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량미달의 지도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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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는 엔트로피가 증가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명성의 안전관리가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마치 엔트로피가 증가된 가스, 휘발유, 원자력을 안전하게 관리 하기위해서는 철저한 안전관리가 필요 하듯이 지도자도 그런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설령 그런 안전장치가 있다 하더라도 무시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도 헌법을 준수하고 대통령 직무에 충실해야 하지만 과연 그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감시할 제도적 장치가 없습니다. 국민은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믿고 살아가야 하지만 우리 국민은 정치를 믿을 수 없는 것은 그간의 권력형, 정치적, 공무적 비리, 부패에 피해자로 반사적 불이익에 처한 경우를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누구나 행복하게 살아야 할 국민이 부익부 빈익빈의 정치적 경제적 모순된 구조로 인해 허탈한 삶을 살고 있는 경우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지도자는 엔트로피 증대에 노출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항상 우리 사회의 꼭지점에 있는 지도자들은 명예와 돈, 권력이 따라 오지만 그에 따른 불편함 즉 엔트로피가 증가됨으로 인해 자신의 사생활 침해를 받아야 하며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찮음을 안다면 사람이 살아가는 일상적 즐거움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다행히도 지도자들의 자질 함량이 높다면 다행이겠으나 우리의 경험상 그들의 함량은 항상 미달이었습니다. 때로는 함량을 조작하여 국민을 속이기도 했지만 국민은 그리 어리석지만은 않았습니다. 정치지도자야 말할 것도 없어 따로 논하지는 않겠습니다. 대표적인 종교지도자인 목사와 스님 그리고 신부님에 대해 함량에 대해 말 해 보겠습니다. 이 세 부류의 종교 지도자중에 우리사회에서 가장 객관적으로 함량이 가득 찬 지도자는 단연코 신부님이 해당되리라 생각 됩니다. 다른 통계자료를 적용하지 않더라도 우리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언어를 통해서 적용해 보면 쉽게 답이 나오게 됩니다. 사람을 부를 때 존칭과 비칭이 있습니다. 종교지도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지요. 예컨대 목사는 먹사로 스님은 땡중으로 비칭을 사용하지만 신부님에 대한 비칭은 아직 없습니다. 먹사와 땡중의 반사회적 범죄는 가사회된 경우가 있지만 신부님은 없습니다. 이런 사회적 정황으로 봐도 신부님들은 지도자로서의 함량이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계에서는 함량미달이란 피조물이 없습니다. 모두 충실하게 창조법칙을 지켜 나가고 있지만 유독 죄성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인간들은 함량미달의 삶을 살아가기에 양심을 속이고 건강을 해치는 식품과 의약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함량미달의 제품의 유통되고 있다면 한국교회 역시 함량미달의 복음이 유통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함량미달의 복음이 유통되는 일등 공신은 바로 무자격 목사 배출입니다. 신학교에 입학한지 6개월, 또는 1년 만에 혹은 돈으로 목사안수를 받는 경우도 있어 함량미달의 목사는 상상 이상으로 많은 듯합니다. 그런 반면 천주교회는 개신교회 목사에 비할 바 없는 복음함량이 가득 찬 신부님들이 많이 계심을 보게 됩니다. 신부님들을 양성하는 신학대학은 개신교와 같이 무허가 군소 신학교가 없습니다. 철저한 신학수업과 영성수업을 겸비하여 검증된 제도적 절차로 인해 함량이 가득찬 신부님들이 사목활동을 하게 되지만 개신교회 목사 배출과는 상대가 대지 않습니다. 복음에 관한 열정이 오히려 개신교회 보다 더 많은 신부님들도 계심을 봤습니다. 교리적 혹은 맹목적 선입견 때문에 천주교를 잘못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천주교세가 성장하는 것은 그냥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반면 개신교회가 성장이 정체되는 것은 함량미달의 목사가 그 원인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함량미달의 목사는 필히 함량미달의 복음으로 가짜 설교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판단은 사회가 더 잘 하게 됩니다. 지도자의 덕목은 자신이 속한 단체와 남을 섬기는데 있습니다. 대통령은 국민을 섬기고 , 목사는 성도를 섬기는데 그 존재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주님의 말씀이 이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우리 사회와 교회의 사정은 이와는 다릅니다. 학생들이 공부를 잘 하려고 하는 목적이 지도자의 권력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즉 남을 섬기는 직업을 갖는 것이 아니라 섬김을 받는 직업을 갖기 위한 방편으로 공부를 한 다는 것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같은 종교지도자는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와 교회의 지도자들이 바로 그렇습니다. 지도자 자신들은 말만하고 행하지는 아니하고 부하직원들에게만 행하도록 시킵니다. 교회 지도자인 목사는 언제나 설교만 하고 남에게 시키기보다는 자신이 먼저 설교의 일 순위 해당자로 실천자여야 합니다. 설교가 성도에게만 은혜가 되기보다 자신에게 먼저 은혜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윗자리에만 앉으려하고 사람들에게 인사받기와 랍비라 불리는 것을 좋아하는 등 모든 행위를 남에게 보이려고 한 것 처럼 지금도 우리사회의 관행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무슨 행사에 내빈석에는 지도자들이 많이 앉아 있습니다. 이런 자리에 앉기를 좋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지요. 예수님께서 지도자의 덕목으로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교회의 지도자는 성도들을 겸손하게 섬기는 자여야 합니다. 이를 더 확대적용하면 대통령은 국민을 겸손하게 섬기는 자여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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