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을 이뤄내는 그리스도인(사도행전 27장 9∼37절) 2018.3.14
작년 말 개봉한 ‘채비’란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엔 지적장애 자녀를 둔 어머니가 등장합니다. 어머니는 버스정류장에서 매점을 하며 생계를 꾸려 가는데 어느 날 머리에 종양이 발견됩니다. 이후 자녀가 스스로 설 수 있도록 여러 노력을 기울인다는 내용입니다.
영화 중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전도를 나온 목사와 살갑게 지내는 아들이 못마땅한 어머니는 “저 목사 놈이 좋으냐”고 묻습니다. 아들이 “착하게 생겨서 좋다”고 하니 “착하긴 뭘 착해. 딱 사기꾼 관상이구만”이라고 대꾸합니다. 그러나 막상 죽음을 앞두고는 목사를 찾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부탁합니다. 그 목사 때문에 아들은 어머니의 죽음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갑니다.
현재 기독교인은 우리 사회에서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일어나는 소용돌이에서도 비껴가지 못하고 결국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기독교가 위기를 맞으니 기독교인도 덩달아 위축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본문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반전을 이룰 수 있는지 말씀합니다.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3차에 걸친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가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의 오해로 목숨을 위협받고 죄인 신분이 됩니다. 유대 총독에게 재판을 받던 바울은 로마 황제에게 상소했고, 이 때문에 로마로 압송되던 중이었습니다.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이 된다(10절)’는 바울의 경고에도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대로 뵈닉스로 출항합니다. 하지만 얼마 안 돼 ‘유라굴로’란 광풍을 맞닥뜨리게 되고 이로써 배가 이리저리 표류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바울은 2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라.” 이후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백부장을 포함해 배의 모든 사람이 다 바울의 말을 따랐고 결국엔 모두 구조됩니다(44절). 바울은 절망의 순간에 어떻게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을까요.
본문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바울과 배에 탄 265명의 마음가짐이 분명 달랐다는 것입니다. 265명은 광풍 앞에서 모든 것을 잃을까 두려움에 떠는 나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배가 흔들릴수록 요동하지 않았고 사람들이 두려워할수록 담대했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했던 다윗이 골리앗 앞에서도 담대했고, 사울의 핍박에도 승리를 확신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기독교가 조롱받고 위기에 빠졌을 때는 외부 환경이나 인식이 문제인 게 아닙니다. 우리에게 세상과 다름을 보여줄 복음의 능력을 갖고 있는가를 따져보는 게 중요합니다. 복음의 능력이 있다면 위기는 그동안 키워 오던 믿음을 세상에 드러낼 기회가 될 것입니다.
또 그 기회엔 반전의 은혜가 따를 것입니다. 저는 지난주 ‘붕어빵 전도행전’의 저자 박복남 장로를 만나고 큰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분은 누구나 전도가 안 된다, 어렵다 하는 이때에 여전히 전도는 쉽다며 매일 전도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의 전도로 많은 이들이 주께로 돌아오고 위로를 얻습니다. 현장에서 사도행전의 역사를 목격하는 그는 바울의 삶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복음 안에 있는 사람은 언제든 담대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부활의 신앙으로 무장해 말만이 아닌 삶으로 그리스도를 나타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이 진리를 전함으로 혼란한 사회에 소망이 되고,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 반전을 이루는 사도 바울같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박용철 목사(거제참좋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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