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대속하신 예수께(요한복음 9:13~23)
찬송가 351, (새 321)
13 그들이 전에 맹인 되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14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15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물으니 이르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16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17 이에 맹인 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하니 18 유대인들이 그가 맹인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19 이는 너희 말에 맹인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해서 보느냐 20 그 부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아들인 것과 맹인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에게 물어 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22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 23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그가 장성하였으니 그에게 물어 보소서 하였더라(요한복음 9:13~23)
※ 도움말
* 출교(22절) : 예배와 친교의 모임으로부터 파문당하는 것. 즉 유대 공동체에서 살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함.
※ 도움질문
1. 예수님께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사건으로 인해 바리새인들 사이에 어떤 논쟁이 있었습니까(13~16절)?
2. 예수님에 대해 소경되었던 자의 대답과 그 부모에 대한 대답이 각각 어떻게 다릅니까(17~21절)? 부모가 명확한 대답을 회피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22~23절)?
※ 말씀묵상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눈을 떴습니다. 이것은 창세 이후로 볼 수 없었던 역사적인 사건입니다(9:32).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과 소경의 부모는 예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편협한 마음과 왜곡된 지식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맹인이 눈을 뜨는 이 놀라운 사건을 똑똑히 보고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18절). 왜냐하면 예수님에 대한 편협한 마음과 안식일에 대한 왜곡된 지식 때문입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무엇이 안식이겠습니까? 눈을 떠서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보고 누리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편협하고 왜곡된 지식 때문에 안식일에 대한 성경 본래의 정신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잘못 적용하고 해석하여 많은 사람들을 진정한 안식의 자리로 가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주님이 주시는 참 생명과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자유와 기쁨, 안식과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도리어 그 주님을 배척하기까지 합니다. 그 이유는 스스로가 편협한 마음과 왜곡된 지식에 갇혀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편협한 마음을 겸손히 내려놓고 주님이 하신 일을 편견 없이 살펴보아야 합니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진지하게 살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행 17:11절). 그럴 때 믿음이 생기고, 주께서 주시는 생명과 능력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두려운 마음 때문입니다
소경의 부모는 자기 아들이 눈 뜬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습니다. 따라서 누구보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주님의 은혜에 동참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답변을 회피하며, 그 몫을 자신의 아들에게로 떠넘깁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시인함으로 인해 출교를 당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22절). 예수님을 인정하고 따르는 것이 때로는 고난과 핍박을 감수해야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죽을 각오를 하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을 높이는 삶은 결코 편하고 쉬운 길이 아닙니다. 주님으로 인해 손해 볼 각오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손해와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고난과 핍박에 대한 두려운 마음 때문에 예수님을 인정하고 따르는 것을 주저하지 마십시오. 도리어 주님으로 인한 고난과 손해를 기뻐하십시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 5:10~12).
※ 삶의 적용
주님의 은혜를 누리기 위해 내 삶에 새롭게 변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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