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말 변화되었나? (시편 4:1-8)
유기성 목사
4:1-8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셀라)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셀라)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작년 2010년은 놀라운 해가 될 것이라는 강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한해를 보내면서 무엇이 특별히 놀라왔나 하고 돌아보았는데, 솔직히 ‘이것이구나!’ 하고 깨달아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교인들이 많아진 것인가? 하나님께서 이것을 놀라운 해라고 하시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오히려 교인들의 증가로 인한 여러 가지 과제로 인하여 고민거리가 많아진 한해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문제로 고민할 때 교인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에 관심을 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교인들의 숫자가 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놀라운 일이 무엇인가?
질문하고 있을 때, 몇 분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이 교회에 나오면서 변화된 것이 너무 감사하여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특별헌금까지 하시고 가셨습니다. 그 헌금을 건축 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회에 보내드렸습니다. 언제나 가장 감사한 것은 사람이 변화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특히 선한목자 교회에 나와서 사람이 변화되었다니 자랑스러울 일이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올해 허락하신 놀라운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저의 변화였습니다. 저는 올해 사람이 완전히 변화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진리를 결론 삼는 믿음은 가졌지만 놀라운 확신을 가졌다고 할 수는 없었는데, 올해 사람은 변한다! 는 확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보고 믿게 된 것이 아니라 저 자신을 보면서 그런 것이니 정말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1절에서 “내 의의 하나님이여” 하며 하나님을 부르며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 달라고 탄원합니다. 자신이 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3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고 하면서 자신이 경건한 자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자신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이 싫었습니다.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누가 감히 자신이 경건하다 의롭다 할 수 있어” 그런데 6절에 보니 사람들이 저처럼 말한다고 했습니다.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정말 선한 사람이 있겠어? 털어 먼지 안나는 사람이 있나?’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면 자신들에게 주님의 얼굴을 비추어 달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선한 사람이 아니냐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의롭고 선하고 경건한 사람이라고 담대히 말할 자신이 있습니까? 저는 오늘 우리가 반드시 그러해야 한다는 말씀을 전할 거룩한 사명감을 느낍니다. 우리는 요즘 전쟁의 위기 앞에서 어느 때보다 더욱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면서 깨닫는 것은 하나님은 전쟁을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가 진정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죄가 커서 멸망하였기 보다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하였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경건한 사람이 되는 것이 전쟁을 막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건한 사람이 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고 그렇게 심각한 일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와 사회는 점점 더 죄와 악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도 사방에 죄짓는 사람에 둘러 싸여 있습니다. 2절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세계는 우리나라를 보며 기적이라 말합니다. 그럴만도 한 것이 우리나라는 세계 2차대전 후 그 많은 후진국, 원조 받던 국가 중에 다른 나라에 원조하는 나라로 탈바꿈한 유일한 나라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인 공산국가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형편인데도 정치적 민주화도 이루어졌습니다. 게다가 G 20 정상회담의 의장국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이 기적이라고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압니다. 이러한 기적의 이면에는 세계 선교 역사상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기독교의 부흥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짧게 보면 공산주의를 막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이기도 하고 선교 완성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택하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125년 전 처음 복음을 받아들였던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세계 선교 2위 국가가 되었습니다.
정말 이 두 가지 사이에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는 것일까요? 그러나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가 심각하게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기적을 이룬 국가이지만 현재 음란사이트 접속율 세계 1위, 청소년 음주 흡연율 세계 1위, 이혼율 1위, 자살률 1위, 낙태율 1위, 교통사고 발생율 1위, 성형수술율 1위 등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등 얽매이기 쉬운 모든 죄에 심각하게 빠져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그리스도인들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인이니 한번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싸움, 세상 사람만 그렇습니까?
욕심, 세상 사람만 그렇습니까? 거짓말, 세상 사람만 그렇습니까? 음란, 세상 사람만 그렇습니까? 이제 하나님의 마음을 알 것 같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전쟁의 위기 앞에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여러분은 이제 은밀한 죄에서 벗어나 외롭고 선하고 경건한 사람이 되었습니까? 아닙니까?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까? 나라가 이 정도의 위기 상황이 되었는데도 우리가 여전히 죄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셔야 하겠습니까?
물론 하나님께는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더 큰 징계를 주시면 간단히 해결됩니다. 집 앞마당에 포탄이 떨어지고 옆 사람이 죽어나가고 식량도 구하기 어려워 울며 불며 돌아다니게 되면 은밀한 죄는 끝납니다. 전쟁이 아니라도 의 앞에서 “암입니다.” 한 마디만 들어도 세상 재미가 유혹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눈물로 회개하며 죄짓는 생활에서 떠날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되어야 회개할 것입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이런 방식으로 우리를 다루시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무서운 징계나 극한 상황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변화될 복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반드시 삶을 변화시키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까? 그것이 진정한 복음인지 아닌지 알고 싶다면 그 복음이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켰는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삶이 변화되지 못하였다면 여러분은 아직 정확한 복음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에는 속죄 뿐 아니라 죄를 완전히 이기는 승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히 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요일 2:1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요일 5: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성경은 분명히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짓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 믿으면 죄짓지 않게 된다고 말하면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당할 것입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 조차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 복음을 무엇인 다시 한번 확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롬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예수님을 믿는 것은 죄의 몸이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 생명이 되시고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며 사는 것입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복음을 정말 믿는다면 삶이 변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으로 산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선한 사람이 되어야 당연하지 않습니까? 요한일서 5장 1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우리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짓는 데서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왜 나는 죄에서 지켜 주시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항의하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서도 우리를 죄에서 지켜주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지 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지켜주시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심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짓고 즉시 회개하지 않습니다. 하루를 지나고도 회개의 시간을 갖지 않은 채 잠자리에 듭니다. 회개는 죄가 씻어지는 놀라운 복입니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 손에 무엇이 묻었으면 즉시 수돗가에 가서 씻을 것입니다. 옷에 무엇이 묻었으면 즉시 세탁소에 보낼 것입니다. 그런데 왜 마음이나 말이나 행동으로 지은 죄에 대하여는 한 주간도 한 달도 몇 년도 회개하지 않고 그저 넘겨버립니까?
예수님께서 정말 마음에 계심을 믿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 누구와 함께 있을 때, 그에게 잘못한 일을 했다면 즉시 “미안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혼자 있으면 누구에게 잘못했다고 할 것입니까? 예수님과 늘 함께 있음을 아는 사람은 잘못하면 즉시 예수님께 고백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회개가 없이 산다는 것은 자신에게 회개할 대상이 없는 것입니다. 저는 올해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을 일기로 쓰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남자들 모임에서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지속적으로 주님의 임재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전에도 성령의 체험과 강렬한 회개와 극적인 결단의 시간이 여러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동안 제 삶의 변화가 있었을 뿐이었고 얼마 못가서 다시 옛날처럼 돌아 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계속 하여 더 뜨겁고 극적인 체험을 갈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말 매 순간 예수님의 임재가 느껴집니다. 새벽부터 잠자기 까지! 그래서 생활이 완전히 변화되고 있습니다. 저는 변한 것이 없는데 예수님이 함께 하심이 너무나 분명히 믿어지는 것이 달라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지켜주시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바른 회개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회개를 하면서 징계가 무서워 회개를 합니다.
그것은 결코 우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아들이 거짓말하는 것을 고쳐 보려고 매를 들었습니다. 안됩니다. 다음에 또 거짓말하면 곱절로 때릴 것이라고 위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00대가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아들을 100대 때리고는 고꾸러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이렇게 다루었다면 네가 견딜 수 있었겠느냐?’ 하셨답니다.
매가 두려워 회개하는 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죄가 싫어서 회개를 합니다. 정말 죄를 싫어하며 죄를 짓지 않기 위하여 애통해 합니다. 그러나 울고 불고 회개해도 금식하고 철야해도 공개 자백을 해도 평생 죄에 묶여 살며 더욱 좌절에 빠질 뿐, 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죄를 보며 회개하는 것도 올바른 회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이 기록된 요한일서 1장 전체 문맥은 예수님과의 친밀한 사귐에 대하여 가르치시는 말씀입니다. 이 맥락에서 요한일서 1장 9절 말씀을 이해해야 합니다. 죄는 예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킵니다. 그래서 마귀는 작은 죄라도 짓게 하려고 발악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지어도 즉시 회개하면 예수님과의 사귐이 곧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회개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기에 즉시 회개하고 회개하면 예수님과의 친밀함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계속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게 되면 점점 죄를 지을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다는 것이 믿어지는데 어떻게 죄를 지을 수 있습니까?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면 처음에는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던 일들이 불편해지고 어떻게 이렇게 계속 살 수 있을까? 재미없는 삶처럼 여겨져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동안 우리가 진정으로 마음에 오신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살았음을 증명해주는 것일 뿐입니다. 이제 비로서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고 24시간 우리와 함께 사시는 삶을 시작한 것입니다.
A.W.토저 박사는 초대교회 때는 교회에서 성령님이 떠나면 90%가 마비될 것이고 현대 교회는 성령님이 떠나면 10% 정도 차질이 올 것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하면서도 우리 마음대로 살았고, 교회 일을 하면서도 실제로는 우리끼리 의논하며 교회 일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경우 예수님 계셔도 모르고 떠나셔도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정말 바라보며 살게 되면 결코 이렇게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불편하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워낙 세상과 죄에 찌들려 있었기에 그러한 삶에서 맛보던 순간적인 기쁨을 끊으려 하는 것이 처음에 힘들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마치 잘못된 식습관을 가진 사람이 건강 때문에 식습관을 바꾸려 할 때 처음에 어려움을 겪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은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것만은 아닙니다. 만약 평생 힘들다, 어렵다, 부담된다 하면서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재미도 없고 부담스럽기만 하겠으나 곧 진정한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7-8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맛보고 나면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갈 수 없게 됩니다. 옛 생활이 끔찍하게 여겨집니다.
나는 담배를 피지 않는 것 때문에 괴롭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편안하고 감사하고 기쁩니다. 그러나 담배를 늘 피던 사람은 담배를 피지 않으려고 하면 불안하고 괴롭고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담배를 피지 마세요. 지금은 괴로우나 곧 너무나 좋아질 것이예요 하지 않겠습니까? 처음에는 고통스럽게 억지로 버려야 했던 세상 유익과 재미가 점점 빌립보서 3장7-9절 말씀처럼 배설물처럼 여겨지게 됩니다. 예수님을 더 알고 싶고 언제나 예수님 안에서 발견되고 싶어지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연말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뜻을 정말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4절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5절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매년 그랬던 것처럼 지난 한 해를 후회하고 새롭게 결심하지만 곧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식이 되면 큰 일 납니다. 끝까지 이대로 살다가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서게 됩니다! 정말 두려운 일입니다. 안된다고 좌절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십자가 복음이 우리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십자가 능력으로 우리는 예수님을 모시고 살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면 예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시고 지켜주실 것입니다. 마음을 활짝 열어 누구에게나 마음 조차 다 보여 주며 살기로 결단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변화된 삶을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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