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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제사의 참된 의미

구원의 계획 2011. 6. 5. 22:09

산 제사의 참된 의미(롬12:1-2) 성령 안에서의 삶

                                                                    - 이상봉 목사


1.삶을 하나님께 드림 (12:1-2)
로마서 12-16장의 이해


로마서 12장부터 나오는 말씀들은 로마서 1장부터 11장까지에 나오는 말씀들과 그 성격이 상당히 다르다. 1장부터 11장까지의 말씀들은 복음을 설명하고 복음을 붙잡으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즉 사람은 타락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구원 방법인 그리스도를 믿고 붙잡으라는 것이다. 사람이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기(육신)의 생명을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 생명으로 사는 것이다. 나 대신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산다는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 자신이 하시므로 우리는 오직 그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이것이 로마서 전반부가 말하는 핵심이다.


이에 비해 로마서 12장부터 16장은 교회에 대해 말하고 있다. 1장부터 11장(8장)까지가 '그리스도'에 대해 말했다면 12장부터 16장까지는 '그리스도의 몸'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람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한 개인을 구원하시고 영화롭게 하는 데 있지 않고 그들을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몸, 그리스도의 나라로 세우는 데 있다. 이것은 단체적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여기서 각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자기의 은혜와 은사의 분량을 따라서 몸을 섬길 것을 강조한다.


이 섬김은 형제들이 서로 사랑 안에서 각기 은사로 봉사하는 것과 권위에 순종하는 것과 약한 자들을 오래 참고 용납하는 일 등을 포함한다.


1.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참으로 섬기는(예배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12:1)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4:20-24)


사람이 하나님을 참으로 섬기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다. 이것은 곧 자기를 부인하고 성령을 좇아 사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이 다 자기대로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아들로서 살기를 바라신다. 우리의 인격, 우리의 개성, 우리의 능력이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은 우리가 그 모든 것을 다 부정하고 오직 그의 아들 그리스도의 인격과 정신과 능력으로 살기를 원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이 오직 그리스도만을 기뻐하시며 그의 섬김만 받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오직 그의 영원하신 아들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을 참으로 알며 참으로 사랑하며 참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로 산다는 말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과 같고 성령으로 산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어떤 사람인가(자기 생명이 어떤 생명인가) 하는 것에는 주의하지 않고 단지 자기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에만 주의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행위보다 사람의 생명과 인격을 먼저 보신다.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생명을 소유한 사람은 자연히 하나님을 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아들의 생명이 아니라 마귀의 생명을 가진 사람이라면 잠시 선한 일을 하고 경건한 모양을 취할지라도 그것이 계속 지속될 수 없을 것이며 또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까지 이르지 못하고 말 것이다. 또 그런 선행과 경건은 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결과를 낳지 못하고 자기 영광을 나타내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참으로 섬기는 유일한 길은 그 어떤 선하고 경건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아들의 생명을 받음으로써 참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뿐이다. 바울은 이것을 (행위가 아니라) 몸을 바치는 제사, 곧 산 제사라고 표현했다. 몸을 바친다는 것은 곧 십자가를 거쳐 나온 새 사람,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서 사는 것이다.


2.산 제사가 되지 못하는 제사, 곧 하나님을 참되이 섬기는 것이 되지 못하는 '죽은 제사(예배)'란 어떤 것인가?


첫째, 아들의 생명(성령)이 아니라 의문 율법(종교적 예법)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이것은 '神靈(영)과 眞正(진리)으로 (참과 실제로, 그리스도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구약 유대교나 이방 종교에서 제시된 종교적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이것은 참과 실제가 아니라 모형과 그림자를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모든 영적 사실의 참과 실제는 오직 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사는 것이 곧 (거짓이나 흉내가 아닌) 참과 실제로 하나님을 섬기는 유일한 길이다.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것은 성령을 좇으며 의지하는 것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하나님을 참으로 섬기는 길은 성령께 복종하는 삶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령을 좇아 사는 삶, 그리스도로 사는 삶을 의미하지 않는 모든 소위 '예배'라고 하는 형식과 행위는 모두 의문 율법에 따른 죽은 종교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본질적으로 (오늘날 신약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는 헛된 의식일 뿐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셔서 사람들에게 생명을 부어주신 신약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유일한 섬김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아들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며 그로 인해 하나님을 자기 마음으로부터 깊이 알고 사랑하며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속으로부터 알지 못한 채로 율법의 가르침과 요구와 위협에 따라 의무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아들의 섬김이 아니라 종의 섬김이다.


그렇다면 구약 시대 사람들이 의문(儀文) 율법에 따라 제사를 드리고 절기를 지키며 각종 의식을 행하거나 계명을 지킨 것은 아무 의미도 없으며 하나님께 상달되지 못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아들(생명)이 나타나지 않은 그때로서 그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유일한 [하나님과의 교통 수단]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말고는 하나님을 섬길 길이 없었다. 그러나 그때라도 그런 형식과 절차, 사물(성전, 제물)들은 그 자체로서는 아무 의미도 없었고 오직 장차 있게 될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참 섬김의 모형으로서의 의미를 지닌 것에 불과했다.(히8:5-13)


둘째, 헌신의 폭과 관련하여 '삶(사람) 전체'를 드리지 않는 것은 다 죽은 예배이다. 즉 하나님께 몸(삶) 전체를 드리지 않고 (일정한 형식과 예법을 따라) 부분만 드리고 나머지는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바로 거짓되고 불완전한 예배이다.


전체를 드리지 않는 섬김을 가짜라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믿음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음의 문제요 믿음의 문제다. 구약적 예배(섬김, 삶)가 10분의 1은 하나님께 드리고 10분의 9는 자기 뜻대로 쓰는 것이요, 6일은 자기 뜻대로 살고 하루는 안식일로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요, 성전에 가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께 마음을 쓰고 그 밖의 자리에서는 육체가 원하는 일에 마음을 쓰는 예배라면, 신약적 예배(섬김, 삶)는 삶 전체, 인생 자체를 몽땅 하나님께 털어 넣는 것이다.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리스도께 완전히 사로잡히고 그래서 그에게는 그리스도밖에는 다른 삶의 내용이 없게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즉, 안식일만 거룩하다면 다른 날은 거룩하지 않다는 뜻이된다. 신약시대는 다 거룩한 날인데 한날만 거룩하게 만드는 것은 그리스도의 밖에 삶을 의한다.


그러나 많은 신자들은 아무리 새언약시대(新約, 성령시대)라 하지만 이렇게까지 자기를 완전히 부인하고 오직 그리스도밖에 없는 삶을 사는 것은 지나친 일이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그 마음이 여전히 육신과 세상, 자아와 이생에 있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 살게 되어 있다. 밭에 보물이 감추어진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팔아 그 밭을 사라고 한다면 그런 어려운 일이 없을 것이나 그것을 아는 사람에게는 그처럼 신나고 쉬운 일이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로 사는 것,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바치는 삶은 괴롭고 손해보는 삶이 아니라 영생의 길이며 썩어지고 없어질 것을 팔아서 영광스럽고 영원한 것을 사는 일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인생 전체를 하나님 중심으로 계획하고 그 몸과 삶을 하나님의 목적에 완전히 바치지 못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을 참으로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발은 하나님께, 다른 한 발은 세상에 걸치고 있는 것이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과 바알 등의 우상을 동시에 섬긴 것 그리고 율법의 일부 예법과 절차들은 지키면서도 율법의 본질적인 내용들 곧 하나님의 사랑과 의와 거룩을 따라 사람을 사랑하고 진실하게 행하는 것이나 구원자에 대한 약속을 믿고 인내로 기다리는 일을 하지 못하고 이방인들의 악하고 이기적인 생활을 그대로 따라 산 것은 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신자들이 믿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를 동시에 추구한다. 이런 사람들은 삶 전체를 하나님께 온통 거는 것을 위험한 모험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들은 전체적이고 전폭적인 헌신 대신 언제나 '일정한 형식에 따른 부분적 헌신'을 선호한다. 하나님을 섬기되 그들 삶의 일정 부분을 항상 하나님 외적 영역으로 확보해 놓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참으로 섬길 마음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데 왜 교회를 다니며 신자 행세를 하는가?

하나님을 통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 자신의 육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육적 필요에는 물질적 육신적 필요뿐 아니라 마음의 불안함이나 공허함을 달래는 것과 같은 정신적 필요도 포함되기 때문에 하나님을 진실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종교는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셋째, 그 어떤 경건의 모양을 갖추더라도 성령을 좇아 행치 않고 육신대로 사는 것은 다 죽은 예배이며 가짜 예배이다. 그리고 '육신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섬기려는 것 역시 죽은 예배이다.


육신은 하나님을 섬길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과 원수로 행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육신대로 살면 결코 온전한(전적인) 헌신을 할 수 없다. 육신대로 살며 육신으로 하나님을 섬기려는 사람은 보통 때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 같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하나님을 버리고 육신의 요구대로 행해버린다. 그러므로 육신의 능력을 신뢰하여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육신으로 하나님을 섬기려는 사람은 로마서 7:22-24에서 바울이 언급한 실패에 빠지고 말 것이다.(롬8:3-8)


3.하나님께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삶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12:2)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7:21)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12:5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요4:34)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요6:38,39上)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17:3)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엡5:17)


하나님을 섬기려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4.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마11:25-27)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고전2:10-16)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1:8,9,17-19)


5.그리스도인이 이 세대(세상)를 본받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일2:15-17)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갈5:2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6:14)


우리 생명, 우리 삶이 하나님께 속해 있고 따라서 우리의 소망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그 옛 생명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생명은 세상과 상관 있으며 세상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생명이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것은 그 생명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명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세상과 상관이 없으며 세상은 우리와 길이 다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쳐다 볼 필요가 없으며 거기서 기쁨과 만족 혹은 슬픔과 좌절을 느껴서도 안된다. 우리가 볼 대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6.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하는 것인가?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51:10)라는 다윗의 기도처럼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참으로 헌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하는 것인가?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1-24)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3:9下,10)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참으로 아는 상태 곧 머리의 지식으로만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속 깊은 곳에서 생명으로 하나님을 아는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을 말한다. 생명 안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를 압도할 때 우리는 자신을 결코 헛된 세상 삶에 드리지 않고 오직 진리(하나님의 뜻)에 드리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자기 따로 그리스도 따로, 내 욕망 따로 하나님의 열망 따로, 내 생각 따로 진리 따로가 되면 우리 몸은 결코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지지 않는다. 오직 그리스도의 생명과 내 생명이 하나가 되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내 마음과 뜻이 되어 우리 자신의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때 우리 삶은 하나님께 참으로 헌신될 수 있는 것이다. 삶은 결국 자기 마음에 의해 결정된다. 모든 행동은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을 좋게 보며 무엇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취하여 그의 세계가 영광스럽게 보이면 그리스도를 따라갈 것이고 그에게 모든 것을 바칠 것이나 세상이 좋게 보이고 그것이 영광스럽게 보이면 자기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 온전히 바쳐 헌신한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17:17)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엡6:14上)


"이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벧후1:12,13)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벧후3:1)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계3:2,3)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엡5:8-14)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엡5:16-19)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골3:16)


마음을 새롭게 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의 빛, 진리의 빛을 받는 것이다. 말씀의 빛 곧 계시가 없으면 마음은 결코 새로워지지 않으며 제법 무엇을 깨닫는 것 같아도 또 도로 자기 생각에 빠지고 만다. 위로부터 오는 분명하고도 압도적인 빛이 있어야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의 세계와 은혜와 진리의 세계를 보게 되고 세상의 허무함과 인간의 죄악과 육신의 실상을 보게 된다. 썩어질 것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은 그 마음에 그것이 좋게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썩어질 것이며 몸과 마음을 바칠만한 가치가 없는 것임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기까지는 그런 일을 중단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죄와 사망과 허무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래서 하나님과 진리와 영생을 위해 몸이 드려지려면) 먼저 마음이 새롭게 되어야 하고, 마음이 새롭게 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으로든 생명의 말씀과 접촉해야 한다. 그렇다면 생명의 말씀에 접촉하여 진리의 빛을 항상 간직하고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빛을 가진 사람을 접촉하여 그에게서 빛을 받고 다음으로 조금씩이라도 빛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그 가진 빛을 비추는 것이다. 즉 피차 가르치고 권면하며 일깨우는 것이다.


진리는 한 번 깨닫고 한 번 실행했다고 해서 그것이 그 사람 안에서 항상 견고하게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마귀가 그것을 유지하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로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교회 생활을 하며 서로 가르치며 격려하며 돕는 가운데서 혹은 개인적으로 말씀을 묵상하며 성령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가운데서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마귀를 대적함으로써 굳게 서기를 원하신다. 성령님은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을 도우시기 위해 우리 곁에 와 계신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은 진리의 말씀을 접함으로써 되는 것인데 이 진리의 말씀의 근원과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다. 그의 인격과 그의 삶, 그의 가르침이 바로 진리의 기초이며 이것이 우리를 항상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서게 만들며 우리를 지음 받은 그 처음 자리로 돌아가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자기 성찰이나 그 어떤 다른 교훈을 주목하는 것보다 주님 자신을 바라보아야 한다. 성경을 읽는 것도 사실상 주님 자신을 접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주님만이 우리를 새롭게 하시며 완전케 하신다. 주님의 가르침 이전에 주님 자신이 바로 길이요 생명이요 진리이기 때문이다.


7.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깨닫기 위해 구체적인 방법들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깨닫기 위해 즉 주님의 빛에 접촉하기 위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에 대해 말해 보라.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시36:9)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51:10)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시13:3)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도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시119:18,37)


"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1:18,19)


기도로 성령의 깨닫게 하심, 빛 비추심을 간구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시19:8)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5:39)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4-17)


성경을 묵상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7:17)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요5:39-42)


하나님의 뜻을 앎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깨닫는데는 상당한 주의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감추셨거나 알려주시는데 인색하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대해 무지한 것은 사람이 사탄에게 깊이 속아 있어서 그 마음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쓸데없는 세상의 잡된 지식과 헛된 일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올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님은 언제나 그의 뜻을 분명하게 나타내신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딤전2:4) 우리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얼마든지 사탄의 훼방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다. 많은 신자들이 공공연하게 드러나 있는 하나님의 뜻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은 그들이 '자기 생각'에 깊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야망과 망상과 세상 상식으로 인해 무장된 사람의 귀에는 어떤 하나님의 뜻도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 한 들어오지 않는다.


사실 종은 주인의 뜻을 애써서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어차피 저절로 알게 되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인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반드시 종에게 그의 뜻(일)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일 시키는 사람이 어찌 그 일에 대한 지시를 감추려 하겠는가?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시다. 우리가 그 분 앞에 일할 태세로 대령해 있기만 하면, 또한 그의 지시를 받으려는 최소한의 의지만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싫어도 그의 뜻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의 뜻을 알려주시지 않을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 알기'를 포기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참으로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앞에 서서 그의 뜻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참으로 그 말씀대로 행하겠다는 [순종의 의지]와 자신의 무지함과 우둔함을 인정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세]이다. 하나님의 뜻은 한편으로 모든 사람에게 열린 것이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오직 위와 같은 자세를 갖춘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닫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아무도 '열려 있는 진리'를 보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들만 은혜로 인해 그 마음을 새롭게 되고 눈이 열려서 진리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11:25-27)

 

하나님은 순종할 마음도 없이 호기심으로 그저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보자고 하는 사람이나 하나님의 뜻을 지식적으로 쌓아두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그의 뜻을 알려주시지 않는다. 그리고 교만하여 자기가 하나님을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으며 엎드려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지도 않는 사람에게도 역시 그의 뜻을 알려주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작정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먼저 주 예수님처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면서라도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순종과 헌신의 태도를 분명히 한 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대기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몇 가지 방법을 준비해 놓으셨다.


첫째,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상고하는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어떤 것인지 헤아릴 수 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분이시다. 어제는 이렇게 말씀하고 오늘은 저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다. 같은 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똑같은 것이다. 우리가 성경 안에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 이렇게저렇게 말씀하시고 역사하신 것을 본다면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 같은 상황에 처한 우리에 대해 그렇게 말씀하시고 역사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하는 사람은 먼저 과거에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는가를 알기 위해 성경을 깊이 상고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성령께서 직접적으로 역사해 주시기를 구할 수 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어떤 말씀이 생각나게 하시거나 어떤 확신을 가지게 하심으로써 우리의 길을 인도하신다. 기도하는 중에 혹은 기도 후 우리에게 어떤 생각이 들고 그 생각이 평안과 확신을 줄 때 우리는 그 생각을 하나님의 뜻으로 마음에 확정할 수 있다. 성경 말씀도 성령의 인도의 수단이 된다. 성경을 읽을 때 객관적으로 명백하게 드러난 뜻(진리)을 아는 것은 이런 종류의 특별한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성경에 세세하게 언급되고 있지 않은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그냥 성경의 사실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쉽게 알기 어렵다. 그럴 때 우리는 성령께서 역사하시사 우리가 성경을 읽는 동안 어떤 특정 말씀이 깊이 다가와서 하나님의 음성으로 느껴지도록 인도 받을 필요가 있다.


셋째, 환경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인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 하나가 빠지는 것도 다 주장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전개되는 환경은 하나님의 뜻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환경이 어느 쪽으로 열리고 있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어느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느냐 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환경의 전개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판별하는 것은 이미 성경을 통해서 깨달은 하나님의 뜻 혹은 마음의 확신을 통해 깨닫게 된 하나님의 뜻을 보다 분명하게 확증하는데 많이 사용된다. 만일 하나님의 뜻이 A인 것이 분명하다면 하나님은 A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A에 순탄한 환경이 전개되면 우리는 A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확증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환경이 A가 아니라 계속 B쪽으로만 열린다면, 모든 면에서 A쪽의 길이 다 막힌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A에 있다고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넷째, 교회(형제들)의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다. 형제들은 함께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몸의 지체들이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는 것이 타당한 생각인지 아니면 엉뚱한 망상인지는 다른 형제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검증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상당 부분 드러나게 된다. 생명이 같으면 생각과 경험도 대체로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에 대해 형제들이 다 찬성하고 그것이 주께로부터 온 일이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일 가능성이 높고 다른 모든 형제들이 다 반대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거의 아닐 것으로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