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세워진 교회(사도행전 20장 28절) 2018.4.5
“왜 교회에 다닙니까?”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으면 가장 많이 듣는 대답 중 하나가 “행복하기 위해서”입니다. 교회학자 래리 크랩은 저서 ‘교회를 교회되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교회에 가면 행복한 삶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주된 메시지다. 그러나 그 메시지 때문에 교인 수는 늘지만 그리스도인은 줄고 있다.”
교회는 행복보다 더 큰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거룩입니다. 행복이 나를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거룩은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룩에서도 한 단계 올라서야 합니다. 그것은 희생입니다. 행복이 나를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거룩이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희생은 남을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희생입니다. 그리고 그 희생을 동반한 사랑이 선교입니다. ‘선교적 교회’가 된다는 것은 교회가 단순히 교회를 많이 세운다거나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게 아닙니다. 교회는 단순히 선교적 사명(doing)을 가진 게 아니라 선교적 존재(being)입니다.
선교보다 중요한 게 바로 선교적 삶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나가는 선교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선교적 삶을 사는 것이 선교입니다. 선교적 삶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선교적 삶은 자기 소유를 드리는 것입니다. 선교적 삶은 남을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의 공통점이 바로 희생입니다.
왜 교회에 다니는가. 행복을 넘어 거룩해지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거룩이 우리의 목표는 아닙니다. 거룩은 행복을 넘어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줄 때 가치를 지닙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피로 세워졌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행 20:28)”
이삭이 죽은 터 위에 구약의 성전이 세워졌다면 예수님이 죽은 터 위에 신약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성전의 공통점은 누군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죽어 다른 사람을 살렸다는 것입니다. 피 없이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있어야 교회입니다. 그리고 그 거룩한 피에 나의 피가 부어져야 교회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세워진 교회는 이제 나의 희생적 피를 요구합니다.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던 날 저녁,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인 고종 황제가 침전 밖을 향해 화급하게 외친 말이 있었습니다. “밖에 기독교인 누구 없느냐?” 그 소리를 들은 선교사 언더우드가 급히 궁궐로 달려왔고, 곧이어 헐버트가 뒤따라와 그날 밤 왕과 함께 지냈습니다. 의사 에비슨은 고종의 요청으로 황제가 먹는 음식마다 독이 있는지를 살폈고, 언더우드의 부인 릴리어스 호튼은 독살을 두려워하는 고종을 위해 음식을 조리하고 공급했습니다.
고종을 지켰던 사람들은 정부 고관과 대신들이 아니라 언더우드, 헐버트, 에비슨, 릴리어스 같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순번을 나눠 불침번을 서며 고종을 호위했습니다. 당시 기독교인 비율은 1%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많은 기독교인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세상은 기독교인을 찾지 않을까요. 희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로만 희생을 외치기 때문입니다.
자기 피는 흘리지 않고 예수님의 피만 노래하는 흡혈귀 신앙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피를 찬양하는 고난절이 지나면 우리 피를 흘리는 부활절이 돼야 합니다. 선교 134년을 맞은 한국교회를 향해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우리가 번제할 어린양입니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피 흘려야 합니다. 피로 세워진 교회는 반드시 피로 세워가기 때문입니다.
이윤재 목사(분당 한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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