 등 그가 세우신 예배 방식들로 분주하기를 원하셨다....이것이 안식일, 혹은 하나님의 안식이 의미하는 바이다. 즉 그 날에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우리는 기도와 믿음으로 그에게 말하는 것이다.” B. 칼빈의 안식일 신학 성화의 교리로서의 제 4 계명 칼빈은 [기독교 강요] 제 2권 8장에서 도덕법, 즉 십계명을 해설하는데 그 장 28-34항에서 그는 제 4 계명을 강해하면서 안식일 신학을 전개한다. 그는 자신의 안식일 신학의 대주제를 첫 문장부터 천명한다. “이 계명의 목적은 우리 자신의 성향들과 일들에 대해 죽음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묵상하고 그 분에 의해 제시된 방식으로 그 묵상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에게 있어 주일 성수의 본질은 자아를 죽이는 것(mortification)과 하나님 일의 묵상이다. “우리는 전적으로 안식함으로써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게 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지를 포기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부정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육신적 욕망들을 버려야 한다.” 칼빈에게 있어 주일을 올바로 지키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세상적 욕망들과 죄악된 행위들을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칼빈은 “성화는 우리 자신의 의지를 죽이는 데 있다”고 말하므로 칼빈의 안식일 신학은 성화 교리에 관련되어 있다. 실제로 칼빈은 안식일을 “성화의 상징”이라 묘사한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성화시키는 자”(sanctifier)가 되실 것(겔20:12)이라는 “약속의 표지”였다. 제 4 계명의 모형적 요소들 칼빈의 견해에 의하면, 제 4 계명에는 모형적(typical) 요소들이 있다. 그는 안식일 계명을 “예표”(figure)라고 부른 초대 교부들에게 동의했다. 그 분 자신이 진리이며 그 분의 임재로 모든 모형들이 사라진다. 그가 몸체이며 그의 출현으로 그림자는 뒤로 제쳐진다. 그는, 감히 말하건데, 안식일의 참된 성취이시다. 창세기 2:3 주석에서도 칼빈은 제 4 계명에 의식법적(ceremonial) 성격이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 점에서 그것은 십계명의 다른 아홉 계명들과 구별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율법에서 안식일에 관한 “새로운 명령”이 주어졌는데 그 새로운 요소는 유대인들에게만 일시적으로 적용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적 안식을 예표하는 율법적 의식으로서 그것의 진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밝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 4:9-10은, 칼빈에게 있어, 제 4 계명의 모형적 요소들이 폐기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결정적 본문들 중 하나이다. 그 구절에 근거하여 칼빈은 어떤 날들도 “그 자체로서 거룩한” 것은 아니며 날들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예배의 일부”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 반대로 생각하는 것은 그가 보기에 “양심에 올무를 놓는 것”이었다. 골로새서 2:16-17도 제 4 계명의 외적 모형적 요소가 폐기되었다는 칼빈의 주장의 가장 중요한 성경적 근거들 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아무든지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이나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로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런 것들은 장차 올 일들의 그림자이나 실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느니라.” 칼빈은 이 본문을 주석하면서 “옛날에 의식들(ceremonies)이 예표했던 것들의 실체들이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눈 앞에 제시되었다”고 해석했다. 먼저 칼빈은 제 4 계명에 나타난 문자적 안식이 의식법적 요소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즉 육체적 안식은 제 4 계명의 실재와는 무관한 요소였다. 칼빈이 제네바에서 주일 노동을 금지했던 것은 “원리” 때문이 아니라 실제적 필요 때문이었다. 즉 일요일 노동이 그 자체로서 악한 것이 아니라 “거룩한 학습과 묵상”을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는 일요일에 일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칼빈이 볼 때 노동이 주일을 더럽힌다는 생각은 일종의 미신적 “신비”였다. 그는 우리가 주일에 노동을 중지하는 것은 정부의 명령 때문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마치 특정한 날에 일하는 것이 불법적인 것처럼 날들을 지키지는 않는다. 우리가 존중을 표하는 것은 정부와 질서에 대해서이지 날들에 대해서가 아니다.” 제 4 계명의 첫 번째 실체: 영적 안식 제 4 계명에는 의식법적 요소들이 있다는 교부들과 견해에 동의함에도 불구하고 칼빈은 그들이 그 안에 담긴 진리를 전부 파악하지는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단지 진실의 절반만 건드렸다”는 것이었다. 칼빈의 관점에 의하면 십계명은 “영원히 남아 있을 규범”이었다. 그러므로 아무도 제 4 계명이 우리에게 불필요한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 되었다. 그 “표상들”(figures)이 계속 유효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들이 예표하던 진리가 살아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제 4 계명 안에 있는 “고대의 표상들”과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주신 영구적인 지침을 구분해야 했다. 그리스도가 오신 후 우리는 더 이상 “날”을 지키는 옛날의 “굴레”에 매여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식일 계명은 그 “실체”에 있어 그리스도인들에게 관련성을 가진 세 차원이 있다. 교부들은 보지 못하였으나 칼빈 자신은 간파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제 4 계명의 실체들 중 첫째는 “영적 안식”이었다. 일곱번째 날의 휴식을 통해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영적 안식” 을 제공하고자 하셨는데 그 영적 안식이야말로 안식일의 그림자 속에 감취어 있던 실체였다. 제 4 계명에 대한 칼빈의 이해에 있어 핵심인 “영적 안식”이란 ,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가 자신의 일들을 내려 놓음으로써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게 하는 것이었다. 안식일의 내적 실재인 “영적 안식”은, 다른 말로, “우리 자신의 모든 도모를 중지함으로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사역하시게 하고 우리는...그 분 안에서 쉬는 것”이었다. 칼빈은 “우리 자신의 일들”에 대해 철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우리가 자신의 일들에 대한 소망을 버리지 않는 한 참된 안식은 없다고 생각했다. 왜 그는 인간의 행위에 대해 그처럼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것은 우리가 오직 은혜로 믿음을 통하여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종교개혁적 교리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는가? 다시 말해 제 4 계명에 대한 그의 해석은 단지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라는 종교개혁의 모토에 대한 계속적 강조에 불과했는가? 여기서조차도 그는 로마 교회의 “공로” 사상을 반박하고자 했는가? 그랬을 수도 있다. 갈4:9-10의 안식일에 대해 주석하면서 그는 “성일들”을 “공로라는 마귀적 인식”과 연결시키는 로마교회에 대한 분노를 표현했다. 그러므로 칼빈이 “영적 안식”을 우리 자신의 일을 포기하는 것이라 말할 때 “우리 자신의 일”이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말하는 “율법의 행위들”을 지칭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것은 안식일에 대한 그의 신명기 설교를 볼 때 더 확실해진다. “만일 인간이 자기 자신의 힘으로 율법을 성취하는 것이 가능했더라면 그[하나님]는 그들에게 ‘일하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는 ‘쉬라!그리하여 하나님이 일하시게 하라’고 말했다. 한편, 창세기 주석에서 칼빈은 영적 안식을, “육신을 죽임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더 이상 자신을 위하여 살거나 자신의 성향에 몰두하거나 하지 않는” 것이라 정의했다. 이상을 종합해 볼 때, 칼빈에게 있어 영적 안식의 핵심은 자아를 죽이는 것과 자기 의에 대한 불신 및 하나님에 대한 전적 의존이라 말할 수 있다. 결국 제 4 계명을 설명하면서 칼빈은 자기 신학의 대주제인 자기 부정과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 율법의 핵심이라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는 셈이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모든 삶의 주된 부분을 형성하는 그것, 즉 우리 자신을 포기하고 더 이상 우리 자신의 성향들이나 이성이나 지혜를 따르지 않는 것을 생각지 않는다면 우리는 율법 전체를 범하는 셈이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셔야 하기 때문이다.” 신명기 설교에서 그는 그 점을 재확인해 준다. “영적 안식을 지키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신 것에 대한 모든 말씀은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에게 좋아 보이는 모든 것과 우리 본성이 갈망하는 모든 것을 행하기를 중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칼빈의 견해에 따르면, 육체적 무위(inactivity)를 포함한 안식일의 가장 엄격한 성수조차도 이 영적 안식의 요소가 없으면 허사다. “만일 우리의 정욕이 제어되지 않는다면, 또 우리 자신의 모든 생각들과 욕망들을 포기하기까지 함으로 하나님만이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리는 오직 그 분 안에 쉬기를 원한다고 엄숙히 선언할 정도가 되지 않는다면 모두 허사가 될 것이다.” 칼빈은 주일 에 묵상하는 일의 긴요성을 강조했다. 제 4 계명의 의도는 “단지 육체적 무위”를 격려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두말할 것 없이 하나님은 빈둥거리는 것과 게으름을 전혀 기뻐하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단지 노동을 중지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안식일 계명이 요구하는 것은 맹목적으로 일을 쉬는 것 이상의 것인데 그 중 하나는 묵상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칼빈은 여유와 일로부터의 자유를 통한 긴장의 이완(relaxation)이나 기분 전환 (refresh)같은 것을 게으름이나 태만과 거의 동일시한 듯하다. 주일은, 그의 표현을 따르면, “나태한 휴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예배와 묵상에 바쳐야 할 시간”이었다. 평일에도 그렇게 해야 하지만 특별히 우리는 주일에 “그의 창조와 세상 통치에 나타난 하나님의 정의, 지혜, 능력, 그리고 선하심을 묵상해야” 했다. 하나님이 천지 창조 후 쉬셨던 것은 휴식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우리로 그의 작품들을 명상하는 데 집중하도록 초청하시기 위함”이었다. 공적 예배: 제 4 계명의 두 번째 실체 칼빈에게 있어 안식일 계명의 두 번째 실체는 공예배와 묵상을 위한 날을 정기적으로 가지는 것이다. 안식일 제도를 통해 하나님은 “정기적인 날”을 주심으로 자기 백성들이 “모여 율법을 듣고 예배 의식을 거행하거나 최소한 특별히 그 날을 그 분의 하신 일들을 묵상하는데 드림으로 이러한 기억을 통해 경건의 훈련을 하게 하셨다.” 예배 의식에는 물론 성찬과 공적 기도가 포함되었다. 이것은 안식일 계명의 영구적이고 보편적인 측면에 속하므로 칼빈은 그것을 “옛날의 그림자들”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그것은 “영적 안식의 최고 최적의 표현”이었다. 그리하여 “어떤 점에서는” 그리스도인들도 유대인들처럼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예배와 종교 활동을 위한 날을 가지는 “이 목적을 위해 주일이 유대인의 안식일을 계승했다.” 이런 점에서 칼빈이 안식일과 주일의 관계를 연속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해야 할지 아니면 단속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해야 할지 애매하다. 외적 문자적 차원에서는 단속적이나 내적 영적 의미에서는 연속적으로 보았다는 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어쨌든 예배를 위한 특정한 날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는 그리스도인들도 구약 시대의 유대인들과 “동일한 필요”를 가진다고 그는 생각했다. 안식일 제도는 “우리의 매우 자상하신 아버지께서 유대인들의 필요 못지 않게 우리의 필요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셨다”는 증거였다. 당시 칼빈의 이러한 가르침을 따라 주일을 지키는 제네바 교회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날들을 지킨다”는 것은 유대주의의 잔재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그는 제네바가 날들을 지키는 것은 사실이나 그 동기가 다르다고 답변했다. 유대인들은 “영적 신비가 그것에 의해 상징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가장 경직적인 꼼꼼한 의식”으로 안식일을 지켰다. 그러나 제네바는 질서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으로 주일을 지켰다.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을 지키는 것은 “날들의 구별”이 아니라 “성도의 교제의 평화에 기여하는 합법적 선택”이라는 것이었다.. 칼빈이 주일마다 집회를 가진 이유는 신학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이고 교회적인 것이었다. “만일 정해진 날들이 없다면” 교회가 어떻게 모일 수 있느냐고 그는 반문했다. 교회 회집을 위해 한 날을 지정하는 것은 “질서와 품위”를 지키기 위한 것이며 만일 그것이 없다면 교회는 당장 혼란과 파멸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날들의 구분을 없애기 위해 매일 모이면 되지 않는가?” 하는 반론이 대두되었다. 이에 대해서도 칼빈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이라고 동의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시는 안식은 영속적인 것이므로,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충분한 열심이 있다면 일 주일에 하루만이 아니라 매일 아침 저녁으로 모든 사람들이 모여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더욱 더 성장해 가야 할 것이다.” 완전한 세계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매일 공예배를 드림으로써 “날들의 구분”을 제거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의 영적 열심도 부족한 데다 각자의 생활이 워낙 복잡하고 일이 바쁘다보니 공적 집회를 매일 가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이해하시는 하나님이 이레에 하루를 안식일로 할애하시고 그 날에는 모든 세상 일과 근심들을 쉬게 하심으로써 자기 백성들이 “저 거룩한 일” 즉 공예배와 사적 묵상, 그리고 “각자의 집에서 쉬는 일”에 자유로이 전념할 수 있게 하셨다. 그러므로 이레에 하루의 예배일 제도는 하나님이 인간의 연약성을 현실적으로 고려하시고 양보하신 결과였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천사의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 “우리가 하루만 그 분에게 할애하더라도 만족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레에 하루를 요구하신 것은 아주 합당한 처사였다. 왜냐하면 그는 나머지 엿새나 되는 날들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로 세상적 업무들을 처리할 수 있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겨우 이레에 하루를 하나님께 할애하는 것, 즉 “하나님의 뜻에 의해 우리에게 부과된 이 질서”를 과하다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칼빈의 논리였다. 칼빈은 기독교의 존재와 흥왕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공예배를 위해 모이는 열심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제 4 계명 강해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맺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일반적 교리를 특별히 고수해야 한다. 즉 우리 중에서 기독교가 사멸하거나 쇠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성스러운 집회들을 부지런히 가져야 하며 하나님의 예배를 진흥할 수 있는 외적 보조 수단들을 사용해야 한다.” “이레에 하루”의 원칙에 대한 칼빈의 입장 “칠일에 하루”의 리듬에 대한 칼빈의 입장은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바로 앞에서 우리는 칼빈이 이레에 하루 공적 예배일로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 우리에게 부과된 질서”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또 그는 이레에 하루를 예배와 종교 활동에 바쳐야 한다는 의미에서는 “주일이 안식일을 계승”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칼빈의 창세기 2:2-3절 주석에는 이레에 하루의 원리가 단지 유대인들을 위한 일시적 제도가 아니라 창조의 규례로 언급된 부분들이 있다. 예를 들면, “매 칠일째가 매일의 묵상에 부족한 것을 보충하기 위한 목적으로 특별히 선택되었다.” 하나님은 “매 이레 째를 안식에 바치심으로 그 자신의 모범이 영원한 규칙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은 마치 그가 사람들의 나태를 기뻐하시는 것처럼, 이레마다 그저 공휴일을 지키라고 명하신 것이 아니다.” “그것[안식일]이 태초부터 인간들에게 명해졌으므로 세상 끝날까지 계속되는 것이 옳다”등이 그것이다. 그러나[강요]의 다른 부분에서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느 요일에 예배드리기 위해 모이는가 하는 것은 안식일 계명의 실체를 준수하는 데 있어 절대적인 요소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신명기 설교에서도 예배드리는 요일 문제와 시간의 문제는 인간의 판단에 일임되었다고 주장한다. “어느 경우든 일 주일 중 어느 날을 택하는 이 질서는, 그것이 하루든 이틀이든,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맡겨져야 한다.” 예배 요일의 문제는 아디아포라에 속하지만 일단 정한 이상은 교회의 질서를 위해 일사불란하게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는 예배드리는 날을 꼭 일주일마다 잡을 필요도 없다고 주장한다. 또 나는 “칠”이라는 숫자에도 매달리지 않으며 교회들을 그 수자에 얽어매지 않는다. 그리고 미신화되지만 않는다면 어떤 교회들이 집회를 위해 다른 엄숙한 날들을 지키더라도 나는 그들을 정죄하지 않을 것이다. 로마 교회는 제 4 계명 안에 있는 유일한 의식법적 요소가 “일곱번째 날의 지정”이라 이해한다고 칼빈은 지적한다. “이레에 하루를 고정한 것”은 도덕법적 요소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칼빈이 볼 때는 그것도 역시 의식법의 부분에 속한 것이었다. 제 7일을 제 1일로 바꾼 것은 안식일에 대한 유대교적 견해에 반발해서 “단지 날을 바꾼 것”에 불과했다. 그러는 중에 로마 교회는 은연 중에 유대인들과 같은 인식, 즉 일요일이 모종의 “신비” 혹은 “거룩함”을 지닌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칼빈이 볼 때 그것은 “미신”이었다. 그에게는 어떤 날도 그 자체로서 성스럽거나 특별한 날은 없었다. 그런데 로마 교회는 이 “조잡하고 육신적인 안식일적 미신”에 있어 유대인들보다 “세배”는 더하다고 칼빈은 비난했다. 그러므로 칼빈은 굳이 이레에 하루가 아니더라도 교회의 질서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며칠에 한번을 모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만일 그들이 규율과 선한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존중하기만 한다면” 그러하다는 것이었다. 공예배로 모이는 요일 문제와 관련하여 칼빈이 줄기차게 관심을 가졌던 유일한 사항은 “예절, 질서, 그리고 교회의 평화”였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 7일 대신 제 1일이 “옛 사람들”에 의해 지정되었다. 그러므로 칼빈은 안식일로부터 주일로의 전환이 이중의 목적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하나는 유대인들의 “안식일”에 대한 미신을 제거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교회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로마 카톨릭의 율법주의적 주일 성수에 대한 반발로 칼빈은 공예배 날을 정하는 데 있어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강조했다. 그러나 주일마다의 회집에 대해 이의를 가진 재세례파의 어떤 “소란스러운 영혼들”에 대항해서는 주일 제도를 변호했다. 다소 모순적으로 보이는 칼빈의 견해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엄격히 말해서 칼빈은 그리스도인들이 꼭 일요일에 예배드려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로마 교회처럼 특정한 날에 의미를 부여하는 소위 “미신화”를 그는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러므로 날들의 미신적 성수는 절대 피해야 한다.” 그러므로 칼빈은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요일들에 정기적으로 질서있게 모일 수만 있다면 그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초대 교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의미를 신중하게 고려하여 일요일에 모이기로 결정했다고 그는 판단한다. 또한 그는 그것을 계속 유지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반대가 없었다. 즉 예배일을 다른 날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을 한 적이 있다는 어떤 학자들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 그는 일요일 예배에 대해 아무 이의가 없었다. 그러나 원리적으로 꼭 그 날이어야만 한다거나 일요일 예배가 하나님의 계시에 의한 것이라 생각한 것은 아니다. 그가 현대 성경학자들만큼 “주의 날”이라는 표현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거나 깊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지적은 정당하다. 그러나 칼빈은 최소한 일주일에 하루는 예배와 묵상을 위해 떼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칼빈이 팔일에 한번이나 열흘을 공적 사적 예배일로 할애해도 좋다고 생각했다는 생각은 근거가 없다. 그러나 꼭 “이레에 하루” 라는 리듬과 일요일이라는 요일 문제가 신적 기원이나 계시성을 가진 것은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다. 노동자들을 위한 고려 칼빈은 제 4 계명의 세 번째 실체를 육체 노동자들을 위한 인도주의적 고려라고 해석한다. 안식일 제도를 통해 하나님은 “종들과 남의 수하에 있는 자들”에게 “노고로부터 약간의 휴식”을 취하면서 긴장을 풀 수 있는 날을 하루 제공하고자 하셨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비의 원칙에 관계”된 것이니만치 안식일 계명은 영적 차원 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제 4 계명은 십계명의 첫 번째 돌판에 포함된 것이므로 일차적으로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봉사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종들에게 주어진 안식은, 칼빈의 표현에 의하면, “단지 부속물”(accessory)이거나 “부대적 유익”(extrinsic advantage)에 불과했다. 사회경제적 위상과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한 몸으로 엮어져” 있고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으므로 다른 인간을 압제하거나 착취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의 침해라고 그는 생각했다. “하나님의 형상이 모든 인간들 안에 새겨져 있다. 그러므로 내가 어떤 이를 압제할 때 나는 단지 나 [자신]의 육체를 멸시할 뿐 아니라 내 힘을 다해 하나님의 형상을 침해하고 있는 셈이다.” 주일 성수 방법 안식일에 대한 칼빈의 진보적인 이론들을 볼 때 우리는 주일 성수 방법에 대해서도 칼빈이 아주 자유롭고 느슨한 가르침을 주었을 것이라 예상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라는 점으로 인해 독자들은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그의 주일 성수 방법론은 사실상 안식일주의자들의 그것과 대동소이하다. 그리하여 그의 입장은 “실제적 안식일주의”(practical Sabbatarianism)라 불리운다. 말하자면 안식일 신학의 이론에 있어서 그는 아주 진보적이나 적용에 있어서는 보수적이라는 것이다. 먼저 칼빈은 올바른 주일성수의 방법이 주일 하루 종일을 종교적 활동에 바치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우리 주님이 어떻게 이 날을 오직 그의 말씀을 듣고 공기도를 올리고 신앙을 고백하고 성례를 거행하는 데만 사용할 것을 요구하시는가를 생각해 보라!” 공예배를 드리고 남는 시간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칼빈은 주장했다. “주일이 제정된 것은 단지 설교를 들으러 오는 것 뿐 아니라 남는 모든 시간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바치게 하기 위함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공적이고 사적인 예배를 드릴 충분한 시간을 제공하기 위해 칼빈은 주일에 일상적 업무를 중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아가서 그는 주일에 레크레이션이나 스포츠를 하는 것에 강하게 반대했다. “만일 우리가 주일을 기분내고 게임하는 데 사용한다면 그게 하나님을 제대로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건 하나님을 놀리는 것이요 그의 이름을 아주 욕되게 하는 일입니다.” 이쯤되면 칼빈의 안식일관은 실제적으로 청교도들의 그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 복수종교 사회에서는 적용할 수 없는 제안이겠으나 칼빈은 주일에 상점들이 문을 닫아야 하며 여행은 제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가 주일을 온전히 성수하면 그것이 우리가 한 주간 내내 하나님의 일들을 묵상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되지만 만일 우리가 그것을 범하면 우리는 한 주간 내내 “짐승처럼 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칼빈 견해의 요약과 질문 요컨데, 칼빈은 제 4 계명의 거의 모든 요소들을 의식법적, 모형적 요소로 간주한다. “7일째”라는 요소, “이레에 하루”의 리듬, 문자적 휴식이 모두 그리스도 오신 이후 폐기된 예표들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제 4 계명의 “실재들”, 즉 제 4 계명이 현대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지니는 의미는 영적 안식의 차원이다. 영적 안식은 신자들이 자기 자신의 일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일들을 묵상하는 것이며, 죄악된 성향과 욕망과 일들을 중지함으로 하나님이 그들 안에서 역사하시게 하는 것이다. 즉 자기 부인, 육체와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음, 구원과 성화를 위해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 등이 칼빈이 본 제 4 계명의 본질이었다. 영적 안식은 공적 예배와 사적 묵상으로 표현되었으며, 그 부수적인 요소로 제 4 계명에는 육체 노동을 하는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위한 보너스, 즉 문자적 휴식의 요소가 포함되었다. 칼빈의 안식일 신학에 대해 제기할 수 있는 질문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칼빈은 제 4 계명을 영적으로 해석해서 그것을 성화 교리와 연결시키지만 과연 그것이 얼마나 타당성있는 해석인가? 성화와 자기 부인이란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를 아우르는 명제이다. 반면 십계명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여러 의무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구절들이다. 그런데 열 가지 명령들 중 하나에 불과한 제 4 계명이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를 대변할 수 있는가? 둘째, 문자적 안식, 즉 육체적, 정신적 안식의 요소를 제 4 계명의 실체에서 배제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셋째, 칼빈은 공예배의 의무가 제 4 계명의 실체들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작 그 계명의 표현 속에는 그것에 대한 언급은 전무하다. 그렇다면 어떤 근거에서, 혹은 어떤 해석의 과정을 통해 칼빈은 그러한 주장에 이르게 되었는가? C. 칼빈 이후의 안식일 논쟁 주로 [기독교 강요]를 통해 우리가 이상에서 고찰한 칼빈의 안식일관은 대륙 쪽 개혁교회들의 신앙고백인 하이델베르그 교리 문답에 많이 반영되었다. 그것의 제 103번째 문은 “제 사 계명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하는 것인데 그것에 대한 답은 루터 이후 안식일의 의미를 말씀 교육에 두던 전통과 예배에 대한 칼빈의 강조를 계승하고 있다. “첫째, 복음 사역과 그것을 위한 교육이 계속되는 것인데 특별히 안식의 기쁜 날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집회에 정규적으로 참석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바를 배우며 성례에 참여하며 공적으로 기도하며 빈민들을 위한 기독교적 헌물을 드린다.”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이 가르치는 제 4 계명의 두 번째 의미도 어거스틴, 아퀴나스, 루터, 칼빈으로 이어지는 안식일관의 핵심인 영적 안식에 관한 것이다. “둘째, 내 평생의 매일 나는 나의 악한 길로부터 안식함으로 주님이 그의 영을 통해 내 안에서 일하시게 하여 이 생에서 이미 영원한 안식을 시작한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칼빈은 제 4 계명의 세 번째 의미를 노동자들을 위한 육체적 안식에서 찾았으나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은 그 대신 빈민을 위한 구제 헌금이라는 자비의 행위를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두 방안은 모두 가난하고 고달픈 하층민들을 위한 배려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청교도 안식일 종교개혁자들의 견해의 확산은 제네바의 실제보다는 칼빈의 저술을 통해 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기독교인의 자유에 대한 가르침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어떤 지역에서는 주일 성수의 모습이 방종에 가깝게 되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일세는 주일 노동을 금지하는 로마 카톨릭에 대한 반발로 예배 후의 노동을 명령하다시피 했다. 그리하여 영국에서는 다른 날들보다 주일에 하나님이 더 모욕을 당하시고 마귀가 영광을 받는다는 불평까지 들리게 되었다. 이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것이 청교도주의의 안식일관이다. 청교도 안식일 신학의 창시자요 완성자라 할 수 있는 니콜라스 바운드의 [안식일 교리]라는 안식일 신학의 결정판격인 저서의 핵심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안식일은 창조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따라서 제 4 계명은 창조의 규례(creation ordinance)이다. 즉 그것은 자연적이고 영속적이며 도덕적인 법으로 모든 사람에게 구속력을 가진다. 그것은 단지 구약의 이스라엘에게만 적용되는 의식법이 아니다. 주일은 교회가 만든 실용적 규정이 아니라 모세의 십계명 중 제 4계명에 직접 근거한 것이다. 4 계명은 천지 창조에까지 기원을 추적할 수 있으므로 오늘 우리는 “유대인들만큼이나 정밀하게 안식을 지켜야 한다.” 바운드는 어떤 계명이 도덕적인 동시에 의식적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인간이 인간인 동시에 짐승일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 바운드 이후 청교도들은 제 4 계명에서 어떤 그림자나 상징적 요소의 존재를 부정했다. 즉 제 4 계명은 제 7일이라는 요소만 제외하고 액면 그대로 현대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바운드는 주일을 범하는 것이 만악의 근원이라 보았다. 주일에 대한 불신실은 반항적 자녀들, 불순종하는 종들, 바람피우는 아내들 등 가정과 직장의 타락을 초래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말로, 바운드는 제 4 계명이 십계명 중 핵심적인 계명이라 보았다. “그것을 준행하는 것에 모든 다른 것들의 준행이 달려 있으며 그것을 소홀히하면 종교 전체를 소홀히 하게 된다”고 그는 주장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왜 단지 안식일에 나무를 했다는 이유로 사람을 사형에 처할 정도로 심한 벌을 주셨던가 하는 질문에 대해 바운드는 칼빈의 에스겔서 20장 주석과 이사야서 58장 주석을 인용해서 대답했다. 그 이유는 안식일 계명에 “하나님께 대한 모든 봉사가 망라”되기 때문이었다. “내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완전히 떠나는 것과 동일시되었기 때문에 안식일을 범한 과실은 아주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는 것이다. 바운드는 안식일이 제 7일에서 첫째 날로 전환된 것이 결코 초대 교회의 자의적 결정의 결과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것은 신적 권위에 근거한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에게서 나와서 그의 사도들을 통해 전달된 것이었다. 한 주의 첫 날은 다른 날들과 구별되며 모든 다른 날들보다 우월한 날이었다. 이처럼 날에도 구별이 있다는 주장은 칼빈의 견해와 정면으로 대립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단지 교회에 편하다고 해서 어떤 다른 날로 그것을 대치할 수는 없었다. 바운드의 해석에 의하면, 제 4 계명이 명하는 안식은 문자적이며 육체적 안식이었다. 제 4 계명의 안식을 단지 영적 안식으로 이해한 칼빈과 대조적으로 그는 4계명의 안식을 죄악으로부터의 구속적 안식이나 영생으로 이해하기를 거부했다. 그것은 일상의 업무와 유희를 중지하는 것으로 그 날은 농부들도 심지어 파종 때나 추수 때라 하더라도 일하지 말아야 한다고 바운드는 주장했다. 안식일에 사람들은 시장이나 상점에 출입하지 말아야 하며 거기에는 왕에서 하인에 이르기까지 예외가 있을 수 없었다. 또한 이사야 58장에 근거하여, 바운드는 안식일에는 “정직한 레크레이션이나 합법적 즐거움”조차도 삼가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는 레크레이션이 “우리가 받은 소명의 일에서 우리를 진보시키기 위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그것이 먹고 마시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라 보았다. 왜냐하면 레크레이션은 “단지 즐거움을 위한 것인데 인간은 그것 없이도 그럭저럭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레크레이션을 금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예배를 위한 수단이므로 그러한 활동의 중지가 필요하다고 그는 보았다. 그리하여 그는 주일에 테니스, 펜싱, 볼링 등은 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운드는 주일 온 종일을 하나님께 바쳐야 할 의무를 강조했다. “하루의 한 조각”만 하나님을 섬기는 데 바치는 것을 그는 아간이 여리고의 전리품 일부를 훔친 것에 비유했다. 주일 전체가 주님의 것이므로 아침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24시간이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져야 했다. 바운드의 이러한 주일관이 가장 분명하게 표현된 것이 바로 1640년대에 작성된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의 안식일 조항이었다.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보다 85년 뒤에 작성된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21장, 7-8항에 의하면 청교도들은 안식일을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있었다. 자연법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위해 적정한 비율의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통해 모든 시대에 걸친 모든 인간들에게 적극적이고 도덕적이며 영구적인 명령으로 특별히 이레 중 하루를 안식일로 지정하셔서 거룩히 지키게 하셨다. 그 날은 세상 시작으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까지는 한 주의 마지막 날이었는데 그리스도의 부활로부터는 한 주의 첫째 날로 바뀌었다. 성경에서 그것은 주의 날로 불리우며 세상 끝날까지 그리스도인의 안식일로 계속된다. 이어서 이 신앙고백은 주일을 성수하는 구체적 방법을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 인간이 지킬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주일 성수 지침일 것이다. 이 안식일은 다음과 같이 지킬 때 주님께 대해 거룩히 지켜진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적절히 준비하고 자신의 일상사를 미리 정돈한 후 거룩한 안식을 종일토록 지켜 자신들의 세상적 업무들과 레크 레이션에 대한 생각들과 말들과 일들을 멀리할 뿐 아니라, 공사간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과 필수적인 일들 및 자비의 의무에 속하는 일들에 종일토록 몰두하는 것이다. 일견에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의 안식일관은 적어도 [강요]나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에 나타난 안식일 신학과 아주 대조적이다. 같은 개혁주의자 신앙고백들 사이에 나타나기 시작한 이러한 상이한 안식일관은 그 후 수백년 간 계속된다. 돌트 대회 안식일에 대한 청교도들의 견해는 점차 대륙으로 전파되었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다소 느슨한 주일 성수의 관행을 가지고 있던 화란 교회들이 1580년대 이후 점점 더 그 영향권 하에 들어 갔다. 그 결과 화란 교회 내에서 안식일에 대한 견해의 차이로 인한 갈등이 야기되었다. 1612년 찌릭찌 (Zierikzee)의 설교자인 우데만 (Udemans)은 청교도들에 의해 깊은 영향을 받은 안식일 신학을 발전시켰다. 그를 지지한 자는 1613년 미델버그의 설교자가 되었던 틸링크 (Teelinck)였다. 그러나 반대자도 있었으니 그는 1611년부터 1615년까지 미델버그의 설교자로 있었던 고마루스(Gomarus)였다. 고마루스는 안식일에 대해 훨씬 개방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우데만스는 자기 교회 장로인 보센베르기우스 (Vossenbergius)와 함께 그 문제를 돌트 대회로 가져 갔다. 돌트 대회의 결정은 제 4 계명이 부분적으로 도덕법이며 부분적으로는 의식법(partim morale, partim cerimonale)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틸링크는 자신의 견해 때문에 동료들로부터 어려움을 당했다. 1627년에 그는 Noodwendigh Vertoogh라는 제목의 다른 책을 출판하여 자기 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적 상태를 개탄하면서 청교도적 관점을 제시했다. 한편 그동안 그로닝엔의 교수가 된 고마루스는 1628년에 [안식일에 대한 견해와 기원의 연구](Investigatio sententiae et originis sabbati)라는 제목으로 반대 견해를 담은 책을 출판했다. 그 책의 요지는 첫째, 안식일은 창조 때에 제정되지 않았고 신 광야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실 때 제정하셨다. 둘째,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을 지키는 것은 제 4 계명 때문이 아니라 교회의 선택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고마루스의 이러한 견해에 대해 왈레이우스(Walaeus), 리베(Rivet), 아메시우스(Amesius) 등이 차례로 그에 대한 반박을 출판했다. 왈레이우스의 [제 4 계명론](Dissertatio de quarto praecepto)에 의하면 안식일은 천지 창조 시에 하나님이 제정하신 것이었고 제 칠일에서 첫째 날로의 변화는 사도들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리베도 역시 출애굽기 주석에서 안식일은 천지 창조 시에 제정되었으며 첫째 날로의 변화는 교회의 결정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우리는 안식일 논쟁과 관련된 핵심 쟁점이 안식일 제도가 언제 제정된 것인가 하는 질문에 관련되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즉 그것은 창조의 규례인가 아니면 유대인들을 위한 일시적 제도인가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 여하에 따라 주일 성수 방법도 큰 영향을 받는다. 보에티우스(Voetius)와 콕세이우스(Cocceius)의 투쟁 돌트 이후 한 세대가 지난 1655년 콕세이우스는 히브리서를 강해하면서 돌트 대회의 결정과 달리 제 4 계명은 전적으로 의식법이라고 가르쳤다. 고마루스처럼 안식일은 에덴에서가 아니라 광야에서 제정되었으며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식으로든 이 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 점에서 콕세이우스를 지지한 신학자는 라이덴(Leyden)의 동료인 헤이다누스 (Heidanus)였고 그를 신랄히 비판한 동료 학자들은 유트레히트 대학의 교수들인 호른베크(Hornbe다)와 에세니우스(Essenius)였다. 나다나엘 존슨 (Nathanael Johnson)은 파샤시우스(Paschasius)라는 익명으로 [안식일에 대한 소시니안적 견해와 제 4 계명] (Sententia Sociniana de sabbato et quarto praecepto)이라는 책을 써서 콕세이우스와 헤이다누스가 소시니안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공격했다. 그리하여 안식일 문제로 인해 교회 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여기서 이 논쟁의 자세한 내용들을 다룰 수는 없다. 단 이 문제가 최고 수준의 개혁주의 정통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간단한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아 대논쟁이 야기될 정도로 까다로운 쟁점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것을 확인할 뿐이다. 이 때 이 논쟁에 자극을 받은 기스베르 보에티우스 (Gysbert Voetius)는 제 4 계명에 대한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안식일과 축제] (De Sabbato et Festis)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제 4 계명에 대한 다양한 설명들의 목록을 작성하면서 보에티우스는 논쟁들을 개혁주의자들과 다른 사람들 사이의 논쟁, 그리고 개혁주의자들 사이의 논쟁 두 종류로 구분했다. 첫 번째 카테고리 안에 그는 여덟 가지 종류의 논쟁을 포함시켰다. 1)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제도적 안식일이 있어야만 한다는 주장은 재세례파와 소시니안주의자들에 대항하여, 2) 유대인들의 제 칠일 안식일은 변화되고 폐기되었다는 주장은 유대인들에 대항하여, 3) 제 칠일에서 첫째 날로의 변화는 “교회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에 의한 것이었다는 주장은 로마 교회에 대항하여, 4) 주의 날은 “전통”이 아니라 “성경”을 따른 것이라는 주장은 로마 교회에 대항하여, 5) 안식일은 자비의 행위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유대인들에 대항하여, 6) 단지 “노예적인 일”(opera servilia) 뿐 아니라 공사간의 예배를 방해하는 모든 일이 금지된다는 주장은 로마 교회에 대항하여, 7) 경건의 연습(exercitia pietatis)에 의해 단지 주일의 일부만 성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은 로마 교회에 대항하여, 8) 주일이 그 자체로서 다른 날들보다 더 거룩한 것은 아니라거나 그것은 구약의 안식일처럼 표지일 뿐이라는 주장은 스콜라주의자들에 대항한 것이다. 두 번째 카테고리, 즉 개혁 교회 내의 논란에서 보에티우스는 네 가지를 구분했다. 1) 한 주일 중 하루가 하나님에 대한 봉사에 성별되었다는 사실이 “신적 법”에 근거했는가 아니면 교회 제도에 근거했는가? 2) 한 주일의 첫날이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안식일로 성별되었는가? 보에티우스에 따르면 이 문제에 대해 다시 네 가지 입장이 있었다. a. 주일을 지키는 것은 관습의 문제이지 “신적 법”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입장. b. 이 제도가 (질서를 위해) 교회의 결정에 기원한 것인가 혹은 그것이 “하나님의 특별한 법과 명령”에 따른 것인가 하는 질문은 별개로 하고 주일을 지키는 것은 사도 교회 혹은 사도들에 의해 명령된 것이라는 입장(행20:7; 고전16:12). c. 사도들의 모범은 “신적 법”이며 우리에게 구속력이 있다는 입장(보에티우스 자신은 이 견해를 선호하여 교회 직분자들, 즉 장로들, 집사들, 교사들을 뽑는 것에서 그 유비를 찾았다). d. (아메시우스에 의하면) 요한복음 20장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이 그 날을 제정하셨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러나 보에티우스 자신은 이 주장이 명백하다고 생각지 않았다). 3. 안식일이 제정된 것은 천지 창조 때였는가 아니면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실 때였는가? (보에티우스는 전자를 주장하나 고마루스는 그것을 부정했다). 4. 이스라엘의 안식일이 모형적 (즉, 의식법적) 성격을 소유하고 있는가? (어떤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그것이 전적으로 의식법이라 주장했고 어떤 이들은 제 4 계명이 부분적으로 의식법이며 부분적으로는 도덕법(aliquid ceremoniale et aliquid morale)이라고 주장했으나 보에티우스는 안식일이 전적으로 의식법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나아가서 보에티우스는 다른 “질문들”을 더 다루는데 우리가 다음의 점들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 설령 제 칠일로부터 첫째 날로의 전환이 교회의 결정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신적 안식일을 지킬 의무는 여전히 남아 있다. 2) 보에티우스는 특별히 주일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라는 사실을 부정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이 은혜의 행위를 기념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식일에 대한 보에티우스의 견해는 결국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의 그것과 유사했다. 그는 제 4 계명이 부분적으로 도덕법이며 부분적으로 의식법이라는 사실을 부정했다. 그가 보기에 그것은 전적으로 도덕법이었다. 그것은 바로 영국 청교도들의 전형적 안식일관이었다. D. 현대의 안식일 논쟁 개혁교회 국제 기구의 연구 호주 개혁교회 (The Reformed Churches of Australia)는 내부적으로 안식일과 주일 문제에 대해 오랜 논란 끝에 1968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개혁주의 에큐메니칼 대회 (Reforemd Ecumenical Synod)에 다음과 같은 제안을 올렸다. “제 4 계명의 연구를 위해 RES가 위원회를 선임하여 그 문제와 관련된 모든 주석적, 교리적, 목회적 측면들을 검토하게 함으로 다양한 개혁주의 전통들 사이에 합의를 위한 기반을 제공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이 요청에 대한 응답으로 RES는 다음의 사실을 인정했다. 1. 주일 성수는 기독교회에 중차대한 문제이다. 2. 제 4 계명과 주일 성수와의 관계는 많은 나라 교회들에서 관심사가 되었다. 3. 제 4 계명의 해석 문제는 많은 관련된 복잡한 문제들을 야기하는데 그것은 RES의 회원 교회들의 공통된 관심을 요구한다. 대회는 위원회를 구성하여 4년간 이 문제를 연구하여 차기 대회에서 보고하게 결정했다. 1968년의 대회에 의해 지명된 위원회는 1972년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RES에 다수와 소수 보고서 두 개를 제출했다. 다수 보고서는 이렇게 보고했다. “안식일 문제에 관해서 개혁주의 전통 안에도 다양한 견해들이 존재해 왔으며 지금도 그러합니다.” 소수 보고서도 이렇게 적고 있었다. “종교개혁 이래로 다른 신학적 입장들이...개혁주의 교회들 안에 존재해 왔으며 그러한 상이점들은 각 시대에 작성된 신조들 속에 표현되고 있습니다.” 다수설과 소수설 양자의 차이를 낳은 중심되는 문제는 역시 안식일과 주일 성수가 창조 규례인가 하는 것이었다. 자문 위원회도 이 점에서 양쪽으로 갈리었다. 결과적으로 “다양한 개혁주의 전통들 사이에 합의의 기반을 제공”하는 데 실패한 것임이 분명해졌다. 난처한 상황에 직면한 RES는 문제 전체를 대회 임원들에게 맡겨 처리하기로 했는데 임원들은 논의 끝에 대대적인 연구위원회를 새로이 임명할 것을 대회에 추천했다. 그리하여 다시 새로운 연구 위원들이 임명되어 4년 간에 걸친 연구에 들어갔다. 그러나 4년 간의 연구 결과 위원들은 다시 의견의 일치에 실패하고 다수설과 소수설의 두 보고서를 대회에 제출했다. 다수 보고서 다수 견해는 먼저 주일 성수와 관련된 최대의 위험은 다양한 개혁주의 교회들 사이의 상이한 안식일 주일 전통보다도 전 세계에 걸친 세속화의 물결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RES가 다음의 결의안들을 채택해 줄 것을 권고했다. 첫째, 세속화의 노도에 대항하여 주일의 즐거운 성수를 수호해야 한다. 둘째, RES가 인정해야 하는 것은, 개혁교회들의 고백적 기초를 형성하는 개혁주의 신조들은 통일성 안의 다양성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즉 개혁주의 공동체들은 안식일과 주일에 대한 성경 원리들을 상이하게 이해하고 지키고 있다. 셋째, 안식일과 주일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이다. 넷째, 우리는 계속해서 주일을 안식과 예배와 축하의 날로 지켜야 한다. 이어서 다수설은 회원 교회들이 주일 성수하는 것을 돕기 위해 다음의 목회적 지침들을 제시했다. 첫째는 안식의 원리였다. 다수설은 이것을 근본적으로 믿음의 문제로 보았다. 나아가서 다수설은 칼빈이 주장한 바, 영적 의미에서의 안식이 주일 속에 내포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죄의 짐을 덜어 주신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가 영의 안식과 소생을 맛보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신과 자신의 일에 대한 모든 신뢰를 포기하고 죄책과 죄의 능력으로부터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 안에 쉴 때 우리는 주일을 올바로 지킨다 할 수 있다고 그들은 선언했다. 그 뿐 아니라 다수설은 그리스도의 구원은 영과 육을 망라하는 전인의 구속이라는 성경적 관점에 따라 이 구속의 표지로서의 안식이 인간의 영적 육적 필요들에 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식일과 주일 사이에는 연속성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내포하는 것은 주일 성수가 육체적 안식, 즉 우리의 매일의 노고로부터의 놓임이라는 요소로 특징지워진다는 점이었다. 주일은 구약 시대의 안식일과 같이 죄의 저주로부터의 최종적 구원에 대한 보증인데 그 저주는 아직도 우리의 일에 따라다니는 좌절들을 포함했다. 마지막으로 그 설은 주일이 전인과 온 피조물들의 궁극적 재창조에 대한 종말론적 표지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이러한 원리적 선언 위에서 다수설은 구체적 주일 성수 방법을 제시했다. 먼저, 주일에는 우리의 일과를 제쳐 두어야 한다. 즉 제 4 계명의 안식의 명령은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했다. 그것은 (1) 우리가 자신의 죄악된 일들을 포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한다는 공적 고백이요 간증이며 (2) 일상사로부터 우리 자신들을 해방시켜 하나님의 사역들에 보다 온전히 참여하고 그것들을 기뻐하는 수단이다. 주일의 신성함이 광범위하게 무시당하는 이 세속화된 사회에서, 그리고 점점 더 부와 세상적 성공의 추구에 정신을 빼앗겨 가고 있는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주일 업무와 일을 중단함으로 주님의 소수파로서 손해를 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예배의 의무였다. 안식일의 휴식은 (비록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부적절한 것은 아니나) 게으름이나 나태로 표현되어서는 안 된다. 주일은 우선적으로 개인이나 가족의 날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에 속한 것이다. 다수설은 교회와 개개 신자들의 생존이 주일 예배라는 사도적 패턴의 존속에 달려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이유 때문에 사업, 레크레이션, 혹은 다른 어떤 활동들도 주일 예배를 방해하는 것은 거부해야 한다고 믿어졌다. 셋째, 기쁨의 중요성이다. 지루하고 피곤하며 엄격한 안식일 습관을 지지하는 성경은 없다고 다수설은 강조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을 즐거운 축제일로 지켰다.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영광스러운 사건을 축하하는 날은 기뻐하고 노래하며 하나님의 은혜의 샘에서 영혼이 소생하는 날이다. “우리는 주일을 비참한 무위도식의 날로 바꾸어 버리는 규칙들과 제약들을 경계해야 한다.” 다수설은 아직도 주일을 유대 바리세인들의 안식일로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한 엄격주의는 분명 안식일과 주일의 연속성에 대한 그릇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그들은 못박았다. 새 언약의 “보다 큰 영광”에 의해 도입된 급진적 변화에 대한 적절한 인식이 없어 그러한 오해를 한다는 것이었다. 주일은 의식법적 규례들의 굴레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고 선언되었다. 마지막은 선행의 실천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인의 자유 안에서 주일을 지킬 때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영육간의 복지에 대한 관심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일에 행해지는 자비의 행위에 우선적인 지위를 주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안식일에 치유와 구원의 행위들에 의해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를 우리에게 가르친 분의 구속의 은혜를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 선행들 중 가장 적합한 것들은 병자와 약자들 심방, 우는 자들의 위로, 빈민 구제, 그리고 복음 전도였다. 소수 보고서 소수 견해는 먼저 구약의 십계명이 여전히 신약 교회에도 유권적인가 하는 질문을 제기하면서 그것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천명했다. 십계명의 두 번째 돌판(제 5계명-10계명)이 신약에서 반복적으로 일종의 윤리의 요약판 기능을 하고 있지만 제 4 계명은 아무데서도 언급되지 않기 때문에 십계명이 기독교 윤리의 원천으로 무시되어서는 안 되지만 그것의 의미가 과대평가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소수 의견이 두 번째로 정리한 내용은 구약의 안식일 계명의 요점에 관한 것이었다. “하나님이 이 날을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그가 예배를 위해 그것을 따로 떼어 두셨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신명기28:9-11; 고후 4:23 이하 및 겔46:1 이하 등의 본문으로부터 분명히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이미 광야 시절 이후로 이 “안식의 날”은 동시에 “공적 예배”를 위한 날이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셋째, 소수설은 주일과 안식일의 단절성을 강조했다. 현재로서 제 4 계명과 주일 사이에 연관이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그들은 “직접적” 연관은 없다고 답했다. 양자 사이에는 기껏해야 간접적 연관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들은 주일을 안식일이라 부르는 것이 부당하며 안식일과 주일은 완전히 별개의 것이라 답변했다. 안식일은 창조 사역과 출애굽에 근거한 것이나 주일은 한 주의 첫 날로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한 것이었다. 일요일은 공중 회집의 날이며 그 날 일상적 노동을 금지하라는 것은 신약 본문에 근거를 찾을 수 없는 명령이었다. 신약 성경에 주일에는 일하지 말라는 명령이 한 군데도 없지만 “모이기를 소홀히하지 말라”(히10:25)는 명령은 있다는 것이었다. 소수파는, 주일에 어떤 종류의 레크레이션이나 스포츠를 허용하는 것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다수설과는 달리, 수 세기동안 일요일이 레저 시간이 되어 온 것은 인류에게 커다란 축복이었다고 보았다. 비록 “신적 명령”은 아니지만 일요일의 안식은 “신적 선물”이었다는 것이다. 다수설과 소수설 사이의 공통점은 주일을 공중 예배의 날로 이해한다는 점이었다. 즉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하는 날로서의 주일의 의미에 대해서는 양자의 견해가 일치되었다. 한편 양자 사이의 중요한 차이는 안식일과 주일의 연속성과 단절성에 대한 것이었다. 다수설은 연속성을 강조했고 소수설은 불연속성을 강조했다. 전자는 안식일이 우리에게도 관련이 된다고 생각했고 후자는 그것이 신약 시대의 성도들에게는 상관이 없는 계명이라 믿었다. 다수설은 주일에 문자적으로 일을 중지하고 육체적으로 휴식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소수설은 주일의 노동 중지는 성경적 근거가 없는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소수설이 주일에 노동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들도 주일의 안식을 하나님의 “선물”로 이해했다. 단지 주일에 일을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계명이나 명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그것을 정죄할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복음주의 신학자들의 연구 1970년대 초 캠브리지의 틴데일 하우스에서 연구하던 박사 과정 학생들과 박사 후 과정 신학자들 10여명은 후일 세계의 복음주의 신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들이 되었는데 이들이 안식일과 주일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공동 연구를 시작했다. 이들은 각각 역할을 분담해서 자기 전공대로 혹자는 신학적 접근, 혹자는 성경적 접근, 혹자는 역사적 접근을 시도했다. 성경적 접근은 다시 복음서, 서신서, 사도행전, 구약으로 나뉘어졌고 역사적 접근은 초대, 중세, 종교개혁 시대, 그리고 현대로 나뉘어 시도되었다. 신학 각 분야의 탁월한 학자들이 동원된 이 연구의 결과는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의 신약 교수 칼슨(D.A. Carson)에 의해 [안식일에서 주일로]라는 제목의 책으로 편집, 출판되었다. 그 책의 종합적 결론은 제 4 계명에 나타난 안식일과 신약의 주일 사이의 불연속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안식일과 주일은 별개의 것으로 주일에 육체적으로 안식해야 한다는 것은 계시적인 사항이 아님을 강조했다. 그들이 주일과 관련하여 인정한 요소는 그리스도가 부활한 그 날 기독교 공동체가 함께 예배드려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 방대한 연구의 총요약과 결론 집필의 책임을 맡은 신약학자 링컨은 신약 성경에는 주일에 일하지 말아야 한다는 언급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신약 성경 뿐 아니라 제 2 세기 문헌에도 주일에 육체적으로 안식했다는 언급은 발견되지 않는다고 그는 지적한다. 신약에 세 번 언급되는 “안식 후 첫날”에 관한 본문에는 육체적 안식에 대한 암시가 전혀 없으며 당시 아직도 유대적 안식일을 온전히 지키고 있던 유대파 기독교인들이 안식일 다음날을 다시 안식일처럼 지키느라 쉰다거나 안식일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옮기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사도행전 20:7에 나타난 안식 후 첫 날의 행습은 정규 일과가 종료된 후 단지 하루의 일부에 관해 언급하고 있을 뿐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 후에는 하나님께서 이레의 첫 날을 안식일로 지정하셨다는 웨스트민스터식 이해는 적어도 신약 성경에서는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링컨은 교회사적 연구를 시도한 보캄의 역사적 고찰에 근거해서 속사도 시대에 안식 후 첫 날이 종종 유대인들의 제 7일에 비유되었으나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옮겨졌으므로 일요일을 문자적 휴식의 날로 지켜야 한다는 신학, 즉 안식일 전이 신학( Sabbath transferrence theology)의 명백한 근거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 반면 오히려 게으름과 무위(inactivity)로서의 안식일의 문자적 준수를 반대하는 교부들의 글은 자주 발견된다고 지적했다(참조, Justin, Dial. 12:3; Iraenaeus, Epideixis 96; Ps. -Ignatius, Magn. 9:2). 주일 노동을 금지한 최초의 입법은 콘스탄틴 황제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입법에도 불구하고 주일에 노동하지 않도록 만든 것은 교부들이 아니라 중세의 산물임에 분명하다고 보캄은 주장한다. 말하자면, 처음에는 자유로이 예배드릴 수 있기 위해 주일에는 일을 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간주되었던 것이,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리고 콘스탄틴의 칙령 영향도 있고 해서, 7세기 경이 되면 종일토록 노예적인 일을 삼가야 한다는 의무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보캄은 안식일 전이의 신학, 즉 주일이 안식일에 비견될 수 있으며 제 4 계명의 요구 사항들이 주일 성수로 전환되었다는 주장은 주일 예배를 위한 안식의 사상에 신학적 이유를 제공하고 성경적 근거에서 그것을 의무화하기 위한 시도의 결과였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 어거스틴이 기독교 윤리의 근거로 십계명의 지속적인 유효성과 중심적인 위치를 인정함으로써 토마스 아퀴나스가 안식일 전이 신학을 전면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길을 닦았고, 아퀴나스의 견해는 후대 청교도 안식일주의와 19세기 영국 안식일주의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지적한다. 이와 유사한 식의 사고가 기독교 집단에 널리 퍼져 있다고 지적하면서 링컨은 그 근본적 접근과 전제들에 있어 잘못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자연법 사상이다. 안식일이 자연법의 일부이므로 주일 성수는 특별 계시의 도움 없이도 인간 이성만으로 발견할 수 있는 도덕적 계명이라는 것이다. 아퀴나스는 예배를 위해 정기적으로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자연법의 요구라고 주장했다. 장키우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레에 하루를 공적 예배에 바치는 것은 자연이 가르치는 바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의 문제점은, 자연법이 그 존재를 위해 하나님에게 의존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그 법에 대한 지식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둘째, 자연법에 근거한 논증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은 자연법이 십계명으로 요약될 수 있다는 신념이다. 안식일주의 신학은 항상 십계명에 호소해 왔으나 링컨은 자연법과 계시된 도덕법 양자의 요약으로서 십계명의 중심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도들의 가르침 안에 그의 도덕적 성격을 보다 온전히 드러내셨다고 주장한다. 또 십계명 속에 표현된 하나님의 뜻은 부분적이고 역사적 제약을 받기 때문에 오직 그것이 신약에 의해 재확인되는 경우에만 구속력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십계명의 다른 주된 부분들은 그런 식으로 재확인되고 있으나 제 4 계명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그 전체로서 구속력을 가지는 도덕법은 아니다. 십계명 속에 “의식법적인 것이나 모형적인 것은 전혀 없으며 따라서 폐기된 것도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바운드같은 안식일주의자들은 제 7일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이유를 제시하지 못 했다. 십계명 전체가 도덕법이므로 제 4 계명도 영구적 구속력을 가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기 주장에 일관성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제 7일 안식교 신자가 되는 것이라고 링컨은 못박는다. 셋째, 제 4 계명과 관련한 의식법과 도덕법의 구분이다. 제 7일 안식교 신자가 되는 것을 피하면서도 안식일 전이 신학을 고수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제 4 계명의 의식법적 측면은 “제 7일”이라는 요소이며, 그 도덕법적 측면은 “이레에 하루”의 원리로서 그 날에는 모든 “노예적 일”을 삼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속사도 시대에 발전된 의식법과 도덕법의 구분은 율법에 대한 신약의 태도를 정당하게 평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체로서의 율법에 대한 연속성과 비연속성의 상호 작용라는 관점에서 요약될 수 있다. 거기서 결정적인 요소는 모세 법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의 새로운 표현에 대해 가지는 관계이며 그의 죽음과 부활에 의해 일어난 새로운 상황이다. 만일 예루살렘 공의회의 사도들이 제 4 계명과 관련해 어떤 식으로든 도덕법과 의식법의 구분을 주장했더라면 그것의 구속력있는 도덕법적 성격에 대해서 언급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도덕법과 의식법 구분만으로는 안식일 전이의 신학을 확립하기에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한편, 이 연구는 주일 예배의 규범성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 “주의 날”이라는 표현이 결정적 단서라 본다. 루터나 칼빈 같은 종교개혁가들은 요한계시록 1:10에 나오는 “주의 날”이라는 표현의 의미를 과소평가했다는 것이다. 안식 후 첫날에 대해 “주의 날”이라는 타이틀이 주어졌다는 것은 그것이 단지 편리와 실용성보다 훨씬 더 큰 중요성을 가진 문제임을 시사한다는 것이 이 연구에 참여한 학자들의 판단이다. 이 어구는 최소한 요한의 교회들의 관습에 있어 전례가 이미 확립되었으며 요한이 그것에 동의했음을 보여 준다. 그리하여 주일 예배의 경우, 신약 성경에 반복되는 패턴이 나타나며, 계1:10에서 보는 대로, 그 패턴은 확고해졌다. 그리하여 이 연구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짓는다. “주일 예배의 관습은 단지 고대성의 권위를 지닌 것이기 때문에 추천할만한 것일 뿐 아니라 정경적 권위의 표를 지니는 것이라 주장할 수 있다.” 폴 주잇의 [주의 날] 풀러 신학교의 조직신학 교수로 있던 폴 주잇은 70년대에 쓴 [주의 날]이라는 연구서에서 바른 주일 성수법을 믿음으로 자기 일을 쉬는 것이라 주장하여 제 4 계명의 문자적 안식의 개념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에 대한 신뢰를 버리고 구원과 생존을 위해 그리스도만을 의지한다는 의미에서의 안식이지 이런저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율법적 금지의 의미에서의 안식은 아니라고 그는 주장했다. 오히려 그는 주일이 기쁨의 날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저런 금기 사항과 금지에 얽매여 단지 지루하고 할일 없는 날로서의 율법주의적 안식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뻐하고 축하하는 주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또 주일은 예배의 날이어야 한다는 점을 주일의 본질적 핵심으로 제시했다. 주의 날에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서로 서로 그리고 부활의 주와 교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든 날을 같게 보는 종교개혁가들과는 달리 쥬잇은 주일의 특수성을 인정했다. 그는 자기 저서의 주제를 “소망 속의 성취”(fulfillment in hope)라는 말로 정리하면서 제 4 계명의 안식 가운데는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성취된 부분이 있지만 아직 종말적 완성을 기다리는 부분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그는 종말의 완전한 안식의 예표로서 주일의 문자적 안식이 아직도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주일의 육체적 안식이 아직도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되어야 할 제 4 계명의 실체적 요소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는 앞에서 소개한 카슨이나 링컨을 비롯한 복음주의 신학자들과 차이가 있다. 한편, 웨스터민스터 신학교의 조직 신학 교수 개핀은 자기가 섬기는 학교의 설립 목적에 충실히 부응하여 60년대부터 줄기차게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의 안식일관을 옹호하는 글들을 발표해 왔다. 그의 저서 [칼빈과 안식일]에서 그는 칼빈의 안식일 신학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또 80년대에 쓴 논문에서도 그는 히브리서 3-4장을 근거로 아직 성취되지 않은 안식의 측면을 강조하면서 종말적 미래에 완성될 안식의 예표로 매주 첫 날을 그리스도인의 안식일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 E. 신약시대의 안식일과 주일 이해 아래에서는 주로 안식일과 주일을 언급하는 신약성경의 본문들과 함께 2세기의 기독교 문헌들을 참고하여 초기 그리스도 교회의 주일 이해를 탐구하고자 한다. 2세기의 기독교 문헌들을 참고하는 것은 그것들 안에 주일 준수에 대한 사도시대의 생각과 자세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안식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정리하여 안식일에 대한 신약성경의 관점을 제시할 것이다. 이어서 ‘주간의 첫 날’ 또는 ‘주의 날’이라는 표현이 분명하게 등장하는 사도행전 20:7, 고린도전서 16:2, 요한 계시록 1:10의 의미를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할 것이다. 그리고 2세기의 기독교 문헌들을 참고하여 ‘주의 날’의 성격을 밝히고 주의 날과 안식일의 관계를 설명할 것이다. 신약성경에 나타난 안식일 안식일 제도와 규정들을 여러 부분에서 상세하게 제시하는 구약성경과는 달리 신약성경에는 안식일에 관한 언급이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사복음서에서 안식일은 예수께서 바리새인들과 논쟁을 벌이는 맥락에서 나타나며, 사도행전에서는 주로 바울 사도가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는 맥락에서 등장한다. 예수님은 갈릴리와 유대지역에서 유대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으므로 당시 유대인의 중요한 종교적 관례인 안식일을 지키셨다. 바울을 포함한 사도들도 이방 지역의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 안식일 규례를 존중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과 사도들의 그런 행동이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따라야 할 규범은 아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구원의 새 시대가 도래한 것이 사실이나, 부활과 승천, 특별히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옛시대와 새시대가 공존하는 구원사의 과도기였다. 따라서 이 시기에 예수님은 율법에 근거한 유대교의 기존 질서와 체제를 존중하셨던 것이다. 또 오순절 성령 강림과 함께 교회의 시대가 시작되었으나 사도들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새시대의 의미를 충분하게 이해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상당 기간동안 예루살렘 성전과 율법 중심의 유대교의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안식일은 예수님과 그의 사역을 통해 성취되었다. 사도들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 새시대의 도래와 그 의미를 깨닫게 됨으로써 문자적인 유대교의 안식일 준수에서 벗어나 주일을 준수하게 되었다. 이런 사실은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과 바울 서신에 나타난 말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예수님과 안식일 예수님은 안식일 문제로 제자들을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막 2:27). 안식일은 사람들에게 부담과 고통을 주는 날이 아니라 그들이 즐거움을 누리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선물이라는 것이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안식일을 대하는 바리새인들의 의식의 전환을 촉구하신다. 안식일을 절대화하여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관점을 버리고, 사람의 즐거움과 안식을 위해서 안식일을 제정하신 하나님의 관점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안식일에 예수님은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신 후 자신을 비난하는 유대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당당하게 응대하신다(요 5:17). 창조 사역 후 일곱째 날에 쉬셨던 하나님은 인간들이 하나님의 안식에 함께 참여하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죄로 인해 그들은 그 안식을 누릴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담의 타락 이후 자신의 본래 목적을 이루시려고 계속 일하신다. 하나님의 보냄을 받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도 진정한 안식을 이루기 위하여 일하신다.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가 누워 있는 것은 더 이상 세상에 안식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님은 진정한 안식이 없는 세상에 오셔서 죽음과 고난을 이기시고 안식을 이루신다.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것은 그가 종말에 진정한 안식을 가져오는 분임을 극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다. 예수께서 안식일을 피하여 다른 날 병자들을 고쳐주셨다면 사람들의 비난이나 충돌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안식일에 병 고치는 일을 고집하신 것은 안식일의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안식일의 의미는 회복과 메시야 시대라는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친 일은 메시야적 안식일, 즉 구약적 안식의 완성이 세상에 도래하였다는 것을 보여 주는 행동이다. 그러므로 어느 날 보다 안식일은 예수께서 병자들을 고치는데 합당한 날이었다. 요컨대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자나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신 것은 안식일 계명을 어긴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드러내고 성취하신 메시야적 구원 행동이었던 것이다. 안식일과 관련해서 복음서가 가르쳐 주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것이다(마 12:8; 막 2:28; 눅 6:5).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예수님은 안식일에 대해 성부 하나님과 같은 절대적 권한을 가지고 계신다. 예수님은 안식일을 성취하심으로써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이 제7일로서의 안식일을 더 이상 문자적으로 지키지 않게 만드셨다. 그는 안식일 폐지나 주의 날 제정을 직접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러나 폴 주엣(Paul K. Jewett)이 옳게 지적하는 대로, ‘기독교 사회를 특징 지워주고 기독교를 유대교로부터 구별하게 만든 안식일 성수에 대한 자유는 예수님이 자기를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주장하신 바로 그 자유에 근거를 둔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 안식일의 주인인 예수님을 안식일의 적용과 초월을 결정하실 수 있는 ‘주님’으로 인식하였다. 그 결과 그들은 예수님의 권위에 의지해서 일곱 번째 날인 ‘안식일’을 첫 번째 날인 ‘주의 날’로 대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울과 안식일 사도 바울은 안식일에 관해 거의 거론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골로새서 2:16에서만 안식일을 언급할 뿐이다. 안식일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갈라디아서 4:10과 로마서 14:5도 안식일에 관한 사도 바울의 관점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본문들이다. 갈라디아서 4:10에서 사도는 갈라디아의 이방인 성도들이 ‘날들과 달들과 절기들과 해들’을 지키는 것을 크게 우려한다. 이 본문에서 바울은 안식일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먼저 열거한 ‘날들’이라는 표현은 유대인들의 안식일과 속죄일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갈라디아의 이방인 성도들은 유대주의자들의 주장에 굴복하여 안식일과 월삭,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희년 등에 관한 규례를 지키기 시작하였다. 사도는 그런 행위를 약하고 천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종노릇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4:9). 안식일 준수를 이방인 신자들에게 부과하려는 시도는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바울 당시에 많은 유대인 크리스천들은 예수를 믿고 난 뒤에도 안식일을 포함한 유대인의 절기들을 계속해서 준수하였다. 사도는 구원과 관계없이 자신들의 관습의 일부로 안식일과 절기들을 지키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의롭다함을 얻는 조건으로 지키는 것은 단호하게 반대하였다. 로마서 14:5에서 바울 사도는 로마교회에서 일어난 소위 ‘약한 자들’과 ‘강한 자들’ 사이의 갈등을 언급하면서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라고 권고한다. 이것은 ‘날’을 지키는 것이 중대한 문제를 불러일으켰음을 보여준다. 강한 자들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긴 반면에 약한 자들은 어떤 날을 다른 날들보다 더 거룩하게 여겼다. 로마 교회에서 문제가 된 날은 다양한 축일들과 안식일을 포함한 유대교의 거룩한 날들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안식일 준수가 가장 큰 문제로 부각되었음에 분명하다. 안식일 준수는 음식법과 함께 1세기 유대교의 중요한 특징이었으며 초기 교회들 안에서 자주 갈등의 요인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갈 4:10; 골 2:16). 사도는 안식일을 다른 날보다 거룩하게 생각하여 계속 준수하는 약한 자들을 비판하거나 책망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강한 자들의 손을 들어주지도 않는다. 도리어 이 문제와 관련해서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라고 권면한다(14:5). 또 약한 자들은 강한 자들을 판단하지 말고 강한 자들은 약한 자들을 업신여기지 말라고 촉구한다(3, 10절).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것처럼 서로 받아야 한다(15:7). 이러한 권면은 바울 사도가 안식일(과 다른 거룩한 날들)의 준수를 개인의 양심 문제로 간주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15:1)는 진술은 사도 바울이 자신을 강한 자들과 동일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느 한 날을 다른 날보다 더 거룩하게 여기는 약한 자들의 자세보다 모든 날들을 같게 여기는 강한 자들의 자세가 그리스도 안에서 도래한 구원의 새로운 시대에 더 적절하다는 것이다. 안식일에 관한 바울 사도의 관점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본문은 골로새서 2:16이다. 여기서 그는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고 경고한다. 골로새 교회는 외부에서 들어온 거짓 교사들 때문에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본문은 그들이 먹고 마시는 것, 절기, 월삭, 안식일과 관련해서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폄론하려 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폄론하다는 말은 ‘판결을 내리다’라는 의미이다. 거짓 교사들은 안식일을 포함하여 먹고 마시는 것, 절기, 월삭에 관한 율법의 규정들을 지키는 것을 그리스도인의 필수적인 요소로 간주했음에 분명하다. 따라서 그들은 그런 규정들을 신앙이나 경건의 정도를 판단하는 척도로 사용하였다. 그런 규정들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경건한 신자가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던 것이다. 골로새서 2:17에서 사도는 안식일을 포함한 음식과 거룩한 날들에 관한 율법 규정들을 ‘장차 올 것들의 그림자’라고 말한다. 유대적 율법 규정들이 그림자라면 그것의 실체(=몸)는 그리스도이다. 그림자는 실체가 올 때까지만 존재하는 잠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과 성품을 알려주는 율법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지향한다. 이제 실체이신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으며, ‘장차 올 것들’도 그와 함께 도래하였다. 따라서 그림자에 속한 것들은 더 이상 그리스도인들을 판단하는 척도가 될 수 없다. 유대적인 율법 조항들에 근거해서 기독교 신앙과 경건을 판단하거나 그것을 대체하려는 것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이 본문은 음식과 거룩한 날들에 관한 모세 율법의 규정들이 신약 교회의 성도들에게 더 이상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것들은 ‘장차 올 것들의 그림자’이며 잠정적인 옛 시대에 속한 것이므로 새시대의 영구한 실체가 온 뒤에는 구속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안식일도 옛시대에 속한 것이라서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후에는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 예수를 믿고 난 뒤에도 자신의 신앙과 양심으로 판단하여 안식일을 계속 준수할 수는 있다. 그리스도 안에만 구원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성도가 개인의 경건을 위해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원사적으로 볼 때 안식일 준수는 잠정적인 옛시대에 속한 것이므로 새시대에는 적절하지 않다. 안식일 준수는 장차 올 것들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안식일에 누리는 안식은 그리스도가 주시는 영원한 안식의 그림자이다. 실체이신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에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자들은 더 이상 그림자를 실체인양 붙들어서는 안 된다. 신약성경에 나타난 ‘주의 날’(Lord's Day) 그러나 신약성경은 어디에서도 안식일을 버리고 ‘주의 날’을 기독교의 안식일이나 예배일로 지키라고 말하지 않는다. ‘주의 날’(kuriakh. h`me,ra)이라는 표현은 요한계시록 1:10에서만 나타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교회는 매우 이른 시기부터 안식일이 아닌 ‘주의 날’을 회중의 공적 예배일로 간주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1:10뿐 아니라 사도행전 20:7(‘안식 후 첫날’)과 고린도전서 16:2(‘매 주일 첫날’)에 반영되어 있다. 사도행전 20:7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안식 후 첫 날’에 공적인 예배를 드리기 위해 함께 모인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최초의 본문은 사도행전 20:7이다. 누가는 바울과 드로아의 그리스도인들이 ‘안식 후 첫날에’ 떡을 떼기 위하여 모였다고 기록한다. 개역성경에서 ‘안식 후 첫 날에’라고 번역한 헬라어 표현(evn th/| mia/| tw/n sabba,twn)은 ‘주간의 첫 날에’(the first day of the week)를 의미한다. 이 표현에서 복수 명사 ‘사바톤’(sabba,twn)은 ‘안식일들’이 아니라 ‘칠일로 이루어진 기간’(a period of seven days), 즉 ‘주간’(week)을 가리킨다. 바울 일행과 드로아의 그리스도인들이 주간의 첫날에 함께 모인 것은 떡을 떼기 위해서였다. 함께 모여서 떡을 떼는 일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이다. 그것은 잡히시던 날 밤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특별한 방식으로 떡을 떼시던 주님을 상기시킨다. 그뿐 아니라 안식 후 첫날 떡을 떼는 것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떡을 가지고 축사하신 후에 떼어 주시던 부활의 주님을 기리는 것이다(눅 24:30-31, 35). 주간의 첫 날에 드로아의 그리스도인들은 바울과 그의 일행들과 함께 교제의 식사를 갖고 ‘주의 만찬’을 시행하기 위해서 모였던 것이다. 본문에서 주간의 첫 날에 함께 모인 목적을 떡을 떼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힌 것은, 드로아 지역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주간의 첫 날에 이런 모임을 갖는 것이 관습처럼 이루어졌음을 암시한다. 물론 이 본문에는 주간의 첫 날을 공식적인 예배일로 지키라는 명령도 없고 주간의 첫 날의 모임을 모든 교회가 따라야 할 규범으로 제시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이 본문은 드로아 지역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주간의 첫 날’에 함께 모였으며, 그 날을 주의 만찬과 함께 공동식사를 갖기에 적절한 날로 간주하였음을 보여준다. 복음서에 기록된 부활 기사들은 ‘안식 후 첫 날’, 즉 ‘주간의 첫 날’에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반복해서 언급한다(마 28:1; 막 16:2, 9; 눅 24:1; 요 20:1). 드로아의 그리스도인들도 예수께서 부활하신 주간의 첫 날에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거행하면서 주의 부활을 기념하고 즐거워했던 것이다. 바울과 그의 일행이 드로아에서 이레 동안 머물면서 ‘주간의 첫날’까지 기다린 것을 보면, 그 날이 그리스도인들이 떡을 떼기 위해, 즉 주님을 기리면서 식사하기 위해 함께 모이는 날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린도전서 16:2 복음서들과 사도행전을 제외하고 ‘주간의 첫 날’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본문은 고린도전서 16:2이다. 이 본문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매 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 권고한다. ‘매 주일 첫 날’이라고 번역한 헬라어 표현(kata. mi,an sabba,tou)은 사도행전 20:7의 표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두 본문의 표현 모두 ‘주간의 첫 날’, 즉 일요일을 의미한다. 고린도전서 16:2에서 사도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주간의 첫날’에 공적인 모임을 가지라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교인들에게 가난한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해 기금을 저축 해두라고 말할 뿐이다. 그러나 바울 사도가 다른 날과 구별하여 ‘주간의 첫 날’을 구제 연보를 저축하기에 적절한 날로 언급한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고린도 교회가 주간의 첫 날에 정기적으로 예배를 위해 모였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본문에는 이 날을 예배일로 볼 수 있는 분명한 증거가 없다. 그러나 ‘주간의 첫 날’이라는 표현이 고린도전서 16:2와 사도행전 20:7을 제외하고는 복음서의 부활 기사에서만 나타나는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마 28:1; 막 16:2; 눅 24:1; 요 20:1, 19).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에게도 드로아의 그리스도인들과 마찬가지로 ‘주간의 첫 날’이 주님의 부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날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날에 그들이 함께 모여서 주님의 부활을 기억하고 그를 예배했으리라고 추정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들은 예배를 위해 함께 모이는 주간의 첫날에 일주일의 수입에서 일정한 양을 떼어 개인적으로 교회의 공동 금고에 맡겨둘 수 있었을 것이다. 사도가 구제 기금을 주간의 첫날에 저축하라고 권고한 것은 그 날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특별한 날이 되어있었음을 시사한다. 요한계시록 1:10 신약성경에서 ‘주의 날’이라는 표현이 나타나는 유일한 본문은 요한계시록 1:10이다. ‘주의 날’(kuriakh. h`me,ra)이라는 표현에서 ‘주의’라고 번역한 ‘퀴리아케’(kuriakh,)는 헬라어 형용사 ‘퀴리아코스’(kuriako,j)의 여성형이다. 이것은 신약성경에서 요한계시록 1:10 이외에는 고린도전서 11:20의 ‘주의 만찬’(kuriako.n dei/pnon)이라는 표현에만 나타나는 형용사이다. 이 단어의 의미는 ‘주님께 속한, 즉 부활하신 주님인 예수께 속한’이다. 따라서 ‘주의 날’은 문자적으로 부활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날을 뜻한다. 그러면 ‘주의 날’이란 어떤 날인가? 본문 자체의 증거가 불충분하더라도 우리는 이 날을 소아시아의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던 주간의 첫날, 즉 일요일로 보아야 한다. 이것은 2세기 초의 기독교 문헌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A.D. 100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디다케』(Didache)에는 “주님의 주일에 여러분은 함께 모여 떡을 떼고 감사드리십시오 그러나 여러분의 제물이 깨끗하게 되도록 여러분의 죄를 먼저 고백하십시오”라는 글귀가 나온다(4.1). 이 본문에 등장하는 ‘주님의 주일에’(kata. kuriakh.n kuri,ou)라는 표현에는 요한계시록 1:10의 특별한 형용사 ‘퀴리아케’가 포함되어있다. 여기서는 ‘날’을 뜻하는 명사 ‘헤메라’(h`me,ra)가 없이 ‘퀴리아케’만으로 ‘주의 날’을 가리킨다. 『디다케』에서 ‘주님의 주일’은 당시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떡을 떼고 감사하며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던 일요일을 가리킨다. 안디옥의 감독 이그나티우스(Ignatius)가 A.D. 100-118년 사이에 기록한 『마그네시아 사람들에게 보낸 서신』에서도 ‘날’을 뜻하는 명사 ‘헤메라’ 없이 형용사 ‘퀴리아케’만으로 ‘주의 날’을 표현한다. 고린도의 감독 디오니시우스(Dionysius)가 로마의 감독 소테르(Soter)에게 보낸 서신과 『바울 행전』과 같은 2세기 후반의 문헌들에서는 더욱 분명하게 ‘퀴리아케 헤메라’나 ‘퀴리아케’를 일요일을 가리키는데 사용한다. 『베드로 행전』에서는 안식일 다음 날, 즉 일요일을 ‘주의 날’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증거들은 요한계시록 1:10의 ‘주의 날’이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던 주간의 첫날, 즉 일요일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여러 기독교 문헌들에서 ‘주의 날’을 여성 형용사 ‘퀴리아케’만으로 나타낸 것은 당시에 ‘퀴리아케 헤메라’라는 표현이 일요일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technical term)로 널리 사용되었음을 전제한다. ‘날’을 뜻하는 명사 ‘헤메라’ 없이 형용사 ‘퀴리아케’라는 단어만 사용해도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도 요한은 왜 주간의 첫날을 ‘주의 날’이라고 불렀는가? 비록 그가 신학적인 이유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주의 날’이라는 표현 자체는 주간의 첫날과 그리스도의 주되심(lordship)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려준다. 주간의 첫 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자신의 주되심을 온 우주에 선포한 날이다. 따라서 1세기 말의 성도들은 이 날을 주의 날, 즉 주께 속한 날이라고 부를 수 있었던 것이다.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주의 날’에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디다케』는 주의 날에 성도들이 함께 모여 떡을 떼고 감사드리며 죄를 고백하는 일을 했음을 증언한다. 또 A.D. 155년경에 순교자 저스틴은 『변증론』 제1권에서 일요일에 성도들이 한 장소에 모여서 하나님의 창조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찬미했음을 시사한다. 이런 증거를 고려할 때 사도 요한 당시에도 소아시아 지역의 성도들이 매주간의 첫날에 함께 모여서 떡을 떼는 일과 예배의식을 거행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1세기 말이나 2세기 초의 교회들이 주의 날에 모여서 예배의식을 가진 것은 그런 관습이 사도시대에 이미 교회 안에 정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또 주간의 첫날을 ‘주의 날’이라고 부르던 사도시대의 관습도 자연스럽게 2세기의 교회들로 이어졌음에 분명하다. 안식일에서 주일로 하지만 신약성경에서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언제부터, 어떻게 안식일을 버리고 주간의 첫 날을 정기적인 예배일로 지키게 되었는지 말하지 않는다. 주간의 첫 날인 ‘주의 날’ 준수와 관련해서 아무런 규정도 제시하지 않는다. 심지어 주의 날을 지키라는 명령조차 신약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 이것은 지난 이천년 동안 일요일을 정기적인 예배일로 지켜온 그리스도 교회의 오랜 전통을 생각할 때 매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초기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일요일 예배와 관련해서 어떤 논쟁이나 논란이 있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방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이 주간의 첫날에 공적인 모임을 가진 사실이 사도행전에 기록되었으나(20:7) 예루살렘 교회가 이것을 문제삼았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 이런 사실은 바울 사도나 이방인 교회들이 일요일 예배를 먼저 시작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일요일 예배는 이방인 선교가 시작되기 전에 예루살렘과 유대지역의 교회 안에 이미 정립되어 있었을 것이다. 사도행전의 기록이 보여주는 대로, 예루살렘과 유대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도 안식일을 지키고 성전이나 회당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로서 그들은 사도들에게 가르침을 받고 떡을 떼기 위해 집에서도 모였다.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 그들은 자신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일부일 뿐 아니라 종말의 새로운 이스라엘에 속한 자들이라는 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들 가운데는 종말의 성령께서 역사하고 계셨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교제하며 예배하기 위해서 자신들만의 기독교적 모임이 필요했다. 그들은 상당한 기간동안에 유대인들로서 유대적 관습에 따라서 안식일 예배에 참석하면서 동시에 종말의 새 이스라엘로서 주간의 첫 날에 따로 모여서 예배와 교제하는 일을 계속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초기 예루살렘 교회가 언제부터 매일 모이던 모임을 일주일에 한 번 모이는 것으로 변경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성도들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매일 모이는 것이 힘들게 되었으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들은 일주일에 한번 안식일을 지키는 관례에 따라 자연스럽게 일주일에 한번 예배와 교제의 모임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예배와 교제의 날은 주간의 첫날, 곧 일요일이었음에 분명하다. 주간의 다른 날이 아니라 일요일을 택한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 때문이었다. 아마도 A.D. 40년대 후반 이방인 선교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무렵에는 일요일 예배가 유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을 것이다. 또 그런 관습은 이방인 선교와 함께 이방 지역으로 전파되었을 것이다. 초기 교회의 ‘주의 날’ 준수 사도 시대와 2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을 ‘주의 날’이라고 부르고 그 날을 정기적인 예배와 교제의 날로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신약성경에는 주의 날을 지키라는 명령이나 규정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예수와 안식일 그리고 주일』이라는 책에서 양용의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주간의 첫날에 함께 모였음을 알려주는 구절들인 사도행전 20:7과 고린도전서 16:2는 일요일 예배를 규정하거나 명령하지 않고 단지 시사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일요일을 예배일로 지키는 것은 성경적인 근거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신약성경에 일요일에 관한 명령이나 규정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시대와 2세기의 교회들이 일요일을 ‘주의 날’이라고 부르고 공식적인 예배일로 지켰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앞서 지적한 대로, 일요일 예배와 관련해서 어떤 논쟁이나 논란의 증거를 찾을 수 없다. 또 토요일을 지키던 에비온파를 제외하고는 일요일이 아닌 다른 날에 예배하는 집단이 있었다는 기록도 없다. 이런 사실은 일요일 예배가 초기 교회 안에서 매우 이른 시기에 하나의 관례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아마도 당시 이방 교회들도 일요일에 예배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잘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주일 준수를 따로 규정하거나 명령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바울 사도가 갈라디아서 4:10과 골로새서 2:17에서 유대인들의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 등을 지키는 것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어디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주간의 첫 날, 곧 주의 날을 예배일로 지키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는 드로아 교회의 성도들과 함께 주간의 첫 날에 모여서 강론을 하고 함께 떡을 떼는 일을 하였다(행 20:7).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는 주간의 첫 날에 예루살렘의 성도들을 위해 구제 기금을 저축하라고 권고하기도 하였다(고전 16:2). 이것은 그가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에 공식적인 예배 모임을 갖는 것을 인정했을 뿐 아니라 사도 자신이 친히 그 날을 지키기도 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 1:10에서 다른 설명 없이 ‘주의 날’을 언급한 것은 적어도 소아시아 교회들 사이에서 일요일을 주의 날이라고 부르는 것과 그 날에 예배를 드리는 것이 하나의 관례로 정착되었음을 알려준다. 사도행전 뿐 아니라 고린도전서와 요한계시록에서 주간의 첫날에 예배하는 일을 언급한 것은 매우 중요하다. 비록 신약성경에 일요일 예배에 관한 규정이나 명령이 없다고 하더라도, 사도시대에 다양한 지역의 교회들 사이에서 일요일 예배가 정착되어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도들과 교회가 매주 일요일을 예배일로 지킨 것을 교회의 편익 때문에 생겨난 전통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편익보다 훨씬 중요한 이유 때문에 일요일을 공적 예배일로 지키게 되었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있다. 그것은 초기 교회가 매우 이른 시기에 그 날을 ‘주의 날’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이다. ‘주의 날’이란 주님께 속한 날을 의미한다. 물론 주간의 모든 날이 다 주님께 속한 것이므로 어느 특정한 날을 따로 구별해서 그 날만 주님께 속한 날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교회가 주간의 첫 날, 곧 일요일을 ‘주님의 날’이라고 부른 것은 그 날이 바로 예수께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일어나서 온 우주를 향해 주되심을 선포하신 날이기 때문이다. 사복음서는 모두 분명하게 안식 후 첫날, 곧 주간의 첫날에 예수께서 부활하셨다고 진술한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요일은 주님이신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로 각인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일요일이 아닌 다른 날을 예수님의 부활의 날로 인정할 수 없었고, 또 일요일이 아닌 다른 날을 ‘주의 날’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주간의 첫날을 그의 부활을 기념하고 부활을 통해서 이루어진 구원을 즐거워하기에 가장 적절한 날로 삼았던 것이다. 주간의 첫날인 일요일에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일요일 예배가 모든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규범적인 지위를 갖게 된 원인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초기 기독교 문헌들이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은 일요일을 예수님의 부활과 관련시키고 있는 점이다. 예를 들어, A.D. 100-132년 경에 알렉산드리아에서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 『바나바서』(Letter of Barnabas) 15장에서 저자는 일요일을 여덟 번째 날이라고 부르면서 “우리도 기쁨으로 여덟 번째 날을 지킨다. 그 날에 예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고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으며 하늘로 올리우심을 받았다”고 말한다(8-9절). 결론적으로 말해서 일요일 예배는 사도시대에 시작된 것으로서, 사람들의 편의나 합의가 아니라, 주간의 첫 날에 일어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 근거를 두고 있다. A.D. 40년 후반부터는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과 유대 지역의 교회들이 일요일 예배를 시행했으며, 이방 선교가 시작된 이후에는 이방 지역 교회들이 이를 시행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요일 예배를 신약성경에서 직접 명령하지는 않더라도 정경적 권위의 표를 지닌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주님이 부활하신 주의 날에 함께 모여 공동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규정한 본 교단의 예배지침 제1장 제2조를 정경적 권위에 근거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 옳다. 주일과 안식일의 관계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때문에 주간의 첫날을 주의 날로 지켰다면 주의 날과 구약의 안식일의 관계는 무엇인가? 청교도 전통에 영향을 받은 한국 장로교회는 두 날 사이에 강한 연속성이 있다고 보고 주의 날(주일)을 ‘기독교의 안식일’(Christian Sabbath)로 간주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적지 않은 학자들이 일요일을 소위 ‘안식일’로 보는 것에 반대한다. 양용의는 일요일 휴식을 성경에서 명령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서 일요일을 그리스도인들이 쉬어야 하는 유일한 쉼의 날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는 “마태나 다른 신약성경의 저자들(특히 바울)에 의하면, 쉼의 날은 이처럼 일요일(즉, 소위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이나 토요일(즉, 정식 안식일) 어느 한 날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에 정기적으로 쉬는 것은 성경적인 근거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만 실천적인 이유 때문에 추천할만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서 그는 율법주의의 위험에 빠지기 쉬운 ‘한국 교회는(그리고 그 어떤 다른 교회라도) 어떤 한 날을 그리스도인의 유일한 쉼의 날로 규정하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까지 한다. 양용의가 지적한 대로, 신약성경에 주일에 일을 하지 말고 쉬라는 규정이나 명령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사도행전 20:7에 따르면 ‘주간의 첫 날’은 쉬는 날이라기보다는 떡을 떼기 위해 모이는 날이라는 인상을 준다. 드로아의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일하는 아침이나 낮이 아니라 저녁에 모였던 것으로 보인다. 사도시대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노예들이 많았으므로 그들에게 다른 사람들이 모두 일하는 일요일에 일을 하지 말고 쉬라고 권고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신약성경뿐 아니라 2세기의 기독교 문헌들에서도 일요일을 안식하는 날로 규정한 대목을 찾아 볼 수 없다. 일요일에 일을 하지 말고 쉴 것을 최초로 분명하게 언급한 사람은 3세기 초 북아프리카에서 활동한 변증가 터툴리안(Tertullian)이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에서 본격적으로 예배와 함께 육체적 노동을 쉬는 것이 주일의 표지가 되기 시작한 것은 A.D. 321년 3월 7일에 콘스탄틴 황제가 모든 재판관들과 도시에 사는 주민들과 각종 상업에 종사하는 자들은 일요일에 쉬어야 한다는 칙령을 공포하면서부터였다. 이처럼 주일에 노동을 쉬는 전통이 3세기 초의 문헌에서 나타날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신약성경에서 주일을 쉬는 날로 규정하지 않기 때문에 주일을 기독교적 ‘안식일’로 간주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안식일과 주일의 비연속성을 강조하면서 주일은 일을 그치고 쉬는 날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구약의 안식일과 신약의 주일 사이에는 비연속성뿐 아니라 연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구약의 안식일과 신약의 주의 날을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는 안식의 개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통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안식을 누렸으나 그들이 들어가야 할 안식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안식일에 모든 노동을 그치고 하나님께서 창조와 구속을 통해 그들에게 주신 육체적인 안식을 누리는 동시에 미래에 실현될 영적인 안식을 고대하였다. 그들의 육신적 안식이 예표한 것, 그리고 그들이 안식일에 고대한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주어지는 구원의 안식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안식일이 예표한 진정한 구원의 안식을 가져오신 분이다. 그는 안식일의 주인이실 뿐 아니라(마 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라는 선언을 통해 자신을 참된 안식을 주는 분으로 제시하셨다. 이 선언대로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죄와 죽음의 속박 아래 종노릇하던 사람들을 해방하여 구원의 안식을 누리게 하셨다. 주의 날(주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써 안식일이 지향하던 영적 안식을 성취하신 날이다. 요컨대 안식일과 주일을 ‘안식’이라는 개념으로 연결할 수 있는 것은 구약의 안식일이 지향한 구원의 안식을 성취하신 예수님 때문이다. 앞서 지적한 대로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에는 더 이상 구약의 안식일을 문자 그대로 지킬 필요가 없어졌다. 구약의 안식일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이루어지는 영적인 안식을 지향하는 모형과 그림자이기 때문이며, 또한 실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구원의 안식을 성취하시고 구원의 안식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간의 칠일 가운데 하루를 쉬는 하나님의 안식 제도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이 제도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구원을 완성하시는 날까지 존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받은 성도들이라도 구원받는 즉시 하늘 나라로 들려 올라가서 완전한 구원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육신을 입고 수고하면서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사는 한 신약의 성도들도 육체의 휴식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 주간의 칠 일 가운데 어느 날에 쉬어야 하는가? 여러 학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일요일이 아닌 다른 날을 쉬는 날로 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써 믿는 이들을 위하여 구원의 안식을 이루신 주의 날이야말로, 모든 일을 그치고 안식하기에 가장 적합한 날이다. 주일에 노동을 그치고 안식을 누리는 것은 신학적으로 매우 타당하다. 주일은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안식일이 지향하던 구원의 안식을 성취하신 날이요, 또한 성도들이 그것을 기념하기에 적절한 날이기 때문이다. 주일에 일을 그치고 휴식을 누리는 것은 신자들에게 의무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축복이며 특권이다. 구약의 성도들은 안식일에 모든 노동을 그치고 하나님께서 창조와 구속을 통해 그들에게 주신 육체적인 안식을 누리는 동시에 미래에 실현될 영적인 안식을 고대하였다. 이와 같이 신약의 성도들도 주의 날에 모든 일을 그치고 육체적인 안식과 함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주신 영적인 구원의 안식을 누리면서 미래에 완성될 영원한 안식을 고대하는 것이다(히4:9-10). 구약의 안식일이 장차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되리라는 언약의 표징이듯이, 신약의 주일도 미래에 완전한 구원의 안식을 누리게 되리라는 언약의 표징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신약의 성도들이 주일에 쉬는 것은 그 날이 예배를 위한 날일 뿐 아니라 안식일이 지향하던 안식이 실현된 날이며 영원한 안식을 고대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결론 먼저 우리는 수천년 교회 역사상 안식일과 주일 문제에 대한 다양한 견해 차이가 존재해 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단지 이단적인 교회들의 이견 뿐 아니라 정통 교회, 심지어 개혁주의 전통 속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상반되는 여러 이론들이 오랫동안 그리고 자주 심한 논쟁의 원인이 되었다. 교회사를 보면, 안식일과 주일의 관계에 대한 해석이 시계추처럼 양쪽을 오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선지 시대에 예레미야서나 에스겔, 이사야 같은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 계명을 제대로 준행하지 않는다고 그들을 준열히 책망했다. 그러한 책망과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던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하자 중간 시대와 예수 시대의 유대 지도자들, 즉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은 안식일 계명을 율법주의적으로 이해 실천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그러한 위선적 율법주의에 일침을 가하시고 안식일의 의미를 바르게 가르치셨다. 예수의 영향을 가까이에서 전수받은 초대 교회와 교부들은 유대교적 안식일주의에 대한 반발로 제 사 계명을 그리스도 오심으로 성취된 의식법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중세에 들어서면서 점차 교회는 세세하고 엄격한 안식일 규정들을 증가시켜 감으로 중세 중반 이후에는 주일이 미신적으로 율법주의화되어 버렸다. 종교개혁가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율법주의적이고 미신적인 주일 성수에 대한 반발로 다시 제 4 계명의 모형적 성격을 강조했는데 루터, 칼빈 등이 모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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