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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가지 罪 ③ - 분노

구원의 계획 2011. 8. 2. 20:55

 

일곱 가지 罪  ③ - 분노(창4:1-15)

                                                                  - 이동원 목사

 

 

 1999년 1월에 우리는 강원도 삼척에 아주 한가한 비포장 도로 산 간 중턱에서 일어났던 끔찍한 사건 하나를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신혼 여행을 떠났던 부부가 운전하던 차량 안에서 총탄을 맞고 부부가 함께 피투성이가 되어서 죽어있는 그런 잔인한 사고의 광경을 기억합니다. 이 사건은 한동안 미해결의 케이스로서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해 7월 6일 용의자 두 사 람이 수원에서 체포됨으로 사건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의 전모를 보면서 뜻밖에도 이것이 단순하고 우발적인 한 계기를 통해서 이루어졌던 사건임에 우리가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범인 두 사람은 엽총을 갖고 사냥길에 떠났습니다. 그들이 액센트 차를 몰고 가다가 신혼 부부차가 그랜져 차가 추월을 한 것입니다. 먼지를 피우면서 추월하는 순간 이 두사람 은 화를 냈습니다. 또 추월을 하고 그랜져 차가 또 한번 추월을 하고 서너번 왔다 갔다 하다가 화가 난 범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사냥 총을 신혼부부가 타고 있던 차를 겨누어 난사 했고 이 신혼부부 두 사람은 피투성이로 죽어 간 것입니다.

 

 우발적인 분노, 한 순간의 분노가 초래했던 비극적인 범죄의 사건 이었습니다. 기독교의 역사속에서 는 오랫동안 분노, 분노 anger. 분노를 가르켜서 일곱가지 커다란 죄악 중의 하나로 분류해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신학자들과 성서학 자들은 성경을 좀 더 세밀하게 연구하면서 분노와 죄악은 구별될 필요 가 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분노의 감정 그 자체를 죄악으로 정죄 할 수는 없다는 견해를 성경을 통해서 갖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지는 분노 가운데 정의로운 분노도 있을 수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 분노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분노가 다스려지지 못할 때 분노가 콘트롤 되지 못하고 통제되지 못할 때 이 분노는 죄악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의 사건 에는 이런 통제 되지 않는 분노가 초래 했던 범죄의 사건이 기록 되고 있습니다. 소위 카인의 분노의 사건 입니다. 가인이 제사를 드린 후에 자기의 제사가 하나님 앞에 열납되지 못하자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기 형제 아벨을 죽이는 인류 역사 사상 적어도 성경의 역사 사상 최초의 살인 사건이 오늘 본문 속에 보도 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통제 되지 않은 분노 다스려 지지 않은 분노가 빚어 낸 비극의 사건이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왜 카인은 분노 했을까요. 카인은 어떻게 이 분노를 극복 해야만 했었을까요. 오늘 우리는 이 본문을 묵상 하면서 이 카인의 사건을 조명 하면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우리의 날마다의 삶의 장을 통해서 우리는 왜 분노 하고 있는지 어떻게 우리는 분노의 유혹을 극복할 수가 있는지를 함께 같이 교훈을 나누고자 합니다. 그리기 위해서는 우리는 카인의 분노의 사건의 장으로 다시 돌아와 보겠습 니다.

 

자 우선 첫째로 가인은 왜 분노했습니까? 카인의 분노를 통해서 여러분과 제가 왜 분노하고 있는지 우리의 분노의 정체를 우리는 파악 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공평한 취급을 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우리는 분노합니다. 우리가 공평한 취급을 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우리가 분노 하는 것입니다. 심리학 자들은 이 분노를 정의 하면서 이런 정의를 많이 내립니다 내가 불공평 하게 부당하게 다루어진다고 느낄 때 내 안에서부터 일어나는 정서적 반응이 바로 분노라고 정의 합니다. 분노의 뿌리는 공평하지 못하다. 공 정하지 못하다. 나는 억울하다. 내 자존심이 짓밟혔다. 내가 모욕 되었 다. 이런 것들이 분노의 뿌리를 이 루고 있는 감정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자 오늘 우리는 본문의 사건 을 피상적으로 좀 접근해 보면 카인 이라는 사람도 굉장히 억울하게 느꼈을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겉으로만 살펴보면 카인에게 상당히 동정적이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 보세요. 2절에 보시면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치는자 이었고 가인은 직업이 뭐였습니까? 농사하는 사람 이었습니다. 가인은 본래 농사꾼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공동체 의식 그리고 형제 의식을 갖는다면 불필요한 많은 경쟁 관계의 악에서 자유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훨씬 덜 화 내면서 인생을 살아 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왜 화 내고 있습니까? 주변 사람들을 다 적으로 생각한단 말이예요. 다 원수로 생각해. 저 사람이 잘 되면 내가 빠지는 거로 이런 식으로 생각한단 말이죠. 더불어 함께 잘 사는 그러한 사회 그러한 삶의 안목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의 사회는 훨씬 더 여유를 되찾 을 것입니다.
자, 가인은 왜 화를 냈습니까?

 

세번째는 죄의 소원을 다스리지 못 했기 때문이었어요.

우리는 왜 화를 내고 있습니까? 동일한 원인이예요. 죄의 소원을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분노한다 화의 감정이 생긴다 그건 어쩔 수가 없죠.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분노 하는 감정을 안 가질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그 감정이 일어날 때 그것이 구체적인 죄악으로 발전하지 못 하도록 미리 차단을 시켜야합니다. 예방을 해야 된다 말이예요. 자, 분노하는 감정은 자연스럽게 죄악의  원인을 일으켜요. 화가나면 어떻게 돼요? 저 친구 한대 후려 갈기고 싶다. 마누라라도 한대 하고 싶다 이럴 수가 있어요. 이게 죄악의 소원이예요. 그런데 소원까지도 하나 님이 이해 해 주시겠다는 거예요. 죄악의 행동으로 발전하지 못하도록 차단 시켜야합니다. 가인은 거기에서 실패한 것입니다.

 

7절 보시기 바랍니다. 7절. 본문의 7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 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죄의 소원은 있어요. 그러나 그 죄를 어떻게 해야 된다고 그랬어요? 다스려야 한다. 죄의 소원이 있지만 그 죄를 다스려 야 한다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다스리지 못할 때 죄악으로 발전해 가는 것이예요. 바울은 그래서 에베소서4장26절 우리가 잘 아는 말씀 가운데서 이런 교훈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여기서 분과 죄를 구별하고 있어요. 분노하는 감정이 일어나는 것 그것은 이해 해 주시겠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런데 분을 내어도 뭐를 하지 말고? 죄를 짓지 말며 그 다음 에 계속해서 해가 질때까지 분을 품지 말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중 요한 것은 콘트롤입니다. 분노하는 감정이 생기고 또 죄악의 소원까지 생길 수가 있어요. 야 어떻게 하고 싶다 이런 마음이 생길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 순간 중요한 것은 콘 트롤의 문젭니다. 우리를 통제해야 돼요. 그러나 여기 문제가 있어요. 그것은 뭐냐하면 통제가 안된다는 거예요. 이게 잘 안돼요 내가. 어떻게 합니까? 통제가 안 되는 것이 또 자연스러운 것이예요. 그것이 죄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대답이 없습니까? 아닙니다. 바울은 에베소서4장에서 분은 내어도 죄를 짓지 마는 삶을 살라 그 문제를 계속 추적하다가 5장에 와서 그 해답 을 말씀하세요. 우리가 잘 아는 에베소서 5장18절에 보시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뭐라고 그랬어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라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성령 충만의 본질이 뭡니까? 성령 충만에 대한 저마다 다른 경험이 있고 다른 해석이 가능하지만 성령 충만의 본질은 이것입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 는 삶이예요. 그러니까 성령의 콘트롤을 받아야 돼요.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 한국에 와서 아주 좋은 모범적인 사역으로 큰 감동과 많은 영향력을 주었던 강원도 황지에 지금도 계시는 우리 대천덕 신부님, 아처 토레이 신부님 성공회 신부님이 계시죠. 이 분은 사실은 이 분의 할아버지가 더 유명해요. 이 분의 할아버지가 아주 세계적인 분입니다. R.A.토레이 라는 분인데 할아버지가. D.L무디 목사님과 동역을 했던 한 세기에 미국 교회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던 분이 R.A.토 레이입니다. 무디 성경학교를 함께 설립하셨어요.

 R.A.토레이의 전기에 보면 또 R.A토레이의 글을 읽어 보면 자주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이 기도를 한다. 이 기도는 뭐냐하면 하나님 오늘도 나를 성령 충만하게 도와 주십시오. 나는 성령충만 없이 하루길을 걷는 것이 두렵다. 그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성령 충만하다고 느끼지 않았을 때 나는 말을 조심한다. 왜냐하면 성령 충만하지 않을 때 내가하는 말은 종종 실 수 일수가 있고 실언 일 수가 있고 이웃들에게 상처를 입힐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성령 충만하다고 느끼지 않았을 때 중요한 결정을 유보한다. 내가 성령 충만하지 않을 때 결정을 할 때 종종 내 결정은 잘 못 될 수가 있고 나는 믿지않는 사람과 꼭 마찬가지의 이기적인 결정을 할 수 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일어 나는 분노의 감정이 죄악이 되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극복해 갈 수가 있을까요? 대답은 하나 밖에 없어요. 성령 충만입니다. 그렇다면 성령 충만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이여 나를 충만히 지배해 주시옵소 서. 오늘도 내 입술을 다스려 주시고 그리고 내 행동을 다스려 주옵소서. 성령 충만을 사모하는 사람들, 그들에게만 분노를 넘어서는 자유의 삶이 약속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죄의 소원을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분노가 죄악이 되도록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어떻게 우리는 이 분노의 감정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분노로 부터 자유한 삶을 어떻게 살아 갈 수가 있을까요? 두 가지만 강조하고 싶어요.

 

 첫째는 분노의 원인을 항상 내 자신 안에서 찾는 것을 배우자. 분노의 원인을 내 자신 안에서 찾는 것을 배우자. 우리는 화가 나면 누구를 생각합니까? 나를 화나게 만든 사람을 생각합니다. 분노의 원인을 바깥에서 찾아요. 그러나 그랬을 때 나는 잘못한 것이 없나 그걸 먼저 생각하라 말이예요. 나는 잘못한 것이 없나. 가인이 아벨에게 화를 내고 하나님께 화를 낼 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어째서 내 제사는 내 제물은 거절하셨나요? 그 때 조금 가인이 질문을 바꾸어서 이렇게 생각했다고 가정을 해 보세요. 하나님은 왜 내 제물은 받지 않으셨을까? 내 실수가 없었을까? 동생하고 비교해서 무엇이 달랐을까? 내 동생은 최고의 아주 아름다운 첫 새끼를 하나님 앞에 드렸어. 맞았어. 내가 거기서 실패했구만. 라고 깨달을 수 있었더라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가인이 분노할 수 있었던 계기는 오히려 학습의 기회고 그것이 성숙의 기회가 될 수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우리는 화만 내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해요. 그래서 화날 일이 생길때 원인을 어디서 찾자?  첫째 는 내 자신 안에서 찾자. 하나님 내 가 어떻게 잘못 되었습니까? 하나님 내게 무엇을 가르치기를 원하십니까? 여기서부터 분노를 다루는 우리의 삶의 태도가 이루어 지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무디의 전기에 읽어 보면 무디가 미국의 중서부의 한 도시에 가서 전도대회를 큰 전도대회 를 열게 되었어요. 집회 앞서서 며칠 전에 도착을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까 일제히 조간신문에 무슨 기사가 났냐 하면 교만한 전도자 무디 헤드라인 타이틀로 교만한 전도자 무디. 무디가 바쁘고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기자들 하고 인터뷰를 거절했어요. 그랬더니 기자들이 화가 났습니다. 이 기자들 화내 놓으면 그 다음에 감당할 수 없잖아요.

 

  네 그러니까 교만한 전도자 무디 그렇게 막 신문에 난거예요. 그걸 보고 무디의 참모들이 스텝들이 또 화가 났습니다. 그러니까 무디 목사님이 목사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런 신문 기사가 났습니다. 신문기사를 쭉 읽어 보시더니 껄껄껄 껄껄 웃더래요. 그러더니 하는 소리가 뭐냐 하면 이 사람들 사람을 잘못 봤구만. 나는 이 신문기사에 난 것보다 훨씬 더 악해. 나는 훨씬 더 교만하다고. 이 정도면 잘 썼구만. 그 다음에 무슨 얘기를 한줄 아세요? 무디가 이렇게 말했어요. 하나님이 우리 더 겸손하라는 싸인이야 우리 더 기도하자 그리고 넘어갔어요. 대단한 사람이죠. 나는 죽었다 살아도 그렇게 못할 것 같애. 그러나 그렇게 배울 수 있기를 원합니다. 자, 그래서 이것 때문에 더 커다란 존경을 받았어요. 그렇습니다. 문제의 원인을 항상 자기 자신 안에서 찾는 것을 배우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번째로 중요한 대답입니다. 이것은 뭐냐하면 분노를 성서적으로 해소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분노의 감정을 성경적 으로 해소하는 것을 우리가 배울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분노라는 것은 억제만 해서는 안돼요. 억제만 해서는 안돼. 억제하게 되면 병이 되요. 우울증이 됩니다. 심리학자들은 우리가 깊은 우리 마음 속의 분노를 적극적으로 창조적으로 표현하지 못 하고 그것을 계속해서 축적해 두면 그것이 병이 된다고 지적합니다. 심리학자들의 술어를 빌리면 수동적 공격성이 생긴다. 소위 passive aggression 이 생긴다. 수동적 공격성. 계속 화가 나는데 그걸 참고 있 으면 나중에 그 분노를 억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노하지 말라고 하기보다 분을 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분을 마음에 품으면 미움이 되고 그 미움은 결국 자신과 남을 해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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