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의 불행을 보는 눈(요한복음 9장 1~7절)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2절)
신명기뿐 아니라 구약성서 전반에 걸쳐, 하나님의 진노와 벌이 복과 생명의 길을 떠나 불순종하는 백성에게 임한다는 경고와 바벨론 포로 등 실재 그 벌이 실현된 사건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맹인으로 태어나 길모퉁이에서 사람들이 베푸는 동정에 의지하며 사는 한 영혼을 바라보는 제자들은 둘 중 하나 때문일 것으로 생각했다. 태중에 있을 때 본인이 죄를 지었든지, 아니면 부모 특히 엄마가 임신 중에 장애 아이를 만들 중한 죄를 지었든지. 대개의 사람은 부모의 탓으로 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중국과 우리나라에 창궐하자, 한국 강단에서는 코로나19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제시됐다. 2004년 12월 26일 인도네시아 해안을 강타해 23만명에 가까운 생명을 앗아간 지진해일이 일어났을 때, 성탄절을 경배 아닌 휴양으로 보낸 이들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경고라고 한 것처럼 쉬운 해석은 코로나19가 공산당과 신천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식일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제자들이나 코로나19에 대한 그런 해석이 통념적(traditional) 시각에 불과함을 보인다. ‘인과응보’라는 통념적 시각에 따르면, 이웃의 불행은 과거와 연결되어 있고 이미 결정된 것이며 닫힌 것이다. 당사자는 그 불행을 견디며 값을 치러야 한다. 그렇다면 제자들이나 우리가 할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저 마음이 움직이면 동전 몇 개나 던지면 될 일이다.
예수님은 통념적 시각과는 다른 통전적(holistic) 시각으로 보셨다.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3절)을 드러내는 것이 이유라고 밝히신다. 누군가의 불행(과거에 시작)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나타나는 무대라면, 모든 것은 미래적이고 미완성으로 열려 있다.
제자들과 똑같이 통념적 시각을 고집한 바리새인들은 유사 이래 처음 있는, 맹인이 시력을 회복하는 놀라운 일을 두고 어떻게 행동했을까. 그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행하셨다며 죄인으로 판정했다.(24절)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고침 받은 사람을 출교하기까지 하여 증인의 증거 능력을 빼앗는다.(34절) 그래서 그들은 주님께로부터 맹인이요(39절), 죄가 그대로 있는 사람으로 정죄(41절)를 당한다. 반면 고침 받은 이는 예수께 대한 이해가 점점 밝아져, 결국 예수를 믿고 예배한다.(38절).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신 예수의 말씀이 이렇게 온전히 이 사람 속에 이루어진다.(요 6:29)
우리는 성경 말씀을 지나치게 교리화해 경직된 시각으로 이웃이나 자신의 불행을 획일적으로 판단하고 해석하는 일을 주의해야 한다. 나아가 예수님의 열린 통전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참여자로 나를 드림이 아름답지 않을까.
예수께서는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고 하신다.(4절) 우리는 ‘우리가’라는 부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불행 속의 이웃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책임이 있다. 하나님 나라 일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통념적 차원을 넘어 통전적 시각을 가지려고 성령께 간구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육안이 멀지 않으면 심안이 밝을 수 없다”는 소크라테스의 교훈이 생각난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길!
김효종 목사(안성 예수사랑루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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