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학교 교사의 영적 통찰력(요한복음 3장 1∼15절)
오늘 본문을 보면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이 여름, 다음세대를 위해 복음의 기치를 들고 헌신하는 모든 교사와 부모에게 성경말씀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생입니다”라고 격려하시는 것 같습니다.
교회학교 교사와 부모가 가르치는 커리큘럼의 최종 목표는 복음전파를 통한 구원입니다. 주 교재는 성경이며, 강의계획은 성령께서 세우고 이끌어 가십니다. 하나님께 사령장을 받은 우리는 분명한 교육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첫째는 복음을 통해 저들의 영혼을 살리는 것이며, 둘째는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셋째는 영혼의 가치를 깨우쳐 다음세대가 이 세상과 저 세상을 관통하는 복음의 통로로 쓰임 받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적 선생은 어떤 자세를 갖고 있어야 할까요. 하나님께로부터 보냄 받은 선생은 먼저 영혼의 때에 눈을 떠야 합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온 때는 밤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칠흑 같은 밤입니다. 진리가 도전받고 진리를 거슬러 대적하는 시대입니다. 진리가 땅에서 짓밟히는 밤의 때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사회적 현상으로만 보고 영적으로 분별하지 못하면 영혼의 때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 3:14) 이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사건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심을 육적으로만 보면 답이 없고 아무 유익도 없습니다.
실제로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사건을 육적으로 봤기 때문에 다 흩어지고 갈릴리 바다로 고기나 잡으러 간 것입니다. 선두로 나선 베드로의 말에 너도나도 따라갑니다. 영적으로 어둡다 보니 답답한 인생길을 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때는 영적인 눈을 떠서 보면 어떤 때입니까. 인류 최대의 사건이 벌어진 역사적인 때입니다. 영혼구원의 문이 활짝 열려 구원의 때가 도래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믿으면 구원을 받는 영혼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절망에 빠져 고기나 잡으러 간다고 자조 섞인 목소리를 내놨습니다.
왜입니까. 영혼의 때인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냄 받은 선생일수록 영혼의 눈을 떠야 합니다. 이 시대를 통찰력 있게 바라봐야 합니다.
사실 지금은 기회의 때입니다. 아무도 예배하지 않고 누구도 헌신하지 않는 곳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선지자적인 가슴으로 가르칠 때입니다. 그러기 위해 무장해야 할 가치관은 영혼의 가치를 온전히 아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요 3:10) 지금은 영적인 눈을 뜰 때입니다. 불법과 불의, 인본주의로 뒤섞인 잘못된 가치를 뚫고 영혼의 소중한 가치를 바르게 가르칠 때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 그렇습니다. 영혼의 가치를 아는 우리는 영혼의 복이 범사에 임할 복을 보장하고 있음을 알려야 합니다. 이 복 안에 열방을 향한 복이 있음을 적극 가르쳐야 합니다.
다음세대를 향한 영적 교육이 절실한 지금은 밤의 때, 절망의 때입니다. 그러나 사방이 막혔어도 우리의 영혼에는 창이 있습니다. “이곳이 여호와의 전이요, 하늘의 문”이라고 고백했던 야곱에게 이 창이 열렸습니다.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본 아브람에게도 이 창이 열렸습니다. 십자가를 지나 하늘의 창을 열고 유대사회를 바라봤던 니고데모에게도 이 창이 열렸습니다. 우리 모두 영혼의 창을 열고 다시 한번 이 세대를 살리기 위해 이 여름 힘차게 전진할 때입니다.
박영래 목사(인천 예전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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