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의 있는 가르침(마가복음 1장 21∼27절) 2018.2.3
예수의 탄생 이야기가 없는 마가복음은 1장에서 가버나움을 배경으로 벌어진 여섯 개의 일화를 소개하며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려줍니다. 오늘의 본문에는 두 번째 일화가 나옵니다. 안식일에 회당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회당에 모이는 일상입니다. 모임 중에 성경을 읽고 누군가가 말씀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우며 반복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께서도 회당에 들어가셨고 여느 랍비가 그랬듯 가르치셨습니다. 말씀을 들은 이들은 그 가르침에 놀랐습니다.
회당 안에 있던 이들은 예수의 교훈이 권위 있는 자의 가르침이라고 느낍니다. 사실 예수는 유대사회에서 인정되는 어떤 권위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유명한 랍비나 바리새인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성서를 해석하고 가르치는 일에서 최고의 공신력을 인정받던 서기관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의 말씀에서 서기관들의 권위를 능가하는 권위를 경험합니다.
그 권위의 근원은 새로움에 있습니다. 들어보지 못한 말씀입니다. 흔히 알고 있던 것이 아니라 아무도 생각지 못한 말씀입니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바를 뒤엎는 말씀입니다. 편안히 들을 수 있는 지당한 말씀이 아니라, 가슴을 뛰게 하고 안절부절 못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새로운 교훈이란 그런 것이고 그 새로움이 권위가 됩니다.
이 놀람과 더불어 예기치 않은 사건이 벌어집니다. 회당 안에서 악한 귀신이 들린 사람이 있다는 것이 발견됩니다. 악한 사람이 의인의 모임에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은 당시의 철칙이었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이 회당 안에 있다는 것은 경악할 일이었습니다. 더러운 존재와 접촉하면 반드시 더러워진다는 율법 때문에 회당 안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은 다 부정해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거룩한 안식일에 거룩한 회당에서 말이지요.
귀신 들린 사람이 회당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부정함이 은밀히 감춰져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의 가르침은 그 더러운 영의 정체를 폭로합니다.
본문 24절에 보면 더러운 영은 소리를 지릅니다. 상대를 제압하거나 저항하는 행위입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귀신이 말하는 우리란 누구일까요. 모든 악한 힘과 권세를 통칭하는 표현이거나 교묘히 위장해 있는 또 다른 더러운 영들이 있음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귀신은 예수를 하나님의 거룩한 분이라고 추켜세웁니다. 칭찬이나 인정은 상대의 환심을 사려는 악마의 속삭임이기 십상입니다.
25절에서 예수는 귀신을 꾸짖으십니다.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귀신 들린 사람이 있으면 유대인들은 그 사람을 추방하고 격리합니다. 율법이 정한 바에 따른 대책입니다. 귀신 들린 사람과 귀신을 하나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사람과 악한 영을 따로 분리시킵니다. 악한 영은 추방되고 사람은 보전됩니다.
단순히 귀신 들린 개인만이 아니라 귀신들린 사람들을 내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대인 모두를 치유하는 것입니다. 부정하다 낙인찍고 배척하는 사람들도 치유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이는 사건입니다. 질병뿐 아니라 사회의 구조도 고친다는 점에서 온전한 회복입니다.
거룩함이 부정한 것에 의해 해를 입는다는 두려움을 뒤집고, 거룩함이 부정함을 회복시킨다는 진실을 드러내는 가르침입니다. 아무도 추방되지 않는다는 것은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본질입니다.
가버나움 회당에서 벌어진 일로 예수의 소문이 갈릴리 전역에 퍼집니다. 어떤 이들은 기쁘게 그 소식을 들었겠지만 또 다른 이들은 예수가 유대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린다고 비판하겠지요. 그 비판은 점점 커져 예수를 죽여야 한다는 결론에까지 이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예수의 소문을 내고, 또 듣고 계십니까.
정명성 목사(춘천 팔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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