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되지 않는 믿음
찬송 : ‘너 시험을 당해’ 342장 (통 395)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가복음 1장 12∼15절
말씀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자신의 소년시절을 떠올리며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이가 아빠와 함께 수영장에 가서 두 팔을 힘차게 내저으며 “아빠 날 봐요. 지금 내가 물속에서 뜨고 있어요”라고 자랑하며 외쳤다는 겁니다. 그러나 사실은 한 발을 수영장 바닥에 대고 물에 떠 있는 척 아빠에게 보였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키에르케고르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나는 믿음이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한 발로 땅을 짚고 물에 떠 있는 척하는 것이 아니냐.” 키에르케고르는 이를 ‘시험되지 않는 믿음(untested faith)’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이런 믿음은 시험되지 않은 믿음이기에 죄의 유혹이나 희생이 요구될 때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을 사단에 시험받도록 광야로 몰고 간 것은 어떤 악마가 아니라 ‘성령’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창세기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제물로 드리라는 시험을 한 분은 사단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입니다. 거룩한 영, 우리를 도우시는 그 성령이 우리를 거친 인생의 시험으로 나가게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시험이 없는 종교가 아니라 시험을 이기는 종교입니다. 믿음은 시험이 없는 믿음이 아니라, 그 시험 가운데 승리하는 믿음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나올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낮에는 구름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곳으로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나아간 곳이 바로 홍해였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나아간 곳이 길이 없는 막다른 바다였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모두 만사형통으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깊이 생각해봐야할 것은 성령에 의해 인도된 곳이 때로는 시련의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성령이 이끈 곳은 광야였습니다. 광야는 생존이 불가능한 곳입니다. 그래서 불안 염려 두려움이 엄습하는 곳입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시험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선 왜 광야로 인도하실까요. 그곳에서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시험을 당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사람을 찾으려고 합니다. 광야는 사람의 도움이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러나 광야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험을 거절하거나 불평하는 것은 진정한 신앙이 아닙니다. 시험을 거절하고 불평하는 것은 성령을 거절하는 것이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불평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우리들은 이런 때일수록 시험이 속히 우리 곁에서 떠나기를 기도할 게 아니라, 이런 시험을 주신 주님의 뜻이 무엇이며 시험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성령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 하나님, 우리가 시험 받을 때 그 시험에서 승리할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광야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선명 목사(인천 평화루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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