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에 빠져 20여년을 지낸 한 여성을 만나 인터뷰를 했습니다. 너무도 그 안에서 해괴한 일들을 많이 경험한 분이었습니다. 20대 초반에 그 단체에 들어갔고 이제 50대가 됐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세월을 가짜 메시아에 빠져 허송세월을 했다는 마음에 참으로 어려웠을 겁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이제 자신처럼 이단에 빠진 사람들의 회심을 위해 살겠다고 합니다. 이단단체에 빠졌다가 나와서 방황하는 사람들의 영적 내비게이션 역할을 하겠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 이단상담소에서 이단 단체의 교리적 문제점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단 탈퇴자도 주님 품에서 자리를 잡고 한국교회의 한 일원으로 잘 자리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우리의 몫 아니겠습니까? 그녀가 겪었던 세월을 어찌 다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 그 일부만을 기록하려 합니다. <편집자주> | “성경 2천독 한 도인이 있다더라” 소개 받고 연결···한 달 만에 교주와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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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단단체에 20년간 있다가 탈퇴한 여성 | 10명의 나신들이 A교주와 뒹굴었다. 교주 A씨는 섹스를 때로 20명, 그 이상과의 그룹섹스도 마다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줄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자위했다. ‘그는 메시아다. 그는 예수의 영을 입은 육체의 사명자다. 그렇다면···. 그와 사랑을 나누는 게 맞는 거다.’ 그렇게 이혜인 씨(가명)는 20여년의 세월을 B단체에서 보냈다.
이탈 후 A교주의 성행각이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을 여전히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 어떻게 종교단체의 대표라는 사람이 수십 명의 여성과 관계를 하냐? 그것도 수 십 년 동안을···.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오곤 했다. 그런 반론에 이 씨는 헛웃음이 나온다. ‘내가 직접 피해를 입은 당사자다!’
이 씨는 1983년 8월의 일을 잊지 못한다. 원래 대전에 있는 대형교회에 출석했었다. 여느 청년보다 더 열심히 교회 생활을 했다. 교회에 다니며 청년부 활동과 유치부 교사, 성가대를 하며 헌신적으로 신앙생활을 했다. 그러나 성경 말씀 중에서 궁금한 것을 목사님께 물어보면 속 시원한 대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믿음으로 받아들여, 믿음으로! 따지지 말고.”
순종하려 했으나 마음속의 궁금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 전도사가 말했다. “혜인아, 성경을 2천독이나 한 도인이 있단다. 같이 만나러 갈래?” 귀가 번쩍 뜨였다. ‘아니 성경을 2천독이나 하다니.’ 만나고 싶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성경을 그렇게 읽을 수 있을까?
그를 만나 신앙의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더욱 진리의 길로 나아가고 싶었다. B단체가 만들어진 초창기, 한국교회의 이단대처가 활발하게 전개되지 않을 때였다. 이단 단체에 대한 정보가 어두웠던 시절이었다. 몇 명의 신도들이 ‘선생님’이라고 호칭하며 A교주를 따르고 있었다. 이 씨도 그 무리를 따라 선생님이란 사람의 말씀을 들었다. 그날, 그녀는 교주가 풀어주는 말씀에 홀딱 반해 버리고 말았다.
일주일 만에 B단체의 교리체계인 교리서를 뗐다. 밤이고 낮이고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한 달 넘게 걸리는 코스였다. 너무도 흥미롭고 매력 있었다. 교리체계를 다 듣자 막혔던 가슴속이 펑 뚫리는 거 같았다. 드디어 진리를 알았다는 자부심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배운 내용은 이러했다.
선악과 타락은 성적인 타락이다, 성경을 비유로 봐야 한다, 성경에는 다 짝이 있다, 동방은 한국이다,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 육을 입고 오신다, 그것도 한국으로 오신다, 지금은 하나님과 인간의 신부·애인시대다, 영은 육을 들어 쓴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이 시대의 중심자의 육을 사용하신다, 그 육체를 가진 중심인물과 애인관계가 돼야 한다 등의 교리였다. 일주일을 배우고 나니 ‘선생님이 혹시 재림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분과 애인과 같은 사이가 돼야 한다는, 그의 신부가 돼야 한다는 마음이 강하게 고개를 들었다. 강사에게 자신의 확신에 대해 물어봤다. “선생님이 혹시 이 시대의 중심인물이자 메시아인가요?” 강사에게서 “귀한 것을 깨달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후 한 달 만에 이 씨는 열심을 인정받아 B단체의 강사생활을 했다. 그러면서 통과식을 해야 했다. 선생님이란 사람의 숙소에 찾아갔다. 그녀는 거기서 교주의 손에 허물어졌다. 메시아인데···. 도저히 항거할 수도 없었고 교리적 세뇌로 제정신도 아니었다. 처음 당했을 때 아직 20대 초반이었다. 그녀는 교주에게 항의했다. “아니, 이게 주님이 할 짓이에요?” 반응이 가관이었다. “나는 육신을 입고 온 예수야! 네가 예수 앞에서 그렇게 따질 수가 있어? 잘 생각해봐, 회개해!!!” 오히려 이 씨는 꾸중을 들어야 했다. 그리고 교주의 한마디가 더 있었다. “이건 너와 나만이 아는 천기(天機)다. 누설하지 말아라.”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게 정말 메시아가 할 짓인가’라는 생각과 ‘따지고 보면 틀린 말씀이 없는데, 이곳이 진리와 구원의 길이 확실한데···. 그분은 육을 입고 온 예수인데···. 그렇다면 몸도? 아 혼란스럽다.’
혼란을 겪던 그녀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천기라던 그 사실을 알고라도 있는 듯 이 씨의 마음을 다독여 줬다. 그러면서 한마디씩 툭 던졌다. “하늘나라에선 모두 Free sex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막달라 마리아가 향유옥합을 깨뜨렸는데 그게 다 뭔가 비밀이 있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사람으로 왔다, 안 했겠냐?” 모두 교주와의 성관계가 하나님의 진리의 길을 걷는 길이라고 여기는 분위기였다. 그곳에서 그는 메시아였다. 그와 많은 관계를 맺는 것은 수치가 아니라 자랑이었다. 오히려 적게 관계하는 사람은 부끄러워하는 경우도 있었다. 간택을 받아 한 번이라도 관계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씨도 그런 분위기에 세뇌가 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무뇌아’가 돼 갔어요. 저 스스로를 합리화시켰죠. 그런데 나도 마음이 상한 여성들, 그냥 얼굴만 보면 여신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감이 잡히거든요. 저도 그런 사람에게 다가가 구원의 길에서 떠나서는 안 된다고 설득하고 다독이는 역할을 하기 시작했어요.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된 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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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주를 향해 '주님 저희랑 반신욕해요'라고 말하는 한 단체 여신도들 |
그녀는 교주와 총 4회 관계를 맺었다고 한다. 3번은 1:1로, 4번째는 10:1로였다. 1990년대 말경 갑작스런 호출을 받았다. ‘예수님이 너희들도 만나주라 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신랑, 여보, 연인으로 여겨지던 교주의 호출인 셈이다. 그런데 그녀가 찾아간 곳에는 9명의 또 다른 여성들이 있었다. 한 여성의 리드를 따라 10명 모두 나신이 되어 교주와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정말 10명, 20명, 30명과 관계를 하고도 돌아서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그는 자신의 볼 일을 봤어요. 보통 사람이 그렇게 살면 며칠 못가 죽었을 거예요. 한마디로 음란한 영의 역사가 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을 정도예요.”
교주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기 위해 포르노를 보며 연구하는 여성들도 없지 않았다. 사실 이 씨의 꿈은 다른 데 있었다. 이런 성행각으로 타락의 덫에 빠지기 전엔 언론인이 되는 게 꿈이었다. 문학을 전공했다. 지방 일간 신문사에 입사 지원서를 넣고 시험도 치렀다. 공영방송사의 PD가 되고 싶어서 입사지원서를 넣기도 했다. 그러나 합격하고도 가지 않았다. 단체의 성경공부가 너무 재미있어 다른 것에는 눈길을 돌리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진리를 알았다는 자부심, 그런가 하면 도저히 재림주가 해서는 안 되는 행각들에 대한 혼란, 그 두 가지 딜레마 가운데 그를 가장 휘어잡는 것은 역시 교리적 매력이었다. ‘교주가 재림주’라는 확신이었다. 그것 때문에 이 씨는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내부 비리에도 불구 자부심을 갖고 살았다. 가족들도 겉모습만 봐서는 눈치 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반대하는 소리도 없었다. 26년간 그녀가 이단단체에 몸담을 수 있었던 이유다.
이단단체에 들어온 사람들 “진리에 대한 목마름 때문···”
만일 누군가 이단에 대해 말해줬다면, 이단이 뭔지 말해줬다면, 아니 이단에 대해 조금이라도 선지식을 갖고 있었다면 그곳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성경공부를 할 때 갈등을 하고 고민도 하고 상담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단에 대한 정보가 너무 어두웠다. 이 씨는 이단이 뭐고 정통이 뭔지, 그런 게 존재하는지조차 깜깜했다. 그녀뿐 아니라 그 누구도 이 씨의 B단체 입교를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이단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 그녀에게 남는 아쉬움이다.
그녀가 B단체에 빠진 1983년은 이 단체의 부흥기였다. 대구 부산 등 주요 지방의 지교회들이 모두 이 때 세워졌다. 마른 나무에 불이 붙는 듯했다. 가는 곳마다 B단체의 성경공부 센터와 교회가 세워졌다. 이단에 대한 정보도 없었기에 전도도 잘 됐다. 전도 받아서 찾아오는 사람의 90%는 교회 다녔던 사람이었다. 그 중 90%는 대학생이었다. 그리고 진리에 대한 목마른 사람들이었다. 전도 받은 사람들도 교리체계를 공부하고는 이 시대의 재림주를 만났다는 기쁨과 환희로 새롭게 뭉쳐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전도에 나섰다. 대학생들은 자신의 담당 교수를 전도해오기도 했다. 또 다른 이단 단체 신도를 데려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가짜였지만 ‘이 시대의 예수를 만났다’는 확신, 뜨거운 확신을 갖고 전했다. B단체의 전도자에게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야, 네가 하는 말은 앞뒤가 안 맞는 거 같은데 하도 열심히, 확신을 갖고 전도하니까 도대체 어떤 곳인지 궁금하더라. 그래서 와 봤다.” 일단 B단체 사람들은 새로운 회원이 오면 정말로 잘해줬다. 잃은 양 하나를 찾으면 잔치가 벌어진다고 하지 않았는가? 1명이 얼마나 귀한가, 모두가 달려들어 온갖 친절을 다 베풀었다.
친절에 감동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회사 가도 왕따, 친구들 사이에서도 왕따, 어디 가도 대접을 받지 못하는 인생이었어요. 그런데 이곳에 오니 나를 대접해 줬어요. 모두들 친절했어요. 성경을 공부하고 주님을 만나게 해줬어요. 그리고 집에 데려다 주고 밥도 사주고 영화도 보여주고. 너무도 나를 사랑해줘요. 이곳을 도저히 떠날 수가 없어요.”
사회는 물론 일반 교회에선 느끼지 못했던 절대적 사랑이 느껴지는 곳, 그곳엔 그런 매력이 풍부했다. 그리고 재미도 있었다. 문화선교를 빙자해서 온갖 문화의 도구를 폭넓게 활용했다. 이 씨는 말한다.
“교회가면 가요도 복음성가도 못 부르게 해요. 그런데 이곳에 오면 가요를 개사해서 불러요. ‘공개방송’이란 것을 통해 젊은이들이 춤도 추고 유행가를 부르며 젊음을 발산해요. 그러나 모두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한 것이라며 가요의 가사도 신앙적으로 바꾸어요. 그 자유로운 분위기 가운데 스며들면 ‘이단’이라는 주변의 손가락질도 아랑곳하지 않았죠.”
이단이라고 비난 받았지만 활용할 수 있는 모든 문화적 영역을 활용해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B단체에는 모델부, 치어부, 재즈부 등 많은 부서가 있었다. 수준도 매우 높았다. 치어부는 월드컵 개막식에 초청받아서 나갈 정도였다. 치어부는 인기가 있었다. 국가적 지원을 받는 봉사단체도 소유했다.
이단 비판에 대해 교리적 반증도 철저히 해 놓았다. 이런 식이었다. ‘예수님도 이단으로 비난 받았다. 종교개혁 때 개신교는 천주교로 따지면 이단 아니었냐? 시대마다 새로운 진리를 갖고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이단으로 정죄 당한다, 우리가 이단이다? 당연히 따르는 비판이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상대적 이단’이라고 정의했다. 자신들은 새시대, 새진리를 전파한다는 이유로 배격되는 ‘상대적 이단’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속으로는 성적 문제로 곪아 터졌지만 겉으로는 신도 간의 끈끈한 교류, 문화적 즐거움, 성경풀이의 기쁨을 맛보게 해주는 단체였다.
그러나 내부는 곪을 대로 곪아가고 있었다. 교주와의 성관계로 낙태수술을 누가 누가 했다는 얘기가 들려오기도 했다. 원래 교주와 제일 1순위 애인관계였던 여성이 밀려나고 또 다른 여성이 자리를 대신하는 경우도 있었다. 밀려난 여성이 교주에게 항의 시위를 했다는 말도 들려왔다.
교주가 키 크고 섹시한 여성을 좋아한다는 말은 이미 공개된 비밀이었다. 그는 키가 큰 여자일수록 좋아했다. 교주의 총애를 받는 여자 중에는 180cm가 되는 사람도 있었다. 파마머리는 싫어했다. 긴 생머리의 키 크고 예쁜 여자, 여기에 조건이 더 있었다. 마른 여자는 싫어했다. 안을 때 약간 통통한 여자가 느낌이 좋다는 이유였다. 교주의 부인들인 본부 여성들 중에는 각종 미인대회 입상자들도 있었다.
교주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마른 여자들이 많이 먹어서 살을 찌우는 경우가 생길 정도였다. 단발머리의 여성이 머리를 길렀고 파마머리를 풀기도 했다. 모두 한번이라도 교주의 눈에 띄고 싶은 열망에서였다. 교주의 취향에 맞춰 자신의 개인적 취향을 바꾸고 버리는 사람이 생긴 것이다. 포르노를 구입해서 보는 여성도 있었다. 교주를 즐겁게 해 주려고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이 이 씨에게 찾아와 물어보는 경우도 있었다. “주변에서 우리 선생님에게 성적 문제가 있대요. 제발 사실을 말해줘요.” 그때마다 그녀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붙어 있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곳이 구원의 길인데 거짓말이라도 해서 함께 가야한다’는 마음이었다. 처음엔 양심이 찔렸다. 그러나 나중엔 그마저도 없어졌다. 상대가 그런 질문을 하면 어느 때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런 일이 있으면 내가 먼저 나가겠다. 결단코 그런 일은 없다. 나를 믿어다오.” 자신이 직접 경험을 한 피해자였음에도 철저히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단단체를 떠나며···“나 같은 피해자 위해 살겠습니다”
양심을 속여 가면서까지 교주를 변호했던 이 씨는 결국 이 단체를 탈퇴하게 된다. 계기는 교주의 자기방어적인 변호 때문이었다. 법정에서 교주는 자신을 “‘재림주’라거나 ‘메시아’라고 가르친 적이 없다”고 딱 잡아뗐다. 도리어 자신은 오직 예수님만을 증거하는 사람이다고 항변했다. 자신과 관련한 신격화 주장에 대해서도 전혀 그런 바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 씨는 교주의 재판에 참석해 직접 그 말을 들었다. 이 씨가 받은 충격은 상상외로 컸다.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했다. 이 발언은 이 씨에게 매우 중요했다. 순결까지 바치며 교주를 따랐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것은 교주가 이 시대의 재림주라는 믿음이었다. 그가 메시아이자 주님이라 생각하며 섬겨 왔다. 그래서 꽃 같은 순결도 바쳤다. 그런데 그 스스로 메시아가 아니라고 부인한 것이었다. 비록 법정이었지만 20여년 간 쌓아온 신뢰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만일 그가 재판정에서 진실껏 ‘나는 진짜 메시아다’라고 했다면 저는 빠져나오기 어려웠을 거예요.” 자신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 교주가 어쩔 수 없이 한 발언은 결국 이 씨가 교주의 실체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 씨는 곰곰이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B단체를 나오기로 결심했다. 자신을 포함한 몇몇 식구들과 함께였다. 탈퇴한 후 바라본 B단체는 거짓과 사기 그 자체였다. 그토록 매료됐던 교리 체계부터 거짓이었다. 교주가 성경을 2천 번이나 읽으며 깨달았다는 말씀은 이미 선배 이단들에게 배워서 표절한 내용일 뿐이었다. 자신이 감동하고 은혜를 받았던 ‘선악과 타락은 성적인 타락이다’, ‘성경을 비유로 봐야 한다’, ‘성경에는 다 짝이 있다’, ‘동방은 한국이다’,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 육을 입고 오신다’, ‘그것도 한국으로 오신다’, ‘지금은 하나님과 인간의 신부시대, 애인시대, 성약시대다’, ‘영은 육을 들어쓴다’는 말은 이미 선배 이단들도 다 써먹었던 해묵은 내용들이었다. 새로운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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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단체의 교리 교육 차트 |
교주의 모든 행위는 잘못됐지만 ‘그래도 다만 몇 개라도 맞는 말씀도 있겠지’라고 생각했던 의식 하나하나가 깨져가고 있다. 이단상담소에서 교리적 교육을 받으며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는 지속적으로 훈련을 받을 계획이다. 10개 중에 하나라도 맞는 게 있을 줄 알았는데···. B단체의 교리는 모두 교주 신격화와 성적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성경을 이용한 것일 뿐이었다. 성경 자체의 진리를 드러나게 해주려는 목적은 애초에 없었다.
지난 일을 되새기면 처음에는 잠도 한숨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가슴을 쥐어뜯는 고통이 느껴졌다. ‘어떻게 내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나, 어떻게 내가 그런 곳에 청춘을 묻고 있어야 했나, 하나님은 정말 나를 인도하고 계셨던 건가?’ B단체에 빠지게 된 계기를 돌아보면 역설적인 요소가 있었다. 신앙생활을 잘하려다 빠졌다는 점이었다. 바꿔 말해 만일에 이 씨가 신앙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B단체에 빠질 이유도 없었다. 그저 예수님을 잘 믿고 싶었을 뿐이다. 성경을 잘 알고 싶은 열망이 남들보다 강했을 뿐이다. 그런데 교회에선 이단 교육을 받지 못했다.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지만 그래도 못내 남는 아쉬움이다.
“이단을 우습게보면 안 돼요. 신앙생활은 영적 전쟁이잖아요. 성도들이 영적 전쟁을 하는데 목사님들이 무기를 쥐어줘야죠. 갑옷도 입혀 주셔야죠. 이단이 뭔지, 그들에 대해 교육을 받고 무장할 수 있도록 철저히 도와 주셨으면 좋겠어요.”
B단체에 지금도 남아 있는 이 씨의 옛 동료, 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있다. 제발 진실, 양심에 눈을 떴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B단체에서는 늘 ‘상식이 진리다’는 말을 해왔다고 한다. 정통 기독교에 상식이 없다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 말을 하는 B단체 내부적으로 상식이 있는지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과연 A교주의 행각은 상식 있는 행위냐라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답은 자명하게 나온다는 의미다.
이 씨는 자신이 B단체에 수 십 년을 있었던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B단체에 있다가 나온 사람들의 치유와 영적 회복을 위한 내비게이션 역할이 그녀에게 남겨진 몫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제 그녀는 사람들이 진짜 예수님께로 가는 통로 역할을 하고 싶다. 그녀는 지금 53세다. 26년 동안 몸 담았던 B단체를 나오면서 수중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외롭지 않다. 이제 다시 만난 참 하나님께서 그와 동행하신다는 믿음이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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