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행위, 예배와 정의(말라기 1장 6~11절)
하나님은 삶이 함께하지 않는 예배를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제사 행위에 대한 비판과 공격이 많이 나옵니다.(암 4:4~5, 사 1:11~12) 심지어 성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나오니 충격입니다.(말 1:10) 이런 반제의(anti-cultic) 신학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람들의 제물이나 받아먹고 연명하는 다른 신들과 구별되게 하는, 성경적 신학의 핵심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이런 반제의 신학과 반성전 신학을 가장 철저하게 계승한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장사하는 이들의 상을 뒤엎으신 것은 ‘성전 정화’가 아니라, 성전에 대한 사형 선고라 할 수 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말한 대로 물리적 성전의 문을 닫는 행위를 실제로 행동에 옮기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행위는 참 성전을 짓기 위한 시작이었습니다.
구약 선지자들의 제사 행위에 대한 질책도 얼핏 보면 제사 무용론인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참 제사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회개하라는 도전입니다. 신약의 한 편에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하는데, 야고보서에 가면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나와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야고보가 “믿음이냐, 행위냐”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참된 믿음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따져보자는 주장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행위가 없는 가짜 믿음을 강하게 질책하다 보니 믿음은 별 소용없다는 느낌을 주는 위험한 레토릭까지 구사하게 된 것입니다. 진리는 종종 위험한 레토릭이나 과격한 표현으로 다가옵니다. 틀에 박힌 기존의 사고를 흔들어야 하니 어쩔 수 없습니다. 신약에서 믿음과 행위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구약의 제사와 정의의 관계를 이해해야 합니다. 제사를 드리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참 제사를 드리라는 것이지요.
제사의 현실을 강력히 비판하는 맥락에서도 참 제사의 회복을 간절히 소망하는 마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선지자들이 원했던 것은 예배의 폐지가 아니라 참 예배의 회복이었습니다. 요엘도 ‘여호와의 날’을 기대하는 유대인들에게 강력한 경고를 하면서 소망의 한 자락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예배의 회복이었습니다.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욜 2:14)
이 본문은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강림에 인용된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라는 예언의 맥락 안에 있는 말씀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강림으로 참 예배가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보여줍니다. “성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는 말씀도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말 1:11) 예배가 회복될 것이라는 예언으로 이어집니다. 정의는 샬롬을 가져오고 그 샬롬은 모두 조화롭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으로 완성됩니다. 말라기가 성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고 한 계기도 당시 사람들이 총독에게 드려도 받지 않을 “저는 것, 병든 것”을 하나님께 가져 왔던 예배 행위의 태만이었습니다. 일상의 예배도 중요하고, 따로 구별하여 드리는 예배도 소중합니다.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 23:23) 주님의 말씀입니다.
박영호 포항제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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