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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가지 罪 - ⑤ 탐식

구원의 계획 2011. 8. 2. 20:51

 

일곱 가지 罪 - ⑤ 탐식(창25:27-34)
                                               - 이동원 목사

 

제가 신학교에서 그 설교학을 공부할 때 설교학 교수님이 자주 이렇게 강조했던 말이 새롭습니다. 당신들은 설교준비를 할 때 먼저 청중들을 위해서 준비하기에 앞서서 자신을 위해서 설교준비를 해야 된다. 그리고 그 설교에서 적용을 강조할 때 그 설교의 내용이 먼저 설교자인 자신에게 적용될 수 있는가를 계속 해서 물어야 한다. 이런 강조를 했습니다.

 

 오늘의 설교는 그래서 특별히 제 자신을 위한 설교입니다. 그리고 제 자신에게 적용하고자 하는 그런 설교입니다. 설교 제목이 뭐에요? 탐식이죠, 네! 저도 탐식의 경향이 있다는 것을 먼저 고백하겠습니다. 네. 제가 약간. 그렇게 비만하진 않지만 약간 비만하잖아요? 또 건강진단을 해보니까 뭐 고지열증, 또 지방간 뭐 이런 경고가 나오는 것을 보면 저에게도 분명 탐식의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거 같습니다.

 

 사실 오랫동안 저는 이런 변명을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뭐냐하면 크리스챤들이 뭐 죄 지을 수 없는데 다른 재미있나? 먹는게 재미지! 그것이 제가 먹기위한 제 아주 변명이었습니다. 그래서 먹는 것 에 관한 한 좀 조심하지 않았던게 사실이고 닥치는 대로먹자, 주는 대로 먹자 또 누가 목사님, 식성이 어떠십니까 물으면 잡식성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일곱가지 그 죄악의 시리즈를 제가 쭉 이렇게 공부하면서 제 자신이 공부하면서 제가 분명하게 깨달은 사실은 이 탐식이라는 것이 죄다. 그리고 질병이다라는 사실을 제가 확인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는 여러분에게 드리기 앞서서 먼저 제 자신을 위한 설교라는 것을 고백하고 말씀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저도 회개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제가 한 설교처럼 앞으로 살 것입니다. 그래서 일년 후 에는 아주 날씬한 몸매로 이 자리에 서서 설교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려면 여러분들이 또 도와주셔야 되요. 교우들이 우리 목사들은 돌아 다니면서 자꾸만 얻어먹다보면 먹사가 되는데 뭐 그렇게 거창하게 식사 대접할려고 하지 마시고 아주 간, 간단하게 대접 그런 기회가 있으면 간단하게 대접을 해주세요.

 

 뭐 우리가 서로 대화하고 기도하고 그런 것이 중요하지 먹는 것이 중요하지 안 찮아요? 어떤 분들이 그러다, 그러다 보면 목사님, 그리고 대접 받으실 때 절대로 잡채는 잡숫지 마세요. 그래요. 거 이상하더라구요? 그래서 잡채가 뭐 문제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뚱뚱한 사람이 잡채를 먹으면 순대가 됩니다.

 

 탐식이 왜 죄인가? 저는 이 질문에 대한 성서적 대답을 위해서 한참 고민하다가 본문을 찾았습니다. 창세기 25장 이 본문은 우리에게 사실은 익숙한 그런 본문이고 잘 알려진 사건입니다. 에서가 팥죽 한 그릇을 탐한 사건 그래서 장자의 권한을 경솔히 여기고 그것을 팔아 넘겼던 그런 사건입 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이런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탐식이 왜 죄냐? 또 죄라면 탐식은 어떤 죄인가? 탐식은 어떤 죄인가? 본문은 거기에 대해서 우리에게 대답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탐식이라는 것은 우리를 순간적인 유혹에 굴복시켜 버리는 죄악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순간적인 유혹에 굴복시켜 버리는 죄악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유혹, 그리고 모든 죄악에 그 순간성이라는 게 있어요. 순간성. 순간적으로 잘못 판단하고 순간적으로 유혹에 굴복하죠. 그런데 우리가 순간적으로 강력한 우리에게 자극을 느끼게 하는 대표적인 그 욕구들이 있다면 아마 세 가지일 것입니다.

 

하나는 물욕, 둘째는 성욕, 그리고 세 번째 는 식욕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근데 이 중에서 실천에 옮기기에 가장 쉬운 것이 아마 식욕일 것입니다. 물욕이라는 것은 자 물건 보고서 탁 욕심이 발동해요. 근데 욕심이 발동하지만 이 돈이 있어야 당장사지요. 어떤 사람은 돈 없이도 그냥 가져가시는 분도 있어요. 그래서 이 물욕을 이기지 못하고. 또, 이 성욕이라는 것도 딱 보고 이 성을 보고서 내가 어떤 이상한 느낌 을 갖고 콘트롤 불가능하게 되고. 근데 이것도 행동에 옮기자면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연구를 많이 해 갖고 상대방을 꼬셔야만 이것이 가능한 사건이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에 옮기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근데 이 식욕이라는 것은 이게 뭐 행동에 옮기기가 무척 쉽거든요. 이 딱 보고서 이렇게 그냥 느껴지자마자 그냥 그냥 잡수시면 되는 겁니다. 먹어치우시면 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실천에 옮기기가 가장 쉽기 때문에 그 만큼 빠지기에 쉬운 죄고 따라서 우리가 그것을 죄라고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 탐식이라는 이름의 죄악인 것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에 나타난 에서가 그런 탐식의 순간적인 유혹 앞에 굴복한 아주 클래식한 고전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 가 있습니다. 그것은 에서가 오랫동안 기아에 허덕이다가 그러다가 인제 팥죽 한 그릇을 보고서 먹었다 뭐 이러면 이건 충분한 동정의 여지 가 있죠. 근데 그게 아니잖아요? 이제 사냥하고 돌아 왔어요. 그러니까 피곤한 것은 사실이에요. 하루 종일 사냥했으니까 피곤한데 그리고 출출 한 것도 사실이고. 그러다가 팥죽 한 그릇을 딱 봤어요.

 

 근데 그 순간 눈이 뒤집어져갖고 자기가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그런 가치도 팽개쳐 버리고 먹었다. 여기서 우리는 그 에서의 탐식이라는 죄악을 볼 수 가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30절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시면요 29절부터요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부터 돌아와 심히 곤비하여 자 이제 30절 다 같이 한번 더 읽습니다. 시작.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곤비하니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그런데 우리말 번역에는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 그래서 우리가 이 붉은 것이 팥죽 아니겠느냐? 보통 팥죽이라 그러는데 팥죽은 아니고 팥죽 비슷한 죽인데 우리하고 제일 팥죽하고 비슷하니까 그렇게 번역을 한 것이죠.

 

여기 보면 그 죽이라 그랬고 그 붉은 것 그랬습니다. 붉은 것. 그 붉은 것. 근데 이것을 제가 히브리 원문에서 보니까 아주 재밌어요. 이게 어떻게 됐냐면 히브리말로 이렇게 돼 있습니다. 하 아돔. 하 아돔이 두번 반복됩니다. 한 번이 아니에요. 그니까 오 그 붉은 것. 오 붉은 것. 이 두번 반복된 거에요. 하 아돔. 하 아돔. 네. 붉은 것. 아돔이 붉은 것이에요. 그래서 아돔이란 말에서 이 에서에게 나중에 별명이 붙여졌다 그랬죠? 그 별명이 뭐라 그랬어요? 에돔. 이 아돔에서 에돔이 나 왔어요.

 

 그래서 에서의 나중의 후예 들이 무슨 족속? 에돔 족속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 붉은 것. 오 붉은 것. 그것을 본 순간 끓어오르는 어떤 음식에 대한 욕망, 콘트롤하기 어려운 욕망의 발동을 여기서 우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 거기다가 나로 먹게 하라. 우리말을 아주 순리적으로 번역했지만 이것도 히브리 원문에서 보면 이런 뜻입니다. 이것이 뭐냐면 나로 하여금 꿀꺽꿀꺽 먹게 하라 이런 이런표현이더라구요. 이게. 그니까 그냥 막 먹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는, 콘트롤 불가능한 욕구의 발동을 묘사하고 있는 그런 표현입니다. 이것 앞에 넘어 갔습니다.

 

 크리스챤 의학자인 그 컬티스 우드 주니어. 닥터 우드라는 분이 쓴 글에 보니까 이 탐식을 이렇게 정의했어요. 이 육체가 필요로 하는 화학적 요소에 그 균형 발란스가 깨질 때 일어나는, 음식에 대한 비정상적인 뭐 갈망이다 그랬어요. 어떤 음식에 대한 욕구 자체를 우리가 정죄할 필요는 없구요. 꼭 필요한 것이죠, 음식이란 것은. 필요한 것이고 적절한 한계 내의 그 즐거운 음식에 대한 섭취. 이것은 얼마나 좋은 것 입니까? 그러나 과도하게 자기 콘트롤을 넘어선 과도한 행동으로 옮겨 질 때 그것은 이미 죄악이 될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인류의 첫 사람인 아담의 범죄도 이 먹는 것하고 관련돼 있는 거 아니에요? 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보았을 때 어떻게 됐어요? 먹음직했다. 보암직했다. 이 먹는 것에서부터 이 타락이 시작되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또 어떤 분이 그러더라구요. 그 아담이 만약 한국 사람이었더라면 절대로 선악과 열매를 안 먹고 다른 것을 먹었을 것이다. 그래서 뭘 먹었겠느냐 그러니까 아담이 한국사람 이었다면 틀림없이 선악과가 아니라 비암을 먹었을 것이다. 뱀을 먹었을 것이다. 하하하.

 

 네. 우리가 이 먹는 것에서부터 인류의 그 타락이 시작되었다 하는 것을 우리가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근데요, 왜 그랬을까요? 에서가. 가만히  면 에서가 그 이어 받은 거 같아요. 이어 받았어요. 28절 보시면요, 본문 에. 28절 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 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에서의 아버지가 이삭이죠? 근데 아버지 이삭이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네, 아버지가 아들 둘 중에서 야곱보다도 에서를 더 좋아했던 이유가 뭐라 했어요? 그 아들이 사냥해서 고기를 갖다 바치면 고기 먹는 재미에 그 아들을 더 좋아 했다. 매우 치사한 이유 때문에 에서를 편애했던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거에요. 그러니까 이 에서가. 사실은 이것은 우리가 아담에게서부터 물려받은 인간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어떤 죄 성과 이 탐식도 관련돼 있다. 이 죄 성과 무관하지 않다. 거기서 일어나는 어떤 욕망에 대한 콘트롤 할 수 없음, 이것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탐식이라는 죄악에 빠져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순간순간 우리를 패배시키는 그런 순간적인 유혹 앞에 우리를 굴복시키는 죄악 의 유혹, 이것이 바로 탐식인 것입니다.

 


그 담에 두번째로요, 탐식이라 는 것은 우리를 우리의 영적 목표를 흐리게 하는 죄악입니다.

 

 우리의 영적 목표를 흐리게 하는 죄악인 것입니다. 본문에서 에서가 자기의 식탐 을 해결하기 위해서, 음식에 대한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서 심지어 장자의 권한까지 팔았다. 자, 본문의 마지막 구절에 보시면 이런 에서의 행동을 창세기의 기자는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마지막 34절에 맨 마지막 부분에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어떻게요? 경홀히 여겼다 그랬습니다. 경홀히 여겼다. 이 히브리말로 빠자라는 말 경홀한데요, 이것은 본래 이런 뜻입니다.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장자권한에 전혀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 이게 좀 문제가 있어요. 장자권한이라는 것은 히브리말로 뻬코라라고 불리워지는데 이것은요, 이스라엘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메시야의 언약사상, 또 메시야의 소망과 관련돼 있습니다. 왜냐하면 메시야는 장자의 그 계통 을 통해서 오시도록 돼 있어요. 그래서 더 소중한 것이에요.

 

어느 날 이 장자의 혈통과 계통을 타고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구세주가 메시아가 오신다. 그것을 믿었다면 이 장자의 권한이 단순한 장자권이 아니라 삶에 있어서 보다 나은 특권 정도가 아니라 이것이 영적인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통해서 역사하신다. 얼마나 소중한 것이에요? 그러나 이런 영적인 특권, 영적인 가치를 알아보지 못 했어요. 에서는. 왜? 식탐 때문에. 이 식탐이 영적인 눈을 흐리게 만들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러니까 먹는 순간, 딱 음식에 대한 욕구가 발동하는 순간, 뭐 다른 거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아요, 먹는 것만이 중요한 거에요. 먹는 것만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 순간만은 다 잊어 버려요. 하나님도 이웃도 인생 의 고급한 가치도 목적도 다 잃어버리는 것이에요. 자, 그런데 이렇게 우리가 그래서 음식, 오 음식, 오 이 붉은 것, 붉은 것. 이 음식에 몰두하는 그 순간 음식이 그 사람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되면 음식이 주인이 되요. 음식이 그 사람의 주인이 되는 겁니다. 신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탐식은 우상숭배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입니다. 아, 흥미로운 것은요, 우리가 이 탐식이라는 것을 영어로는 글라토니 라고 말합니다. 글라토니. G-l-u-t-t-o-n-y. 글라토니. 이렇게 부르는데요. 이것은 라틴어의 글루투스라는 단어에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근데 그 뜻이 어떤 뜻이냐면 본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쾌락. 이런 뜻입니다.

 

 탐식이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쾌락. 여러분, 음식을 넘길 때가 얼마나 즐겁습니까? 거 쾌락이 있어요. 쾌락이 있어요. 근데 문제는 먹을 땐 그렇게 즐겁고 쾌락이 있는 데 그 결과가 어디에서 나옵니까? 여기 가서 나옵니다. 배에 가서. 배 에 가서 그 결과가 나중에 나옵니다. 그런데 더 재밌는 것은 우리가 성경에 제가 이 탐식을 연구하다 보니까 이 구절이 새롭게 다가오더라구요. 빌립보서 3장 19절에 보면 바울이 거기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을 향한 경고를 보냅니다. 건 뭐냐면 무 율법주의자들, 혹은 쾌락주의자들 이었어요.

 

 그 시대의 쾌락주의자들. 여러분, 기독교 신앙 안에도 쾌락적 요소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 거, 하나님 믿는 거, 즐거워야 되요. 쾌락의 요소가 있어요. 또 적절한 한계 내에서의 음식을 즐거워 하는거. 이거 나쁜 거 아니에요. 건 좋은 거 에요. 건강한 거 에요. 기독교는 단순히 금욕주의가 아닙니다. 그러나 쾌락에만 탐닉하는 거. 쾌락이 인생의 목적이 되면 큰일이에요. 그러니까 먹는 것은 필요한데 먹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면 큰일 난다 말이죠. 먹는 것이 주인이 되요. 먹는 것이 신이 되요.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바울은 경고를 던지면서 빌립보서 3 장 19절에서 저희들의 마침은 멸망이고 그 다음에 저희들의 신은 배요 그랬어요. 신이 배다. 배가 신이다. 배가. 먹는 것이 신이 되어 버렸다. 여러분, 먹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되어 버리면 안 된다 말이죠. 먹는 것은 필요하지만. 우리가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은 아니잖아요?

 

 우리는 살기 위해서 먹는 것입니다. 살기 위해서 먹지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은 아니에요. 근데 어떤 사람들 보면 꼭 먹기 위해서 사는 거 같에요. 아침 먹고 나서 점심 뭐 먹을 까? 점심 먹고 나서 저녁 뭐 먹을 까? 하루 종일 생각하는 것이 먹는 거 밖에는 생각이 없어요. 또 어떤 사람들은 좋은 음식점. 몸에 좋은 거 찾아서 일년 내내 성지순례 다니듯 식당 찾아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말이죠. 그니깐 대단히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사람 이 이 죄에 깊이 빠져 있다는 증거에요. 뭐 일년에 뭐 한 두번 식구들 이 모여서 혹은 좋은 친구들이 만나서 음식을 즐긴다. 뭐 그거 가지고 우리가 너무 핏대 올리고 정죄할 필요는 없지요.

 

네. 그러나 문제는 뭐냐면 그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먹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먹는 것이 신이다, 이것은 이미 그 사람이 깊숙한 죄악의 경지 속에 들어간 것이에요. 그렇게 되면 눈이 어두워져요. 영적인 목표가 사라집니다. 가치가 보이지 않아요. 삶의 방향이 흔들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탐식이라는 것은 우리 의 영적 목표를 흐리게 만드는 죄악인 것입니다.


 그 담에 세 번째로 이 탐식이라 는 것은 자신을 파멸시키는 죄악입니다.

 

우리를 결국은 궁극적으로 우 리를 파멸시킬 수 밖에 없는 죄악. 이것이 바로 이 탐식이라는 이름의 죄악인 것입니다. 우리가 고린도전서 6장에 보시면 바울사도가 이 성 도들의 몸 그리스도인들의 몸을 가리켜서 뭐라고 말합니까? 성전이다. 너희의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 전인줄 알지 못하느냐? 우리 몸이 성전이다. 그런데 이 성전인 육체를 우리가 부담스럽게 한다든지 고통스럽게 만들면 그게 바로 죄죠. 뭐. 이 탐식은 우리의 육체, 하나님의 성전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그것 을 궁극적으로는 파괴시킬 수 있는 죄악인 것입니다.

 

제가 이번에 이 일곱 가지 죄악시리즈를 하면서 아주 재미나는 현상인데 아주 성도들의 반응이 많이 와요. 편지도 오고 뭐 또 이메일도 많이 오고 그러는데 심지어는 우리 교인이 아닌 분들에게 서 제가 이메일을 받습니다. 근데 제가 탐식에 관해서 설교할 줄을 알고 인터넷으로 설교를 듣는 의사 선생님 한 분이 자기는 당뇨병을 전공 하는 의사라고 밝히면서 목사님이 이 탐식에 관해 설교할 때 도움이 되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자료를 보냅니다. 김순호라는 의사선생께서 저에게 인터넷 이메일로 자료를 보내 주셨어요. 근데 정말 아주 좋은 그 분이 쓴 에세이가 첨부돼 있었어요. 제가 한 부분을 읽습니다. 이게 의사선생님 에세이니까요.


불행하게도 비만증은 정말로 건강에 해롭다. 의학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수명이 점점 길어지고 그에 따라 성인병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비만증은 대부분의 성인병과 관련돼 있다. 고혈압, 당뇨병, 뇌졸증, 심근경색증, 고지혈증, 순연무호흡증, 만성신부전등 무수한 성인병이 비만증과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비만한 사람은 정상체격의 사람에 비해 평균적으로 더 많은 병 을 가지게 되고 평균수명도 비만 도에 비례하여 점점 떨어지게 된다. 극단적인 예로 일본의 스모선수들 처럼 비만한 경우는 일반인에 비해 사망률이 10배 이상 증가한다.


그 다음에 보니 이 분이 또 성경 도 아주 많이 아시는 거 같아요. 성경을 인용하셨는데 성경을 살펴보면 특별히 비만했던 사람이 둘 등장하는데 한 사람은 모압왕 에글론이었고 또 한 사람은 제사장 엘리였다. 우리 교회 제사장들 가운데도 저를 포함해서 이렇게 좀 비만하신 분 들이 저보다 저를 능가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비만한 몸집 때문에 자신의 수명을 단축하고 말았다. 모압왕 에글론은 에웃이 칼을 차고 들어가 찌르려고 할 때 비만한 몸집으로 인해 그 칼을 피하지 못하고 죽음을 당하게 된다. 제사장 엘리는 의자에 앉아 있다가 넘어졌는데 그 비둔한 몸집으로 인해 목이 부러졌더라.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확인해 보니까 정말 그래요. 근데 우리 교회 사역자 중 제일 비만하신 한 분은 운동장에만 갖다 노면 새처럼 날라요. 그 분은 예외에요. 그래서 우리교회 굉장히 이런 사역 자 한분 계시죠? 그러나 그 분은 예욉니다. 운동장에서 그렇게 빠를 수가 없어요. 이건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것이 우리의 육체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는 범죄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 육체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 우리의 영성까지도 파괴할 수가 있습니다. 이 에서 사건을 나중에 신약성경에서 기록 할 때 히브리서 12장에 보면 히브리서 12장 16절 이하에서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에서를 가리켜서 망령된 자라 이렇게 말합니다.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될까를 두려워하라. 여기서 망령된 자란 말이 영어 에는 가들레스란 말이에요. 가들레스. 불경건한 사람. 경건하지 못한 사람이라 이 말입니다. 17절에는 저가 눈물을 흘리고 후회했지만 회개 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에게 끝내 영적 회복이 이루어 지지 못하고 영성에 있어서 파멸해 가는 비극을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탐심은 우리 육체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영성을 파괴시킨다. 그니까 죕니다. 탐식 그럴 때 우리가 너무 또 음식만 생각하시면 안 되고 우리가 술 같은 것도 마찬가지죠. 알코올도 마찬가집니다. 또 담배 같은 것도 마찬가지고. 이건 자신을 파멸 시키는 죄악인 것입니다. 그니까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어떻게 여기에서 해방될 수가 있느냐? 우리가 탐심이라는 이름의 유혹을 우리가 어떻게 극복할 수가 있느냐? 그리고 탐심에서 해방된 건강한 삶을 어떻게 살아 갈 수가 있느냐? 두 가지만 강조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순간순간 결단을 계속해야 합니다. 순간순간 결단을 계속하십시다. 매 순간순간 결단을 계속하십시다. 왜냐면 이 먹는 행사를 안 할순 없잖아요? 평생 먹어야 되니까. 먹을 때마다 결단하자 이 말입니다. 여기 잠언 23장 2절에 보면 성경에 이런 치열한 경고의 말씀이 있어요. 어유 아주 그냥 몸서리쳐지는 말씀이에요.

 

 탐식자여든 네가 탐식자여든 네 목에 칼을 두라. 허, 어마어마해요. 이렇게 이렇게 엄숙한 경고. 엄숙한 경고. 이 비장한 결단을 이 경고를 통해서 결단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먹을 때마다 우리가 결심해야 됩니다. 내가 덜 먹기로 결심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뭐 운동만 열심히 하면 된다 이렇게 주장하는 분도 있는데 제가 이 글을 이분 김순호씨라는 의사선생님이 쓴 글에 보니까 이런 말이 계속 나와요. 이 에세이에

 


 보통사람들은 비만증 치료를 하면 다이어트와 운동을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에도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우선 운동을 너무 과신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전에 수영장에서 비만증을 치료하기 위해 수영하러 오신 분들이 수영이 끝나면 떡을 한 보따리씩 가져 와서 먹으면서 수영을 해도 살이 빠지지 않는다고 푸념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하면 살이 더 쪘으면 쪘지 빠지지 않는다. 보통 수영 한 시간 열심히 하면 약 5백 칼로리 정도가 소모되는데 이것은 라면 하나의 열량 밖에 되지 않는다. 즉, 수영 한 시간 열심히 해 보았자 라면 하나 더 먹으면 다시 도루묵이 되는 것이다.

 

운동요법은 다이어트가 동반되지 않으면 절대로 성공하지 못한다. 허지만 다이어트로 굉장히 조심해야 할 부분 이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살을 빼라고 하면 고기는 일절 먹지 않고 보리밥에 된장국만 먹을 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게 되면 우리 몸에 필요한 필수 아미노산의 결핍으로 살을 빼는데는 성공할지 몰라도 건강을 망쳐 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적절하게 한계 내에서 조금씩 단백질과 비타민 그리고 적당량의 육류와 과일을 섭취해 주는 것이 다이어트를 하면서 건강을 해치지 않는 가장 좋은 비결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날마다 날마다 목욕을 할 때마다 벗은 몸으로 거울 앞에 서 보자. 이 분이 하는 소리에요. 내가 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리고 자신의 몸을 한번 감상해 보자. 균형 잡히고 아름답다고 하나님 주신 몸이라고 느끼는지 아니면 풍성해서 그만 흉물스럽게 보이지는 않는지 그리고 후자의 경우라 면 이제 과감히 자신의 탐식으로 인해 학대당하고 있는 하나님의 성전 을 새로 단장하는 작업을 시작하자.

 


 아유 은혜가 되요, 은혜가 돼. 아주. 네. 이 계속적인 결단. 지속적인 결단. 어떤 사람은 뭐 결단해 봤자 그게 작심삼일인 데요 이런 사람도 있어요. 뭐 작심삼일이면 어때요. 그러면 사흘마다 한 번씩 또 결심하지 뭐 사흘마다 결심을 계속하면 되요. 중요한 것은 저는 주변의 이웃들이 또 돕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괜히 놀리고 그러지 말고 서로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잠언 23장 20절에 보면 이런 말이 나와요. 술을 즐겨 하는 자와 고기를 탐하는 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 그런 사람하고 놀지도 말아라. 그랬어요.

 

 놀지도 말아라. 네. 서로 도와야 되요. 서로 도와야 되요. 필요하다면 우리가 일주일에 한번 씩 규칙적인 금식을 한다든지 혹은 한 달에 한번정도 하루 정도 우리가 금식하면서 그 시간을 영적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기도하면서 정말 이웃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으로 쓴다면 우리의 삶은 얼 만큼 더 풍성해질까요? 결심을 해야 되요. 중요한 것은 결심. 우리가 의지의 결단. 이거 참 이 결단이란 게 중요해요. 저도 뭐 그냥 적당히 이렇게 살았는데 이번에 이 말씀 준비하면서 결심을 해야겠다. 두 주 전에 결심을 해서 두 주 동안 딱 조심했어요. 벌써 달라지지 않았나요? 하하하.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중요한 걸 강조하겠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미 래를 소중히 여깁시다. 날마다 순간 순간마다의 결단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미래를 소중히 여기는 태도. 여러분. 탐식이라는 것은 미래 를 포기하는 행윕니다. 왜냐하면 탐식이란 것은 우리로 하여금 현재에만 그리고 순간에만 몰두하게 만드는 것이에요. 지금 당장 먹는 것이 좋거든요. 네. 그러나 우리의 남아 있는 여생. 살아야 할 여생. 살아야 할 시간. 자, 하나님이 주신 복된 미래. 이 축복된 미래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섬기고 또 건강하게 이웃 들을 섬기면서 아름답게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오늘 내가 조금씩 날마다의 결단으로 써 내 몸 에 대한 성실한 청지기가 되겠다. 거 얼마나 중요한 태도에요?

 

 여러분, 우리 미래가 앞으로 살아야 할 미래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주신 미래를 아름답게 가꾸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기 위해서 적당한 자기 콘트롤을 통해서 탐식에 서 부터 자유 한 인생을 살고자 노력 한다는 것. 그건 너무나 아름다운 일이에요. 저는 예수님이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산상수훈에서 이런 교훈을 주셨다고 생각해요. 너희가 뭐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너무 그거 가지고 염려하지 말아라.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더 고급한 가치 고급한 인생 더 중요한 인생의 목적이 있단 말이죠. 여러분, 그 부분이 뭘 로 끝나는 줄 아세요? 그 장이 마지막이 끝나는 말씀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 말로 끝나요.

 

 다시 말하면 거 먹, 먹긴 먹어야 되는데 먹어야죠.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관심이 있어요.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 내가 이거 먹고 그 다음에 내가 이웃들을 어떻게 섬길까 내가 어떻게 누구한테 전도할까 오늘 내 주변에 고통당하고 있는 이웃들을 내가 어떻게 돌아볼 것인가 늘 이런 생각으로 채워진 인생하고 여러분 보세요. 아니면 아침 먹고 뭐 먹을까 어디 갈까 뭐 저녁에 어디 먹을까 밤낮 이거만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보다 고급한 가치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 얼마나 중요합니까? 여러분, 예수님도 사십 일을 금식한 후에 이 음식에 대한 유혹이 얼마나 굉장했겠어요? 그런데 이 유혹이 금식 도중에 사탄이 찾아왔을 때 너희가 네가 이 돌이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얼마나 그것이 유혹이었을까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 이 격렬한 유혹의 한복판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 고 살고자 하셨던 예수님. 그 예수가 우리의 주님이고 여러분의 주님이시고 그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라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의 남은 인생 어떻게 살까요? 이 하나님의 말씀 붙잡고 이 탐식을 우리가 경솔하게 생각하지 말고 이것이 잘못 콘트롤의 한계를 넘어설 때 이것은 죄일 수 있고 질병일 수 있고 나를 망칠 수 있다.

 

 이 분명한 경각심을 갖고 우리가 육체와 영혼에 대한 성시기한 청지기로 살고자 결심한다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하나님이 내 인생에 대한 남은 미래 아름다운 육체를 주실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아름다운 인생을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름다운 미래를 붙들고 주 앞에 살게 될 것입니다. 이제 선택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음식이 나를 콘트롤하는 그래서 먹을거 생각하고 겨우 살아가는 인생을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 된 삶을 살 것인가 그 선택은 전적으로 여러분과 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십시다.

 


우리 다 일어나서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일어나서 기도하시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탐식의 죄를 범하지 않도록 우리가 지나치게 늘 먹는 거 생각하며 살아가는 인생 그런 인생이 안 되도록 하나님, 저를 탐식에서 자유하게 하시고 일체의 욕망에서 자유하게 하시고 하나님, 자유인답게 하나님 백성답게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고 이웃들을 생각하며 하나님 생각하고 살아갈 수 있는 인생 나에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우리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기도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