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과 같은 죽음(사무엘상 12장 1∼5절)
사무엘은 사사시대와 왕의 시대를 잇는 선지자였습니다. 사울을 왕으로 세워 사사시대에서 왕의 시대로 바뀔 때 그가 해야 할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사무엘처럼 시대의 변화를 잘 알고, 그 시대에 임하는 하나님의 뜻을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잠시 주인공으로 세우셨지만 때가 지나 사울을 왕으로 세울 때 사무엘은 역사의 바통을 잘 넘기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실 땐 사역자로서 일하고, 하나님께서 멈추라고 하실 땐 바로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2절에 보면 “이제 왕이 너희 앞에 출입하느니라”라고 합니다. 여기서 ‘출입한다’는 ‘함께 걷다’ ‘동행하며 가르치다’ ‘인도하다’는 뜻입니다. 사무엘은 사울과 이스라엘 민족을 잘 가르쳤고 인도했습니다. 물론 혼자서도 잘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선 함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선 삼위일체라는 ‘관계’의 하나님이고, 하나님 나라는 공동체이며, 그 공동체는 함께하는 관계로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보면 사무엘의 자리는 상당히 높았습니다. 사울 왕이 세워지기 전 가장 높은 자리였습니다. 그런 자리에 앉아서 주인공의식이나 탐욕을 억제하고 버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귀 기우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겐 ‘탐욕의 죽음’이 필요합니다. 사무엘은 자신이 기름 부은 사울 왕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내가 소와 나귀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이고 압제하고 뇌물을 받았느냐”고 물어봅니다. 높은 권력의 자리에서도 어느 누구에게도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빼앗고 속이고 압제할 수 있는 자리에서 사무엘은 조용히 있었고 도리어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음성이 사무엘에게 인생의 초점이었습니다. 그냥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과 모든 것에 감사하고 만족했으며 그 이상 어떤 것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에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관계를 이루는 시간이 더 귀했습니다.
‘그날 이후’란 책에 나오는 못과 나사 이야기를 인상적으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첨단 문명이 지배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모든 건축물은 못과 나사를 통해 완성됩니다. 못은 가만히 서 있는 벽과 그 벽에 걸려고 하는 물건 사이 이음새의 역할을 합니다. 벽과 물건 사이에서 같이 할 수 없는 두 가지를 하나로 연결해 줍니다. 전혀 하나가 될 수 없는 성질의 두 가지를 하나로 만드는 게 바로 못과 나사입니다. 못은 자리에 연연하지도 않습니다. 꼭 이 자리에 있게 해 달라고 하지 않고 더 오래있게 해 달라고 요청하지도 않습니다. 주인이 못을 빼내서 다른 곳에 박아도 가만히 있습니다. 녹슬고 부러져 자신이 빠지고 다른 못이 그 역할을 해도 조용히 있습니다. 그저 자신의 일을 묵묵히 감당합니다.
사무엘이 그런 역할을 했고, 우리 예수님이 그런 존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들의 권리를 드러내지도 않으셨고, 하나님과 영원히 연결될 수 없는 우리 사이에서 연결되는 못이 되어 죽음을 조용히 감당하시고 완성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연결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이 땅에 필요한 사명을 담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김형종 목사<㈔국제독립교회연합회 북한선교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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