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원로목사 와 후임 지침서(장기목회자 후임도)
글 장달윤 목사
3. 원로목사 없는 교회에서는 장기 목회가 가능한가?
원로목사 이유 대는 목회자는 원로목사 없는 교회에 부임 하였다면 모두 장기 목회를 무사히 하여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그 증거로 원로 목사가 없는 교회에서 수많은 목회자들이 어찌하여 순탄한 목회를 하지 못하고 시비와 원망과 분란을 일으키고 불편한 교회를 만들고 단기 목회로 단명 하는가?
예를 들어보자.
1) S교회 A목사
전남 이리에 S교회 A목사님은 30여 년의 장기 목회로 2,500여 명의 대교회를 만들어 놓으시고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시자 후임이 부임하여 얼마 되지 않아서 갈등을 빚고 자주 갈리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죽은 전임목사 때문인가?
그곳을 떠나는 목회자들은 원로목사 없으니 아무런 말없이 떠났는가? 그렇지 않다고 추리한다. 자기 부족은 모르고 아무 x 장로가 나빠서 나는 당하고 떠난다고 했을 것이다.
아무런 말없이 내가 부족하여 떠난다고 하는 목사가 과연 있는가?
필자는 아직 그런 말을 남기고 떠나는 목회자를 보지 못하였다.
내 그릇이 적어 떠난다고 말한 자는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원로 목사가 없는데 어찌하여 배척을 받았는가?
원로 목사가 없으니 갈등이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의 자질과 그의 목회 그릇 문제이다.
그래도 통계적으로 원로 목사 후임 재직기간이 일반교회 보다는 길다. 원로목사의 잘 닦아 놓은 터 덕분에 그만큼 이라도 한 것이 아닌가?
2)서울에 중형 J교회는 몇 년 사이 목회자가 세 사람이 교체되었다. 원로목사가 없는 교회인데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나? 누구 탓을 할 것인가?
4. 원로목사 후광을 업고 장기목회 잘하는 목사들 ?.
원로 목사를 모신 다음 후임 목사는 원로목사를 존경하며 원로 목사에게 칭찬을 들으며 유대 관계를 잘 갖고 교회를 부흥시키며 교인들에게 존경을 받으며 목회를 잘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분들은 어떻게 그럴까?
다음 실례를 3곳을 들고자한다. 안동교회. 수산교회. 광주 서림교회.
1) 안동교회 김광현 원로 목사 후임 김기수 목사
안동교회 원로목사 후임 김기수 목사님은 25년이 넘도록 원로 김광현 목사님과 한 울타리 안에 사시면서도 아무런 불평의 소리 없이 교계와 사회의 존경을 받으시며 교회를 3배나 성장시키고 목회 하셨다.
원로 김광현 목사님은 후광이 되어 주시고 김기수 목사님은 선배 김광현 목사님이 35년 동안 큰 기업을 만들어 물려준 은인으로 생각하시고 존경할 뿐만 아니라 아버님 처럼 모시고 자신을 후임으로 삼아 주신데 대하여 늘 고맙게 생각 하심으로 전국 교회에 선배와 어른 존경의 효시가 되었다.
그러므로 선배의 후광을 입으시고 목회만 잘 하실 뿐만 아니라 증경 총회장으로, 총회 원로로 존경받으셨다.
문제는 상대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내게 있는 것이다. 나를 낳아주신 은혜로 부모님을 모시기도 힘이 드는데 어찌 힘 드는 일이 없었다 하겠는가!
인간이 은혜를 모른다면 하등 동물 보다도 못한 자가 아닐까?
힘 드는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자라야 큰 일을 할 수 있으며 그 “큰 은혜의 보좌”를 감당할 수 있다.
인자무적(仁者無敵)이란 무슨 뜻인가? 그 반대는 악자유적(惡者有敵)이 아닌가!
필자가 생존하여 계실 때 전화 통화를 하였는데 김기수 목사님은 원로 목사님과 관계에서 한 번도
마음이 상하여 본 일이 없으셨다고 하셨으며 25년 동안 종종이 아니고 매주 예배시간에는 같이 강단에 올라 가셔서 축도는 원로 목사님이 하시도록 하셨다고 하셨다.
장로들이 이제는 원로 목사님이 연세도 많으시고 하니 담임 목사님이 다 하시라고 건의 하였으나
그것은 내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라고 하셨다고 하였다.
그리고 축도는 원로 목사님이 하시는 것이 더 축복되고 교인들도 더 은혜롭게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선배 어른을 존경하는 예의이며 또한 어른을 모시는 일은 우리의 고유한 문화요 풍속인데 얼마나 아름다우냐고 하셨다.
김기수 목사님은 이어 요즘 젊은이들은 선배와 어른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한데 목회자 세계에서부터 본을 보이고 사표가 되어야 되지 않겠는가 하시며 아쉬워 하셨다. 그러나 원로나 후임이 다 같이 잘 하여야지 한쪽 만 잘하여서도 안 된다고 덧 붙이시고 말씀을 마치셨다.
◈ 원로 김광현 목사님의 대담
원로 김광현 목사님의 말씀을 빌리면 은퇴 후 처음은 예배 후 교회 앞에서 인사를 하였으나 교인들이 담임 목사에게 집중되는 마음이 흐트러지는 것 같아서 중지하였으며 후임 목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것은 일체 중지하고 모든 것에 침묵하였다. 당회 참석이나 결혼 주례 등도 일체 사양하였고 원로 목사 사무실도 주었으나 후임에게 해가 되는 것 같아 사양하였다고 하셨다.
그리고 후임 김기수 목사님에 대한 칭찬이 지금도 자자하시다. 어디 갈 때나 갔다 와서는 아버님께 하듯 인사하고 보고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새해 첫날은 반드시 부부가 세배하러 온다는 것이다.
이런 아름다움이 안동교회 원로 목사와 후임 목사 간에 인격과 덕성, 예의와 범절, 장유유서의 위계질서가 온 교인들에게 존경을 받고 안동교회를 작은 천국을 만들고 부흥과 발전을 거듭하고 전국 교회에 모범을 보였으며 안동교회는 세계 교회에 없는 2대 생존 원로 목사를 배출한 유일한 교회로 기네스북에 올린만 하다.(살아 계실때 대담)
모든 문제는 내게 있다. 김기수 목사님은 훌륭한 인격과 예의를 갖춘 장유유서의 인격을 가지신 목사였기 때문이다.
상대는 내 모습의 반사경이다.
원로 후임 자라면 상대를 원망 말고 내 모습을 교정하고 아량을 넓히고 신앙에 덕성을 쌓아 모든 성도들이 존경 할만한 후임 목사가 되어야 한다.
안동 교회는 원로와 후임이 25년이 넘도록 한 울타리 안에 사택에 살면서 이런 관계를 갖고 지낸 것은 성직자다운 구별된 모습이며 세계 기독교사에 빛나는 유일 무이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성직자라면 일반인들과는 다른 대가 있어야 되지 않은가?
나는 무엇이 다른가?
원로 대업의 후광을 입으시고 덕목을 갖추시고 아버님 처럼 원로목사님을 섬기신 김기수 목사님과
후임의 목회를 위하여 아버님처럼 배려하시는 김광현 목사님은 정말 훌륭한 분들이시며 모든 원로와 후임 목사들이 본받아야 할 분들이시다.
2) 서울 수산교회 백용종 원로 목사 후임 하용삼 목사님과 대담.
백용종 목사님의 후임으로 부임하신 하용삼 목사님은 원로 백 목사님의 도움을 입고 목회를 평안히 하시다가 원로 목사님이 갑자기 유고로 돌아가시자 원로 목사님이 계실 때에 많은 도움이 되었고 목사님이 살아 계셔서 뒤에서 도와 주실때가 훨씬 좋았다고 하였다. 원로 목사를 어렵게 생각 말고 존경하면 어느 원로 목사라도 다 그렇게 도와 줄 것이다.
하 목사님은 원로 목사님이 돌아가시자 심한 홍역을 겪으시고도 평탄한 목회 중 곧 원로가 되신다. 선량한 장로님들이 교회를 위하여 많이 협조를 하셨겠지만 장기 목회를 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그릇과 인격, 그의 덕목과 목회 능력에 정비례한다.
3) 광주 서림교회 장동진 원로 목사 후임 송재식 목사
서림교회는 장동진 목사님이 27여 년의 목회와 총회장을 역임하시고 총회 적으로 존경 받으시는 원로로 계시는 교회인데 후임은 송재욱 목사님이시다. 송 목사님은 목회경험이 전혀 없고 공부만 하고 호신(湖神)교수로 계시던 젊은 40대 목사이신데 부임하셔서 교회를 3배나 부흥시키시고 원로목사님을 존경하고 그의 자녀인 장로와 권사들과도 형제처럼 지내고 있으며 그 어른이 계시는 것이 목회에 유익 하다고 하시고 한자리에 자주 앉아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눔으로 목회에 많은 도움을 입는다고 하였다. 어쩌다가 원로목사님이 출타하셔서 교회 출석을 못하였을 경우 빈자리에 허전함을 느낀다고 하였다.
원로 목사와 같은 자리 하는 것이 불편한 자리가 아니라 한자리에 마주 앉는 것이 유익하고 도움이 된다고 하였다.
요즈음 후임들의 불평을 들으면 한자리에 앉는 것이 부담스럽고 싫다고들 하였다. 서림교회 송목사님과는 정반대의 말이다. 왜? 무엇이?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자신의 성품과 예의와 인격과 그릇에 달렸다고 생각하지 않은가?
이것이 그의 인격이요, 그의 인간성이요, 그의 덕목이요, 그의 목회 그릇이다.
그릇의 크고 작음과 인간성의 차이이다.
전임 목사보다 그릇이 크면 전임의 목회를 담고 남음이 있을 것이고 그릇이 적으면 전임의 목회를 담을 수 없어 넘어지고 자빠지고 쏟아지고 부서지는 것이다. 송 목사님은 그릇이 크기에 교회와 전임을 담고도 교회가 3배나 더 성장하였으며 그가 말하기를 문제는 자신의 인격과 역량에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맞는말이다.
송 목사님은 필자와 대담 당시에 원로목사 퇴임 시 10년 사례 일시불로 드렸는데 10년이 넘도록 생존하여 계시니 당회에서 의논하여 다시 생활비를 책정하여 드려야 되겠다고 말하였는데 그 생각도 송목사의 덕목과 그릇의 크기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 장동진 원로 목사님과의 대담
서림교회 장동진 목사님은 퇴임 후 그날부터 설교. 결혼주례. 길흉사. 교회 앞에서 인사, 축도를 하신 일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하셨다. 부탁과 요청이 있었으나 단호히 거절하셨다. 이유는 물러났으면 후임에게 힘을 실어주어 모든 것이 집중되게 하여야지 교인들의 마음이 갈라져 후임이 일하는데 부
담을 주어서는 아니 되며 후임 목사가 일을 전적으로 소신껏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 야지 원로 목사가 이것 저것 간섭하고 참견하는 것은 교회를 위하여 바람직한 처신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얼마 전 처음으로 원목의 외유로 교회가 비어 여러 목사가 초빙되는 과정에 설교를 부탁받고 한 번 한 것이 전부라고 하셨다. 얼마나 존경스러운 처신이시며 얼마나 존경받을 아름다우신 분이신가!
원로 장 목사님과 후임 송 목사님은 정말 인격적으로 존경받으실 만한 분들이며 한국 교회 목회자들이 한번 생각하여 볼 분들이시다.
이상 원로후임 세분들은 자기우에 어른이 한분 계시는 것을 당연시하고 인정하는 반면 불평하는 후임들은 자기우에 어른이 한분 계시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가 이 교회에서 최고 자라는 인식에서 불평이 나오는 것이다.
군대에 상사가 있다고 불평할수 있는가? 원로는 내 우에 상사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교회가 무슨 군대입니까? 할수 있겠지. 군대는 아니지만 그런 마음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는 무형의 구조이다. 군대와 같은 유형에 계급 사회는 아니지만 무형의 계급이 존제 한다. 어른 존경하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원로 후임 목사들은 이상 논한 세분 후임들의 인격과 아량과 덕목과 예의를 배워야 할 줄 안다.
원로 후임들은 아무수고 없이 다 차려놓은 밥상을 받는 격인데 그 은혜를 잊고 어떤 이유로든 배은 망덕자가 되어서는 아니된다. 부임할때 초심은 어떠 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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