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는 敎會를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이 있어야 한다.
담임 목사는 이 세상에 그 무엇보다 교회(교인들)를 제일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이 있어야한다. 그리하여야 교인들의 신앙을 무럭무럭 자라나게 할 수 있고 신바람나게 할수있다. 고기는 물을먹고 자라고, 소는 풀을 먹고자라고, 아기는 젖을 먹고자라고, 교인들은 목사의 인정과 칭찬과 사랑을 먹고 자란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다. 교회를 보는 재미, 교회에 (당회실)있는 재미, 교회를 돌보고 손질하는 재미, 교인을 심방하는 재미, 교인을 만나는 재미, 교인들이 찾아오면 대수롭지 않은 대화로 카운슬러가 되는 재미, 설교하는 재미가 있어야 담임목사 자격이 있다. 교인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이 없는 목사는 담임목사 자격이 없다. 목회자가 교회에 대하여 情과 觀心과 재미가 없고 說敎가 싫으면 목사를 그만 두어야 한다. 그런 목사는 담임목사 자격이 없다.
설교 준비하는데 힘은 들지만 그래도 강단 올라가 설교하는 재미로 사는맛이 있아야 담임목사 자격이 있다. 옛날 이야기 하나 하렵니다. 필자가 영남신학을 다닐때에 대구 칠성교회 목회 하시던 권신찬 목사가(구원파 창립하여 교주됨) 당시 은혜를 받고 야단 할 때 인데 그가 신학교에 와서 이런 고백을 하였다. 외출했다가 교회들어오면 교회 십자가가 너무도 보기싫고 교회사택에 들어오기가 너무 싫고 도수장으로 끌려 들어오는것 같았다고 하였다.
한번은 목사된 것을 후회스럽고 너무 고민하다가. 골방에서 기도하는 중 성령의 불을 받은 것이다. 너무도 통곡하고 고함치며 통회하니까 어린 아들이 들어다 보고는 엄마 아버지가 미쳤다 하더란 것이다. 그는 경북노회에서 침례를 주장하다가 제명이 되고 시작한 것이 救援파다.
그가 은혜받고 성령의 뜨거운 불을 받은것은 분명한데 가슴은 뜨겁고 머리는 차가워야 하는데 머리까지 뜨거워져 빗나가 버린것이다. 기성 교회는 구원이 없고 자기같이 은혜를 체험하여야 구원얻는 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분명한 차이는 그가 전반기 목사와 후반기 목사는 180도로 변하고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 가슴은 뜨겁고 머리는 차가와야 하는데 머리까지 뜨거워진 것이 빗나간 것이다.
현장 목회자 중에 권신찬 前半期 같은 목사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가 보기 싫고 십자가가 보기 싫고 교회 드나드는 것이 끌려다니는것 같은 그런 목사가 목회하는 교회가 되겠는가? 지금 나는 그런 牧師가 아닌지? 그렇다면 진심으로 회개하고 다시 시작하여야 한다. Play againg.안되면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양들을 죽이니까.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에게 미쳐 버린것이다. 참 목사가 되려면 한번은 예수께 미쳐보아야 한다. 그러면 목회는 힘들어도 즐겁게 할수있다. 그렇다고 다 그렇게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라고 하는것은 아니다. 어쨌던 예수님께 한번 미쳐 본 목사여야 목회가 신바람 난다. 科學的인 용어로하면 物理的인 변화가아니라 化學的인 變化가 일어나야 한다.
다시말하면 聖靈받고 重生의 體驗이 있어서 예수께 미친 오순절 공동체에 일원이 되는것이다. 그 無識하고 보잘것 없는 미친 共同體에 聖靈의 化學的 變化가 일어났기에 세계를 불태우는 능력을 발휘하여 오늘의 기독교가 있는 것이다. 오순절의 聖靈의 化學的變化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나약한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배운 예수만 가지고는 (物理的變化) 목회가 힘들며 극복이 어렸다. 미국에 톱뉴스가 되었던 한인교회 목사가 자기를 괴롭힌 장로를 말할것이 있다고 그의 화원으로 유인하여 총살하고 자살한 사건이 몇 년전에 있었는데 화학적 변화의 목사가 아니고 물리적 변화, 배워서만 목사가 된 자이기에 그런짓을 한 것이다.
배운 牧師는 知識을 傳하고 받은 牧師는 生命을 전한다. 어떤 목사는 교회에 있는 재미가 없어서 쓸대없는 일에 교회를 비워놓고 교회차 기름소비하며 매일 외부에만 바쁘게 다니는 목사가 있는데 그런 목사는 담임목사의 자격이 없다.
그런 목사는 일찍 사표를내고 노동판에 가서 열심히 일하여 먹고 삶이 본인과 교회와 가족에게 유익하다. 그렇게 고생하는 아버지를 보면 부자될 의욕이라도 가질 것이다. 엉터리목사 아버지를 보는 자녀들의 신앙과 인격형성이 바로 될 수 없을것이다.
교인들은 교회에 언제 오더라도 목사의 얼굴을 보는 것을 원한다. 언제든지 교회에 오면 목사의 얼글을 볼 수 있도록 하는것이 목사의 일과 중 하나이다. 그렇다고 심방도 말고 볼일도 보지말라는 말인가? 심방하는 일과 부득이한 일을 제외하고는 담임목사는 교회를 지켜야한다는 말이다. 그일을 위하여 월급주고 모셔놓은 존제가 목사이다.
반대로 지금 목사가 교인이라면? 장로라면? 어떻게 !!! ?? 답좀 하여보세요. 언젠가 경기도 부천에서 목회에 취미없는 똑같은 엉터리 목사들이 목회는 재미 없고 하여 매주 모여 도박을 하며 즐기는 친교 장소 모텔이 있는데 거기서 도박을 하고 술 집에 가서 여자들의 접대를 받으며 술을 먹고 즐기다가 저들끼리 술에 취하여 싸움판이 벌어져, 들고 치고 받고 하다가 경찰서에 끌려간 사건이 뉴스를 탄 일이 있었는데 이런자들야 말로 목사는 고사하고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다. 이들이야 말로 목사가 아니라 삯군이다. 어떻게 이런 자들을 목사라고 할수있는가? 이런자들이 교회를 어떻게 보고 교인들을 무얼로 보고 설교하겠는가? 이런자들이 무엇 때문에 목사가 되었겠는가?이런자들은 흙탕물을 일으키는 미꾸라지이다.
이런자들은 회개하고 特秀召命을 받던지 아니면 목회를 때려 치워야 한다. 이들은 믿음이 없는 자들이다. 믿음도 소명감도 없이 먹고 살기 위하여 신학을 한 자 들이다. 그런 자들은 대부분 먹고살기 위하여 목회란 이름을 걸고 얻어다 먹고 있는자들이 태반이다.. 그러니 재미없는 목회가 잘 될리 없고 잘 되지 않으니 무료하고 무료한 시간을 보낼려니 똑 같은 엉터리 목사들끼리 모여 그런짓을 한 것이다. 물론 이런자의 교회에는 이들에게 경종을 줄만한 교인도, 배척 할만한 교인들도 없고 불상한 순진한 몇 마리 양들만 놓고 빨아먹는 자들이다.
이런 자들에게는 전도비 지원도 중단하여야 마땅하다. 아까운 교인들의 헌금을 그런자들에게는 지급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 헌금 중에 한달에 50만원 받는 아파트 수위, 파출부의 십일조도 있다. 도박하고 술집에가서 싸움질하는 그런자들에게 그 헌금을 지불하다니 말도 안되지 않은가?
담임목사는 내 가족은 本能的으로 사랑하지만 교인들은 信仰과 牧會자의 本能으로 뜨겁게 사랑하여야 담임목사의 자격이있다. 담임목사는 교회를 사랑의 공동체로 만들어여 한다. 겡까도리 목사는 가는데 마다 불란만 일으키지만 진정한 사랑의 목회자는 불란과 갈등의 교회에 부임하여도 얼마가지 않아 따뜻한 사랑과 평회의 교회를 만든다.
사랑(愛)은 基督敎에 本質이요,生命이다. 요일.4:7.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로 부터 出生된 자들이다. 요일.4:20.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兄弟를 憎惡하면 거짓말 쟁이다.보이는 兄弟를 사랑치못하는 자는 보이지 않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요일.4:21.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兄弟(牧師는 長老를, 長老는 牧師를)를 사랑 할지니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賞이 있으리요, 憎惡하는자를 사랑하여야 賞이있다. 요5:46.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자를 사랑하면 무슨상이 있으리요, 세리들도 바리새들도 그런사랑은 하고있다.
사랑은 예수님이고 사랑은 能力이다. 참 목사는 물리적 변화자는 안되며 화학적 변화 자여야 한다. 배운것은 知識을傳하고 받은것은 生命을 傳한다.
후배 목사님들! 저는 후배목사님들을 위하여 글을 올립니다. 본인의 논지가 잘못되었으면 지적하여 주십시요. 독자는 많은데 댓글이 없는데 대하여 많은생각을 하게됩니다. 절대적인것은 없고 많은 방법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목회에 도움된다고 생각되는 부분만 취사 선택하시 길 희망 합니다. 앞으로도 후배님들을 위하여 가능한 글을 계속올릴 생각입니다. 신랄한 비판을 원합니다.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무궁교회 장달윤 원로목사 017-221-5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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