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회복 모든 것의 회복이다( 욥 42;7-17 )
- 강문호 목사
이용규 몽골 선교사가 쓴 <내려 놓음>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처녀를 전도하였습니다. 목축하는 처녀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좋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주일 아침이었습니다. 소를 풀밭에 매놓고 예배드리러 가려고 하였습니다. 소를 끌고 나가는데 소가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소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뛰어가다 보니 땀과 먼지로 온통 뒤범벅이 되었습니다. 도저히 소를 잡을 수 가 없었습니다. 예배 시간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 처녀는 혼자 외쳤습니다. <소보다 예배를!!>
그리고 소 따라가기를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로 달렸습니다. 교회로 왔을 때 얼굴은 땀과 먼지로 얼룩져 있었고 옷은 온통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선교사가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는 사정 이야기를 하면서 말 했습니다. <소보다 예배를 드리러 왔습니다.> 선교사는 기특하여 교회 문에서 안수기도 하였습니다. <예배의 축복을 주옵소서!> 예배를 드리고 교회 마당으로 나왔을 때였습니다. <음 메............> 소가 교회로 와 있었습니다. 문제보다 예배는 회복입니다. 문제를 쫒아가기 보다 예배를 택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것은 예배입니다. 예배는 히브리어로 아바드 인데 아바드 라는 말은 섬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제일 좋은 방법은 예배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예배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욥과 마귀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예배를 제일 좋아 하기에 욥은 가족과 함께 언제나 제사를 드렸습니다. 구약은 짐승피로 제사 드리고 신약은 예수그리스도 피로 예배를 드립니다. 마귀는 헬라어로 디아볼로스 입니다. 이는 틈을 낸다는 말입니다. 마귀는 예배드리는 사람과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 사이가 갈라지도록 틈을 내는 악령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도 그렇게 하더니 욥에게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1. 마귀는 욥에게서 먼저 소와 양을 모두 훔쳐가게 하였습니다. 양이나 소가 없으면 구약에서는 제사를 결코 드릴 수가 없습니다. 마귀는 예배를 드리지 못 하게 원초적으로 방해하였습니다.
2. 예배드리는 사람 자체를 아예 없애 버렸습니다. 10 남매를 아예 데려가 버렸습니다.
3. 욥에게 불치병을 주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마귀가 욥에게 병을 주었다고 기록하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욥을 무시하였습니다. 예배부터 파괴하고 모두를 파괴하였습니다. <너무 아프니까 기도할 마음도 없어요.>
일본의 우찌무라 간조가 말했습니다.<가난은 서럽다. 불치병은 더 서럽다. 지옥은 가장 서럽다.>
그런데 욥의 친구들이 수소 7마리와 수 양 7마리를 가지고 와서 욥 앞에서 번제를 드렸습니다. 같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욥이 모든 것을 회복하였습니다. 건강도 재산도 인간관계도 모두 회복되었습니다. 물질적으로 두 배를 받았습니다. 자녀도 더 아름다운 자녀를 주셨습니다. 140세를 건강하게 살았습니다. 모든 것이 회복되었습니다. 회복을 넘어 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멋진 회복의 역사 기록입니다.
<욥이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런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이전에 알던 이들이 다 와서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음식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려진 모든 재앙에 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금 조각 하나씩과 금 고리 하나씩을 주었더라.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14,000과 낙타 6,000과 소1000 겨리와 암나귀 1000을 두었고 또 아들 7과 딸 3을 두었으며....... 그 후에 욥이 140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4대를 보았고 욥이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욥 42;8-17) 예배는 회복의 약입니다. 도대체 예배가 무엇이기에 예배를 드리면서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일까요?
1. 참회가 회복이기 때문입니다.
욥은 참회하면서부터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참회입니다. 참회 없는 예배는 밥 없는 식탁과 같습니다. 기름 없는 자동차와 같습니다. 엔진 없는 자동차와 같습니다. 예배는 참회입니다. 욥은 참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 드리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욥 42;6)
그리고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전라도 어느 장로님 고백입니다. 복잡한 가정생활로 인하여 교회를 떠나 10여년을 방황하였습니다. 어느 날 술집에 앉아 있었습니다. 마침 술집에서 무당을 데려다가 굿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무당이 굿을 하다 말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예수를 믿는 사람이 있나요? 내 영이 그 사람 때문에 통하지 않고 있으니 그 사람은 나가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장로님이 눈물을 주르륵 흘리면 속으로 말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떠난 지 10 여년이 지났는데 예수님의 영이 내게서 떠나지 않았구나! 그래서 큰소리로 주여 술집에서 회개하였습니다. 무당 말 듣고 회개하였습니다. 새로운 장로님이 되었습니다.
요한은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 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분명히 회개는 회복입니다.
미국 텍사스의 어떤 부자는 너무 돈이 많았습니다. 움켜쥐고만 살았습니다. 그 부자가 죽을 때 식구들이 물었습니다. <마지막 소원이 무엇입니까?>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죽거든 황금관 속에 넣어서 묻어 달라.> 그래서 소원대로 금으로 관을 만들어 시체를 그 속에 넣어 파묻어 주었습니다. 황금 관에 시체가 들어갔다고 그를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차라리 그 돈을 마지막으로 양노원이나 고아원에 기증하고 죽었더라면 그 양노원이나 고아원에서는 동상을 만들어 놓고 그의 이름을 기억하였을 것입니다.
어느날 죠지아 주에 있는 큰 술집 주인이며 도박장 주인이 젠킨스 박사님에게 상담을 하러 왔습니다. 그는 돈이 억수 로 많은 부자인데 생활은 불행하였습니다. 박사님은 불행한 삶을 청산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믿으라고 권하여 주었습니다. 성경도 읽으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후, 몇 달이 지났습니다.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 아침 박사님이 지시하신 대로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빛이 제 영혼에 가득 비쳐왔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에게 제 마음을 바치고 그 분을 위해 살기로 했습니다.> 며칠 후에 그 집 앞을 지나면서 보니까 비싼 고급 가구를 모두 실어 내가는 것이었습니다.
<왜 고급 가구를 실어 내가십니까?> 이렇게 물었더니 그는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술을 팔아서 돈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번 돈이 생각날 때마다 추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술을 팔아서 산 물건을 모두 처분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물건을 사용하면 집안에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집안 식구들이나 자녀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이제부터는 깨끗하게 번 돈만 사용하겠습니다.> 참회는 회복입니다.
욥은 참회하고 모든 것이 회복하였습니다. 예배의 핵심은 참회입니다.
2. 기도가 회복이기 때문입니다.
욥은 기도하였습니다. 예배 중에 드려진 기도였습니다. <욥이 그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욥 42;10)
기도하면 제일 먼저 일어나는 것은 회복의 역사입니다. 욥은 1장에서 재앙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2장부터 친구들과 토론을 합니다. 왜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가가 주제입니다. 토론하느라고 바빠서 기도할 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42장에 와서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였습니다. 기도할 때 회복이 일어났습니다. 기도는 회복입니다. 기도는 예배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 하는 크고 비밀한 을 보이리라.>
기도는 회복입니다.
일본의 어느 마을에서 생긴 이야기입니다. 독실한 성도 한 분이 과수원을 재배하고 있었습니다. 천 그루 정도가 되는 큰 과수원이었습니다. 열매가 막 익어가고 추수를 앞두고 있는 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상한 벌레들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과일을 파먹기 시작하였습니다. 잡고 잡아도 끝이 없었습니다. 농약을 치고 또 쳐도 날마다 기승을 부리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는 이제 마지막 방법은 기도밖에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가 철야 기도를 했습니다. 아침에 과수원에 나가 보았습니다. 새떼들이 수 천 마리 날라 오더니 벌레들을 몽땅 잡아먹어 버렸습니다. 순식간에 생긴 일이었습니다. 기도가 방법입니다.
예배는 회복입니다. 예배 중에 드리는 기도는 회복입니다.
<하루 중에 가장 기분 좋은 시간이 언제입니까?>라고 물으신다면 피곤하여 기도 하지 못한 것을 늘 죄스럽게 생각하며 마음을 주님 앞에 내려놓을 때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기도의 모습입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악을 썼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기도제목이 좋아서 읽어 드리겠습니다.
<물질보다는 주님을 사랑하는 목회자, 사람보다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목회자, 세상보다는 천국을 사모하는 목회자, 보수보다는 헌신을 기뻐하는 목회자, 재주보다는 은혜를 사랑하는 목회자, 수단보다 진실을 사랑하는 목회자, 방법보다 기도를 즐겨하는 목회자, 고집보다는 말씀에 순종하는 목회자, 예수님의 흔적을 몸에 지닌 목회자, 주여! 이런 목회자가 되게 하소서!>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일을 하였다고 칭함 받고 있는 초대 대통령 워싱톤에게 신문기자들이 물었습니다.
<그렇게 위대한 일을 한 비결이 무엇입니까?> 워싱톤은 생각할 틈도 없이 말했습니다. <내가 엄청난 일들을 다 처리하는 비결은 매일 4시에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일어나 기도하고 일하면 남이 일어나기 전에 벌써 많은 일을 해놓게 됩니다.> 기도 참 힘듭니다. 기도는 회복입니다. 어려워도 그래도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3. 헌신이 회복입니다.
욥과 함께 예배드린 예배 자들은 수소 7마리와 수양 7 마리를 드렸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수소 7과 수양 7을 가지고...>(욥 42;8)
헌신입니다. 예배의 중요한 요소가 무엇입니까?
참회입니다. 기도입니다. 그리고 헌신입니다. 그래서 예배시간마다 예물을 하나님께 드린 것이 구약성도들입니다. 헌신이 클수록 회복이 빠르고 확실합니다. 소유보다 나눔이 더 행복한 것입니다. 남보다 많이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이렇게 헌신하고 났을 때 회복이 일어났습니다.
나는 헌신에 대한 아름다운 말들을 모아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말들입니다. 깊은 교훈들입니다.
나는 주님에게 헌신할 몸이 오직 하나뿐이라는 것이 유감일 따름이다(N. 헤일)
무제한 보화를 소유하는 비결은 그리스도에게 당신 자신을 헌신하는데 있다(보언)
사람들에게 헌신하라. 그렇게 하면 사람들은 그대에게 헌신할 것이다. 만약 그대가 한평생을 걸고 사람들에게 헌신한다면, 아무리 교활한 사람일지라도 그 보상을 그대에게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에머슨)
세상은 성공한 자에게 월계관을 씌워 주지만, 하나님께서는 헌신하는 사람에게 월계관을 씌워 주신다(미상)
양초는 남을 밝게 해주며 자신을 헌신하며 허비한다(H. G. 보운)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대의(大義)를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버릴 준비가 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벌벌 떨게 하고 다른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사람보다도 강하다(톨스토이)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알지 못한 헌신이 하늘에서는 가장 많이 알려져 있곤 하다(니콜라스 카우신 )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손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손해 보지는 않을 것이다(토마스 왓슨)
한 자루의 양초로 많은 양초에 불을 옮겨 붙이더라도 첫 양초의 빛은 흐려지지 않는다(탈무드)
헌신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도 되지만, 우리 자신에게도 축복의 즐거움이 된다(모렐 )
그렇습니다.
예배는 회복입니다. 욥은 그렇게 곤경 속에서도 예배를 회복하고 나니까 모든 것이 회복되었습니다.
예배는 회복입니다.
예배 속에는 회복시키는 참회가 들어 있습니다.
예배 속에는 회복시키는 기도가 들어 있습니다.
예배 속에는 회복시키는 헌신이 들어 있습니다.
결론적인 이야기입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교회들이 18세기에 엄청난 부흥을 이룩하였습니다. 그래서 영국이 온 세계 선교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독일 루터가 종교 개혁도 일으켰습니다. 유럽 문화는 기독교 문화였습니다. 그런 유럽 교회가 몰락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유럽의 교회는 밤이고, 미국의 교회는 저녁이고 한국의 교회는 아침이다.>
그런데 유럽 교회가 몰락하게 시작한 것은 바로 예배를 상실한 후부터였습니다. 독일이나 영국의 대형교회들이 여름 휴가철이면 이렇게 광고하였습니다. <휴가철에는 한 달간 예배를 쉽니다.> 그래서 8월 한 달은 예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목사도 휴가를 가고 교회를 비어놓았습니다. 그 때부터 교회가 몰락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름철에 교회가 방학을 하는 것은 크게 잘못 하는 것입니다.
쏘련도 그렇습니다. 공산혁명을 일으키고 교회를 부수어 버리고, 교인들을 핍박하면서 쏘련, 중국, 이북은 망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북이나 쏘련이 잘 되는 비결은 오직 하나입니다. 예배 회복입니다. 예배를 회복하면 모든 것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예배를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두 가지 이야기를 드립니다.
무디 목사님이 어느 날 부흥회를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날 설교 제목은 <심는 대로 거두리라>라였습니다. 여러 가지로 이야기 하다가 결론을 내릴 때가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앉았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는 그런 소리를 안 믿습니다.>그 때 알고 보니 그는 범죄자였습니다. 그를 찾아다니던 형사가 그 예배에 참석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다가 그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는 즉석에서 체포되어 끌려갔습니다.
예배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이야기 더 드리려고 합니다.
어느 목사님은 낚시질을 좋아 하였습니다. 낚시를 좋아 한다기 보다 차라리 낚시 광이었습니다. 어느 수요일 아침이었습니다. 낚시질 갔다가 빨리 와서 수요예배를 드리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낚시를 좋아 하는 장로님이 한 분 있었습니다. 장로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장로님! 저 건너 저수지에 고기가 잘 잡힌다는 데 같이 낚시 갑시다.>그러나 장로님도 같이 가고 싶었는데 그날에 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에게 수요일이니 혼자 가셨다가 빨리 오시라고 말하고 당부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날 고기가 잘 잡혔습니다. 정신없었습니다. 재미도 있었습니다. 한편 교인들이 수요일 저녁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와 보니 목사님이 안 계셨습니다. 장로님은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았습니다. 빨리 목사님이 가시자고 저수지로 달려가 보았습니다.
목사님이 정신없이 낚시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결론은 그 목사님은 그 교회를 사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것이 마지막 결론은 아니었습니다. 그 날로 그 목사님은 그렇게 좋아 하고 그렇게 비싼 낚시대를 꺽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는 다시는 낚시질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좋은 목회자로 목회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좋은 간증거리가 되었습니다. 예배 회복이 모든 것의 회복입니다. 우리 모두 진정한 예배의 의미를 알고 주님앞에 나아가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독 자료 > 설교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영생을 주노라(요10:22-42) (0) | 2011.06.05 |
---|---|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가 (0) | 2011.05.27 |
믿음의 본질 (0) | 2011.05.21 |
달란트를 땅에 묻은 사람 (0) | 2011.05.10 |
성공적인 목회자의 성품 (0) | 2011.0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