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춤(대상15:29)
"여호와의 언약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춤추며 뛰노는 것을 보고 그 마음에 업신여겼더라"(대상15:29)
"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삼하6:16)
아버지가 살아계실때의 일이 기억속에 잔잔히 남아 있다.
시골교회에서 목회하는 아들목사의 교회에 오셔서 작은 부흥회에 참석하셨다.
나는 몇명안되는 성도들과 함께 예배전에 준비찬송을 열심히 불렀다.
성도들이 은혜를 더 많이 받도록하기 위해 부흥회때에는 박수치며 목청을 다해 찬송을 부른다.
열심히 찬송인도를 하던 중 자리에 앉아계시던 아버지께서 천천히 일어나시더니 앞으로 나오신다.
나오시더니 덩실덩실 찬송에 맞춰서 춤을 추신다.
아버지는 원래 그렇게 흥이 있으신 분이 아니었다.
매우 침착하시고 논리적이고 이지적인 분이셔서 감정에 휘둘리시는 분이 아니셨다.
그런데 혼자서 10여분동안 찬송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시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지만 울음이 울컥 올라왔다.
아버지의 춤사위는 마치 성령에 취한 사람처럼 부드럽게 눈을 감으시고 예수님과 함께 춤을 추는 것같았다.
아버지가 춤추는 모습은 생전처음이며 마지막이었다.
나는 예배가 끝난 후 아버지에게 왜 춤을 추셨는지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들이 시골 작은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부흥회를 베풀고 열심히 찬송하는 모습을 보시고 아버지는 평생 해보지 않은 춤을 자연스럽게 추신 것이다.
기쁨과 평안함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취하셨을 것이다.
다윗은 왜 자신의 옷이 벗겨져서 치부가 드러나는 줄도 모를 정도로 춤을 췄을까?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에 여부스족속들이 거주하고 있었던 예루살렘을 제일 먼저 공략하여 시온산성을 빼앗고 시온산성 다윗성이라 칭했다.
이로써 다윗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삼고 훗날 솔로몬은 예루살렘성전을 세우게 된다.
아마도 다윗은 여부스사람들에게서 예루살렘을 빼앗아 그곳에 여호와를 위한 성전을 세우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예루살렘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에게 바쳤던 모리아이며 다윗이 하나님에게 번제를 드렸던 오르난의 타작마당이며 솔로몬이 성전을 세웠던 곳이며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골고다였다.
이스라엘에게 예루살렘은 왜 영광스러운 곳이 되는가?
그곳에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도록 했던 사람이 바로 다윗이다.
다윗은 20여년간 기럇여아림에 방치되어 있는 여호와의 궤를 예루살렘 다윗성에 모셔오기로 결심한다.
여호와의 궤는 엘리제사장의 아들들이 블레셋과의 전투에 사용하기 위해 가져갔다가 블레셋사람들에게 빼앗기고 벧세메스로를 통해 이스라엘로 귀환하여 기랼여아림에 들어가서 20년동안 방치되었던 것이다.
다윗이 이 사실을 알고 얼마나 마음이 아파했을까?
다윗이 힘이 없어서 여호와의 궤를 가져올 수 없었지만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에 예루살렘을 공략하고 다윗성을 짓고 여호와의 궤를 제일 먼저 모셔오고자 한 것이다.
다윗은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이 세워질 것과 그리스도께서 인류구원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에 세우실 것을 영적으로 알고 있었을까?
다윗의 시편을 보면 어느 정도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을 것이라고 본다.
예루살렘이 예루살렘이 되기 위해서는 여호와의 궤가 모셔져야 한다.
여호와의 궤가 없는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다윗은 3만여명의 사람들을 준비하고 새수레를 준비하여 악사들의 연주와 노래와 함께 성대하게 여호와의 궤를 기럇여아림에서부터 운반해왔지만 수레를 끌던 소들이 시끄러운 소리에 놀라 펄쩍 뛸때 웃사가 법궤를 만짐으로 죽음을 당하게 된다.
잘못된 방법으로 여호와의 궤를 운반한 댓가로 법궤 수레를 이끌던 웃사가 여호와하나님에게 침을 당하여 죽게 된다.
다윗은 두려움으로 떨면서 더 이상 법궤를 다윗성으로 운반하지 못하고 근방에 있는 가드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3개월간 두었는데 그 사이에 하나님께서 오벧에돔의 집에 큰 복을 내리심으로 다윗은 다시 여호와의 궤를 모셔오기로 결심한다.
두번째로 법궤를 모셔올 때 다윗은 모세의 율법을 상고하여 여호와의 궤를 수레에 싣지 않고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을 성결케 한 후에 어깨에 궤를 메게 하고 노래하는 레위인들이 뒤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찬양을 하도록 하여 이스라엘무리들은 뒤에 따르게 하고 다윗은 제사장들과 함께 베에봇을 입고 춤을 추면서 자신의 성 다윗성에 여호와의 궤를 모셔들이게 된다.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무리들과 함께 모셔오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모습을 다윗성 창문을 통해 본 미갈이 속으로 업신여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업신여겼다(despised)는 것은 경멸하고 깔봤다는 뜻이다.
미갈은 다윗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미갈은 가족을 축복하려고 들어오는 다윗왕에게 수치스럽다고 빈정거렸다.
방탕한자( vulgar fellow )는 아주 천박한 상놈이라는 뜻이다.
염치없이( shamelessly )파렴치하게 뻔뻔스럽게
자기몸을 드러내다( disrobing ) 아마도 다윗이 춤을 출때 베에봇이 벗겨졌던 것같다.
그냥 다윗의 행동을 보면 마치 술먹고 취한 사람이 창피한지도 모르고 미친듯이 춤을 추다가 옷이 벗겨져서 수치를 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때 다윗의 대답이 가관이다.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삼하6:21-22)
다윗이 옷이 벗겨지는 것도 모를 정도로 춤을 춘 것은 여호와 하나님앞에서 한 것이고 여호와께 드리는 최고의 제사이며 예배라고 말한다.
여호와앞에서 더 낮아질 지라도 하나님께서 계집종앞에서는 높여주실 것이라는 고백이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모신 자의 예배를 몸으로 보여준 것이다.
진정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자는 여호와앞에서 더욱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아마도 다윗은 여호와의 궤를 장차 그리스도께서 고난과 부활을 이루실 예루살렘성에 모셔드릴 때 하나님의 구원과 영광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래서 성령에 취한 다윗은 자신의 춤사위를 춘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과 함께 거룩한 춤을 추었던 것이다.
어쩌면 사울의 딸 미갈은 다윗이 격식을 갇추고 위엄과 권위를 가지고 여호와의 궤를 옮기며 왕의 영광을 드러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앞에서 왕의 위엄을 세우지 않고 철부지 아이처럼 굴었다고 빈정대는 미갈의 태를 닫으셨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다.
다윗의 춤은 하나님앞에서 어린아이같이 뛰놀며 하나님을 기뻐하는 참 믿음을 가진 자의 거룩한 춤이며 성령의 춤이다.
출처 사막의 생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esusaidtou&logNo=22103696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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