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tum Christi 와 Totus Christus
노승수 목사
교부들과 종교개혁 시대에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연합으로 말미암아 생긴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alius/aliud, totus/totum과 같은 구분들을 만들었다.
alius/totus는 위격 즉 성부 성자 성령을 가리키고
aliud/totum은 본성 즉 신성이나 인성을 가리킨다.
어거스틴을 따라서
Totus Christus는 모든 곳에 편재하시는 그리스도를,
Totum Christi는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로
어느 곳에 계시다면 다른 곳에 있을 수 없는 것을 설명한다(인성의 본성이 그러하므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사도신경의 고백처럼 음부에 가셨다는 말과 우편 강도에게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말은 서로 모순처럼 들리지만, [인성(human nature) 즉 totum을 따라서는 음부에 가셨지만 제2위격이신 성자의 totus로서는 모든 곳에 계시므로 낙원에 계셨다.
이는 성찬론에서도 그대로 재현되는데
루터는 Totus Christus를 인정하지 못했고 Totum Christi로만 이해를 했다. 따라서 성찬에 그리스도이 인성은 항상 함께 있어야 했다.
그에 비해 개혁파는 Totum Christi는 천상에 성부의 우편에 물리적 위치를 점하고 계시는 것으로 이해했고 Totus Christus로서 우리 성찬에 함께 계시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루터파의 성찬은
인성이 떡과 함께 있는 공재가 되고
개혁파는 성찬이 만유 가운데 편재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로 이해된 것이다.
그러므로 개혁파 성찬은 실제적 임재라는 점에서 루터의 이해와 같지만
그 실제가 Totum Christi가 아니라 Totus Christus라는 점에서 영적인 임재인 것이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볼 문제, 그리스도의 음부 강하는 totus였나? totum이었나? 이것 때문에 자다가 번쩍 깼다. ㅎ~
우선 칼뱅의 견해를 확인해보자. 칼뱅은 1542년에 작성한 제네바 교리문답서 65문에서 이 점을 분명히 표현했다.
65문: ‘음부에 내려가셨으며’라는 말이 가르치는 의미는 무엇입니까?답: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영과 육체의 분리를 뜻하는 자연적인 죽음의 고통만을 겪으신 것이 아니고 그분의 영혼이 베드로가 ‘죽음의 고통’이라고 말한 것처럼 상상하기 힘든 괴로움 속에 갇혀 있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행2:24)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44문 역시 ‘“음부에 내려가사”라는 말이 왜 덧붙여졌습니까?’라고 묻는데 이에 대한 답을
그것은 내가 극심한 고통과 중대한 시험을 당할 때에도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십자가에서 뿐만 아니라 지옥같은 두려움과 고통으로부터 구원하셨음을 확신하고 거기에서 풍성한 위로를 얻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영혼이 겪은 말할 수 없는 모든 고난을 통하여, 특히 십자가에서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아픔과 공포와 지옥의 고통을 친히 당하심으로써 나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라고 답한다.
“음부에 내려가사”라는 문구에 대한 칼빈과 우르시누스의 해석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사망의 고통에 매여 있음, 곧 고통을 당하는 것으로 설명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지지 구절로써 사도행전 2장 24절에 호소한다. 많은 학자들이 그리스도의 음부 강하를 칼뱅을 빌미로 영적으로 해석한다. 즉 그리스도의 음부강하는 실제 사건이 아니라 영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용되는 용어가 영적 강하이다. 내 생각엔 이런 기피의 이유는 신성의 불변성 즉, 신성은 고통을 받으실 수 없는 문제 때문에 생긴 거 같다. 그러나 totum의 개념을 들어 설명하면 이렇게 복잡할 이유가 없다. Totum Christi는 실제로 영혼과 육체의 분리라는 죽음뿐만 아니라 사망의 고통을 [실제로] 겪으신 것이다.
그리고 영적 강하라고 할 때, 이는 앞서 설명한 성찬의 영적 임재와 맞물려서 오해를 불러온다. 성찬을 영적 임재로 설명할 때, 영적이란 말은 totus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만약 같은 맥락으로 음부강하에 적용하게 되면 모순이 발생한다. 이것이 단순히 번역의 문제이든지 아니면 개념의 문제이든지 수정이 불가피하다. 두 문답서가 분명하게 표현한 것은 Totum Christi가 지옥의 고통을 겪으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복잡한 문제가 남았다. 칼케돈을 따라 신성과 인성은 그리스도가 인성을 취하신 이래로 서로 나뉠 수 없고 분리될 수 없다(루터가 성찬에서 Totum Christi를 주장하는 이유도 이런 것이다). 이런 이유로 Totum Christi가 실제로 장소적 의미의 음부에 가셨다면 신성이 고통에 노출되는 것이 불가피하게 된다. 이는 신론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이런 점을 들어서 음부 강하를 실제가 아니라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지점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애매하고 모호한 이 '영적'이란 용어는 수정되어야 한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그리스도는 실제로 지옥 같은 사망의 고통을 Totum Christi로 겪으셨다. 그러나 그가 실제 고통의 장소인 음부에 내려 가신 것은 아니다. 이는 상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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