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케 하는 이(마태복음 5장 9절) 2018.2.1
예수님은 산 위에 모인 제자들을 향하여 화평케 하는 자의 복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당시 폭압적인 로마의 치하에서 유대와 사마리아로 나뉘어 증오와 원한으로 대립하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평화를 만드는 자가 참으로 복된 자’라고 선포하고 계십니다.
‘평화를 만드는 자’라는 주님의 이 말씀 속에는 “아직 이 땅에는 진정한 평화가 없다”는 인식이 전제돼 있습니다. 진정한 평화가 없는 이 땅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참된 평화를 만드는 데 헌신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엡 2:14)”라고 했으며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고후 5:18)”라고 했습니다.
특히 지난 70년간 남과 북으로 나뉘어 불신과 증오의 담을 높이 쌓아온 우리 한반도의 크리스천들은 무엇보다도 남북을 화평케 하는 일에 힘쓸 때 이 세상 사람들은 비로소 우리를 “과연 하나님의 아들답다”고 일컫게 되는 것입니다.
민족마다 그 죄의 기질과 특성이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고 기독교 문화인류학자들은 말합니다. 가나안 족속은 음란함 때문에 망했고, 갈대아 족속은 잔혹함 때문에, 에돔은 교만 때문에 망했다고 구약의 선지자들은 증언했습니다. 아모스 같은 선지자는 중근동의 여러 민족의 죄악을 낱낱이 지적하면서 그들이 심판받는 이유를 각각 다르게 설명했습니다. 다메섹은 이웃 길르앗을 압박한 죄 때문에(암 1:3∼5), 블레셋과 두로는 포로를 팔아넘긴 인신매매의 죄 때문에(암 1:6∼8, 1:9∼10), 에돔은 형제에게 잔혹하게 보복한 죄 때문에(암 1:11∼12), 암몬은 임신부의 배를 갈라 죽인 반인륜적 죄 때문에(암 1:13∼15)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의 성품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죄악 중의 하나는 과연 무엇일까요. 저는 바로 ‘시기와 분열’이라고 자인하고 싶습니다. 바로 우리 민족 분단의 뿌리에는 민족적 원죄와도 같은 분열의 죄가 놓여 있습니다. 남북 갈등, 남남 갈등의 이중 분열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또 남북 갈등을 증폭시켜 적대적 공생관계를 고착시키는 분단고착 세력이 남과 북 양쪽에 모두 상존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남한사회에는 진영논리를 극대화하고 상대에 대한 증오를 증폭시키는 극단적인 색깔 논쟁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이 이중 분열을 극복하고 한민족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한국교회는 먼저 성령의 화목케 하시는 능력을 충만히 받아야만 합니다.
한국교회가 ’평화의 영’으로 분열과 증오, 전쟁으로 얼룩진 이 참혹한 한반도에서 화해와 평화의 열매를 거두어야 합니다. 그때야 남북의 7000만 동포는 우리 그리스도인을 향해 비로소 ‘화평케 하는 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컫기 시작할 것입니다. 민족 복음화는 이처럼 평화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역설의 종교입니다. 고난을 영광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죽음을 부활로 바꾸는 하나님의 역설이 선포된 종교입니다.
외신들은 2018년 4월이 미국의 선제 군사타격 가능성이 가장 높은 달이라고 예측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남북한은 평창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통하여 한반도 평화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역설적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이 평창의 평화 메시지가 단순한 정치적 제스처로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북한과 미국이라는 두 적대 세력이 진정한 동북아 평화와 세계 평화를 이루는 대전환의 계기를 이루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 한국교회 그리스도인은 이 엄중한 때에 ‘민족을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잘 감당하여‘화평하게 하는 자’의 축복과 은총을 세계에 흘러가게 하기를 우리 주님께 기도합니다.
이문식 목사(광교 산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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