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가지 罪 - ⑦ 정욕(삼하 11:1-5)
- 이동원 목사
다마스코스텐 이라는 그런 역사 물을 저술하는 작가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유럽 벨지움 왕가의 흥망성쇄를 다룬 책을 썼습니다. 그 중에 3명의 에드워드라는 글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레이놀드 라는 왕잡니 다. 그런데 이 레이놀드 왕자에게 별명이 하나 있는데 그 별명이 크라수스 라는 별명이었습니다. 그 뜻은 뚱뚱보다 fat이다 그런 뜻입니다. 이 사람은 차기 왕이 될 사람인데요 그런데 부왕이 갑자기 서거하자 그 동생 에드워드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정권을 잡습니다. 그리고 형 레이놀드를 유커크 라고 불리워지는 캐슬 감옥에 가두게 됩니다. 그런데 재미 난 것은 뭐냐하면 이 사람이 형을 절대로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그리고 감옥을 비교적 아주 살기 좋은 그런 감방으로 아담하게 잘 꾸미고 감방에다가 창문을 하나 냈습니다.
작은 창문인데 그리고 형한테 이렇게 말합니다. 형이 원하면 언제든지 창문으로 나갈 수가 있고 그래서 자유인이 되실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창문이 아주 사이즈가 적다 말이죠. 이 사람 뚱뚱하거든요. 몸무게를 줄여야만 그 창문 바깥으로 나가서 자유인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놓고 이 에드워드라는 이 동생으로서 왕이 된 이 사람은 신하들을 모아 놓고서 이렇게 말합니다. 형이 만약 저 창문을 몸무게를 줄이고 창문을 나올 수 가 있다면 의지 관리에 성공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나는 기쁘게 내 형이 나온다면 왕의 자리를 내 형에게 양위하겠다. 나오지 못한다면 자기 몸무게 하나 콘트롤할 수 없는 사람인데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겠는가. 내 결정이 옳은 것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신하들에게 말을 합니다.
그리고 감방을 지키고 있는 그 경비하는 사람들에게 매일 하루 세 끼씩 산해진미의 음식을 이 감방에다가 제공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원하면 언제든지 간식을 풍성하게 먹을 수 있도록 그렇게 배려했습니다. 어떻 게 되었을까요? 감옥에서 나왔을 것 같아요 못 나왔을 것 같아요? 못 나 왔습니다. 10년 동안 나오지 못했어 요. 10년 후에 그 동생 에드워드가 전쟁터에서 전사하게 됩니다. 전사를 했어요. 그래서 자유인이 되었어요. 그런데 나오자마자 자기 몸을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나오자마자 얼마 안 돼서 병사하고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레이놀드라는 이 왕자의 비극 이것은 그가 왕위를 찬탈당하고 감옥에 들어갔다는 그런 비극이라기 보다도 이것은 그가 한평생 탐식 이라는 유혹을 콘트롤하지 못하고 탐식의 감옥에서 살다간 사람의 비극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중의 어떤 분은 목사님 뭐 헷갈리는게 아닌가 탐식은 옛날 설교했는데 왜 또 탐식을 얘기하나. 그렇습니다. 오늘은 정욕에 대해서 정욕의 죄에 대해서 얘기하는 날 입니다. 그러나 이 탐식을 얘기하는 것은 정욕의 죄가 탐식의 죄를 아주 닮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평생 자기 몸을 콘트롤 하지 못하고 탐식의 감옥에서 사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한평생을 자기의 정욕을 콘트롤 하지 못하고 정욕의 감옥에서 평생을 살다가는 인생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이 공통점이 있느냐 하면 탐식의 정의가 뭡니까? 탐식은 절제되지 못한 식욕입니다. 절제되지 못한 식욕. 정욕이란 것은 뭡니까? 그것은 절제되지 못한 성욕, 그것이 바로 정욕이라고 할 수 가 있습니다. 그것이 웹스터사전의 정의이기도 합니다. 러스트 러스트 lust바로 이 정욕의 정의가 콘트롤 되지 못한 성적인 욕구.
여러분 식욕이란 것은 필요한 것이죠? 식욕 없으면 우리가 살 수 없습니다. 큰일납니다. 그러나 콘트롤 되지 못한 식욕은 탐식이고 그것은 죄입니다. 마찬가지로 성욕 없으면 안 돼죠? 우리 부모님들의 성욕 때문에 우리가 다 여기 존재하고 있습니다, 인간으로. 성욕 없으면 안 돼요. 성욕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 다. 그러나 콘트롤 되지 못한 성욕은 정욕이라는 이름의 죄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탐식이라는 것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식사습관 이라든지 잘못된 식욕관리가 축적되어서 습관으로 나타난 죄악이 바로 탐식의 죄라면 정욕도 마찬가지로 자기의 성적욕구 를 콘트롤 하지 못하는 습관의 누적이 가져온 죄악이 바로 정욕의 정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자,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사람이 정욕의 죄에 떨어진 것이 아니란 말 입니다. 그것은 일관성 있는 삶의 습관이 어느날 결정적인 범죄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함께 생각할 다윗의 케이스 라고 할 수가 있어요. 밧세바와 더불어 간음의 범죄를 다윗왕이 저지른 사건.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이 죄속에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점을 먼저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자, 사무엘하 5장13절을 보시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본문은 사무엘하11장입니다만. 사무엘하5장 13절에 보시면 사무엘하 5장13절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다같이 시작. 다윗이 헤브론에서 올라온 후에 예루살렘에서 처첩들을 더 취하였으므로 아들과 딸들이 또 다윗에게서 나니 이제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우리나라처럼 분열되어 있다가 통일이 됩니다. 다윗은 통일 왕국의 왕이 되었습니다. 아주 기분 좋은 날이 도래했습니다. 왕이 하도 기분이 좋으니까 기분좋게 나라가 통일된 기념으로 어떤 일을 했냐하면 여기 보니까 처첩들을 많이 취했다 그러니까 통일기념으로 후궁들을 여자들을 많이 다윗이 거느리기 시작했던거예요. 여러분, 그것은 그 당시 에 어떤 문화적인 습관 안에서 왕이 이런 후궁들을 소유하는 것이 허용 되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범죄였습니다. 다윗은 많은 여자을 거느리고 있었어요. 그리고 정욕이란 것을 살찌워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많은 여자들로 만족할 수 없었던 다윗은 어느 날 이번에는 그 당시의 법도 허용하지 못할 비합법적인 결정적인 범죄속 에 떨어지게 됩니다.
자, 오늘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정욕이라는 이름의 범죄, 그 죄의 정체성을 함께 생각하고자 합니 다. 정욕, 어떤 죄일까요? 정욕은 어떤 죄일까요?
첫째로 이 정욕은 현실도피의 죄악입니다. 이 정욕이라는 범죄가 발 생하는 모든 상황을 우리가 들여다 보면 그 안에 하나의 공통성이 있어요. 그것은 뭐냐하면 현실에 대한 어떤 스트레스, 현실의 긴장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어 하는 현실도피의 심리가 반드시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삶의 무료함을 깨뜨려 보기 위해서 혹은 삶의 활력을 얻기 위해서 이런 여러 가지 그럴듯한 명분을 가지고 성적모험에 나섭니 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정욕이라 는 이름의 죄속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밑바탕에 숨어 있는 가장 중요한 동기는 뭐냐하면 결국 현실도피예요.
다윗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자, 본문이 어떻게 시작되나 보세요. 11장1절입니다. 본문이 시작되는 11장1절을 다시 한번 읽습니다. 시작. 해가 돌아와서 왕들의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 신복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저희가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으니라 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다윗이 부하와 참모들, 병사들을 다 전선에 내보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아직도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습니다. 다윗답지 않은 일이예요. 옛날에는 전쟁이 일어나면 다윗은 앞장섰습니다. 전선에서 함께 그 밤을 지내며 병사들과 싸우던 다윗이 이 번에는 부하들을 참모들을 다 전선에 내 놓고 혼자 예루살렘에 남았다고 말합니다.
뭐 여기까지도 봐 줄 수는 있어요. 뭐 그럴 수도 있죠. 그러면 지금 전시중이니까 아침부터 나가서 그 상황을 체크하고 그리고 이 전쟁을 독려하고 보고를 받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 다음절을 읽어 보세요. 2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2절 시작. 저녁 때에 다윗이 그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2절 시작이 재밌어요. 저녁 때에. 사람이 일어나는 시간은 아침에 일어나는 겁니다. 여기 보면 저녁때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저녁 때에 다윗이 침상에서 일어나 그러니까 하루 종일 잔 거예요. 하루 종일 잔 거. 하루 종일 자고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지붕을 거닐다 가 뭐가 보였어요?
목욕하는 여자가 자기 눈에 띈 것입니다. 왜 이랬을까요? 아마도 다윗은 자, 부하들을 다 전선에 보내고 장군들을 보내고 혼자 예루살렘에 남은 것이 틀림없이 미안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떤 죄책감 guilt complex 에이 잊어 버리고 잠이나 자자. 그리고 하루 온종일 잤을 것임에 틀림없어요. 그리고 일어나다가 눈에 띈 목욕하는 한 여자, 갑자기 그는 이 모든 것을 잊어 버리고 어떤 환상의 세계로 도피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정확하게 현실도피의 심리예요.
심리학자들은 소위 정욕, 간음 이런 죄속에 떨어지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공통된 하나의 심리가 있는데 그것은 뭐냐하면 환상illusion 환상을 봐요. 그리고 환상 속으로 도피하는 것이예요. 환상속의 여자. 포르노 중독자들, 사람이 어떤 성적 호기심을 가지고 성장과정에 있어서 이런 것을 다소간 접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빠져 있다, 중독 되어 있다, 이건 심각한 것이죠. 잡지에 중독되어 있다 비디오에 중독 되어 있다 요즈음은 인터넷에 중독 되어 있다. 이 중독증 환자들. 환상속의 사람을 찾고 있는 거예요. 환상 속의 여인, 또 환상 속의 남자. 공상세계 속에 살고 싶어하는 것이예요.
자, 이렇게 되면 뭐냐하면 현실 적응력이 떨어져요. 현실에 적응을 못해요. 공상에서 공상으로 계속 도피합니다. 이렇게 되면 현실 속에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자기 아내, 아주무력한 아내 그리고 재미없는 성적인 파트너.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는 그것이 물론 사실이 아닌 것을 압니다. 배우들이 연기하는 거죠. 쇼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도 그것을 사실처럼 믿고 싶어하고 그런 여자 그렇게 재미를 누릴 수 있는 여자가 이 세상 어딘가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 환상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이런 환상을 찾으면 찾을수록 현실적 응력이 떨어져요. 현실에서 무력한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그의 건강함이 파괴되어 가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이것이 현실도피의 심리인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그러나 기독교는 어떤 종교입니까? 니버라는 유명한 신학자는 기독교에 어떤 주의가 있다면 그것은 현실주의다 realism이다 이런 말을 했어요. 기독교는 현실을 도피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현실과 대결하라고 말합니다. 현실을 인정하라고 말합니다. 현실을 수용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현실과 대결하라고 말합니다. 두려워 하지말라 놀라지 말라 담대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어떻게 합니까? 마귀는 자꾸 환상을 보여줘요. 사실이 아닌 환상. 그거 공상이예요. 그런 여자 없습니다. 이 세상에 그런 여자 내가 비디오에서 본 여자와 실컷 놀을 수 있는 그런 재미, 그런 현실은 이 땅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실은 남자들이 거기에 속는 거란 말입니다. 그리고 그 환상 속으로 도피 합니다. 현실을 떠나고 싶어합니다. 그러니까 점점 현실에는 적응 못하는 무기력한 환자, 건강함을 잃어 버린, 그리고 건강을 상실한 환자처럼 돌변해 갑니다. 여기 정욕 이라는 무서운 죄악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현실로부터 도피시켜가는 죄악인 것입니다.
두 번째로 정욕은 인간을 도구화 시키는 죄악이예요. 인간을 도구화 하는 죄악. 이 정욕에 빠진 사람들에게 또 하나 공통점이 있다면 상대방의 인격에 관심이 없어요. 무엇에 관심이 있느냐. 딱 하나 밖에 없어요. 성욕의 충족. 자기 욕심을 충족 시키는 것 그것 밖에는 다른 생각이 아무 것도 없어요. 그렇다면 여러분 매춘의 행위와 다를 것이 없잖아요. 매춘행위의 본질이 뭡니까? 거기에는 인격이 없어요. 성을 사고 파는 것입니다. 돈 주고 성을 사기도 하고 팔기도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인격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 이름을 물어보면 안돼요. 취미가 뭡니까 물어보면 안 돼요. 그냥 성적인 행위와 욕구에 몰두하고 일어서면 그만입니다. 이것이 매춘의 본질입니다.
그러나 사랑하시는 여러분, 진정 한 사랑은 다르습니다. 사랑은 인격이 있습니다. 사랑은 인격적인 교감이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대한 친절과 호의가 있고 배려가 있고 그리고 교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따뜻함 속에서 인격은 자라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철저하게 정욕은 빼앗는 것이예요. 취하는 것, 빼앗는 것. 힘을 가지고 빼앗고 돈을 가지고 빼앗습니다. 그것이 정욕의 본질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인간이 이런 정욕의 죄에 떨어지게 되면 인격을 떠난 성교 행위에만 몰두하는 사람이 돼요. 그러니까 이런 남자를 보고 여자들이 자꾸실망을 해갖고 짐승같다 이렇게 말을 하지 않습니까? 인격이 빠져 있기 때문에 그렇다 인격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이런 사람 성교 행위만 몰두하다 보면 그 욕구는 점점 강렬해 집니다. 나중에 더 큰 자극을 찾아 떠나게 됩니다. 반드시 이런 사람들이 빠지는 마지막 종착역은 변태성욕이예요. 새디즘. 매조키즘. 성적인 가학 심지어는 짐승과의 수간, 혹은 동성연애 이것이 이러한 욕구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지막 갈 수 밖에 없는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불행한 사실은 현대의 성문화 개방문화는 이것을 부채질하고 있고 우리도 모르게 우리는 이 성문화에 속고 있습니다. 그것이 로맨스라고 착각합니다. 그것이 삶의 모험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우리는 악마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자, 마귀는 우리가 이성을 인격으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따뜻한 정신을 가지고 접근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인격에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리고 우리를 자유하지 못한 욕구의 노예가 되도록 계속 만드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인격에 관심을 갖지 말라고 소리칩니다. 다만 그 사람를 성적 욕구의 대상으로 보도록 소유하도록 내가 가진 힘을 가지고 소유하도록 혹은 내가 가진 돈을 가지고 소유하도록 만듭니다. 다윗이 그 죄에 빠진 것이예요.
자, 목욕하는 여자를 볼 수도 있는 거죠. 보이는데 어떡하겠어요? 보이는데. 보이는데. 그것까지는 우리가 어찌 할 수 없어요. 그런데 그 다음에 보세요. 3절 보시기 바랍니 다. 본문의 3절에 보시면 뭐라 했습 니까? 다윗이 보내어 그 여인을 알아보게 여기에서 문제가 생겨요. 왜 알아보긴 알아봐요, 자꾸만.
성욕과 정욕의 한계성이 뭐냐? 성적인 욕구는 반드시 있어야 하고 그것이 건강한 사람의 증거지만 그것이 구체적인 잘못된 계획으로 발전할 때 이미 정욕의 영토 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다윗은 보내어 그 여인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남의 아내예요. 우리야의 아내예요. 그래도 상관이 없습니다. 4절 다윗이 사자를 보내어 나는 왕이니까 내가 가진 힘을 가지고 또 내가 가진 돈을 가지고 상대방을 소유하려고 합 니다. 이것이 바로 도구화, 인간을 도구화 시키는 범죄인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범죄의 가장 일차적인 책임은 우리 남자들에게 있다고 생각 해요. 그러나 여자도 책임이 전혀 없진 않아요. 여자도 책임이 좀 있죠. 새벽이나 밤에 목욕을 하지 아직 날도 저물지 않았는데 왜 목욕하는 것을 이렇게 남들에게 함부로 보입니까?
저는 크리스찬 여성들에게 아름다워질 특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워질려고 노력을 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노력과 남을 유혹하는 것은 차이가 있어요. 아름다운 화장과 유혹하는 화장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한계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각자 알아서 할 노릇이지만. 내가 남을 유혹하는 것 같다 거기는 크리스찬들이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어떤 분한테 이야길 들었는데 화장이라는 것은 20대 결혼 적령기의 여자들이 조금 얼굴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도와 주는 것, 그것이 화장의 본 의미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자꾸만 변질이 된 것 같아 요. 20대는 화장을 하고 누가 그러는데 30대는 치장을 한다고 그러더라구요. 40대는 분장을 한다고 그러고 50대가 되면 변장을 한다고 그럽니다. 60대 가면은 환장을 한다고 합니다. 저는 화장도 문제일 수가 있지만 옷차림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남을 유혹하기에 합당한 복장, 이건 좀 조심해야 될 것 같아요.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남을 꼬실려는 복장은 좀 곤란하지 않습니까? 여기 크리스찬 여성들의 책임의 어떤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자매가 교회 오는데 배꼽티를 입고 왔다고 그래요. 배꼽티. 안내하던 집사님이 기가 막혀서 자매님 아무리 개방시 대이지만 어떻게 배꼽을 내놓고 교회를 오십니까? 그러니까 이 자매가 정색을 하고 그러더래요. 집사님 성경도 모르십니까? 아니 성경에 뭐라그랬소? 그러니까 집사님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그러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인간을 지나치게 성적인 대상으로만 늘 파악하려는 우리들의 사고방식, 이것이 이 시대의 많은 정욕의 죄들을 편만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정욕은 인간을 도구화 시키는 죄악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정욕은 값비싼 대가를 지불을 요구하고 있는 죄악 이예요. 정욕이 죄인줄 알면서 사람들이 왜 이 죄에 빠집니까? 히브리서11장25절에 보면 이런 말이 있어요. 모세가 죄의 낙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 받는 것을 좋아했다 거기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죄악의 낙. 죄에 쾌락이 있단 말이예요. 왜 죄에 빠져요? 쾌락 때문이죠. 사단은 쾌락을 보여주지만 그러나 쾌락 저 건너편에 있는 그가 지불해야 할 값비싼 대가는 절대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사단은 술의 쾌락을 보여 주지만 술이 깨인 그 이튿날 아침 두통이나 직장의 부적응의 모습을 절대로 보여주진 않을 겁니다. 사단 은 마약의 쾌락과 흥분을 보여주지만 그 마약이 망가뜨리고 있는 그 사람의 무너지는 인생을 사단은 보 여주지는 않습니다. 사단은 도적질을 통한 소유의 쾌락을 보여주지만 그것이 무너뜨리고 있는 그 사람의 인격과 그리고 그 사람이 보내야 하는 지겨운 감옥의 고통은 보여주지 않을 겁니다. 사단은 정욕을 로맨스처럼 보여주지만 그러나 그 정욕의 죄가 가져올 가정파괴, 인격파괴, 그리고 아내의 가슴 속에 만들고 있는 멍든 상처 그리고 자식들에게 물려 주어야 할 그 값비싼 대가 이런 것들은 결단코 우리들에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만약 다윗이 그 결과를 알았더라 면 보았더라면 이 범죄를 했을까요? 다윗이 어떤 대가를 지불했습니까? 자, 우선 자기 죄를 카바하기 위해서 남편을 죽입니다. 밧세바의 남편이었던 우리야를 전쟁 제일 위험한 곳에 보내서 죽이지 않습니까? 살인 죄를 범해요. 또 자기 죄를 카바하기 위해서 거짓말의 범죄를 계속 범했습니다. 자, 아이가 나왔어요. 이레 만에 죽습니다. 하나님의 징계였어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다윗의 아들 암논이 이복누이였던 다말과 간음을 하게 됩니다. 자식들이 아버지의 행태를 그대로 물려받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신하들로부터 더 이상 존경을 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다윗의 왕궁은 휘청거립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이것이 다윗이 이렇게 이 한 순간의 로맨스를 위해서 한 순간의 정욕이라는 이 죄를 위해서 이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할 가치가 있어요? 똑 같은 죄를 저지르면서 똑 같은 모험 속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오늘 이 시대에 얼마나 많이있느냐 말이예요. 저는 이 간음이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죄는 용서에도 불구하고 대가지불을 많은 경우에 요구합니다. 값 지불을 요구 합니다. 죄 삯은 사망입니다. 반드시 죄는 삯을 받아 냅니다. 값을 받아 냅니다. 대가를 치루게 만듭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이것은 육체적 사망 뿐만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격 의 사망이고 이것은 가정의 사망이고 그리고 우리가 소중히 여기던 가치들의 포기, 가치의 사망을 뜻하는 것입니다. 정욕은 값비싼 대가 지불을 요구하는 죄악입니다.
결론은 이것이예요. 어떻게 이 정욕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제가 한 세 가지만 강조하겠습니다. 첫째 회개하셔야 합니다. 회개하는 것. 다윗이 회개했습니까? 네 회개했습니다. 시편51편에 보면 다윗의 참회의 시편이 나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은 다윗이 너무 늦게 회개했어요. 조금 더 일찍 회개했더라면 그 많은 상처를 줄일 수가 있었을 터인데. 하나님이 나단 선지를 보내어 그를 책망하자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다고 판단한 다윗은 비로소 그의 왕의 보좌에서 내려와 참회의 기도를 올리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일찍 회개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거스틴의 참회록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어거스틴이 마니교 라는 이단에서 빠져나와서 방탕한 생활에서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도 회개하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 종교 교육의 영향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방탕한 생활을 살면서 어느날 기도하기를 하나님 나를 이 정욕에서 건져 주세요. 그런데 참회록에 보면 재미난 말이 있습니다. 그 기도를 하면서 동시에 다윗은 또다른 기도를 하고 있는 자신을 보았대요. 이렇게 기도하고 있었대요. 하나님 저를 정욕에서 구해 주세요. 그러나 아직은 마소서. 그렇게 기도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다윗이 발견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속고 있는지 모릅니다. 회개는 당장 해야 돼요. 지금 당장. 오늘 당장 하셔야 돼요. 오늘 이 죄속에 빠져 있는 분이 있다면 당장 하십시오. 당장. 요셉처럼 거기서 유혹을 느낄 때 당장에 거기서 뛰쳐 나와야 합니다. 당장에 끊어야 돼요. 한 칼에 끊어야 합니다. 한 칼에. 상황이 너무 곤란하다고 생각되시면 내가 상대방 을 만날 수 있는, 유혹을 느낄 수 있는 상황과 환경과 장소를 거절하고 차라리 떠나십시오, 어디론가. 당장에 회개하셔야 합니다.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사랑하십시오. 소극적인 회개만 가지고 안돼요. 적극적인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마땅히 사랑해야 할 분을 사랑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남편, 하나님이 내게 주신 아내, 그 아내와 그 남편의 하나님이 주신 인격의 향기와 아름다움을 다시 발견하세요. 그리고 주님이 주신 그녀를 사랑해 보세요. 그리고 엔조이 해 보세요. 거기에 넉넉한 인격적인 사랑. 오도된 그런 로맨스로 미화된 허구의 사랑이 아니라 진정으로 따뜻한 인격적인 사랑을 당신은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랑을 해 보세요.
여러해전 타임지에 이런 기사가 났습니다. 제가 그 기사 읽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어떤 심리학자가 미국의 여러 집단을 대상으로 성적 만족도가 제일 높은 집단이 누구냐 조사를 해 봤어요. 뭔 줄 아세요? 제1위가 복음주의적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들, 그들이 성생활의 만족도가 제일 높았어요. 이것은 복음 을 깨닫고 주님을 사랑하고 또 주님을 함께 사랑하는 부부들이 인간적인 사랑에 있어서도 훨씬 더 풍성할 수가 있다. 저는 여러분들이 그 사랑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내 아내 앞에, 내 남편 앞에 새로운 사랑의 시선으로 서십시오. 그를 엔조이 하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파트너를. 참 사랑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 거룩한 일에 바빠지십시오. 마귀에게 틈을 주시면 안 돼요. 사탄에게 틈을 주지 마세요. 다윗은 기회를 주고 있었단 말이죠. 아니 전쟁에 못나가면 아침부터 나가서 상황 보고 받고 체크하고 자기 해야 할 의무 앞에 서 봤으면 다윗의 형편은 달라졌을지 모릅니다. 여러분, 거룩한 일에 바빠지십시오. 기독교 철학자 가운데 조렌 케에르케고르란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한 번은 매춘의 유혹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것 때문에 괴로와 합 니다. 아파합니다. 하나님 저를 거룩 하게 하소서. 그런데 그게 쉽게 되지 않아요. 드디어 그는 대답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그의 일지에다가 이런 말을 기록합니다. 마음의 깨끗함 purity진정한 마음의 깨끗함은 오직 한 가지 목적에 몰두하는데 있다. 그는 그것을 divine purpose라고 말합니다. 신적인 목적, 하나님의 목적 앞에 몰두할 때 나는 내 마음이 깨끗해 지는 것을 느낀다. 그렇습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남편, 아내, 가정으로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정말 해야 할일, 이제부터 거룩한 일에 바빠지십시오. 부부가 함께 십자가 앞에 서 보시죠. 그리고 함께 하나님 앞에 헌신해 보시죠. 함께 큐티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찬양하고 함께 전도하고 함께 주의 몸된 교회를 섬기고 사단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때 사랑하시는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이 회복될 것입니다. 참 사랑을 경험할 것입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우리는 새로운 하 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것입니다. 용서하는 보혈의 능력을 체험할 것입니다. 그리고 순수한 사랑이 우리 가정에 터져나오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이 복된 행복이 여러분과 저를 정욕의 죄에서 지켜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십시다. 우리 조용히 통성으로 기도할 때, 통성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 저를 회복시켜 주세요. 우리 가운데 이 죄에 빠진 사람도 있고 빠지지 않았지만 그 강렬한 유혹 때문에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이미 이 죄 때문에 상처받고 있는 여인들이 아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지켜 주세요. 하나님, 거룩을 사모하게 도와 주십시오. 하나님, 깨끗하게 살도록 도와주세요. 성령으로 역사해 주시옵소서. 우리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기도하십시다.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 아버지 하나님 성령으로 역사하시옵소서. 이 시간 거룩한 영으로 임하시사 우리의 마음 속에 깨끗함을 주시옵소서. 주의 보혈로 우리를 깨끗이 씻어 주시옵소서.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해 주시옵소서. 오 성령님 이 시간 거룩한 능력으로 임하시사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고 깨끗함을 허락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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