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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와 축복(잠 12:24-25)

구원의 계획 2017. 4. 5. 09:20

구제와 축복 (잠 11:24-25 )

 

요즘 지구상에 재난이 많아지면서 구호의 손길도 바빠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지

난 주에 미얀마 긴급구호팀과 북한 비상식량구호팀이 파송 되었습니다.

박근협장로님을 단장으로 박준성 이성철 의사 두분 그리고 건축가 서영석 집사님이 북한으

로 떠났고, 그리고 이동열 선교사님과 차상훈 형제가 미얀마로 떠났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어려운 이웃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

다. 예수님이 산상설교를 통해 말씀하신 기독교 신앙의 3대 경건 생활은 구제와 기도와 금

식입니다. 세 가지 다 참으로 아름답고 귀한 경건의 덕목입니다. 그 중에서 오늘은 구제

에 대해서 주시는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1. 구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축복의 원리입니다.

 

성경은 믿음과 은혜만을 강조하지 않고 구제와 선행을 강조합니다. 구제와 선행의 중요성

을 강조하는 성경 말씀 몇 곳을 보겠습니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

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자녀들아 우리

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1서 3:17,18).

재물의 축복을 받은 자는 궁핍하게 사는 사람들을 도와 줄 생각을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

다. 구제는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의무이고 가장 진실한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 입니다.

뿐만아니라 구제는 자신의 삶을 풍족하게 하고 윤택하게 하는 비결입니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잠 11:25)

 

사도행전에 보면 죽었다가 살아날 정도로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었던 여인이 있습니

다. 그런데 성경은 이 여인이 이런 특별한 은총을 입은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행 9:36).

다비다는 히브리(한국) 이름이었고 도르가는 희랍(영어) 이름이었는데 도르가는 주님을 믿

고 사랑하며 따르는 여 제자였습니다. 도르가란 이름은 ‘아름답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도르가는 아름답고 착한 여인이었습니다. 풀러 신학교의 교장을 역임한 저 유

명한 옥켄가 목사는 도르가를 가리켜 “자비의 천사”(an angel of mercy) 라고 불렀습니

다.

도르가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았다고 했습니다. 선행과 구제가 많은 것을 강조하

는 것은 주님을 가장 생생하고 진하게 전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말에

있지 많고 선행과 구제에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

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 사도 요한의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는 것이니라 (약 1:27). 야고보의 말

입니다.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살전 5:15). “선한 일을 행하

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

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 6:18, 19). 사도 바울의

말입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 5:29).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도르가는 일편단심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그가 기뻐하시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에 한 평생

을 바친 아름다운 여 제자였습니다. 선행과 구제가 많은 사람이 되려면 인간관계가 원만하

고 좋아야 합니다.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만하고 좋아야 합니다. 인사도 잘 하

고 교제도 잘하고 도움의 손길도 잘 펴야 합니다.

도르가는 욥바에 사는 모든 과부들과의 관계가 원만하고 좋았습니다.

 

욥바에 사는 모든 가난하고 외로운 때로는 성격이 까다로운 과부들에게 속옷과 겉옷을 만

들어주며 부드러운 사랑과 위로와 도움의 손길을 폈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많은 시간과 많

은 물질을 사용 했을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힘들고 귀찮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도르가는 많은 시간과 많은 물질을 허비하면서 욥바에 있는 많은 과부들에게 속옷과 겉옷

을 만들어주며 그들에게 선행을 베풀었습니다. 그러다가 도르가는 너무 힘들어 병들어 죽

게 되지만 죽은 후에도 많은 사람들과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행 9:37).

 

아마 도르가는 선행과 구제를 너무 많이 하다가 몸이 지치고 병들어서 죽게 되었다고 생각

합니다. 데이빗 브레이너드는 인디언들을 위한 선교를 너무너무 열심히 하다가 29 살의 꽃

다운 나이에 병들어 죽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그리고 주님께서 맡기신 선교의 일과 구제

의 일을 위해서 수고하다가 몸이 지쳐서 죽는 일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연한

일입니다. 아니 축복된 일입니다.

내 잔을 채우소서의 맹의순 선생이 그런 분 입니다. 중공군 포로들을 위하여 자신을 온전

히 희생한 젊은이였던 맹 선생은 위대한 순교자였습니다.

죽음은 슬픈 일이지만 도르가와 같은 죽음은 축복된 일입니다. 도르가는 선행과 구제를 너

무 많이 하다가 지쳐서 병들어 죽었기 때문에 그녀의 죽음은 참으로 귀하고 아름답고 축복

된 죽음이었습니다. 도르가는 몸을 아끼지 않고 닳아서 없어지기까지 최선의 삶을 산 것

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관제와 같이 부음바 되었다고 표현했는데 이것도 번제의 개념입니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하나님께 다 드린다는 의미 Last one drop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드

리겠습니다의 의미라는 것입니다.

 

조지 휫필드가 말했던 것과 같이 “나는 녹슬어서 없어지기 보다는 닳아서 없어지겠다.”

이게 뭐예요? 완전히 연소시키겠다는 겁니다. 바로 번제의 개념입니다. ""

썩어 없어지기보다는 차라리 닳아서 없어지자""는 옛 어른들의 말도 있습니다.

도르가는 이렇게 죽어서 그의 시체가 다락에 뉘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이 전해

지자 마자 욥바에 사는 모든 과부들이 도르가의 집으로 달려와서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모

두 울었다고 했습니다. “모든 과부가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

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행 9:39).

눈물은 진실의 표시인데 과부들이 몰려와서 눈물을 흘리면서 도르가에 대한 진실한 사랑

과 진실한 고마움과 진실한 슬픔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선행과 구제가 많은 신자는 살았

을 때에나 죽었을 때에 많은 사람들의 눈물의 사랑을 받습니다.

 

여러분들이 죽었을 때 얼마나 많은 성도들과 이웃이 달려와서 눈물을 흘리며 슬퍼할 것입

니까? “그 사람 잘 죽었어!” 라고 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저와 여러분의 삶의 종류와

삶의 색깔에 달릴 것입니다. 평소에 인사도 교제도 구제도 선행도 없이 이기적으로 산 사

람은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것입니다.

도르가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고넬료의 구제와 기도에 하나님께서 감동을 받으셨듯이 도르가의 선행과 구제에도 하나님

께서 감동을 받으셨다고 생각합니다. 고넬료에게 사도 베드로를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셨듯

이 죽은 도르가에게 사도 베드로를 보내신 분도 하나님이셨다고 생각합니다. 베드로는 다

락에 뉘여 있는 도르가의 시체를 보자마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

고 시체를 향하여 ‘일어나라’라고 말을 했습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하심

과 성령의 생생한 감동하심을 그곳에서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드로가 죽은 도르가를 향해서 ‘일어나라’고 말을 했을 때 도르가는 마치 잠에서 깨어

나듯이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앉았습니다.

도르가는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특별한 은총을 입었습니다. 사람들의 눈

물겨운 사랑과 함께 하나님의 감동적인 사랑을 받았던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후 도르가는 많은 사람들을 주님에게로 인도했습니다.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행 9:42). 가장 축복받은 사람은 많은 사람들

을 주님에게로 인도하는 사람입니다. 한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해도 축복인데, 온 욥바 사

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했으니 도르가는 참으로 큰 축복을 받은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도

르가가 단순히 죽었다가 살아났기 때문에 온 욥바 사람들이 주님을 믿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찌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눅 16:31) 라고 주님께서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도르가는 살았을 때에도 주님을 증거했고 죽었을 때에도 그리고 살아났을 때에도 주님을

증거했습니다. 도르가는 사도행전의 한 페이지를 아름답게 수 놓고 있는 찬란한 별이 되었

고 주님의 사랑을 가장 생생하고 진하게 나타내 보여준 자비의 천사가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하나님께서 도르가에게 베푸신 긍휼과 자비와 은혜를 베푸시기를 간

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도르가처럼 선행과 구제가 많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

다. 사나 죽으나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선행과 구제가 많은 삶으로 많

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하나님께 상달된 것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기도와 구제)입니다.

우리들이 잘 아는 사도 바울의 구제관을 보여주는 구절들도 많습니다.

바울은 선교만 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 사역을 힘써 행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

라”(갈 2:10).

바울은 이 사역을 매우 적극적으로 가르칩니다. 도적질 하던 사람에게 도적질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구제하라고 가르칩니다.

엡 4:28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신 15장 말씀은 구제를 반드시 하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것은 율법의 정신입니다.

구제는 하나님의 뜻이고 분부이고 명령입니다. 이것은 하면 좋은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해야 하는 성도의 의무입니다.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

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신 15:7-11).

 

2. 구제는 우리에게 풍요로움과 축복을 가져다 줍니다.

 

구제는 우리들의 마음과 영혼과 몸과 삶에 풍요로움과 축복을 가져다 줍니다. 하나님의 말

씀이 그렇게 약속을 하기 때문이고 그리고 우리들의 삶이 그것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구

제가 우리들의 마음과 영혼과 몸과 삶의 풍요로움과 축복을 가져다 준다는 하나님의 약속

의 말씀들을 두 가지만 인용합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

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잠

11:24, 25).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

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 15:10). 구제하는 사람

들에게 하나님께서 부와 풍족함과 윤택함과 범사의 복을 주시마 약속을 하셨습니다.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와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

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사 58:6-11).

 

여기 구제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마 약속된 축복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

리니”“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네 빛이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너는 물 댄 동산 같

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어두움 대신 빛이 비취고 하나님의 영광이 호위하고 병이 치료함을 받고 기도의 응답이 속

하고 영혼도 뼈도 몸도 건강하게 되고 너는 물 댄 동산 같은 부족함이 없는 아름답고 풍요

로운 삶을 살게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모든 축복이 구제와 선행의 손길을 펴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또 한가지 귀한 축복은 구제하므로 전도의 열매를 많

이 맺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도르가의 구제때문에 온 욥바 사람들이 주님을 믿었다고 했습

니다.

 

이와는 반대로 구제를 하지 않는 극도로 인색하고 극도로 이기적인 사람들에게는 하나님

의 저주가 임한다고 말씀하기도 했습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 하려니와 못 본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

리라”(잠 28:27). 이것보다 더 심한 말씀을 한 마디를 인용합니다. 구제를 하지 않는 자

는 저주를 받아 영영한 불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

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

니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

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저희는 영벌에, 의인

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 25:41-46).

 

한경직 목사님은 신의주 제이교회에서나 영락교회에서 목회할 때 교회의 3대 목표중 하나

를 봉사와 구제로 삼았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1945년 10월 월남 후 12월 2일 영락교회

를 세웠는데 처음에는 영락교회라고 하지 않고 베다니 교회라고 했습니다. 봉사와 구제를

중심으로 하는 교회라는 의미였습니다. 한경직 목사는 교회창립 1주년을 맞은 1946년 12

월 1일 주일 ""교회란 무엇인가?"" 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면서 교회의 중요한 사명이 민중들

을 인도하고 돌보는 봉사와 구제임을 밝혔습니다.

 

예수님은 먹을 것이 없는 가난한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셨고 병든 자들을 어루만지시며 병

을 치료해주셨고 슬픔과 절망에 빠져 있는 자들에게 소망과 기쁨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여

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 만나 쓸어져 죽어가는 불쌍한 한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기름

과 포도주로 그의 상처를 싸 매어주고 자기가 타고 가던 짐승에 그를 태우고 주막에까지

데리고 가서 그를 돌아보아주고 그 다음 날에는 주막 주인에게 돈을 주면서 그 사람을 돌

아보아달라고 부탁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우리도 그와 같은 선행과 구제

와 봉사의 일을 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구제는 주님의 삶이었고 주님의 뜻이었고 주님의

분부와 명령이었습니다.

 

군인 100명을 거느린 로마군의 장교 백부장은 개인적인 시간이 없는 군에 얽매인 너무 바

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많이 구제하고 항상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고넬료를

아주 귀하게 보셨습니다. 너무 귀하게 보셨기 때문에 천사까지 그에게 보냈습니다.

하나님뿐 아니고 가이사랴 지역의 많은 사람들도 고넬료를 아주 귀하게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칭찬했다고 했습니다. 전도자가 되려면 칭찬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칭찬 듣고 사람들에게 칭찬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구제를 많이 하는 너그

러운 사람이 칭찬을 듣습니다. 인색한 사람은 칭찬을 듣지 못합니다. 인색한 사람은 전도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 먼저 믿는 사람들이 너무 인색해서 전도의 문을 가로 막는 경

우가 있습니다. 전도자가 되려면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의 시간

을 드리는데 너그러워야하고 사람들에게 구제의 손길을 펴는 데 너그러워야 합니다. 고넬

료는 너그러운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는 기도의 시간을 너그럽게 드렸고 사람들에게는

구제의 물질을 너그럽게 드렸습니다.

또한 고넬료는 인간관계가 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24). 고넬료는 혼자서 살아가는 고독

하고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고넬료는 우선 가족 식구들과의 관계가 좋았습니

다.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 하인들과의 관계가 아주

좋았습니다. 고넬료의 하인들은 고넬료를 존경했습니다.

""저희가[하인들이]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입니다."" 그

다음 일가와 친구들과의 관계가 좋았습니다.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

리더니."" 그 다음 가이사랴 지방에 사는 모든 유대인들과의 관계가 아주 좋았습니다. ""유

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어떤 사람은 개인적으로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잘 하는 것 같은데 가족 식구들이나 부하 직

원들이나 친척들이나 이웃 사람들로부터는 칭찬대신 욕을 먹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간관계

가 까다로운 사람은 전도를 할 수 없습니다. 친척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사람은 전도를 할

수 없습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의 종을 존중하며 은혜를 사모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더니."" 하나님의 사람 베드로에 대한 고넬료의 태도는 극진

한 존경의 태도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통해서 주실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고넬료는 다른 사무

를 다 제쳐 놓고 베드로가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욥바에 머물고 있던 베드

로가 자기 집에 들어 왔을 때 고넬료는 그의 발 앞에 엎드리어 절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

님 앞에 있나이다."" 얼마나 정성이 지극한 태도입니까?

허물이 있는 인간인 베드로 같은 하나님의 종들을 극진히 존경하며 그들을 통해 하나님이

주실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기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미리암도 실수를 범했지요.

그러나 고넬료는 마치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의 종을 극진히 존경했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

절히 사모했습니다.

로마 군대에 매어 있던 고넬료의 인간관계가 원만했는데 과연 오래 믿는 우리들의 인간관

계는 어느 수준에 머물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3. 구제할 때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제할 때에 조용하게, 남이 모르게, 은밀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느 정도로 은밀하게 해야 합니까?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말씀하십

니다. 어떻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릅니까? 이는 그 정도로 은밀하게 하라는 것입

니다. 누가 보든 안 보든,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하나님 앞에서, 구제 그 자체를 기쁘게

생각하고 섬기고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에 어떤 축복이 주어지게 됩니까?

 

마 6:4 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

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우리가 은밀하게 구제하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반드시 갚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은밀한 중에 행하는 것도 다 보고 계십니다.

‘야! 저 사람이 없는 물질을 쪼개서 어려 운 사람을 돕고 있구나’‘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을 베풀고 있구나 감동을 받으시고 때가 되면 반드시 축복해 주십니다.

 

잠언 19:17절에 보면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려운 자를 구제하고 도와주는 것은 하나님

께 돈을 꾸어주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난한 자 에게 은혜를 베풀 때

에 마음에 큰 부담을 느끼십니다. “내가 저 가난한 사람 을 보살펴야 하는데 저 사람이

도와주네. 참 감사도 하지. 미안하네. 이 은혜 를 어떻게 갚을까” 하시면서 빚진 자의 심

정을 가지신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빚을 안 갚고 떼어 먹으시겠습니까? 그렇지 않

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빚을 갚아 주십니다. 세상에서는 빚을 지면 3%, 4%로 갚아 줍니

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사랑이 풍성하신 분이기 때문에 30배, 60배, 100배로 갚아 주십

니다.

 

그리고 성경은 사랑이 없는 구제를 조심하라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3:3을 보면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혹자는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는데 어떻게 사랑이 없을 수 있나요? 하고 의

아해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을 보면 사랑이 없이도 구제하는 것을 볼 수 있

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이 없는 구제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바로 남에게 나를 알리고, 나를 드러내기 위해서 하는 구제 곧 가식적이고 거짓된 구제를

말합니다. 이런 사랑이 없는 구제는 설령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한다 할지라도 하

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고 이 땅에서의 축복도 없으니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씀하는 것

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2-4을 보면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

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

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

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고 권

면하시는 것입니다.

 

외식하는 자란 마음에는 없으면서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행위로만 선을 행하는 사람을 말

합니다. 신문이나 방송 등 매스컴에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거나 자랑하기 위해 구제하는 사

람들은 이미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들었고 또 상을 받았으니, 이렇게 외식하는 사람들

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나라의 상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사랑이 없는 구제는

아무리 많이 한다 해도 결국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간증: 300만불 헌금 / 라면 / 국수 / 500대의 트럭이 들어가게 됩니다.

도와 주어도 어려운 일이 많습니다.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는 것이지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

다.

 

그래서 웬만하면 일체의 사진 촬영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리들의 가난한 모습을 보

고 카메라를 들이대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

 

이 부분의 유혹을 극복해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조금 좋은 일 해놓고 마지막에 상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오늘 말씀드렸던 도르가처럼, 고넬료처럼, 예

수님처럼, 바울처럼 남은 생애 이웃들을 구제하며 전도하는 삶의 풍성한 축복과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시며 영광돌리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