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마26장36-46절)
- 최수근 목사(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습관의 힘
성공적인 인생을 사신 분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좋은 습관입니다. 좋은 습관은 좋은 인생을 만드는 좋은 지름길이자 좋은 선생님과도 같습니다. 공부하면서, 일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신앙생활하면서 우리들의 모든 생활 속에서 의식하든 안하든 간에 순간을 채워가는 것은 늘 평소에 자신의 마음가짐과 생각, 노력 등이 더해져서 만들어진 습관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이 어떤 습관으로 채워지는 가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우리들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좋은 습관을 만들어 가고 그것으로 우리들의 삶이 채워지도록 할 수 있을까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는데 말입니다. 어떤 습관으로 세팅되느냐가 그 인생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곤 합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고 했습니다. 시작은 외부로부터가 아니라 우리 내면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품고 행동하면서부터입니다. 하지만 이 진입장벽이 만만치 않은 게 문제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건강한 믿음의 삶을 위해 가져야 할 좋은 습관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꼭 필요한 습관들이 여럿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기도의 습관이 참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데살로니가전서5장17절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또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신 좋은 습관 중에 하나가 바로 기도입니다. 모든 일에 기도가 앞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새벽에도, 밤중에도, 사역을 마치신 후에도 혼자 나아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구속사의 사역을 가름하는 매 분기점마다 더욱 힘써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기 위해 골고다로 나아가야 하는 시점에서도 예수님은 치열한 기도를 행하시게 됩니다.
겟세마네의 기도
유월절 식사를 제자들과 함께 마친 예수님은 대제사장이 보낸 병사들에게 잡히시기 직전에도 겟세마네 또는 감람산이라고 하는 동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마지막 영적전투를 치루기 위해 가신 것입니다. 36절“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이 장면을 누가복음22장39절에서는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 갔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일회적으로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늘 가시곤 하던 장소로 나아가셨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그 목적은 단순한 쉼에 있지 않았습니다. 거기에서 예수님은 기도하시곤 하셨습니다.
습관을 좇아 기도하러 겟세마네 동산에 가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기도를 요청하셨습니다.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기도하실 동안 제자들로 하여금 그냥 넉 놓고 앉아 있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깨어 기도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22장40절에서는 보다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예수님은 시험의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펼쳐질 일들을 예상하셨고 제자들에게도 미리 경고하셨습니다. 마태복음26장31절“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제자들이 이와 같은 예수님의 경고를 심중에 두고 있었다면, 그와 같은 순간 무엇이 제자로서의 행해야 할 도리인 줄 깨닫고, 그 순간을 이기기 위해 기도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지금 그들에게 얼마나 큰 영적싸움이 닥쳐오고 있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나타나는 제자들의 안일한 모습을 통해 그들의 영적상태가 다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우리에게도 깨어서 기도로 대비해야 할 때가 분명 올 것입니다. 아니 이미 와 있는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적으로 무디어져서 그것을 알지 못하고 기도로 준비하지 않으면 우리는 시험에 넘어지고 맙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주님과 함께 깨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제자들에게 기도를 명령한 예수님은 그 중에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시고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셨습니다. 그 때 3명의 제자들에게 보여 진 예수님의 모습은 지금까지 전혀 볼 수 없었던 힘든 모습이셨습니다. 37절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기도의 시간을 갖기 이전에 예수님은 고민하고 슬퍼하셨습니다. 그와 같이 힘든 짐을 기도로 함께 나누어지기를 예수님은 세 명의 제자들에게 요청하셨습니다. 38절“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평소와 다른 예수님의 모습은 제자들을 당혹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늘 위풍당당한 분이신데 죽을 정도로 힘든 마음을 토로하시며 함께 깨어 기도하자고 하셨을 때 제자들로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무슨 일인지 명확히 알 수 없어도 우선 급한 마음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동안 합심해서 기도해야만 합니다. 그게 건강하고도 정상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이 아닙니까?
오늘 여러분은 예수님과 함께 깨어 그 분의 짐을 나눠 질 수 있는 기도의 사람입니까? 이것은 오늘 우리 주님을 향한 마음 뿐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도 여전히 누군가는 질병, 죽음, 사별, 재난, 상실 같은 어두움과 공포를 겪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함께 있어 달라고, 곁에서 같이 깨어서 기도해 달라고, 어쩌면 말없이, 부탁합니다. 예수님도 연약한 제자들의 지지를 필요로 하셨는데, 보다 연약한 우리들은 얼마나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힘들어하는 우리의 지체들과 함께 나란히 겟세마네에서 무릎을 꿇을 것을 요청 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깨어 그 분의 짐을 나눠지기를 기뻐한다면, 정녕 최선을 다해 우리들의 지체들을 위해서도 함께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너희의 짐을 서로 나누워 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참된 제자로서의 삶이요, 우리의 거룩한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이로 인해 건강한 교회공동체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시기전 금식하며 기도하셨고,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에서 최악의 상태에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리고 지난3년의 공생애를 지내오시면서도 습관을 좇아 수시로 기도하셨습니다. 이제 마지막 남은 십자가를 지시는 일을 앞에 두시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기 위해 제자들을 잠깐 뒤로 하고 기도하기 위해 홀로 앞으로 나아가셨습니다. 39절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은 죽음의 잔 앞에서 하나님께 간곡히 기도하셨습니다. “만일 할 수 있으시거든 십자가를 지어야 하는 무거운 짐을 피해갈 수 있게 하옵소서. 하지만 십자가를 져야 하는 일이 아버지의 뜻이라면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이 간구의 밑에는“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신데 아들을 희생시키지 않고는 이 악을 쳐부술 수 없는 것입니까?”라는 질문이 깔려 있어요. 이 어려운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첫 번째 기도를 통해 십자가의 길이 정녕 피할 수 없는 길인지를 확인하셨습니다.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첫 번째 기도를 마치시고 예수님께서 돌아오셨을 때 제자들은 피곤함에 다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깨어 기도하라고 명령하셨건만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기도에 동참한 이들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인기척에 아마도 베드로가 눈을 떴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자는 모습을 보시면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40절“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예수님은 가장 가까운 제자들이 그와 함께 고통을 나눌 수 없는 사람들임이 드러나자 격한 실망감을 드러내셨습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예수님께 기도하겠다고 대답은 했을 것입니다. 그리곤 행동하지 않은 것이죠. 왜 그렇습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을 듣고 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말씀 읽겠습니다. 전도하겠습니다. 섬기겠습니다. 예배 꼭 참석하겠습니다. 그리고 끝입니다. 옛사람의 습관을 버리고 새사람의 질서를 살아가기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 가운데 살아가기를 끊임없이 우리에게 요청하고 계십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왜 깨어 기도해야 합니까?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들의 신앙을 잃지 않도록, 그래서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잠들었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41절“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제자들을 보시면서 예수님은 탄식하셨습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 우리의 이중적인 모습을 성찰하게 만듭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 깊이 연결되어 있길 원합니다. 하지만 일상의 삶에서 그리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더 많습니다. 결국 인간적인 연약함으로 인해 제자들은 기도하겠다고 대답은 했어도 깨어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로막는 많은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말씀하신 것처럼 너무도 많은 걸림돌들이 우리의 기도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하나하나 제거하고 우리는 깨어 기도하는 기도의 자리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무시로 깨어 기도하는 시간이 우리를 마귀의 시험으로부터 지켜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깨어 기도함으로써 우리의 욕망을 하나님의 뜻보다 앞세우도록 유혹받는 모든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의 목적은 시험에 처할 때 유혹에 맞설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우심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분명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그들이 받을 시험의 때에 대비해 기도로 전혀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그 결과는 뻔 한 것입니다. 이게 오늘 다른 세상의 가치들에 밀려 기도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은 아닙니까?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구원 받은 이후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은 끊임없이 기도로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는 한 우리 신앙의 삶이 앞으로 전혀 나아갈 수 없습니다. 내면의 성숙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세상의 온갖 유혹으로부터 우리의 믿음을 지키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기 위해선 기도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혀 심지 않고 열매만을 바라려고 합니다. 그러니 아무 것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기도합시다. 기도의 사람이 됩시다. 지금과는 분명 업그레이드 된 삶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인생의 부요함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간구하신 예수님
같이 기도하지 못함으로 무안해 하는 제자들을 뒤로 하고 예수님은 다시 나아가 기도하셨습니다. 42절“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기도를 들어보면 첫 번째 기도의 내용에서 보다 더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마음을 굳게 하는 기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계속되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던 기도의 모범대로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예수님은 순종하기를 작정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기도로써 이중적인 싸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자신과 벌이는 싸움과 제자들의 허약함에 대항한 싸움을 치루시면서 자신의 영적 싸움 안에서 앞으로 나아가셨고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힘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이어지면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점점 더 하나님의 뜻 가운데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 우리의 의지, 우리의 계획이 앞서게 되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은 점점 내려놓게 됩니다. 앞서 가던 내 생각, 내 계획을 하나님께 맞추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멈추게 되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지만 기도가 계속되면 우리는 철저하게 하나님 뒤에 서게 되고 그 뒤를 순종하며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깊은 잠에 빠진 제자들
그렇게 예수님이 두 번씩이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일치시켜가고 있는 동안에도,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탄식소리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여전히 육신의 피곤함 속에 빠져 예수님의 기도에 동참하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다시 제자들에게로 오셨을 때 한 제자도 깨어 기도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43절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육신의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여 자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바라본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겠습니까? 정말 제자들이 간절하다면 육신의 피곤함에 그렇게 쉽게 잠들었겠습니까? 이렇게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제자들의 모습이 바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은 아닐는지요? 영의 간절함이 육신의 연약함을 이기어, 그 장벽을 뚫고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할 수 있기를 하나님은 우리들에게서 바라고 계십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 바램을 보기 좋게 저버렸습니다. 그렇게 깊이 잠든 제자들을 다시 두시고 예수님은 세 번째 나아가 같은 말씀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이처럼 거듭되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는 점점 더 예수님을 강하게 붙잡아 주셨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도 천사를 통해서 예수님을 도우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43절을 보면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했습니다. 그렇게 힘을 얻은 예수님께서 얼마나 힘써 간절하게 기도하셨는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문제에 직면하여 그 문제와 싸워 이기기 위해 기도에 힘쓰면 누가 도와주십니까?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욱 도와주실 것입니다. 기도의 환경을 만들어주시고, 몰입할 수 있도록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 그런 영적환경이 이루어지기를 먼저 바란다면 우리는 죽는 날까지 기도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의 나약함으로 인해 생긴 장애물들을 넘어설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는 것입니다.
시험이 다가옴
앞으로 펼쳐질 수난에 대한 준비는 이렇게 예수님의 기도로서 강력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두려움도 근심도 슬픔도 고통도 다 사라졌습니다. 십자가의 수난을 위해 기도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기도를 다 마치신 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돌아오셨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통해 십자가의 길을 확인하고 오신 예수님은 잠들어 있는 제자들을 더 이상 꾸짖지 아니하시고 나지막하게 말씀하셨습니다. 45절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예수님은 이때를 위해서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지만 제자들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때가 되었기에 너희들이 기도하고 싶어도 기도로 준비할 틈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육신적으로 지쳐 있는 제자들로 하여금 “그래 그만 자고 쉬라”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주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침내 시험의 때가 다가왔습니다. 잠들어 있는 제자들을 예수님께서 깨우셨습니다. 46절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 때까지가 고민스런 것이지, 그 뜻을 안 다음에는 주저하거나 지체할 이유가 없습니다. 시험이 올 때까지 움츠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현장으로 당당히 나아가 이기는 것이 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예수님의 말씀에 우리가 기도로 준비되었다면 뒤로 물러서지 않고 예수님과 함께 끝까지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십자가를 지는 일이어도 두렵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 당당함을 우리는 기도로 십자가를 준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로 이기신 예수님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피하지 않으시고 담대하게 그 길을 가셨습니다. 예수님에게 기도는 영의 간절함과 육신의 나약함 사이의 투쟁이었습니다. 또한 신뢰로써 하나님의 뜻에 따를 수 있기까지 그를 지탱했던 버팀목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그 자리를 피하지 않으시고, 자신을 체포하기 위해 달려 온 무리 들 앞에 서 있던 제자 가룟 유다에게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거스르지 않고 순종함으로 따르는 그 힘은 바로 그 분의 기도에서 온 것입니다.
하지만 육신적인 상황에 메여 잠시 후에 일어날 심각한 상황을 기도로 준비하지 못한 제자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56절“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위해 죽지 못하고 자기 살길을 찾아 다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장면입니다. 심지어 베드로는 얼마 전 모든 사람이 다 주님을 배신한다고 해도 자신만은 예수님을 따르겠노라고 했지만, 예수님이 잡히시던 순간 도망칠 뿐만 아니라 자기 목숨을 위해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그들의 모습은 예수님을 통해 예견되었던 일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농담처럼 받아 넘겼습니다. 그러기에 진지하게 기도로 이 순간을 준비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기도하지 않은 제자들은 모두 실패하였습니다. 마귀의 시험에 넘어졌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음뿐일 때가 참 많습니다. 신앙생활 열심히 해야지, 예배 잘 드려야지, 봉사해야지, 성경읽어야지, 말씀공부 해야지 말씀대로 실천해야지 하면서 마음만 움직일 뿐 실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제가 좀 낙관적으로 보는 걸까요? 아예 이런 마음조차도 없는 것입니까?
이런 우리의 안일함과 나태함을 이기고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하는 힘은 우리의 기도입니다. 그와 함께 기도는 우리를 무너뜨리고자 호심탐탐 노리고 있는 사탄에 대한 강력한 무기입니다. 지금 기도로 우리가 깨어나야만 합니다. 그래야 움직일 수 있습니다. 마음은 원한다고 하지만 우리의 안일함과 나태함이 우리의 기도를 멈추게 한다면 우리는 잠든 제자들처럼 시험의 때에 무방비상태에 놓이고 말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삶에서 기도가 습관이 되고,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리가 되어 우리의 신앙을 세워가는 큰 에너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 때에 우리는 매 순간 마귀의 시험 앞에 육체의 뜻이 앞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앞서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이 거룩한 습관을 좇아 나아가셨던 그 기도의 길을 걸어갑시다. 우리 자신이 무너지는 것을 느낄 때 가야 할 곳은 다른 곳이 아닙니다. 바로 겟세마네 기도의 동산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도록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기도함으로써 시험을 이기는 법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 가운데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희생제사는 그의 피가 아니라 순종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롬5장19절“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우리들에게 겟세마네 동산은 역전된 에덴동산인 것입니다. 더 이상 마귀의 유혹이 난무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과 함께 깨어 기도하면 됩니다. 기도할 때 모든 영적 싸움의 자리에서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세상의 시험으로부터 우리를 거룩하게 지켜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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